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식탁을 치우고 음식을 차렸다.
희철은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술이 없으면 서운하지?"
소주를 한 잔씩 따라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상덕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민아를 침대에 눕혔다.
머리맡에 놓여진 그녀와 희철의 다정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상덕은 사진을 어루만지며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눈가를 적시는 눈물을 가슴에 묻으며 깊은 한숨을 허공에 날렸다.
언제쯤 두 사람의 운명을 이야기해야 하는걸까?
아무것도 모른 채 환하게 웃고있는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을 한 떨기 눈물속에
묻어두어야 했다.
싱덕은 말없이 술잔을 비우며 태연한척하려 애를 썼다.
개업일은 11월 11일 가래떡데이에 맞춰 하기로 했다.
가게 이름은 ‘복고풍 라디오’
유기농 떡볶이 뷔페 레스토랑
사장 배희철
지배인 오상덕
주방장 은희서
주방보조 나하순
희철른 떡을 전담해서 만들기로 했다.
“공사는 내일부터 진행할거야!”
“간판은 지금 작업중이야!”
“뷔페 레스토랑이니까 메뉴개발에 신경 많이 써야할거야!”
상덕은 희서에게 메뉴판을 가져오게 했다.
꼼꼼하게 잘 만들어놓은 메뉴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녀의 띠뜻한 손길이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
밤을 새며 만들었을 그녀의 사랑스런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하순은 그련 상덕의 모습이 못마땅했다.
눈앞에 놓인 술병들을 한 번에 다 마셔버렸다.
상덕은 놀라 그녀의 술병을 빼앗았다.
“뭐하는 짓이야?”
“처음 보는 사람앞에서 이게 무슨 실수야?”
하순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술병을 내려놓았다.
이제 기댈 사람은 상덕뿐이다.
그런 그를 믿고만 싶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밀려오는 불안감에 그녀는 언제나 불안하기만 했다.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견디기 힘들었다.
상덕은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위로하려 애를 썼다.
“내가 왜 너를 여기까지 데려왔겠니?”
긴 한숨을 쉬며 그녀의 술잔을 빼앗았다.
“이제 그만 마셔!”
“다 같이 회의중이잖아!”
“이제 넌 내 여자니까 잘 들어둬!”
그녀는 그제서야 안심한 듯 눈물을 흘리며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상덕은 울고 있는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엔 빗방울이 우울한 마음을 더해주고 있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회의에 집중하려 애를 썼다.
날이 새는줄도 모르고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새벽이 되자 상덕과 희철은 시장으로 향했다.
사야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우선 그릇시장에 들러 그릇들을 구경했다.
희서가 적어준 그릇들을 하나씩 구입했다.
예쁜 그릇들이 나란히 진열된 모습이 눈을 행복하게 했다.
희철은 마치 신혼살림을 차리는 듯 너무도 행복했다.
11월로 다가서는 새벽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희철과 상덕은 심호흡을 크게 하며 새벽공기를 마셨다.
“오늘부터 가게수리 들어간다!”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상덕이 물었다.
“그럼!잘 해야지!”
“어떻게 시작한건데!”
“잘 할 수 있을거야!”
서로의 눈을 정답게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쳤다.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새로운 다짐을 약속했다.
항상 주차장을 가득 매우던 차들이 오늘은 눈에 띄게 줄었다.
상덕은 썰렁해진 주차장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점점 산처럼 험난하게 느껴졌다.
희철은 그런 상덕의 마음을 모르는건 아니었다.
하지만,오랜 시간 준비했던 일이기에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태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떻게?”
“네 고집대로 유기농으로 하는건 무리라는거 인정하지?”
희철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냥 밋밋한 떡보다 네 말대로 여러 색깔로 떡을 만드는건 좋은 아이디어야!
“앞에 유기농이란 말만 빼고 하자!”
“오케이!”
희철은 포기한 듯 아쉬운 표정으로 간신히 대답했다.
상덕은 희철의 어깨를 다독여주며 과일가게로 향했다.
며칠전부터 복분자를 주문해 놓았다.
“이 비싼걸로 떡을 만들어?”
주인은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냥 술이나 담가서 마누라하고 재미나 보지 그래?”
