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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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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엄마와 고향집


BY 나목 2021-05-08

울엄마 이야기야 이 나라 엄마들 시집살이
그 별 일 많던 날들 중 별 일 아닌 것일 수도 있지만요
"이 날 평상 나 살어 온 사연 글로 쓰면 한도 끝도 없다"
하셨으니
그 끝없는 이야기를 다는 못해도
울엄마 흰 머리카락 한 올 만큼이야
나도 할 수 있지요.

신랑 인물이 아깝네 소리야
새색시 시절 내내 듣고 살았어도
남편 닮아 죽은 데 하나 없이
넓적허니 이쁜 아들 하나 낳아논께
복이 따로 있었단가요. 참말로

그런 금쪽같은 아들을 돌 지나 잃고

눈보라 치던 겨울 어느 날이면
손주 무덤 이불 덮어 준다고
울하나씨 넋을 놓고 나가시고는
하셨다 하데요마는
울엄마는 아들 잃은 애통함보다
종일 일에 치이고 밤이면 애기 보느라
못 자 본 잠이 그리 달았다 합디다.

잠이 하도 달아서였을까
내리 딸만 낳아싼께
아비없이 암 것도 없는
홀어매 밑에서 시집 온 며느리가
이쁘기야 했겠소.

첫국밥도 제대로 못 먹고
무논에 빠져서 쓰러진 나락을 묶어 세울 때면
그 자리에 엎어져 죽고만 싶었다
대목에서는 듣는 나도 서러웁디다.

천지만물이 다 쉬는 한겨울에도
다람쥐마냥 뽈뽈 거리며
내일이면 나아지겄지
내년이면 나아지겄지
둘려서 살아온 물짠 세상

울엄마 입술에 자글자글 주름지도록
지금까지 대롱대롱 매달려서 온 말
"내가 일로 식구들 잡고 살었제,
느그들 땜시 살었어야"

울엄마 시집와 60년 넘도록 살다
서울로 떠나시고 홀로 남은 고향집
마당 입구까지 뒷산 나무들이 내려와
자리를 잡아 집을 지키고
기울어가는 처마 아래 굳게 잠긴 문

두꺼운 저 자물쇠 녹슬기 전
활짝 문을 열어 젖히고
봄볕이 드는 토방에
울엄마 곱고 젊은 얼굴로 다시 앉아
한(恨)도 끝도 없는 이야기 재미지게
엮을 수 있다면 나는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