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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행복을 꿈꾸다. 3편 (실화)


BY 노아 2020-12-20

노아 행복을 꿈꾸다. 3편 (실화)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영길이 강원도에서 올라온
여자친구 어머니를 모시고 강원도 가는 데 같이 가자고 한다.
정호 현진이랑 다 약속해 놨다고 가자고
영길은 정호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현진이와는 사귀는 것 같지 않은
가끔 만날 때면 내게서 현진이를 보호하려는 것처럼 항상 같이 나오며
참견하는 게 정말 싫어져 그만 만나고 싶어 일부러 연락 안 하던 때였는데  
갈 때 가더라도 미리 좀 물어봐 주지란 생각과 아직 회사도 못 다니는
어려운 시기에 놀러 가는 건 아닌 것 같다. 생각하면서도
싫은 건 싫다 말해야 했지만 사람들 말에 따지거나 싫다는 말조차 못 했던 난
항상 그랬듯 또 아무 말 못 하고 가야 했던
강원도 집에 도착한 우리는 다들 모여 밥을 먹으려는데
정호 현진 둘이 따로 어울려 멀리 가게로 가는 걸 보았을 때 내 기분은
내가 현진을 건드릴까 참견하는 거 같은데
나를 질 안 좋게 뭐 그렇게 생각해 불안해 그랬다면
왜 싫다는 사람 그리도 만나보라 했는지? 지금도 묻고 싶다
그냥 이용해 먹다 끝내도 될 놈이라고 나를 소개해 준 건지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마음에 있던 것이라면 둘이 사귀던가
끝내려 했었지만 막상 그 모습은 기분이 영 그랬다.
다들 모여 밥을 먹은 후 개울가 옆
안 좋은 기분에 술을 더 마시면서 많이 취한 듯 흐릿한 기억의 조각들
....
알 수 없는 뿌연 영상들. 뭐가 이리 요란스러운지?
그때는 몰랐다. 그게 내 인생이 바뀌는 순간인 것을

엄청난 공포 현실 꿈 무엇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 되던
생각나는 건 여러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는 뿌연 기억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조각 나 있는 영상들
그것이 사고 때인지 병원에서 느낀 건지는 모르나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에 온 후로는 혼수상태와 현실을 왔다 갔다 한듯하다
내게 말을 걸던 목소리 뿌연 형체 목과 머리에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을 느낄 수 있었으니. 병원에서 기억은 뒤죽박죽 조각나있었지만
하지만 한 가지는 정확하게 생각했던 그 상황이 너무 힘든 공포로 다가와
꿈인가? 제발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그래서였을까 점점 희미하게 들려오는 사람들 말소리와 울음소리
너무나도 밝은 빛에 눈이 아플 정도였다.
건 한 달 만에 혼수상태에서 정신이 돌아온 것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고는 하나 며칠이 지난 후부터 조금씩 생각나던
목을 뚫어 산소 호수가 꽂혀있고 머리와 어깨엔 이상한 물건들이
내 몸을 압박하고 있던.
누군지 모를 사람들이 내 환자복을 갈아입혀 줄 때 눈에 들어온
배꼽 밑 호수가 꽂혀있는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진 내 몸을 볼 때 그 충격은...
중환자실 어머니에게 들은 말로는
영길이 차로 시내로 나와 술을 더 마시려 했다고
그러다 영길이 졸면서 논두렁에 구르는 사고가 났다던
그러던 어느 날 울면서 내게로 온 어머닌
"이젠 걷지 못할 거라 말했다." 며 울던
급히 따라온 간호사는 환자에게 그런 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렸지만
하지만 이상했다 난 아무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말을 믿지 못했던 것일까
사지가 멀쩡하던 내가 못 걷는다는 그게 도저히...
