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어릴 때 게임을 좋아했다.
그때 사람들은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게임에 빠질까봐 걱정하고 단속하느라 야단이었던 시절이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게임기를 너무 갖고 싶어 해서 중고를 하나 구입해 주었는데 너무 심하게 해서 어느날
남편이 집어 던져 부셔버렸다.
그 후에 아들은 동전만 있으면 문방구 앞 게임기에 붙어 앉아 게임을 했다.
집안에 아들보다 두 살 어린 사촌동생이 있었다.
바로 아래 시동생의 아들인데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궁금한 것이 많아서
백과사전을 끼고 살고, 초등학생이지만 영어와 일어를 잘하고, 장래희망은 외교관이었다.
모두들 그 아이를 대견스러워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촌동생이 말하는 외교관이 뭔지도 모르는 아들은 늘 난감했다.
두 살 형인데도 자신은 장래희망도 정하지 못했고, 뭐가 되고 싶은지도 생각을 못했는데 어른들이 물으면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사촌동생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어느날 “내가 좋아하는 것은 게임과 농구니까 농구 선수 될까?”하고 물어서 나는 그냥
웃어주었다. 아들의 키가 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게 작았기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가자 아들도 컴퓨터를 갖게 되었다.
신이 나서 게임을 더 열심히 했다.
혼나면서도 하고, 몰래하기도 하고, 잠 안자고 하기도 하고..
그러다 어느날 새로 나온 게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새 게임을 출시한 게임회사에서 반응조사차 채팅을 신청했고 그 게임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해서 아들이 대답을 했단다.
그들은 상대가 이제 겨우 중학생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며 커서 게임기획자가 되길 권유
했다고 한다.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에 들뜨기 시작했고, 그 길을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래도 누구에게 게임기획자가 장래희망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그 시절 어른들의 생각으로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아들은 여전히 게임기획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즈음 게임기획을 전공하는 대학은 없었고 서울에 학원이 몇 군데 있을 뿐이었다.
아들은 학교 야자 수업을 빼고 게임기획 인터넷강의를 신청해 달라고 졸랐다.
모두 대학 진학을 위해 밤늦게 까지 학교에서 수업하던 때라 부모 동의서를 요구하며 담임선생님도 걱정스러워했고,
우리 부부도 갈등했다.
그럼 대학은 포기해야 하나? 과연 그 길을 가는 것이 옳은가? 성공가능성은 있는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평소 했던 말을 바꾸어야 하나?
고민 끝에 우리는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하고 꽤 비싼 인터넷강의를 신청해 주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해에 대학에 게임기획전공학과가 생겼다.
우리 지방에 있는 대학이라 아들은 망설임없이 그 대학에 진학하였다.
그토록 원하던 공부를 하는 대학에 들어간 아들은 열심히 했고, 각종 공모전에도 출품을
하여 입상 경력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졸업 후 높은 취업의 문턱을 넘는데는 많은 고난이 있었다.
게임회사들이 서울에 모여 있어 지방에서 서울로 수없이 오르내리며 시험을 치고, 면접을 보고, 낙방을 하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지잡대라는 말을 알았고, N포세대, 저주의 88세대 라는 말도 알았다.
그래도 끊임없이 도전 끝에 결국 게임회사에 합격을 하여 게임의 도시 테크노벨리에 입성을 한지 5개월이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게임산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시대로 변했고
20년전에는 꿈을 숨기던 아이였지만 이제 꿈을 이룬 아이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식들이 게임에 빠져 있는것을 걱정하지만,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는 것은 한때일 뿐이다.
그리고 게임이 모두 폭력적이거나 나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장르가 있어서 누구나 즐기는 문화가 되어가고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막지 못한다면 차라리 길을 열어주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