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롱잔치에 가다
보림이가 재롱잔치를 한단다. 이것저것 다 겪은 나로서는 아주 작은 행사지만 며느님으로서는 아주 큰 행사다. 재롱잔치 날짜가 잡혔다고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오고, 다시 변경이 됐다고 문자가 오고 전화가 오더니, 늦지 말라고 다짐을 하는 문자와 전화가 온다. 암. 그녀에게 더 큰 행사가 어디 있으랴.
동네 화원엘 갔더니 꽃다발을 만들어야 한단다. 사거리에서도 주문을 받아서 만들어야 한다고. 결국 지하철 역이 있는 큰사거리까지 나가서야 손에 넣는다. 작년에도 재롱잔치엘 가보니 그 행사에 맞는 꽃다발이 따로 있더라는 말씀이야. 별도 있고 해도 있고 반짝반짝 빛을 발하는 야광 반달도 얹혀 있고 말이지.
꽃다발을 찾다가 늦다 싶어서 택시를 잡았지. 허~걱. 행사장 앞에서 진을 치고 마중하는 꽃다발도 많은데 공연한 헛수고를 했구먼. 줄을 선 젊은 엄마아빠들 뒤에 두 늙은이가 섰더니 보림이가 어디서 나타난다. 손을 잡혀 끌려 갔더니 우리 며느님 부지런도 하시지. 맨 앞에 서서 진을 치고 있네. 얼씨구 아범도 벌써 퇴근을 한 거여?
아하~ㅇ. 재롱잔치는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을 어린애로 만든다. 지지배배 지지배배 수다가 한창이다. 아이들과 같이 토끼머리띠를 한 엄마들도 있고 사슴뿔을 달은 엄마들도 눈에 띈다. 사진을 찍을 준비에 삼각지지대를 뻗혀놓기도 하고. 내 아들은 아예 영사기를 목에 걸고 앉아있다. 암. 누구의 재롱잔친데.
막이 오르고 잎새반 두리반 등 하나같이 만화 케릭터의 주인공이 되어 등장한다. 손가락만 빨다가 들어가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울어버려서 퇴장할 타임을 놓치기도 한다. 교사들은 아이들 앞에서 열심히 선창을 하기도 하고 무용을 선동하기도 한다. 에구구~. 저 어린 것들을 데리고 얼마나 고생을 했을꼬.
보림이. 보림이를 찾자. 하하하. 찾고 말고 할 필요도 없다. 어디에 끼어놓아도 빛이 찬란한 아이. 우하하. 그렇지. 그렇지. 보림이는 언제나 어디서나 중심에 있다. 무용도 리드를 하고 음악도 선창을 하고 에헤라 디여~. 고거 참 뉘댁 손녀 딸아이신고. 이건 내 손녀라서가 절대로 아니라는 말씀이지.
‘나팔바지’도 중심에 섰고 부채춤에도 중심이요 합창이면 선창을 하고 영어노래에선 지휘를 하고. 하하하. 두 눈으로만 보기에 아깝구먼. 어리둥절 쩔쩍매는 동료아기를 끌어다가 제 자리에 찾아 세우는 바람에 관객의 웃음을 사기도하고. 참 재간둥이 내 손녀 딸이로다. 암. 아무리 봐도 만석이의 손녀딸이로세.
옛날 생각이 난다. 보림이 애비 그 나이에, 친구들보다 빛나고 어여쁘더니 벌써 보림이가 그 나이가 되어 재롱을 부린다. 다른 아이들보다 돋보이라고 연습을 시키고 치장을 해 주던 시절. 나도 꾀나 극성을 부렸지. 군복을 만들어 입히고 총대를 어깨에 걸치고 육군대장 흉내를 내던 내 아들이 벌써 사십 고개를 넘겼네.
아들은커녕 나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고요한 밤’의 주인공이 되어 춤을 추지 않았던가. 나풀거리며 무용을 했으니 아마 60여 년 전의 일이로고. 늙은 엄마가 만들어 입힌 드레스가 다른 아이들것보다 어딘가 달라서 심통을 부렸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무용 실력은 최고라고 칭찬을 받던 아이가 이제 팔순을 바라본다. 세월이 살과 같다더니 유수와도 같구먼.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날 내려다보시며 고운 웃음을 보내고 계시겠지. 엄마가 하루만 살아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좋은 것 맛 있는 거 다 사드릴 텐데. 늦둥이 막내 딸이 어리냥도 좀 더 부려보고, 그러고 싶은데. 역시 난 아직 철이 덜 난 모양이다. ‘철들자 망령이 난다’더니…. 엄마~! 난 아직도 덜 자랐나봐.
우리 식구는 행사를 마치고 고픈 배를 달래느라고 ‘육대장’식당으로 고고고.
보림아~!
오늘 보림이가 최고로 이뻤어야~.
할미가 보림이 땜시 많이 행복혔어.
이쁘게 자라 줘서 고마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