얼마 후 일반 병실로 옮기고 얼마 안 돼
수정이와 사무실 직원들이 병문안을 왔지만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워 그냥 가라. 말하고 싶었지만
목이 뚫려있어 말을 할 수 없던. 때마침 수정이 자리를 비울 기회가 생긴 난
어머니에게 손짓으로 표현해 수정이와 다른 여직원들을 보내 버렸다.
내 망가진 육체가 구경거리가 된 듯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병문안 오는 것이
영길과 정호가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일까?
안 좋게 나온 회사 사람들과 병문안 온 사람들이 날 내려다볼 적마다
너무 싫고 치욕스럽던 마치 정육점 고깃덩어리가 된 듯한
내 육체가 너무 치욕스럽던 순간들이
그 마음을 숨기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웃는 얼굴로 맞이해야만 했던
점점 현실의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던 어느 날 경훈이 친구들과 병문안을 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내게. 형 여자 친구들은 병문안 안 오냐며
사귀던 여자들 앞에 세워 놓고 내가 입고 있던 원피스형 환자복 아이스케키를
해야 한다며 웃던. 웃자고 하는 말들 하지만 그 속엔 비아냥이 있다는 걸
웃긴척했지만 그 비아냥거리는 경훈이를 볼 때면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난 남자친구 앞에서 대놓고 찝쩍거리지만 너처럼 몰래 변태 짓은 안 해.'
말하고 싶었지만... 정말 미안함이 있다가도 그 비아냥거릴 때면 떠오르던
잘 곳 없어 숙이와 같이 있는 곳에 찾아와 술을 마신 뒤
침대 위에 자던 자신에게 변태스러운 짓을 했다던 숙이 말에 어이없던 일이
그 일 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영길이 처음 만나던 여자에게도 몰래 안 좋은 짓을 했다던
설마 했던 그 일이...
생각해 보면 내가 다치기 전에도 가끔 내 앞에서 비아냥거리거나
사람들에게 날 비난한다는 걸. 그 말을 듣고는
대놓고 비난하진 않지만 날 대하는 말투와 표정
장난인 것처럼 내 차를 발로 차던 기억이 왜 그런지 알면서 바보 같은 난...
하지만 그때 난 피눈물 날 것 같은 현실 앞에 따지고 싶지도 할 수도
아니 다 내 잘못 때문이지만 죽을 만큼 힘든 사람에게 꼭 그래야만...

피눈물 날 것 같은 날들의 시작
중환자실에선 그리도 날 걱정하며 슬퍼하던 분이
이젠 아들의 역할을 못 하고 짐이 됐다. 생각해서일까? 아니면
그리도 아끼던 동생과 새아버지를 못 돌보고 내 뒷바라지해서일까?
중환자실에서 보던 어머니는 오간 데 없고 어릴 적 그 모습만이
다른 중환자들은 보호자가 휠체어를 밀고 운동 치료실에 가지만
난 힘없이 허우적거리던 팔과 움직이지 않는 손으로 손잡이를 누르듯 밀며
혼자 운동 치료받으러 다녀야 했지만, 그런 육체적 힘듦을 떠나
어머니에겐 너무 죄송스럽던
못난 아들놈 때문에 대소변 다 받아 내시는 어머니에게 죽을 만큼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신경질과 욕은 그 미안함을 이빨이 갈리는 분노로 변하게 했다.
정말 힘들어하는 내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아니라 온갖 욕을 하시던
아침 작은 말다툼에도
"네가 병신 돼서 내 신세 망쳤으니 죽을 때까지 천대받으며 살아봐"
말과 욕을 하시는 어머니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던
병실을 나와 매번 슬픔을 달래던 비상계단으로 갔다.
그곳에서 슬픔을 짓누르며 생각했던
눈앞에 보이는 계단에서 뒤로 떨어지면 끝을 볼 수 있을까?
