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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행복을 꿈꾸다. 1편 (실화)


BY 노아 2020-12-20

이글 노아 행복을 꿈꾸다 검색하면 나오는 듯 (24. 04. 첨부 글) X복문


노아 행복을 꿈꾸다. 1편 (실화)

오래전 마구잡이로 쓰다만 이 글을 다시 써보려 한다.
내 지난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려오는 울음소리
뿌연 안개 사이로 들어오는 강렬한 빛 하얀 천장과 벽
여기가 어디일까?
흐릿한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에 왜 우냐 말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는
힘겹게 허우적거리는 팔 외엔 전혀 움직일 수 없던
왜인지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더듬거리며 만져본
목을 뚫어 산소 호수가 꽂혀있고 머리와 어깨엔 이상한 물건들이
내 몸을 압박하는. 힘겹게 밑을 내려다본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몸과 이상한 호수가 배꼽 아래에 꽂혀 있던
내가 왜 이러지? 알 수 없는 난 팔을 허우적거려 보지만
어머닌 아무 말 없이 울고만 계신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걸까?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이야길 나누고는
내게 주사를 놓는듯한 흐릿한 영상 아니면 망상
검게 물들어 가던 형상 그 어느 날

집에 온 지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어두운 방 안과 침묵 그것이 내 일상이 된 지금
움직여 주지 않는 다리와 손가락 그리고 약간의 우울증뿐
내 인생은 하루아침에 전신 마비 장애인이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한밤중 끔찍한 악몽에 눈뜨는 밤이면
혹시 다친 것이 꿈인 걸까? 발을 움직여 보지만...
꿈이 아닌 현실을 자각하며 여지없이 흐르는 눈물. 새벽을 기다리며
어두운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옛일들이 너무 선명하게 떠오른다
동생이 가르쳐 준 컴퓨터에 내 글을 조금 남겨볼까
다치기 전에도 멍청한 내가 사고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충격으로
더욱더 멍청해진 것 같다. 내가 봐도 맞춤법도 많이 틀리는...
아니 좀 더 솔직한 마음은 어린 시절 가르쳐 주는 이 없이
한창 글을 배울 나이에 공포의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기에
내 스스로 노력했다면 조금은 나았을 것을
그 부족함조차 채우려 안 했던 내가 한심할 뿐.
그런 모자람과 사고에서도 그리도 잊고 싶어 하던 옛 기억은 미칠 듯 떠올라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좌판 글 하나하나 누르며
공포의 기억뿐인 어린 시절과 사랑이라 믿었던 내 지난 이야기를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조금씩 써볼까.
칠십이 년 시월 제주도 이호 옆 조그만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이남 삼녀 중 막내로 집을 등한시하며 술로만 사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물질과 밭일로 우리를 먹여 살리시는 어머니
참으로 가난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던
먹을 게 없어 돼지 사료를 먹어야 할 정도로 힘들었다는 말을...
그런 생활을 하던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는 엄마의 모습
왜 엄마가 없는지 이유를 알 길 없던 난 우릴 버리고 떠난 걸까? 생각에
매일 울던 흐릿한 기억
어느 날 엄마에게 가자는 형의 말에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가던
배 안에서 한 아이와 엄마를 보았다
엄마가 사주신 복숭아 통조림을 맛있게 먹고 있던 아이를
그런 복숭아 통조림을 처음 본 그 모습
어찌나 맛있어 보였던지 아이가 먹는 걸 힐끔힐끔 쳐다만 볼 뿐
잠시 후 아이는 엄마 품에 안겨있을 그때
나도 모르게 내 눈은 그 아이가 먹던 통조림 속을 쳐다보고 있던
혹시 남았을까? 남아 있을 리 없지 않은가
눈물이 날 것 같던 어린아이 눈에 그 아이가 행복해 보였기에
맛있는 음식과 엄마 품에 안겨있는 그 모습이 부럽고 서러운 마음이
어린 생각에서도 우리 집은 돈이 없다 생각했지만 참을 수 없었던지
형에게 복숭아 통조림을 먹고 싶다 조심스레 물어봤던
돈 없다. 말할 줄 알았던 내게 돈을 꺼내며 사 먹으라던
나도 먹을 수 있어. 말하고 싶은 듯 그 아이를 힐끔 쳐다봤던 기억이
입안에서 처음 느껴보는 그 새콤달콤함에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고 있던 난
"너 혼자만 먹을 거야" 날 쳐다보며 말하던 형에게
미안함과 아까워하는 듯한 목소리로 한 입만 먹으라 통조림을 내밀던 내게
웃으며 배부르다며 너 먹으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먹고 있던 나
지금이야 반나절이면 어디든 가지만 그때는 어디를 가는지 꼬박 이틀이 걸려
도착한 그곳 인천 삼촌 댁에 있던 엄마를 안고 참 많이도 울던 그 날밤
다음날 형은 내려갔고 며칠 후 엄마와 나도 내려왔다.
이젠 예전처럼 우리 가족 모두 모여 살겠지 생각했지만
얼마 후 학교 다닌 지 얼마 안 된 날 전학을 시키고는 어딘가로 데려가는
어디 가냐. 물어봐도 대답 없는 엄마 손에 이끌려 도착해 보니
인천인 듯했다. 그런데 삼촌 댁이 아닌 이상한 골목 단칸방에 들어선 난
방 한가운데 앉아 있던 아저씨를 며칠 후 아버지라 부르라 하던 어머니
왜 그리 불러야 하는지 의미도 모른 채 처음 아버지라 불렀던 그날