“요즘처럼 어려운 세상에 누가 그런 비싼거 사먹겠어?”
상덕은 피식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았다.
미쳤다고 투덜거리며 비웃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괜한 모험을 하는 것 같아 깊은 한숨이 허공을 맴돌았다.
하지만,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살기위한 출발선에서 도저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가슴 깊이 남아있는 희서의 빈 자리가 아픔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복분자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어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얼마나 대단한 떡이 만들어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메뉴판을 인쇄하기위해 인쇄골목으로 향했다.
골목을 들어서자 간판을 내린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희철은 저절로 긴 한숨이 나왔다.
어리석은 도전을 한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차마 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었다.
차라리 상덕이 하는 방앗간을 돕는 일을 할까 하는 생각에 한참동안 망설여졌다.
망설이는 희철의 모습이 답답한 마음에 상덕은 메뉴판을 빼앗아 인쇄소로 향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러워야할 가게안은 고요한 적막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야 잠이 깬 봉식이 상덕을 맞이했다.
밤새 술을 마셨는지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아니 밤새 일을 해야할 사람이 술이나 푸고 있으면 어떻게 해?”
“일감 있으면 네가 한 번 줘봐라!"
"나도 기계 돌아가는 소리 한 번 들어보게!“
상덕은 메뉴판을 내밀며 말했다.
“자!여기 일감 있수다!”
“백장만 후딱 인쇄해주슈!”
메뉴판을 훑어보던 봉식이 말했다.
“미쳤군!”
“완전히 돌았어!”
“왜?”
“아니 밥해먹을 쌀도 사먹을까 말까인데”
“뭔 쌀로 사치를 부리고 지랄들이야!”
메뉴판을 책상에 패대기치며 비웃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야!”
“너 장사 처음 해보는거 아니잖아!”
“그래!왜?”
“이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냐?”
“응!돼!”
“그러니까 어서 인쇄기나 돌리슈!”
봉식은 코웃음을 치며 마지못해 인쇄기를 돌렸다.
인괘가 끝난 메뉴판은 생각보다 괜찮게 나왔다.
희철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번주까지 다 될까요?”
“되긴 되는데 괜한 모험은 하지마슈!”
“나도 모험하다 이 꼬라지 되었으니까!”
인쇄소를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저 우라질놈의 영감탱이가 아직 술이 덜 깼나보다!”
“너무 신경쓰지마!”
“쥐구멍에도 볕뜰 날이 있을테니까!”
희철은 위로해주려 애쓰는 상덕이 고마웠다.
가게안은 벌써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전 주인이 지저분하게 쓴탓에 쓰레기가 한가득이었다.
“이 꼬라지로 장사했으니 망하는게 당연하지!”
“한참 청소해야겠다!”
쓰레기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밖에 내놓았다.
희철은 가게를 둘러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새로 시작될 사랑의 보금자리를 바라보며 벌써부터 흥분이 되었다.
입가에 행복의 미소가 가득 지어졌다.
희서는 아직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커텐 사이로 비치는 햇살 한줄기에 잠에서 깼다.
옆에 잠들어 있는 민아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아직 술에서 덜 깨 어제의 일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후에 생각이 난 듯 식탁쪽을 바라보았다.
말끔히 정리된 모습에 어리둥절했다.
하순은 일찍 잠에서 깨어 씽크대에 가득 차있는 그릇들을 치웠다.
평온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민아를 바라보며 가슴이 벅차 올랐다.
어린아이 가슴에 너무도 큰 대못을 박아버렸다.
이제야 편안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 미안했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그릇을 힘주어 닦았다.
못난 자신으로 인해 민아가 받아야할 고통은 너무도 컸다.
가슴이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목이 메어와 힘이 들었다.
하순은 울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냉장고문을 열고 얼음을 꺼내 입안 가득 집어넣었다.
입안이 얼얼하도록 한참동안 입에 물고 있었다.
커피 메이커에 커피를 내렸다.
뜨거운 커피에 얼음을 가득 넣고 냉커피를 만들었다.
단숨에 차가운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나도 한 잔 줄래요?”
하순은 깜짝 놀라 그녀를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상덕이 못잊을만큼 사랑하는 그녀였다.
