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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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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참 못났다


BY 만석 2016-06-22

난 참 못났다

 

꼴에 아직도 나는 여자인가 보다. 남편이 없는 밤이 무섭고 불안하다. , 젊었을 적의 풋풋한 사랑이나 손길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혼자라는 게 익숙해 있지 않아서겠다. 오늘처럼 천둥을 대동(帶同)한 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남편이 있어서 끔찍하게 나를 위해 준다든가 별스럽게 대우해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남편도 혼자가 이렇게 불편하고 불안할까?

 

~. 그러고 보니 나는 불안하고’, 남편은 불편하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러니까 남편이 곁에 없어서 불안하고, 마누라가 가까이에 없어서 불편하다는 말이 옳겠다. 사실, 별거가 시작되고는 식사를 했느냐고 묻는 것도 나였고, 오늘 무슨 일을 했는지를 묻는 것도 내 쪽이다. 내가 하는 일은 늘상 같은 일이어서 뻔~하고, 남편은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이겠다. 그러나 왠지 손해를 보는 듯안 느낌이다.

 

그런데 남편이, 아니 영감이 달라진 게 있기는 하다. 말씨가 부드럽고 살가워졌다. 오랜만에 전화기를 통해서 들리는 그이의 목소리가 젊었을 때와 별반 변하지 않았다. 젊었을 때부터 워낙 목소리가 영(young)해서, 친구들에게,

너는 영계를 데리고 사냐?”는 놀림을 받기도 했고, ‘아나운서를 시키라는 말도 듣기는 했었다. 그렇다고 팔순을 바라보는 영감의 목소리에 새삼 감탄을 한다?!

 

얼라리~! 그러고 보니 나는 영감을 아직도 사랑을 하기는 하는가 보다. 아니면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새삼스럽다는 표현을 할 리가 없다. 나도 젊었을 때에는 한 애교를 떨었었고, ‘막내라는 특성상 목소리가 아직도 어리광스럽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그렇다고 영감이 아직도 내 목소리에 매력을 느낄까? 케케케. 소가 웃을 소리를 했구먼. 아니, ‘이웃 집 개가 다 웃을 소리라고들 한지? 으하하.

 

그러고 보니 별거를 하면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청춘을, 새삼스럽기는 하지만 돌아 볼 기회가 되었다. 이건 나만의 기호인지도 모르지만 말이지. 아니다. 남편의 전화를 받는 목소리도 평소와는 분명히 다르다. 사무실에서 내 전화를 받기도 할라치면 지극히 사무적이었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내 전화를 받으면 더러는 짜증스럽게 받기도 했지. 아이들이 있는 면전에서 내 전화를 받으면 당연히 권위적이었고.

 

그러나 지금은 내 전화를 기다렸다는 느낌이 있고, 이 표현이 적절한지는 몰라도 어딘가 좀 색스러운(?) 데가 있더라는 말씀이야. 혼자이기에 외로웠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반가워하더라는 말이지. 하하하. 젊은 내 독자들이 만화를 보는 듯 웃어댈 것 같은 느낌이지만, 이건 솔직한 고백이다. 설령 늙은이들이 놀고 있네.’라는 표현을 한다 손 치더라도 이건 분명히 사실에 입각한 솔직한 고백이야.

 

자연스럽게 별거가 이루어졌지만 다행인 것은 서로의 부재(不在)에서 서로가 필요(必要)한 존재(存在)임을 익힌다는 건 참 바람직한 일이다. 아니, 별거를 통해서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새삼 느낀다는 게 사실은 서글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얼마나 매마른 감정(感情)으로 살았으면하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다만 그나마, ‘나한테만 있었던 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남편도 그럴 것이라고 애써 나를 다스린다. 그래야 손해 보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말씀이야. 하하하.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라는 표현을 많이들 쓴다. 그저 한낱 우스게소리로 들렸지만, 요사이로 그 말이 피부까지 와 닿는다. 잠자리를 따로 편지가 10여 년도 지났지만, 부부는 죽을 때까지 부부(夫婦)라야 한다. 설령 살가운 대화가 오가지 않더라도 말이지.

마누라가 없으니까 좋~?”

. 잔소리를 안 들으니까 좋~. 허허허.” 말은 그리해도 정감이 가는 말투였으니까.

 

부동산 매기(買氣)가 없어서 당분간은 별거가 지속(持續) 될 것 같다. ‘혼자 생활하며 고생 좀 해 봐야 해!’하던 초심(初審)은 어데로 갔댜? 혹자는, 내가 실수로 초심의 한자(漢字)를 심()으로 썼다 하겠으나, 사실은 영감을 심판(審判)한다는 의도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나는 애초부터 현부(賢婦)가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별거를 하면서 , 고생 좀 해봐라.’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게다. 그런데 이제는 내가 더 약한 꼴을 보이니 어인 일인고. 난 참 못났다.

 

보림아~!

할미가 원체 미색이 아니긴 하지만서두, 할아버지만 그리 안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었어 야~.

허긴. 지금도 이뻐라 하기는 하셔~. ㅋㅋㅋ.

 보림아~! 귀 좀 이리 대 봐봐~.                             

 "할미는 아직도 할미 창 가의 저 능소화처럼 맘은 이팔청춘이여~ ㅎㅎㅎ." 

                                난 참 못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