인천에서 잠깐 학교에 다니다 다시 제주도로 이사를 했다
친누나들과 이모 집 이야기는 빼기로 했다. 기억도 흐릿하고
너무 복잡해지는 듯해서 그리고 그곳에서의 삶은 차라리 천국이었기에

누나들과 같이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토요일이면 가끔 누나가 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제주도로 이사한 지 며칠 안 된 어느 날
목수 일을 하시던 새아버지는 나무를 하나 가져와 방 한가운데 서
쓰시던 도구를 풀어 놓고 일하시는 그 모습을 보면서
저게 뭔데 저리 정성껏 대패질하실까? 생각하던
길이는 야구 방망이만 하고 그 손잡이보다 두꺼운 몽둥이에
아주 정성스럽게 글을 쓰시고 들어 올리시며
"아버지의 사랑은 하늘. 어머니의 사랑은 바다."라고 쓴 거라
옅은 미소 띤 얼굴로 날 바라보며 말하던
지금도 잊히지 않는 공포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그 미소가
지금 생각나는 건, 어린 나이에 더욱더 커 보이는 몽둥이가 두려워
방바닥 울며불며 몸부림치는 기억 속 어린 내 모습이
공포의 시작이었다. 매일 같은 공포와 마주해야 했던
내 마음은 작아져만 갔고 하루하루 눈치를 보며 생활해야 했지만
하지만 그런 눈치조차 없던 모자란 난 더욱더...
난 머리가 좋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좀 모자란다 해야 정확할까
남들 열 번이면 충분히 습득할 지식도
이 삼십 번을 해도 습득이 안 되는 그런 아이라 해야 할까
거기에 태어나면서부터 나에겐 언어장애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있는 목젖과 입안 천장이 내게는 없었기에
그런 모자란 아이가 성적표 받아오는 날은 여지없는 매질과 발길질에
성한 곳 없는 지친 몸뚱이를 끌며 학교에 가야 했고. 때릴 적엔 항상
"내 자식들은 장학금 받으며 학교에 다닌다." 발길질하시던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어머닌 이혼도 하지 않은 새아버지와 같이 살았다.
그건 어머니도 마찬가지였지만
공포의 밤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게 다가오는 공포가 짙어져서일까
집 앞 아이들 군것질하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어머니에게 말하고 싶지만 그건 입도 못 떼본다.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던 대나무 낚싯대로 고기를 잡아
아궁이에 구워 먹는 것뿐
가끔 가족들이 모일 때면 어머닌 그때 일을 말하곤 한다
고기를 구워 먹는 걸 봐도 내겐 먹어보란 소리 안 하더라. 고
그때 난 하루만 안 맞아도 운 좋은 날이었기에
혹시나 맞을까 눈치 보며 구워 먹었던 것을
다른 식구들에게 그런 말 할 때면
그때 일을 말하고 싶지만 그냥 가만히 있을 뿐.