그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그녀였다.
그런 그녀가 바로 옆에 있다.
“냉커피 드릴까요”
“아니면 뜨거운 커피?”
희서는 웃으면서 냉커피를 달라고 했다.
하순은 커피 한 잔을 그녀에게 내밀었다.
희서는 웃으며 커피잔을 받아들었다.
시원한 커피 한 잔에 어제 마신 술이 깨는 것 같았다.
방안 가득 퍼지는 커피향이 감미로웠다.
“커피가 맛있네요!”
갑작스런 그녀의 칭찬에 하순은 잠시 머뭇거렸다.
“네에...”
한참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방안 가득 감돌았다.
하순은 서둘러 해장국을 끓였다.
문득 상덕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밀려왔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는 한참동안 통화중이었다.
상덕이 좋아하는 북어국은 가스렌지에서 쓸쓸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순은 불안한 마음에 가게로 달려갔다.
상덕은 정신없이 오가며 가게수리를 돕느라 분주해 보였다.
이마에 구슬땀이 흐르눈줄도 모른채 들뜬 모습이었다.
“아침 먹고 일해야지!”
“북어국 끓여놨어요!”
상덕은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래!”
“빈 속으로 새벽부터 일했더니 속 쓰리다!”
“희철아!해장하고 일하자!”
커다란 통을 머리에 이고 들어서는 희서가 눈에 띄었다.
희철은 놀라며 머리에 이고 있는 통을 내려놓았다.
아침에 끓인 북어국과 맛깔스런 반찬들이 가득했다.
“아침 안드신 분들 어서 오세요!”
인부들이 하나 둘 모여 앉았다.
희철은 뜨거운 북어국을 한 모금 마시며 쓰린 속을 달랬다.
밤새 부대끼던 속이 확 풀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따뜻한 손길이 뼈속까지 느껴지는것만 같았다.
“그거 새벽에 내가 끓인거예요!”
하순은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희철은 환상이 깨져버리는 기분에 쓴 웃음으로 대신했다.
“밥은 내가 했으니까 걱정하지마!”
희서는 미안한 마음에 어렵게 말을 건넸다.
오늘은 주문한 음반이 오기로 한 날이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핸드폰 문자벨이 울렸다.
<오늘택배>
주문하신 상품이 오늘 도착합니다.
그녀는 택배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오후 두시쯤 도착하기로 했다.
하순이 청소를 다 해놓은지라 집안은 깨끗했다.
커피 메이커에 커피를 내리고 창문을 열었다.
희철이 설계도를 보며 지시하는 모습이 멀리서 보였다.
건축기사 자격증이 아직은 녹슬지 않은 것 같다.
그녀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흐믓하게 바라보았다.
그로 인해 아름답게 꾸며질 보금자리가 눈앞에 그려졌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나도 커피 한 잔 줄래요?”
하순이었다.
그녀는 커피 한 잔을 건넸다.
“희서씨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예요!”
“네?”
“사랑해주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희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가까이 있는 희철만을 가슴에 담아두고 싶었다.
잠에서 깬 민아가 창문쪽으로 다가왔다.
“배고파!”
희서는 미리 준비해둔 민아의 아침밥을 차려주었다.
다행히도 아무거나 잘 먹었다.
그녀는 맛있게 밥을 먹는 민아의 머리칼을 어루만져 주었다.
예쁜 인형을 바라보는 듯 행복했다.
“다섯살이면 유치원 가야겠네!”
“민아 유치원 가고싶지?”
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순에게 근처에 있는 유치원을 알려주었다.
한참을 망설이는 하순의 손에 봉투를 쥐어주었다.
한순간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눈을 질끈 감고 받아야만 했다.
민아를 깔끔하게 씻기고 옷을 입혔다.
희서는 미리 사둔 민아의 새 옷을 내밀었다.
큰 맘먹고 백화점에서 산 옷이다.
민아는 마음에 들어 환호성을 질렀다.
예쁜 구슬이 달린 분홍색 원피스였다.
거울을 보며 이리저리 비춰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순은 민아를 데리고 유치원으로 향했다.
유치원을 등록하고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