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나 기
그날 개울을 건널 때
머슴애의 목덜미를 끌어안던
얼굴이 희고 말갛던 계집아이는
지금 어느 세상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어느날
여리고 풋풋한 머슴애가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서성이고 있다면
서슴없이 등을 내밀어 주려는데
살아가기 고단하고 서글플때
그도 그렇게
내 목덜미를 끌어안을까
시집 < 며칠 더 사랑하리 : 집사재 > 중에서
저자의 말 :
오래전에 열세살 연하의 남자를 사랑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서로에게 들키면서 눈치챘지만
사회적 인습에 도전할 용기 역시 없어 그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망설이며 주변을 서성이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내 등에 업히는 대신, 다른 여자를 등에 업었고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듣습니다.
지금 되집어 생각해 볼때 용기 없었음이 후회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나는 그만큼의 인연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에 가끔씩 이렇게 추억해 볼수라도 있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