내 살던 집은 바닷가 옆 굉장히 넓은 마당 있는 큰집에 세 들어 살았다.
세 들어 살던 곳에서 큰 대문까지 창고를 돌아 사오십 미터를 가야 했던
그 집 앞은 부두로 가는 길가라 큰 차들이 많이 지나가는
귀 기울여야 들려오는 경적 소리
백 미터 달리기하듯 대문으로 달려가 빠른 속도로 대문을 열고는
대문 옆 오토바이 타고 들어오시는 새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구십도 인사해야 했던. 매일 같은 극도의 긴장과 폭력 속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어두운 방에 앉아 경적 소리를 기다리던 난
긴장이 풀려서인지 지쳐서인지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잠이 들었던
몸 전체 흔들리는 충격과 통증 잠에서 깨어보니
"왜 대문 안 열어."
방구석 맨방바닥 새우잠 자던 내 허리를 발로 차고 있는 새아버지의 모습
문을 안 열거나 늦게 열면 어디서든 발에 차여야만 했던
그 시절 난 개였다.
내 옆을 지나가다 이유 없이 발에 차여 나뒹굴던 날들
매일 같이 때려도 부르면 맞을까 공포에 떨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그러고 보면 그때 우리 집은 개를 팔려고 몇 마리 키우셨는데
단 한 번도 개를 때리는 것을 못 봤던 난 개만도 못한 놈이었던가
운 좋게 맞지 않는 날조차 날 앞에 앉혀두고 밤늦도록 설교하시던
새아버지의 말 한마디 작은 손짓만으로도 공포에 떨어야만 했던
금방이라도 바지에 실례할 것 같은 그 많은 밤을 보내면서
난 누구를 원망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단지 무서웠다
너무나 두려운 밤을 보내며 제발 때리지만 않았으면 생각하며 빌던
모자란 어린아이였을 뿐. 새아버지는
바다가 바라보이는 집 담벼락에 앉아 먼바다를 바라보곤 하셨는데
그런 날은 친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내게 풀고 있던 것일까?

