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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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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칸타타


BY 마가렛 2022-01-16

부엌 칸타타

-박은율




저녁을 짓는다

부엌은 나의 제단

일상은 나의 거룩한 구유

나는 부엌의 사제

망사 커튼 드리운 서향 창

저녁놀 아래

희생 제물과 번제물을 마련한다

불과 샘 칼과 도마의 혼성4부합창

압력솥의 볼레로

냄비와 후라이팬과 주전자의 푸가

접시와 사발들의 마주르카

영대 대신 앞치마를 두른

나는 부엌의 제사장

부엌은 성스러운 나의 제단

쉭쉭대는 수증기 설설 끓는 국과 찌개들의 파르티타

당신은 즐겨 흠향 하신다

삶의 싱싱한 비린내와 비루함의 비밀스런 비빔밥

수다스런 푸성귀들의 아삭거리는 음표들

당신이 가장 오래 음미하는 애끓는 간장

말 없는 섬유질의 혀

오늘도 나는 저녁을 짓는다

부엌, 아득할 것도 없는 나의 지평선

맵고 쓰고 짜고 시큼한

넘실거리는 한 잔, 나를 곁들여

참 까탈스런 미식가 당신에게 바친다

공손한 듯 삐딱하게

그래도 두근거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