가는 날이 장날
(7/20)사우스 코스트(South Coast Plaza)에서 손주들 선물을 준비하느라고 쇼핑을 했다. 장난감은 어미들이 질색을 할 지경으로 많기도 하려니와, 내 안목으로는 요즘 유행하는 장난감을 고르기도 힘들었다. 나는 늙었거니와, 막내딸아이도 아기가 없어서 아이들 선물에는 도통 무뇌한 이었기 때문이었다. 두어 바퀴 돌고는 화려한 캐릭터가 그려진 옷을 사기로 했다.
손주 녀석은 미키마우스가 축구를 하는 그림이 그려진 옷 한 벌을, 그리고 손녀 딸아이에게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가 그려진 옷 한 벌을 구입했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구식 할머니’의 안목이 여실했다. 손녀딸아이가 갖고 싶어하던 ‘코끼리’인형이 마침 눈에 띄어서 담았다. (후담이긴 하나 역시 손녀딸아이는 거금의 옷보다는 코끼리 인형을 더 좋아 했다.)
그 외 식구들 선물은 생략하기로 했다. 집을 맡기고 온 큰아들내외나, 왕복 비행기 표를 끊어준 막내아들 네가 맘에 걸렸으나 입을 씻었다. 이리 저리 장만을 하려면 경비도 경비려니와 촌 할메가 장만한 선물이 젊은 사람들 눈에 썩 들지는 않을 것이라서 였다. 차라리 서울 가서 저녁을 한 끼 근사하게 사는 것이 더 세련된 메너인 것 같았다(나만의 착각인가?).
퇴근을 한 사위와 바비큐로 저녁을 하려했으나, 내가, 영감이 별로로 할 것이라는 언질을 주어 집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 재미없는 영감은 미국에서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라는 걸 알았다. 집에서도 김치에 밥만 찾는 영감이 아니었던가. 이런 데 나왔으면 좀 미국스러운 메너를 쓰면, 분위기 있는 저녁을 먹기도 하고 저녁을 차리는 수고도 덜 수 있을 터인데 말이지.
(7/21)느즈막하게 집을 나서서 다시 한 번 더 ‘라구나비취’ 풍경을 감상하고, 이른 퇴근을 하는 사위와 만나서 ‘LA다저스’구장으로 이동했다. 류현진 선수의 등판이 24일 예정이라 아쉬움이 컸으나, 장인과 사위는 야구 관람을 하고 막내딸과 나는 시내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사실 야구는 중계방송으로 넉살 좋은 해설가의 해설을 들으며 관전하는 게 구장관람보다 더 재미있걸랑.
겨우 구장 둘레를 돌아 큰길을 접어들다가 사위가 휴대폰을 차에 두고 간 사실을 알았다. 딸과 사위가 운전을 교대하면서 휴대폰을 잊고 간 것이었다. 휴대폰이 없으면 연락은 물론이고 구장의 입장도 불가하지 않은가. 이를 어쩐다. 우선 딸아이가 휴대폰을 들고 뛰었으나 가당치 않은 일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뛰기 시작했다. 길거리에 차를 세우고 나를 차 속에 둔 채.
워낙 사고가 많은 나라이고 다국적 인종이 모인 곳이라 절대로 나오지 말란다, 차문을 잠군 채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예사롭게 보이지를 않았다. 지금 나는 혼자 갇혀져 있지를 않은가. 30여분이 지나자 딸이 돌아왔다. 다행히 사위가 노트북을 가지고 있어서 연락이 되었다 했다. 키가 큰 아빠의 덕도 본 셈이라며 깔깔거렸다. 아빠가 눈에 확 띄더라나?
우리는 할리우드로 이동을 해서 일식식당에서 스시로 저녁을 때우고 기념품 구매에 나섰다. 지난 번 사고 싶었던 커플 커피 잔을 샀다. 할리우드에 다녀온 기념품을 하나쯤 갖고 싶어서였다. 될 수 있으면 짐은 만들지 않아야 했다. 그러나 커피 잔 한 벌쯤은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었다. ‘할리우드 로고’가 유난히 크게 쓰인 머그 잔 둘을 구입했다. 썩 맘에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막내딸아이도 하나 사 줄 걸 싶으나 그때는 왜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딸과 나는 ‘스타박스’에서 노닥거리다가 9회 말이라는 사위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구장으로 이동을 했다. 쏟아져 나오는 관람객과 차량의 통제로 장인과 사위가 경기장을 빙 둘러 우리에게로 찾아왔다. 슬프게도 류현진의 LA다저스가 상대편 ‘아틀랜타 브레이브스’에게 12:3이라는 큰 점수 차이로 지고 말았다고 한다. 영감은 당신 탓인 양 기가 죽은 모습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