유난히 높고 긴 비상계단 앞에서 휠체어를 뒤로 돌리던
그런 순간이면 떠오르는 다른 환자들
온몸이 마비되고 머리만 살아있는 환자 머리까지 죽어있는 듯한 환자들
끝을 본다는 것 그건 전혀 무섭지 않았지만 내 병실 그 모습에
도저히 휠체어를 뒤로 못 떨어뜨렸다.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까
두려웠기에 도저히... 그런 삶 속에 미치도록 떠오르던 단 한 가지
확실히 갈 수만 있다면 제발 그 방법만. 내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만이
이젠 걷지 못할 거란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우습게 생각하며 부정했지만. 하지만 현실은
거북이 뒤집히면 돌아눕지 못하는 것처럼 나 또한 전혀 움직일 수 없던
그나마 팔 신경이 조금은 살아있어 힘겹게라도 허우적거릴 수는 있었지만
손가락을 움직이는 건 더 복잡한 신경들이 살아 있어야 가능하다던
그리도 부정하던 암담한 삶의 시간이 현실로 다가오는
내 몸은 지렁이가 된 듯 꿈틀거리며 참 느리게도 회복됐다.
몸을 내 힘으로 겨우 돌아눕는 그걸 해내는 일에 거의 일 년이 걸리던
두 명의 운동치료사를 거치며 깨달은 게 있다.
치료사들은 환자가 걷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길어야 이 삼십 분 그 시간만이라도 노력해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해주자
아닌, 그 시간만 채우면 그걸로 자신들 할 일은 다 한 것이기에
땀 흘리며 노력하는 그 모습은 말 그대로 영화나 드라마일 뿐.
운동치료사와 말을 많이 하며 알았다
그때 내 몸 상태는 어려워도 노력하면 걷게 할 수도 있다는 말투를
난 발에 약간의 감각이라도 느낄 수 있지만
감각 없는 걷지 못한다 판결 난 환자 걷게 한 적도 있다며
하지만 굳이 그 시간을 더 고생하며 걷게 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걸
그 마음이 눈치 없고 모자란 내가 느껴질 정도니
난 남들보다 빨리 운동 치료받는 곳으로 간다. 빨리 가면
다른 환자가 없어 치료받는 테이블에서 나 혼자 돌아눕는 운동이라도
해볼 수 있으므로 걷는 것과 연관된 운동 방법은 모르기에
머리 위로 팔을 올리거나 힘주어 움직일 때면 찢어질 듯 고통스러운 어깨
손잡이에 쓸려 손바닥은 핏빛 진물이 나면서도 팔힘이 조금이라도 생길까
밤늦도록 휠체어 바퀴를 돌리며 병원을 헤매보던. 또 다른 목표
이 고깃덩어리 육체를 버릴 수 있을 만큼만이라도 나아야 한다는
내 힘으로 앉지도 못한다면 내 삶을 끝낼 시도조차 해볼 수 없을 것 같아
날 죽일 그날을 위해 닥치는 대로 해보던 고통에 몸부림치던
어느 날 내게 옆 병실 환자가 건네던
한 가족의 가장이 병원 근처 건물에서 투신하여 끝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집안 사정과 난치병에 힘겨워 투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는 옆 병동 환자가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안타까운 감정보다는
나도 창문이라도... 부러움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을
눈을 뜨니 짙은 어둠 속 창문 가득 함박눈이 내려오는
아침이 오면 사람들이 놀라겠다. 생각하던 그 순간
아무런 예고 없이 내 눈엔 다른 녀석들이 가득 흐르기 시작하던
스물일곱 살에 나 구십칠 년도 초여름에 사고 난 그해 겨울을 맞이하며
고통스러운 생각과 악몽 한밤중 눈 뜨던 그 많은 밤들
참 많이도 숨죽여 울고 참 많이도 그때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던
슬픔과 고통으로 신음하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던 나
그런 밤이면 내 동생에게도 참 미안했다
못난 형 때문에 병원 보호자 병실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형으로서 힘이 돼주진 못할망정 그런...