토요일 오랜만에 놀러 온 막내 누나와 방에 앉아 놀고 있던 그때
방문이 열리며 방 안으로 들어서는 새아버지를 본 순간
아차 했다 경적을 울렸구나.
너무 무서워서일까 몸이 굳어 버린 듯 앉아있던 내게
이어지는 새아버지의 발길질
"내 동생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들려오는 누나 목소리에
잠시 고개를 든 순간 얼굴을 맞고 쓰러지는 누나 모습이
방바닥에 쓰러진 누나는 기절했고 구타는 멈추었다.
어린 내 마음은 쓰러진 누나를 걱정함과 동시에
너무 무서워서일까 기절하길 잘했단 생각이 스치는 나 자신을
누나는 지금도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 있다는걸...
어느 늦은 오후 내게 집을 보라 하시고 외출하신 후
밖에서 들려오는 친구들이 놀자 부르는 소리. 유혹을 못 참은 난
잠시만 놀다 와도 괜찮을 거야 생각하며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어린 그 시절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어두워진 것도 모르고 놀고 있던 그때
등 뒤에 서 있는 어머니를 본 순간 내 뺨으로 날아온 손바닥에
넘어 질듯 휘청이며 들려오는
"집안 보고 왜 나와서 놀아 빨리 따라와" 울며 어머니 뒤를 따라온 난
열려있는 문 앞 무서운 얼굴로 날 기다리고 서 있는 새아버지의 모습
눈앞에 마주한 공포 나도 모르게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을 치며 뒤를 돌아본 내 눈에 어둠 속 날 향해 달려오는 두 분의 모습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공포에 질린 듯 소리치며 달리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게 없던 난
큰 대문까지도 못 가 붙들려 다시 집으로 끌려가야 했던
내 양팔은 두 분 손에 붙들려 질질 끌려가면서 그 엄청난 공포에
알아들을 수 없는 도살장 소 돼지가 된 듯 울부짖던 그 날밤
방구석에 웅크린 채. 제발 한 번만 용서해 달라고
두 손 모아 울며불며 빌고 있는 아이에게
누가 더 많이 밟나 내기하듯 발길질하시던 두 분이
초가집, 그곳에서의 삶은 가난했지만 조금은 행복했던 듯한데
그 큰집에서의 어머닌 새아버지와 별반 다를 것 없던
공포와 마주하는 밤이면 착각일까 눈물 때문일까 일그러져 보이는 형상
윙윙 울리던 말소리 그 모습이 마치 악마의 형상처럼 느껴지던
어떻게 잠이 든 건지 기억조차 전혀 나지 않는 그 많은 밤들
지금도 그날이 생각날 때면, 집에 도둑이 들었던 것도 아니거늘
단지 집앞에 나가 놀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어린아이에게
그런 모진 발길질하시던 두 분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삶에 지쳐서일까? 누군가에게 받은 화를 내게 풀고 있던 것일까?
아니면 단지 때릴 구실이 필요했던 것일까?
끝 모를 공포로 다가오는 하루하루 속
수평선 밀려오는 붉은 노을과 같이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
신이 뭔지 하느님이 뭔지도 모르면서 빌기 시작하던
오늘 밤은 제발 아무 일 없이 지나가 주기를. 빌고 또 빌어보지만
아무 소용 없는 그곳엔 한 아이의 핏빛 절규만이 있을 뿐
얼마 후 집에 들어온 나는 방에 앉자 울고 있는 누나를 보았다.
친아버지가 뺑소니차에 치여 돌아가셨다는 말에 아버지와 살던 집으로
버스 안 울고만 있는 막내 누나, 나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죽음이란 게 뭔지 와닿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아버지와의 기억이 없기 때문일까?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 버스 안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 덜컹거리는 버스 소리와 누나의 울음소리뿐.
버스에서 내려 내가 살던 집으로 누나와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눈에 들어온
어두운 저 멀리 내 살던 초가집 불빛이 그 어느 집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집에 다다르며 들려오는 사람들 곡소리
아버지와 낚시하러 가던 옛 생각이 떠오르며 집에 들어선 나를 맞이해 주던
누나들과 친척들 그리고 영정사진 속 낯선 아버지의 얼굴이
장례식을 치른 후 다시 돌아가는 날 누나들이 배웅해 주던
누나들과 같이 살고 싶은데 난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문득 떠오르던 다른 아이들도 나처럼 사는 걸까?
아주 조금만 마음 편하고 행복했으면...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지옥 같은 그곳으로
그때쯤 내 동생이 태어났다. 늦게 본 친자식이라 그런 건지
참 정성스럽게 동생을 돌보며 생활하던 어느 날 갑자기
새아버지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자 도망치듯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이젠 가끔 보는 누나들도 바다도 볼 수 없는 알 수 없는 곳으로

공포의 기억뿐인 제주도를 떠나
충청남도 조치원으로 이사한 후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났다
동생을 잘못 보면 여지없는 매질에 신줏단지 모시듯 해야 했기에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날 닭 손질하시는 어머니 모습에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쳐다보던 내게
어머닌 새아버지 약에 쓸 것이라 아이들은 먹으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그날 저녁 새아버지와 동생이 닭 먹는 것을 보며
먹고 싶단 생각보단 왠지 모를 서러움 내 눈 속 고이는 눈물
그것을 본 새아버지는 상을 엎고는 발길질하시던
밥 먹다 때리는 일은 흔한 일이었다. 보란 듯이 티브이를 틀어놓고는
내 고개가 돌아가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밥 먹다 말고 한눈판다 상을 엎거나 발길질하던 때였으니.
얼마나 지났던가 새아버지가 잠시 나가시면 이어지는 어머니의 매질
내게 있어 어머니는 더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새아버지와 같이 때리시던 어머닌 아무 망설임 없이 매를 들었고
너무 억울하게 맞을 때면 억울한 마음에
변명하거나 약간의 거슬리는 표정만 비쳐도
어디서 말대꾸 똑바로 쳐다본다.
살이 터지고 뼈가 부러질 듯한 광기 어린 매질을 수없이 겪다 보니
내 마음에 문을 닫아버렸던 것일까
그 어떠한 억울한 매질에도 변명은 고사하고 무조건 빌기 시작했던
나에게 있어 속마음을 표현한다는 건 더 큰 공포와 아픔으로 내게 왔기에
그때부터였을까. 그 어떠한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변명조차 못 하는 내가 됐던 걸까?

