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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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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BY 그리운섬 2006-10-26

벌초

시/김덕길



열 살
가을 내 말린 고추 정읍 장 내다팔아
바리캉 사 오시며 이발 비 걱정 안 해도 된다
좋아라 하시던 울 아버지
까까머리로 학교 가던 날
때깔 중이라 놀리는 친구 주먹다짐 했더니
튀밥장수 아들과 놀지 마라 온 동네 들썩였지

열한 살
뒤란 시렁 둥지 겨우내 낳은 달걀 지푸락 싸매 장에 팔고
바리캉 덧대는 이중 칼날 사 오셔서
상고머리로 깎아줄 테니 어깨 펴고 다니라 하셨는데

서른아홉 살
당신의 머리 깎아드린 지 어언 23년
삽자루에 숫돌 끼고
낫 갈던 모습 눈에 선해 나도 해 보건만
어쩌랴
신형 예초기에 금세 잘려나간 머리카락
“아버지 상고머리로 깎아드릴까요?”
머리나 감겨달라는 듯
하늘에선 거푸 비만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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