그해 겨울 몇 달 만에 병문안을 온 영길은
날 데리고 공원 벤치로 나와 사고 때 이야기를 내게 하던
"형이 괜찮다고 해서 다친 형 몸을 움직인 거야"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형이 다친 건 미안하다." 고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던
완전히 만취한 상태에 사고 충격으로 아무 말이나 하는
심지어 구급차에서 자장면 시켜달라 말했다던 그런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나 아쉬움이 남던.  하지만,
"괜찮다." 말했다 지금에 와 무슨 소용 있겠나. 애써 생각하던 내게
"근데 내가 다쳤다면 난 자살했을 걸 형은 형네 엄마가 병간호해 주지만
우리 엄마는 몸이 안 좋잖아 그러니 내가 다쳤다면 난 자살했을 거야"
내 귀를 의심케 하는 생각 없이 막말하는 애라지만 참 어이없다. 생각만 들던
아무리 고의로 사고 낸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으로 인해
마지막을 꿈꾸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 그게 할 말인지
아주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거늘
그 말뜻은 자신이 아닌 내가 다친 것이 다행이란 말인가
피눈물 날 것 같은 고통으로 인해 매일 수십수백 번 끝을 볼 수 있길
빌고 있던 난 정말 묻고 싶었다.
병원에서 전신 마비 환자가 죽는 방법 있다면 제발 가르쳐 달라. 고
어쩌면 조금도 다른 사람 생각할 줄 모르는지. 오늘 내게 와 한 말들도
단지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그런 의미였구나 생각하게 만들던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영길은 항상 그랬다
뭐든지 자기 말과 행동을 자기 합리화시켰던 지난 일들이
잠시 후 영길은 가고 또 혼자 남았다. 그러고 보면 그때는 몰랐지만
그게 내가 본 영길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을지도
영길이 오고 간 뒤였기 때문일까? 영길과의 옛일들이 미친 듯이 떠오르던
돌아보면 그런 영길이와는 몇 번 끝을 볼 기회가 있었다
영길은 내게 자신보다 잘하는 게 뭐가 있냐 말하거나
심지어 여러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실 때조차
"형은 형 동생만도 뭐 할 줄 알고 잘난 게 없냐." 서슴없이 말하던
집에서 친자식이라고 그리도 사랑받는 동생
그것도 친동생과 비교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화나던
'멍청하지 하지만 너처럼 말 한마디로 상처 주는 그런 놈은 아니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말을 해야 했고 약간 화도 냈지만. 아니나 다를까
마음속 치밀어 올라오던 말조차 탁 막히던. 더 바보 같은 난
정말 참지 말아야 할 일도 사과를 받기보단 내가 먼저 풀어 버리곤 했다.
누가 뭐라 해도 바보 같은 미소만 지으며 나 자신을 숨기는 것 같은
지금 생각하면. 영길의 생각 없이 말하는 걸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멍청한 나와 다른 한편으론 부러움도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의 이익과 손해 보는 일 없게 계산적인 성격
다른 사람 상처받는 것 그런 거 생각 안 하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영길의 그 성격. 비난이 아니라 진심으로 조금이라도 그런 성격이었다면
난 내 속마음을 말하지 않아 오해를 많이 사고 피해를 많이 봤다.
그런데 유일하게 내가 입이 싸고 험담을 잘한다고 말하던 사람이 영길이다.
왜 그런 말 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아주 오래전 두 가지 일들이
영길이 잠시 사귄 여자와 만나 다 같이 밥 먹으러 가는 길
그날 영길은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고 그걸 말하지 말라. 했는데
영길이 안 좋은 표정을 보곤 내게 너무 걱정돼서 그러는 거니
아무 말 안 할 테니 가르쳐 달라 왜 사람 말 못 믿냐. 화까지 내며
붙들고 물어보던 그 여자애를 믿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 영길에게 달려가
"너 왜 그러는지 난 아는데" 말하는 그 모습
하얘진 머릿속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쳐다만 볼 뿐.
