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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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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BY 명랑소녀 2016-12-12

울 아버지는 아홉살에 출생등록을 했다. 남들 다가는 학교 취학통지서가 안나와서 알아보니 출생신고가 안됀거다. - 이부분은 내가 추론한거다. 어느날 호적등본을 떼 보니 울아버지 출생신고가 9년 늦었다. 할머니와 손잡고 안림국민학교 갔다 그냥 돌아왔다는 이야기 들었었다. -  출생신고할 때 나이도 두해나 늦게 해서 그 이듬해도 학교 못보내고 어영부영 하니 육이오가 났고 그길로 학교 갈 기회를 영 영 놓쳤다. 한평생 학교 문앞도 못가보고 남들 학교 이야기할적에 주눅들게 한 그 역사의 시작이다.

  출생신고 늦은 것은 무슨 출생의 비밀이 있는게 아니라 전적으로 울 할배탓이다. 술에 노름에 한량이며 승부사 기질이 있는 힘이 장사라던 울할배. 오십을 일년 남겨두고 태어난 , 딸 둘은 이미 출가하여 외손자도 여럿 둔 울 할배는 늦둥이 막내는 관심밖이었다.  장사수완이 있어 돈도 잘 벌었고 만주며 일본이며 돌아다니며 사회돌아가는 것도 아신것 같고 농사도 잘지어 백석지기도 넘었단다. 그러나 이 모든 재산을 주기적인 노름으로 날리시기 일쑤였고 읍내 기생집 단골이셨다나. 그 공사 다망한 중에 막내아들 출생신고를 까먹었다!!   학교 보낼려니 전쟁이 났고 전쟁나갔던 큰아드님이 상이용사가 되어 집이 난리가 나 구르는 돌같이 아무렇겠나 자라는 막내는 관심밖이었을거다. 상이용사 큰아들 우째우째 장개 들였는데 손녀하나 놓고 결국 죽었불고 둘째손녀는 어찌된 일인지 아들 죽고 일년반만에 태어났다. 모두들 웅성거렸겠지만 딸이라 넘어갔다고. 남줄거 그냥 내비둔다고.

  이 역사의 풍랑 속에 소년 울아배는 상이용사 큰형에게서 간신히 언문 배우고 숫자 배우고 -구구단은 못배우고- 농사지어 늙은 아배 어매 형이 남긴 조카딸 둘 키우며 배는 곯지 않고 그냥 조선시대처럼 사신거다. 잘생기고 힘도 세고 농사도 잘 짓고 인근에 효자로 소문났다던 울아배. 

 

 농사가 천직인 울 아배는 장가를 잘 못갔다. 울 엄마는 도회지물이 먹고 몸이 약해 농사꾼아낙으론 낙제였다. 모 심을줄도 모르고 밭 맬줄도 모르고 그기다 결정적으로 결혼 4년만에 큰 병을 얻어 1년간 투병하며 가정경제를 절단냈다. 결국 사는곳에서 읍내로 쫓기듯 이사와서 몸으로 하기 제일 좋은 건축노가다로 전전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울 아버지 술이 늘고 주정도 늘고 울엄마 구박도 늘고~~​

 

  어릴 적 하도 싸워대서 난 엄마 도망갈까봐 걱정이 되어 잠도 못잤다. 동네에선 누구엄마 도망갔네 누구엄마 바람났네 하며 수군수군했었다. 엄마도 우리 놔두고 도망갈까봐 노상 엄마 의심하고 엄마한테 잘보이고 싶어서 일찍부터 살림도 배우고 했었다. 엄마 우리두고 어디 볼일보러 가면 나는 꺼이꺼이 울고 두살어린 여동생이 "언니야 옴마 곧 온다" 하며 달랬다고 전설처럼 전해진다.엄마의 흔들림을 나는 느꼈고 동생은 못느꼈을까?  ​아님 난 분리불안증세가 심각한 예민한 아이였을까?

 

어제 저녁 안부전화드리니 김장했다고 갖다 먹으라신다. 오십이 몇년 안남은 큰딸은 아직도 김장 같은 것은 할 줄도 할 생각도 없이 온 동네에서 얻어먹는다. 울 시어머니 하마나 하마나 큰머느리 김장 할꺼나 기다리면서 올해도 혼자 버무려 한통 주셨다. 이젠 버무리러 오란 소리도 안하신다. 포기하신거지...  며느리 간이 배밖으로 나왔고... 울 서방은 마누라 음식에 대해 기대를 접은 지 오래됐고.  내가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 밥했다고 하면 믿지 않는다. 그럴리 없다 40년  음식솜씨가 이럴 수는 없는거다 함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