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뜰한 당신
“어제는 시우가 술 먹자고 붙들고 안 놔줘서 혼났어.”
“혼자 산다고 홀아비인 줄 알았다네?!”
“토마토가 이번 비에 다 쓰러져서 버렸어.”
묻지도 않는 말에 주절주절 이야기를 이어놓는다. 꽤나 심심한가 보다.
“또 전화를 하게 되네?!”
“토마토가 뒤쪽으로 가니까 익은 게 제법 많아. 빨간 소쿠리 있잖아 그걸루 두 개나 땄어.”
“그거 봐. 지금쯤 당신 주전부리 감이 되겠다 싶었어.”
며칠이 지났으니 냉장고가 텅텅 비었겠다 싶어서 걱정을 하던 터라 나도 반갑다.
“저걸 다 어째.”
“싸 짊어지고 와요.”
“다 물크러지라구 어떻게 지구 가누.”
그러고 보니 차가 없다. 정말 짊어지고 와야 할 판이다.
“전화 끊어.”
“그 토마토를 다 어쩔건데?”
“내나 다 먹어야지, 뭐. 허허허.”
“거기 냉장고 위에 설탕 있어요. 찍어먹든지 버무려 먹든지.”
말은 그리 했어도 사실은 걱정이다. 토마토를 잘 씻어서 물을 닦고 썰어서 차곡차곡 설탕에 재어 냉장고에 넣는 일을 잘 해낼 것 같지가 않아서다. 그렇다고 생물을 어그적거리며 베어 물 위인도 아니다. 그리고 빨간 소쿠리로 둘이면 적은 양이 아닌데 그걸 어찌 다 먹어. 그새 익어가는 토마토도 더 생길 것인디. 끼니로 때워도 어림 없는 소리다.
‘올 걸?’
“토마토를 가방에 메고 올게야. 손질을 잘 해서 갖고 와야 하는디….‘
‘아니지. 토마토를 마누라 먹이겠다고 짊어지고 올 위인은 아니지.’
그런데 나는 셧터를 내리고 벌써 마트로 향하고 있다. 훈제오리고기를 사러 가는 중이다. 소고기 돼지고기보다 오리고기를 좋아하는 영감이다. 오마는 소리도 없는데 헛 다리를 짚은 건 아녀?
토마토가 아니드라도 어차피 금요일엔 병원 정기검진이 있어서 모레엔 상경을 할 예정이었다. ‘오늘 올라오지 않으면 그때 먹이지.’
그런데 올 것만 같은 예감이다. 자꾸만 현관으로 눈이 가고 세돌이의 발길질에도 귀가 선다.
‘올 거야. 씩씩거리며 가지도 따고 토마토도 짊어지고 들어 설 거야.’
와서는 아마 손녀딸 핑계를 대겠지?!
“보림이 먹이려고….” 멋대가리라고는 일 푼어치도 없는 영감의 전매특허다. 아무렴 어떠랴. 밤 10시가 지나고 11시가 넘어선다. 그래도 영감은 기척을 않는다. 씻어 놓은 쌀을 냉장고에 넣으며 구시렁구시렁 영감을 뜯는다.
결국 영감은 오늘도 오지 않는다. 기운이 빠진다. 목요일엔 어차피 와야 할 것이고, 바쁘게 시간 다툴 일도 없는데 오면 좋잖아?! 불현 듯 심통이 난다. 토마토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토마토를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영감의 마누라 생각하는 살뜰하지 못한 정이 괘씸해서다.
‘오리고기? 내가 해 주나 봐라!’
보림아~!
할미가 김칫국 먹었나 보다아~.
그려도 오리고기는 할아버지 먹여야겄재?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