경훈과 셋이 같이 술을 마실 때 일이다. 영길이 잠시 자리 비운 사이
영길이의 집안 사정을 물어보던 경훈이에게 대답해 주던 난
영길이 모습에. 시집간 누나들 없이 집안일 다하며 일하러 다니는 영길이
집 생각하면 우울해할까 경훈에게 그만하자. 표정 짓는 것을 보고는
자신을 험담하다 멈추는 것이라 오해했다.
오해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그 또한 그런 게 아니라고
변명조차 안 하고 소리 없는 미소만으로 앉아만 있던 나를
그러면서 항상 나중엔 오해가 풀릴 거라 내 마음을 달래던. 그냥 바보였다
한 번에 실수와 한 번에 오해로 난 그런 놈이라고. 차라리...
영길은 고등학교 시절 돈이 없어 비참한 일이 있었다. 말했던 일이
그런 이야기를 하며 형처럼 편안하게 살던 사람은 그런 아픔을 모를 거라는
말투와 표정으로 내게 말하곤 했던. 겉으로 보이는
내 삶을 조금 보고 듣고는 그것이 진실이며 나에 대해 전부 알고 있는 듯 말하던
생각 못 했겠지. 들은 그 말들이 정반대이며 다 거짓으로 포장된 말이란 걸
병문안 온 그날 그 끔찍한 병원 생활 속 내 어머니를 안 좋게 말하기 싫어
나 또한 정반대로 말했던 일도 있으니. 돌아보면
그리 대놓고 무시하던 영길이 자신도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당해도
말 한마디 못 하는 날 한심하게 쳐다보던 시선이... 그래 맞다
저능아였다 나도 뼈저리게 후회하지만. 하지만 그걸 알까 내가 할 말 다 하는
그런 놈이었다면 그 누구보다 제일 먼저 자신과 인연 끊었을 것이란 걸
지금 한으로 남아있는 건. 영길과 인연 끊고 살던 그때 그냥 내가 참고 말자
넘어간 그 일이 이리도 땅을 치며 후회하게 될 줄은 정말...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았을
내 옛 생각에 어린 나이에 고생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항상 데리고 다니며 챙겨주던 같이 일하던 아이마저 내 부족함을 알고는 이용하던
그걸 다른 아이들에게도 알려 날 이용하게 만든 것 같은 그 씁쓸한 기억
미안한 생각이 드는 애들도 있지만 다 모자란 내 탓이지만 그 아이들에게
정말 인간적으로 대해준 것 같은데 돌아온 건... 정이니 누군가를 위해준다느니
그게 얼마나 소용없는 것인지 아무 소용 없는 지금에서야
내 자신의 한심함에 도저히 쓰지 못할 미칠 듯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들
난 왜 그런 무시와 농락당하면서 대꾸도 사람들과의 인연도 끊지를 못했을까
나약한 내가 싫어 운동도 해보았지만 그런 노력도 아무 소용없는
난 그저 모자란 저능아였다.

그러고 보면 변명조차 못 하는 나 자신이 정말 죽도록 싫었던 일이 있었다.
내가 중학교를 나와서 처음 다니던 삼정 정밀이란 회사 그곳에 계시던
예전 공장장님을 난 무척이나 따랐다.
그분은 어릴 적부터 모진 폭력과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살아온 내게
처음으로 날 인정해 주시던 그분 난 그분을 무척이나 따랐고 좋아했다.
그런 날 보는 다른 사람들은 그분에게 아부한다며 날 안 좋게 볼 정도였으니
난 그게 아니었는데. 말 한마디라도 따듯하게 말해주고
내가 한 일들을 칭찬해 주시던 공장장님이 좋았을 뿐.
그러다 몇 년 후 그분은 회사를 퇴사하셨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일요일 회사 다른 간부진들과 같이 있다 혼자
식당에서 점심밥이나 먹으려 생각하는데
그분 전 공장장님이 트럭을 몰고 회사에 오신 것이다. 난 너무 반가웠다.
