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할아범과 호호할멈
“이거 좀 내려줘요.”
“저것 좀 올려줘요.”이건 호호할멈이 키다리할아범을 부르는 소리다. 미국으로 터를 옮긴 막내 딸아이가, 팔자에 없는 대형 냉장고를 안긴 덕에 호사를 하고 산다. 속은 넓어 좋은데 그 위에 물건을 올려놓거나 내리려면 영낙없이 영감을 호출해야 하는 게 불편하다.
블평 한마디 없이 응하는 영감에게 제발이 저린 호호할멈이 먼저 한 소리한다.
“남들 자랄 때 뭘 했누.”
키가 커서 반한 것도 아니고 키가 작아서 반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키가 큰 영감과 키가 작은 할멈이 이렇게 만나 살아간다.
아들 딸을 낳고 보니 아들 둘은 아범을 닮아 헌출해서 좋은데 문제는 딸인기라. 제 어미 딸년들 아니랄까 자그마한 키에 좋게 말하면 아담 싸이즈. 딸년들은,
“조금만 더.”
“요만치만 더.”를 입에 달고 산다. 쯔쯔쯔.
아들들은 178cm에 187cm니 누가 보아도 ‘씻어놓은 조선파’ 같다고들 한다. 딸들로 말하자면 그 시절엔 160cm가 작은 키가 아니었으되 이젠 작아도 너무 작아 보인다. 하나라도 좀 컸으면 좋으련만 공평하게 두 딸년들이 닮아도 너무나 제 어미를 닮아 있다. 자랄 땐 제 아비 덕에 나보다야 좀 크겠지 했더니 말이 씨가 됐나? 제 어미보다 손가락 마디 하나만큼씩만 크다.
이렇거나 저렇거나 시집 장가를 가서 짝꿍들 얽어 놨으니 그들의 삶은 이젠 제 복이지. 요는 집에 버려진 두 늙은이가 문제인기라. 높은 곳의 물건을 올려놓거나 내리려면 천상 영감을 불러야 한다. 그래도 영감의 천성이 바닥에 늘어놓는 꼴을 보지 못하니 올려달라거나 내려달라는 말을 잘 들어 주기는 한다.
그런데 가끔은 키 작은 할멈 생각을 잊고 주책을 부려서 탈일 때도 있다. 거울을 벽에 걸라치면 배꼽이 보이게 못질을 하고, 선반을 달라치면 내 손은 닿지도 않게 공중에 달아놓는다. 그러니 올려 달라 내려 달라 할 때마다 말을 잘 들어 줄 수밖에.
“남들 자랄 땐 뭘 했누?”가끔은 놀려 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잘 살았다 싶다. ‘이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거덕 거리기도 했지만, 서로 잘 참고 살았다 싶다. 아니, 영감이 많이 양보한 덕이라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다섯 누이의 왕자로, 시부모님의 황태자로, 동리의 황제로 자란 그이가, 별 볼 것도 없는 쪼그만 마누라 비위 맞추느라 속 많이 썩었지 싶다. 아니지. 속은 나도 많이 썩었는 걸걸걸?! 크~^^
보림아~!
보림이는 엄마아빠 닮아서 크게 자라라이~.
네 엄마 원대로 170까기 자라라. 아님 할미가 두고두고 원망 들어야~^^
워싱턴의 자연사박물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