집 앞 골목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들
그곳에 버려진 책을 우연히 읽게 됐다.
아니 책이 아닌 단 하나의 그림이 내 머리에 각인됐다. 말해야 할까
톰이 뗏목을 타고 여행하는 그림을 보고는
너무나도 그 그림 속 톰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던
마치 선망의 대상이라도 보는 듯 수없이 그 그림을 바라보던 그때를
얼마나 좋을까?
그 그림 속 톰이 너무도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기에. 그래서였을까
톰 소여의 모험이나 로빈슨 크루소 같은 그런 책을 즐겨 읽었던 난
그 섬 생활마저도 동경했던 것일까
그러고 보면 이런 내 글을 읽으며 답답한 마음에 사람들은 말하고 싶겠지
그리 힘들면 도망이라도 가지 멍청하게 왜 같이 사냐. 고 말이다
지금에서야 변명이라도 해보면. 금붕어는 지능이 낮아
어항 안을 세상에 전부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 또한 그래서였는지 그 모진 압박과 폭력으로 인해 의지조차 죽은 건지
그 지옥 같은 집을 나가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나 또한 아쉬운 건. 아주 조금만 똑똑하지
조금만 똑똑해도 자유란 걸 찾아 떠났을 것을 어쩌면 그리도...
지금도 밤이면 바보처럼 살았던 한탄스러운 기억들과
아픈 현실에 잠을 못 이룰 때면 억지로 그려본다.
넓은 바다를 여행하거나 섬에 살고 있는 나를
만약 지금 내 모습 아닌 사회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난 아마 내 삶에 적응을 못 했을 것 같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보았던 사람들처럼
나 또한 사람 없는 곳에서 나 혼자만의 삶을 살았을 것 같다.
적응 못 한 것도 있겠지만 어려서부터 막연히 꿈꾸던 삶이기에
그런 하루하루 보내던 중 불안에 떨던 기억도
밤늦은 시간 부모님이 친구분 댁에라도 놀러 가시는 날이면
혹시나 술 드시고 들어와 때릴까
밤이 깊어 갈수록 불안에 떨던 순간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
두려운 마음에 벽 쪽으로 돌아누워 자는 척을 한다.
들어오신 두 분의 말소리가 들린 후 왜인지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순간
"얘 지금 자는 거야"
갑자기 새아버지 말소리와 숨소리가 바로 내 얼굴 옆에서 들리던
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자는 애 그냥 놔둬요." 어머니 목소리
"안 자는 거 같은데" 그 대답은 내 심장 뛰는 소리가 머리까지 울리는 듯한
지금이라도 일어나 인사를 해야 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하지만 지금 인사하면 자는 척했다 맞을까 숨소리마저 죽이며 자는 척하던
다행히 그다음은 내 이야기 하진 않았다.
그때 내 얼굴 옆에서 새아버지의 말소리가 들릴 때 너무 놀라서일까
그만 찔끔 소변까지 실례했던 불안한 시간을 보낸
어느 날 밤의 기억이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중학교를 입학했지만
그 중학교 생활조차 또 다른 괴로움의 연속이었던
언어장애 그것은 학교 아이들에겐 좋은 놀림과 괴롭힐 구실이 되었기에
어릴 때부터 아이들 놀림은 항상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저기 말병신 걸어간다" 흔히 들려오는 아이들 떠들던 소리
누가 던진 건지 알 수 없게 내게 날아오던 돌들
