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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에 들다


BY 만석 2016-06-15

별거에 들다

 

삼 년의 각방 생활 끝에 드디어 별거를 실행에 옮겼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마음이 통해서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됐다. 이렇게 편하고 시원한 것을, 왜 진즉에는 몰랐던고. 자다가 개구리헤엄을 친다고 나무랄 사람도 없고, 소리 내어 가스를 내 품는다고 흉이 될 리도 없지 않은가. ~. 애시당초(哀詩當初)엔 이런 풍요를 몰랐구먼. 킥킥킥.

 

영감도 혼자를 즐기는 것 같다. 왜 아니겠어. 곱지도 예쁘지도 못한, 남들처럼 미끈해서 자랑할 만한 마누라도 아닌 것이, 저 잘난 멋에 기를 쓰는 몰골이 이젠 신물이 날만도 하겠지. 영감 말대로라면 갈수록 늘어나는 잔소리도 안 듣고, 그래서 늘그막에 눈치 볼 일도 없으니 절로 에헤라 디여~♪♪아니겠는지.

 

영감은 병원에서 퇴원을 한 뒤 사무실을 정리하고는, 운전대는 절대로 잡지 말라는 주치의의 명()을 따라 차를 폐기하고. 그러고 보니 영감은 컴에 앉아 게임을 하지 않으면 책에 매달린 채 하루가 짧다 했다. 기껏해야 화분에 물을 주고 개밥을 주고. 그러고도 할 일이 없으면 뒷짐을 지고 베란다에서 보림이가 오는 언덕을 하염없이 응시하는 게 고작이 아니었는가.

 

보림이도 이젠 제 일이 바빠서 할아버지와 놀아 줄 시간을 내 주는 게 쉽지가 않다는 말씀. 손녀 딸아이를 기다리다가 맥이 빠지면 TV를 켜고 안락의자에 누웠다가 잠이 들기 일쑤다. 물론 처음부터 자려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안락의자가 공연스레 안락의자인가. 편한 자세가 잠을 불러, 줄잡아서 한두 시간의 낮잠에 코까지 골아대니, 얼씨고~! 굿을 해도 모를 지경.

 

그러니 정작 밤잠은 설치고 두 세 시까지 TV와 눈 싸움질이니, 이건 옆에 누운 마누라가 죽을 지경인기라. 꼴에 잠자리에 예민한 마누라는 취침시간을 놓치고는 뜬 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 12시면 TV를 끄자고 사정을 하면 며칠은 그러마 하고는 소리만 줄이니, 화면의 밝은 빛은 잠을 설치게 하지 않아? 뒤척이다가 기차화통 삶아먹은 소릴 지르면 다툼이 된다.

 

급기야 영감은 이불과 베개를 부등켜안고 거실의 TV와 눈 맞춤을 하니, 것도 내 보기에 심기가 불편하더란 말이지. 차라리 내가 건너 방으로 잠자리를 옮기고 영감을 제자리에 들게 하니 맘이 편하더란 말씀이지. 밤을 새워 TV를 보던지 말던지, 코를 곯아 벽의 액자가 떨어질 지경이든 말든 내 걱정할 일이 아니더란 말이렸다?! 후후후.

 

그렇게 시작된 각방쓰기에 익숙하고 보니, 지금 이 나이에 옆구리가 시릴 것도 없고. 가슴이 허전할 일도 없으니, 영감이나 나나 각자가 점점 희희(嬉嬉)가 락락(樂樂)하더라는 말쌈이야. 간간히 밤새 안녕하지는 않으려나 걱정은 되지만, 워낙 아침잠이 많은 나보다는 영감이 먼저 일어나는 일이 많아 그도 차차 적응이 잘 되고.

 

그러나 알량한 마누라가 눈 여겨 보아도, 마누라는 그저 ~싶은데, 영감은 나만큼이 아닌 게 눈에 보이더라는 말이야. 점술인은 아니지만, 이건 머지않아 우울증이라는 게 도래(?)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더라는 말. 그건 안 되지. , 영감에게도 뭔가 할 일이 있어야 해. 사실 나는 아래 위층을 오가며 바쁘지만, 영감은 원래 동네엔 지인(知人)이랄 이웃이 없걸랑.

 

워낙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위인(?)인 지라 어디다 붙여 볼 데가 없더구먼. 결국 생각해 낸 것이 시골행. 집이 매매(賣買)가 되면 아파트로 갈 것이 아니라 시골로 가서 살아 봐봐? 이젠 아이들의 학군 문제에도 해방이 됐으니, 전원주택도 괜찮겠는데? ‘시골로 가면 영감이 나보다 할 일이 더 많아질 거야.’ 그래 봐봐?! 이사를 하기 전에 적응기간을 갖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마음이 바쁘다.

여보. 우리 시골로 갈까? 시골 집 조금만 손을 보면 살만할 거야. 그치?!”

당신도 무려(無慮)하던 중이었던지라 선뜻 응()한다.

고추나 심어볼까? 좀 늦긴 했는데. 고구마도 아직은.” 묵혀놓은 텃밭을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나도 아래층엘 오르내리지만, 딱히 큰 수입이 있는 건 아니다. 영감과 같이 배낭을 메고 놀이삼아 다녀 봐?! 아침에 일찍 떠나서 저녁에 돌아오는 전원생활도 재미있을 것 같다. 늦으면 자기도 하고, 아니면 며칠씩 기거(寄居)해도 족하지 않겠어? 터가 남으며 상추도 심고 토마토도 꽂아보자. , 아직 심지도 않았는데 토마토며 가지 냄새가 진동을 한다.

 

이렇게 시작 된 시골행이 영감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기대 이상의 성과다. 영감은 수도국으로 한국전력으로 뛰어다니며 끊겼던 수도와 전기를 연결시키고 좋아라 한다. 왜 진즉에 이런 생각을 못했을꼬. 이제 보아하니 글쟁이영감도 남자다. 삽질을 제법 잘 한다. 밭을 일구고 고추를 꽂아놓고는 제법 밭 같다며 환히 웃는다. 보림이 없는 영감의 함박웃음이 오랜만이다.

 

그런데 아직 서울살림이 정리된 것이 아니니, 서울 집도 아예 비워 둘 수는 없다. 우편물이며 택배며 날아드는 고지서도 무시할 건 못 되지. 결국 영감만 남겨두고 서울에 오르내리는 건 나다. 내 편에서 생각해도 아직은 시골에 묻혀 살기에는 역부족(力不足)이다. 내게는 시골살이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감이 늘상, ‘나는 시골 살아도 당신은 못 살 걸?’ 말했듯이.

 

차차 적응을 하련다. 살아보니 못 살 것도 없는 전원생활이다. 다만 흙먼지가 문제다. 아무리 쓸고 닦아도 쌓이는 흙먼지는 도통 나를 괴롭게 한다. 아마 마루와 방의 바닥을 바꿔야 할 것 같다. 흙먼지를 흡입하지 않는 뭔가가 있을 법하다. 이렇게 우리는 별거 아닌 별거에 들어갔다. ‘서로가 궁금하고 서로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란 걸 알아가는 시간도 있어야 한다고 개똥철학을 해 본다.

 

                   별거에 들다

보림아~!

아직은 꼴적지만 그려도 곧 이쁜 밭이 될 거이여.

상추가 워찌나 연한지... 할미는 좋아죽겄어 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