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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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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처럼 여울지다


BY 오틸리아 2022-08-21

璡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보면서 마음이 울컥했다. 
몇 날 며칠 동안 pipeline을 독학으로 연습해서 나와 언니 앞에서 제대로 된 연주를 해 보이던 오빠의 우쭐대던 얼굴이 떠올라서다. 
그날 오빠의 왼손가락들에 감싸져 있던 살색 밴드가 얼마나 안쓰러웠던지 눈물을 찔끔하는 나를 보고 오빠는 자신의 연주에 감동해서 그러는 줄 알고 더 신이 나게 연주를 했었다.
 
피크를 쥔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오빠의 손을 벗어난 기타는 잠깐 사이 두 동강이 났다. 
아버지가 그토록 크게 성을 내시는 건 처음 보았다. 
우리 형제들은 천부적으로 예능 쪽에 재능이 있었다. 
피아노를 배워본 적이 없는 언니가 유명한 팝송들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던 것, 
오빠가 중등부 市 대표로 뽑혀 아버지 몰래 성악대회에 나가 줄곧 최고상을 수상했던 것, 그리고 뒤를 이어 각종 사생대회나 글짓기대회에서 많은 상들을 휩쓸었던 나까지. 
하지만 셋 중 누구도 자신의 재능을 키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 
고지식의 최고봉인 아버지의 자식으로 태어난 이상 딴따라 쪽을 기웃거린다는 것은 아예 용납이 되질 않아서였다.
 
오빠 학교의 성악지도 선생님이 몇 번인가 아버지를 찾아와 제자 하나 잘 키워보겠노라 통사정을 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얼마나 무서웠던지 나는 차마 거실로 나가 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성악선생님이 다녀가신 날엔 집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풀이 죽어있는 우리를 위해 당신 손수 우리가 좋아하는 요리를 해주신다거나 우리가 필요로 하는 선물들을 준비해주시는, 그 외의 일에는 자상하기 그지없는 부성애를 지니셨다. 
그 외의 일에는 너무나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셨고 자식들에 대한 사랑도 여느 부모 못지않은 분이셨다.
 
오빠의 풀죽은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워 우리는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모종의 비밀작전을 짰다. 
 
어느 일요일, 우린 꼭꼭 모아 둔 용돈을 털어 아버지 몰래 종로 세운상가에 나가 
오빠의 소원이던 세고비아 기타를 사고 황학동 시장을 뒤지고 뒤져 비록 중고품이지만 작은 전축도 하나 마련하였다. 
그날의 기쁨이란, 우리 형제에게는 그 어떤 특별한 선물도 그에 비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璡이 연이어 몇 곡을 연주하는 동안 우리는 마치 작은 음악회라도 와 있는 것처럼 그의 연주에 집중하며 빠져들었다. 
우리들의 지대한 몰입이 부담스러웠을까. 
璡은 갑자기 연주를 중단한 채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붉혔다. 
하얀 덧니가 수줍게 웃었다. 
그는 커다란 키와 웨이브 진 장발 머리 같은 외모에서 주는 불량스러움과는 달리 웃는 모습만큼은 아이처럼 천진했다. 
그리고 입술 주변과 눈언저리에 잔주름을 만들면서 지어내는 수줍음이 그 미소에 항상 동반되었다. 
 
- 우리 같이 노래 부를 수 있는 곡으로 연주해봐요.
 
여학생들의 성화를 기다렸다는 듯이 璡은 다시 피크를 쥐고 대학가요제 수상곡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제히 노래를 따라 불렀다. 
나도 어느샌가 흥얼거리는 수준을 넘어 되풀이되는 후렴구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기타와 노래에 흠뻑 빠져 해가 저물 때까지 璡의 작은 방안에서 주말 오후를 보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라 어제 못한 공부들을 보충할 요량으로 일찌감치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예전처럼 한가지에만 전념할 수 없는 여건들이 자주 발생하곤 해서 도서관을 들어서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에 조급함이 생겨났다. 
 
-좌표를 잃고 항해를 해선 안 된다-
 
교련복이 준 책 속에 깨알 같은 글씨로 낙서가 되어있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아마 그도 은둔 생활이 만만치는 않은 듯했다. 
이 낙서를 끄적일 때 그는 어떤 갈등이 있었던 걸까. 
문득문득 떠오르던 그에 대한 짧은 궁금증이 점점 관심으로 바뀌어 갔다. 
다음에 만나면 꼭 고맙다는 인사와 몇 가지 궁금한 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리라 생각하며 교련복이 끄적여 놓은 낙서 아래에 응답이라도 하듯이 생각나는 대로 나도 몇 자 적어 보았다.
 
-폴라리스와 나침반이 있잖아요-
 
적어놓고 보니 우리 두 사람의 사고의 차이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어느 지점을 지칭하는 좌표는 확실한 목표점을 말하는 것인데 나의 폴라리스나 나침반은 그저 방향만을 알려주는 것일 뿐이니, 그는 목표한 한 지점을 향해 정진하려는 것이고 나는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려는 것인 셈이었다. 
그것은 나의 사고가 그만큼 해이해져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교련복의 낙서는 때때로 나에게 큰 자극제가 되어주었다. 
우린 비록 얼굴을 마주하진 못하지만 그의 머릿속을 맴돌아 그의 손끝을 통해 쓰여진 낙서들이 나에게 많은 말들을 전해주고 있었다. 
 

