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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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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을 밥 먹 듯


BY 만석 2017-06-14

약을 밥 먹 듯

 

이젠 밥 먹고 하루 종일 약 주워 먹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어느 땐가 친구 네 집엘 갔더니 경대 위에 약이 즐비했다. 소화제에 영양제 치료제 등 이름도 다양했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내 경대 위에 약병이 하나씩 둘씩 늘어나더니, 이젠 그 친구보다 더 많은 종류로 채워졌다.

 

제 시간에 맞추어 먹는 게 용타했더니 이젠 내 스스로를 용타 한다. 아침 식전에 한 알 식후에 두알 점심식사 후에 또 한 알 저녁 식사 사이에 한 알 저녁 식전에 또 한 알. 그 것도 모자라서 저녁 식후에 한 알 취침 전에 또 한 알. 적당히 빈 시간에 영양제 한 알에 수시로 안약까지.

 

여차하면 시간을 놓치고는 먹었나 안 먹었나 기억조차 가물거리니 이 노릇을 어째. 어제 먹은 게 좀 전에 먹은 것 같고 좀 전에 먹은 약도 기억에 없다 하여 다시 털어 넣기가 일쑤다. 먹고도 안 먹었다 고집하는 건 그래도 낫다. 먹지도 않고 먹었다는 건 언제 적부터의 고집인지.

 

아프고 저리고 쑤셔서 먹는 약도 약이지만 미리 예방차원에서 먹자 하니 약이 불어날 수 밖에. 치매가 올라 아이들 걱정에 먹는다지만 괜한 아이들 핑계는 아닌가. 게다가 아이들이 사다 나르는 영양제는 있어서’, ‘버리기 아까워서라는 핑계로 약의 숫자를 더한다.

 

누가 날더러 총명하다 말했는고 이렇게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누굴 붙들고 하소연도 못하겠고 들어줄 한가로운 자식들도 없다. ~! 먹는 데까지는 먹고 남는 건 더 먹고 모자라면 그만 먹자 싶지만 약이 떨어지면 겁이 난다. ‘말이 씨가 된다하니 덜컥 치매라도 걸리면 어째.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약을 줄이자 마음먹고 의사와 상담을 한다. 저마다 책임을 못 진다 하니 것도 안 들으니만 못하네. 약을 먹고 별 일 없이 버티면 안 먹을 재간이 없질 않는가. 약을 끊었다가 일이나면 어쩌누.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데 말이지.

 

의사 말대로 달리 백세시대라 하겠는가. 병은 미리 예방하고 치료기술이 밝아졌으니 너도나도 백세를 바라보지.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한 많은 이 세상이라지만 오래 살자 커니 약을 끊지 못할 수밖에. 그러자니 느느니 약이다.

 

토요일이면 내 약병은 경대 속으로 숨어버린다. 토요일이면 문안 드는 아들 며느님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꼴이니까. 그네들이 보고 하기 쉬운 말이라고 오래 살자는수작(?)이라 하겠지. 그래도 그만 먹겠다 소리는 못하겠으니, 나는 비윗살이 좋은 건지 염치가 없는 건지.

 

숨겨놓고 먹어도 좋으련만 혹 순서라도 뒤바뀔라 싶어서 늘어놓고 먹기를 즐긴다. 아서라 뉘라고 어서 가고 싶을 거나. 오늘도 물 찾아 약을 털어 넣고 기가 차서 허허 소리내오 헛웃음을 지어본다. ‘나도 약 먹을 만큼은 자격이 있다고 공연한 배짱을 부려 기를 세운다.

 

보림아~!

그니 어쩌냐. 빨리 가고 잪지는 않은디. 네 증조모님은 오래 살라고 약 자시는 게 아니라 시던디 그거이 맬짱 헛말이여라. 내는 솔찍히 말해서 오래 살려고 먹는 약도 있어야

 

                                                                           도선사 등산길에서

약을 밥 먹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