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남자여
“나, 시골 가.‘
느닷없이 가방을 들고 나선다.
“아니, 낼 병원 가야하는데 시방 시골은 왜?”
“병원은 뭘. 안가면 그만이지.”
“꼭 속알딱지 하고는. 병원 갈 때마다 속을 긁어요. 당신이 어린애예요?”
내 말이 고울 리가 없다. 어제 다퉜걸랑.
쌀을 4kg짜리를 사 온 게 화근이었다.
“왜 배달을 시키지 않았느냐.”로부터 시작해서,
“4kg으로 오늘 내일 먹으면 그만이지.”
사연이야 영감은 영감대로 나는 나대로 할 말이 있다. 장은 5일 뒤에나 보아야만 하고, 그때엔 배달을 시킬 만큼이 된다는 내 생각이었고, 공연히 힘을 빼게 한다는 게 영감의 심사다.
들어다 달라는 소리는 하지도 않았는데 마트의 계산대 옆에 와 섰는 영감이 고맙긴 했으나, 영감의 미간에는 이미 쌍심지가 그려져 있었다. 영감이 쌀 보따리를 거칠게 나꿔채자 급기야 내 심통이 자극을 받았다. 기왕에 왔으면 곱게 받아들면 좀 좋아서? 누가 보아도 시방 영감과 나는 싸움이 난 형국임을 알아채겠다. 집에 들어서자 부화가 극에 달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누라 우사 주는 건 아주 못 된 쌍 것들이나 하는 짓이야욧! 양반이 어디서 자기 마누라한테 여러 사람 앞에서 그런데요.”로 시작해서,
“쌍 것들이 하는….”
“양반의 집구석에서 누가 그런…!”
“그러게 누가 들어다 달랬어요? 내가 들으려고 작은 봉지를 샀잖아욧!”
영감은 봉지가 터질 지경으로 주방에 쌀 봉지를 동댕이치고는 가방을 들고 나섰다.
“나 시골 가.”
‘가거나 말거나.’ 그건 가슴속에서만 지르는 소리고,
“낼 병원 가야 해욧!” 한다.
“안 가!”
이렇게 대문을 나선 영감을 향해,
“자기만 가나? 나도 낼 병원에 가는 날이예욧!”
“그저 자기만 알지. 병원도 자기만 가고 안 가고. 마누라는 가거나 말거나." 워낙 속사포로 쏘아대니 영감은 분명히 듣지 못한 게다. 아니, 이해를 못했겠다. 긴 팔을 휘저으며 현관에서 대문을 두 걸음에 긴 다리로 나선다. 제기럴~.
등 뒤에다 대고 가슴으로 소리친다. 듣거나 말거나.
‘알았어. 다시 뒤돌아서면 당신은 이제부터 남자가 아냐. 흥!’
잡아 줄 마누라도 아니지만 돌아설 영감도 아니다. 그런데 가방이 가벼운 걸음새다. 그건 반찬통을 챙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아니. 시골에선 뭘 해서 먹고 산댜? 간장만 꼭꼭 찍어 먹을 겨? 해놓은 반찬을, 아니 반찬통을 왜 넣지도 못해?
'그래봐야 자기만 손해지, 뭐.' 그런데 정말 뭘 해 먹을 심산인고. 공연히 긁었나? 할 즈음.
“따르릉 따르릉” 전화가 운다.
“당신은 병원 언제 가.”
많이 누그러진 목소리로 영감이 묻는다.
“낼 나도 병원 가는 날이랬잖아욧!”
아래층에서 바쁘지도 않은 일감을 뒤적이자니 배가 고프다. 벽시계는 8시를 넘기는 중이다. 셔터를 내리고 터덜터덜 계단을 오르니, 영감이 마당의 의자에 앉아 있다. 질겁을 하고 두어걸음 물러서니 영감이 환히 웃는다.
“놀랬잖아욧!”
“심통 나서 낼 병원 안갈까봐 왔지.”목소리는 퉁명해도 눈가엔 웃음이 돈다. 피~.
보림아~!
할미가 뭐라 해도 네 할아버지는 역시 남자쟈? ㅋㅋㅋ.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으셨음 할미는 할아버지를 여자라 했을 겨 그치?! ㅎㅎㅎ.
북한산 둘레길의 산속 도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