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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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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뜰한 당신


BY 만석 2016-08-02

살뜰한 당신

 

어제는 시우가 술 먹자고 붙들고 안 놔줘서 혼났어.”

혼자 산다고 홀아비인 줄 알았다네?!”

토마토가 이번 비에 다 쓰러져서 버렸어.”

묻지도 않는 말에 주절주절 이야기를 이어놓는다. 꽤나 심심한가 보다.

 

또 전화를 하게 되네?!”

토마토가 뒤쪽으로 가니까 익은 게 제법 많아. 빨간 소쿠리 있잖아 그걸루 두 개나 땄어.”

그거 봐. 지금쯤 당신 주전부리 감이 되겠다 싶었어.”

며칠이 지났으니 냉장고가 텅텅 비었겠다 싶어서 걱정을 하던 터라 나도 반갑다.

 

저걸 다 어째.”

싸 짊어지고 와요.”

다 물크러지라구 어떻게 지구 가누.”

그러고 보니 차가 없다. 정말 짊어지고 와야 할 판이다.

 

전화 끊어.”
그 토마토를 다 어쩔건데?”

내나 다 먹어야지, . 허허허.”

거기 냉장고 위에 설탕 있어요. 찍어먹든지 버무려 먹든지.”

 

말은 그리 했어도 사실은 걱정이다. 토마토를 잘 씻어서 물을 닦고 썰어서 차곡차곡 설탕에 재어 냉장고에 넣는 일을 잘 해낼 것 같지가 않아서다. 그렇다고 생물을 어그적거리며 베어 물 위인도 아니다. 그리고 빨간 소쿠리로 둘이면 적은 양이 아닌데 그걸 어찌 다 먹어. 그새 익어가는 토마토도 더 생길 것인디. 끼니로 때워도 어림 없는 소리다.

 

올 걸?’

토마토를 가방에 메고 올게야. 손질을 잘 해서 갖고 와야 하는디.‘

아니지. 토마토를 마누라 먹이겠다고 짊어지고 올 위인은 아니지.’

그런데 나는 셧터를 내리고 벌써 마트로 향하고 있다. 훈제오리고기를 사러 가는 중이다. 소고기 돼지고기보다 오리고기를 좋아하는 영감이다. 오마는 소리도 없는데 헛 다리를 짚은 건 아녀?

 

토마토가 아니드라도 어차피 금요일엔 병원 정기검진이 있어서 모레엔 상경을 할 예정이었다. ‘오늘 올라오지 않으면 그때 먹이지.’

그런데 올 것만 같은 예감이다. 자꾸만 현관으로 눈이 가고 세돌이의 발길질에도 귀가 선다.

올 거야. 씩씩거리며 가지도 따고 토마토도 짊어지고 들어 설 거야.’

 

와서는 아마 손녀딸 핑계를 대겠지?!

보림이 먹이려고.” 멋대가리라고는 일 푼어치도 없는 영감의 전매특허다. 아무렴 어떠랴. 10시가 지나고 11시가 넘어선다. 그래도 영감은 기척을 않는다. 씻어 놓은 쌀을 냉장고에 넣으며 구시렁구시렁 영감을 뜯는다.

 

결국 영감은 오늘도 오지 않는다. 기운이 빠진다. 목요일엔 어차피 와야 할 것이고, 바쁘게 시간 다툴 일도 없는데 오면 좋잖아?! 불현 듯 심통이 난다. 토마토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토마토를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영감의 마누라 생각하는 살뜰하지 못한 정이 괘씸해서다.

오리고기? 내가 해 주나 봐라!’

 

보림아~!

할미가 김칫국 먹었나 보다아~.

그려도 오리고기는 할아버지 먹여야겄재? ㅋㅋㅋ.

 

                                         살뜰한 당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