그러나 중학교에서의 놀림과 괴롭힘은 정말...
토요일 두 시간 연속 미술 시간이 있는 날이면 정말 학교 가기 싫어진다.
그림에 소질이 조금 있어서일까 미술 시간을 좋아했지만
그 준비물을 사 가야 하는 날은 정말 학교 가기 싫던
준비 못 하면 매 맞고 두 시간 연속 앞에 나가 벌을 서야만 하는
다른 애들이라도 있는 날은 좀 참을 만한데 혼자서는 날은 그 기분 참...
참아보다 못 참는 날이면 학교에 안 가고 공원에서 시간을 보낸 적도
어느 날 아침 용기를 내어 어머니를 조르고 준비물 살 돈을 받아냈던 날
돈을 손에 쥐고 수업 시간 전까지 가게 앞을 서성거렸던
준비물을 사 가야 하는데 왜 들어가 선뜻 못 사고 망설이는지
결국 준비물을 살 수 없었다. 아니, 살 수 없는 게 아니라
돈을 쓰고 돌아가면 맞을까 두려웠기에
아니나 다를까 집에 와 돈을 돌려주려 다가가던 그곳엔 어머니가 아닌
마치 사나운 개가 사람을 물기 직전 아무 소리 없이 쳐다보는 듯한
학교에선 힘들었지만 어머니 매질에 비하면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그냥 가져오길 잘했단 안도감과 비참함이 교차하던 순간을
소풍 그런 것에 들뜰 나이도 아니면서 아무런 즐거움이 없어서일까
나 또한 김밥 싸 놀러 간다는 것에 조금은 들떠 있던
하지만 소풍 전날 밤
"김밥 싸려면 준비도 해야 하고 귀찮으니 안 싸가면 안 되니." 말에
"그냥 밥이라도 싸줘요." 말할 수밖에 없던
바보 같은 놈, 언제 김밥 싸 소풍 간 적 있다고 싸줄 거라 생각했는지
소풍이라고 계란 올린 밥과 김치 백 원짜리 과자 두세 개
그리고 몇백 원 내가 가져갈 수 있는 전부이다.
소풍 간 그곳에서 점심 먹자 삼삼오오 모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뒤로하고 사람 없는 외진 곳을 찾아가
배는 고팠지만 넘어가지 않던 밥을 꾸역꾸역 넘기거나 버리곤 했던
그런 쓰라린 삶 속에서도 자존심 이란 게 조금은 남아 있었나
그 몇백 원 그것도 소풍에서 돌아와 말없이 어머니에게 돌려 드렸다
그곳에서 파는 과자나 물건들은 왜 그리도 비싸던지
몇백 원 그것으로는 살만한 게 거의 없었기에. 나에겐 소풍이란 추억은
더 비참한 긴 시간을 버텨야 하는 날일 뿐 아무 의미 없는 날이었다
나도 김밥 싸 소풍 가고 싶었는데. 티브이 장면에 말했던 내게
그때는 가난했잖아. 말했던 누나가 생각난다.
가난, 온갖 보약과 개 한 마리 통째로 사 새아버지 드시게 만들던
학교도 안 다니던 동생 학습지 받아보는 그런 수많은 일들을 보면서
내 마음은 어땠을지 말하고 싶었지만...
그래 모르겠지 예나 지금이나
누나들이 알고 있는 것들과 너무도 다른 진실이 있다는걸.
이때쯤 제주도에서 누나가 올라왔지만 오랜 이별 때문일까
그리도 좋아하던 막내 누나에게 왠지 모를 서먹함이 느껴지던 만남
그 누나와도 잠깐 같이 지내다 일자리를 찾아 인천으로 올라갔다
중학교 3학년 누나가 있는 인천으로 또 이사했지만
이곳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찌 된 게 도시로 나올수록 아이들 놀림과 괴롭힘은 더욱더...
겨울방학 시작하면서 난 공장에 다니기로 되어있다. 그런데
"고등학교 가고 싶니" 물어보시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가기 싫다. 말해야만 했던
말이 다 돼 있는 지금에 와 왜 물어보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혹시라도 훗날 고등학교 안 보내 주었냐. 원망이라도 할까
내 입에서 고등학교 안 간다는 말을 들어야 했던 것이다.
가고 싶지도 않다. 멍청해 가기도 싫지만 학비 타내는 것도 힘드니
차라리 마음만이라도 편히 살고 싶기에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