끼니를 놓친 위장이 요동을 쳤다.
숨소리까지 들릴 듯이 조용한 도서관에 내 허기진 뱃속의 꼬르륵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아 자리를 일어섰다. 
도서관 입구로 나서자마자 초여름의 태양이 바로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현기증이라도 일으킬 듯 강렬한 빛이었다. 오른쪽 옆구리에 책을 끼고 왼손을 이마 위에 거수하듯 붙인 자세로 볕을 피하며 집으로 향했다. 
 
동네 골목 어귀에 다다랐다. 15미터 혹은 20미터 쯤이나 될까. 
입과 항문을 연결하는 장기같은 이 골목의 바깥쪽은 소비지향적으로 북적이는 도심이고 안쪽은 그야말로 고즈넉한 삶의 안식처였다. 
가끔씩 그 이중적인 삶의 통로에 유흥의 흔적들이 남아있어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이미 항문을 벗어 난 배변의 쾌감처럼 아늑하고 시원한 풍경이 골목 끝에 자리하고 있었다. 
 
골목을 중간쯤이나 지나쳤을 즈음 안쪽으로부터 璡과 그의 친구들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 편하지 않은 사람들이, 두 사람이 겨우 나란히 걸어 갈 정도의 비좁은 길에서 맞닥뜨린다는 것은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나만의 휴식처로 향하는 이 평화의 다리와도 같은 골목길이 璡의 이주로 인해 아슬아슬한 외나무 다리가 되어버렸다. 
아직도 정면으로 璡을 쳐다볼 만큼 태연스럽지 못한 내 시선이 갈팡질팡하는 동안 그들은 어느새 내 코앞으로 다가왔다.
 
- 도서관에 갔다 와요?
 
나의 행동반경을 꿰뚫는 듯한 璡의 물음이 달갑지 않아 대답 대신 고갯짓을 하면서 그와 나란히 서 있는 해석인지 회석인지 분명치 않지만, 아무튼 그런 이름으로 불리었던 璡의 친구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璡이라는 사람이 특별한 건지 아니면 내가 문제인 건지 모르지만 그는 까닭 모를 서름함을 주는 반면에 한 번 본 그의 친구들은 오히려 친숙하고 편했다. 
 
그는 璡과는 달리 찬찬하고 단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친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빙긋이 웃었다. 
그가 엉겁결이었는지 내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옆에서 璡이 어정쩡히 선채로 우리를 지켜보았다.
 
- 혜주씨, 주말마다 놀러올게요.
 
뒤쪽에 서있던 친구가 고개를 비집고 끼어들며 인사를 건넸다. 
우리는 좁은 골목길에서 의전행사라도 치르듯 한명씩 악수를 나누면서 비껴갔다. 
덕분에 璡과 나와의 거리는 친구들이 채운 공간만큼 떨어지게 되었고 璡의 아쉬운 듯한 표정에도 마음 쓰지 않고 발길을 돌릴 수가 있었다. 
친구들의 명랑한 인사가 곁들인 골목길에서의 해후는 璡과 단둘이 마주치던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璡의 외출이 확인된 터라 나는 모처럼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열려진 창문으로 璡의 방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겨우내 닫아두고 살던 뒤쪽 창문이라 두 집 사이가 이토록 가까울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박선배집 마당으로부터 고추 여물어가는 냄새가 폴폴 날려 왔다. 
 
급하게 되는대로 늦은 점심을 먹고 잠깐 잠이 들었는가 싶었다. 
꿈속에서 나는 대입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시험지의 문항들이 너무도 또렷하게 보였다. 
다행히도 내가 아는 문제들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답안지에 숫자가 써지질 않았다. 
몇 번이고 볼펜으로 끄적여 봐도 여전히 답안지는 깨끗했다. 
옆 친구들이 하나 둘 밖으로 나가자 나는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나는 텅 빈 답안지에 자꾸만 자꾸만 볼펜을 문질러댔다. 여전히 답안지는 백지상태였다 . 결국 종이 울리고 감독관이 와서 내 시험지를 빼앗아 가버렸다. 
종소리는 끊임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이번에도 실패구나. 나는 곧 숨이 넘어갈 듯 처절한 몸부림 끝에 겨우 잠에서 깨었다. 
 
기타소리였다. 나를 고통스런 지옥에서 끄집어내어 준 것은. 
꿈이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고통스런 뇌파가 현실에까지 이어지는지 두통이 밀려왔다. 
침대 머리맡에서 망사 커튼이 바람에 바스스 날리고 있었다. 
문득 창문을 열어 놓은 것이 생각나서 벌떡 일어났다. 
다행히 침대가 벽 쪽으로 바싹 붙어있어서 璡의 방에서는 내가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한참 동안 침대에 걸터앉은 채로 기타 선율에 빠져들었다. 
璡과 처음 만나던 날 그 커피숍 DJ박스에서 흘러나오던 바로 그 노래였다.
 
I'd love you to want me 
당신이 나를 원한다면 기꺼이 사랑할거에요.
내가 당신을 원하는 것처럼
그래야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