다른 간부진들과 인사를 건네곤 빨리 식당으로 가 밥을 먹으려 했다.
멍청한 난 빨리 밥 먹고 가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밥을 차려 먹으려는 데 한 간부가 와서는
날 찾는다는 말에 전 공장장님에게 가보니 가려 하고 있었다.
"뭐 하니"라고 내게 물어보시는 말에
다른 핑계라도 댔어야 했지만 거짓말조차 못 했던 난
"밥 먹으려 하고 있었다." 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는 쓴 미소를 띠며 나갈게. 트럭을 몰고 가셨다.
그분의 차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빨리 말을 해야 해. 그게 아니었다고 공장장님이 오신 게 너무 좋아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 밥 먹고 내려오려 했다고
하지만 그 말은 내 안에서만 맴돌 뿐.
바보 같은 놈. 밥 먹으려 했던 일이 뭐가 그리 급한 일이었다고
그 일이 있고 사람들이 날 안 좋게 생각할 거란 걸 알고 있다.
회사 사람들이 날 욕하는 건 그건 상관없었다
다만 그분에게 변명 한마디 못 한 멍청한 나 자신이 죽도록 싫을 뿐.
삼정 정말 퇴사 후 고물상 하시는 그분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나 같은 멍청한 놈을 따듯하게 대해주신 공장장님에게
마음속 깊이 정말 감사하고 존경했다. 고 말이라도 전하고 싶을 뿐.
그분 안 계시는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그분이 그리워
고물상이라도 좋으니 그분 옆에 같이 있고 싶다. 생각하던 내가 무슨 짓을
지금 그 고마운 분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정말 너무 싫다.

막 일반 병실로 온 후 경찰인가 어디서 나와 조사했던 일이 생각난다
조사 마지막에 사고 낸 사람 처벌을 원하느냐는 말에 난 원하지 않는다.
지장까지 찍어야 했던. 처벌해서 뭘 하겠는가 어찌 됐든 놀러 가서 생긴 일
더욱이 친척인걸.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뒤 영길의 모습이 뜸해지더니
나중엔 아예 오지 않는. 회사 다닐 테니 그럴 거라 그리 생각하면서도...
오래 지난 어느 날 어머닌 집에 볼일이 있다며 집으로 간 후
휠체어에 앉아있던 그날 너무 외롭고 우울하던
같은 병실 보호자에게 동전을 얻어 공중전화기로 갔다.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전화 걸 수 있던
이모네 집이었다. 이모가 받기에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는
오후에 영길이 놀러 왔으면. 물어보던 내 말에
"영길이 회사 다녀 바쁘거든 이젠 연락해도 가기 힘들 거야"
이모 대답이 이상하게 말을 돌리는 것 같은
그 느낌은 앞으론 영길이에게 연락하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리던
이모에게 마지막 인사한 후 잠시 멍하니 있던
나도 나였다 아무리 외롭고 우울하다고....
지금은 차라리 영길이를 안 보고 사는 것이 좋다.
건강하게 날 보러 오는 영길을 볼 때면
썩어가는 내 고깃덩어리를 불 질러 버리고 싶은 마음들 테니
휠체어에 앉자 스쳐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나의 또 다른 일과였던 어느 날 숙이 수정의 일들이 떠오르던
숙이는 남들이 다 비웃는 못난이였지만 남들에게 항상 무시당하는 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행복을 알게 해준 고마운 사람이다.
지금 숙이를 생각하면 그녀와 헤어진 건 나 때문이다
숙이는 고아였기에 어려서부터 고아로 자란 숙이를 외롭게 둔 것이
헤어지는 빌미가 된 것이라는 생각이...
다만 지금에 와 아쉬운 건 그때 왜 사랑한단 말을 못 해줬는지
아니 그 말 한마디 못해준 내가 너무 아쉽다.
남들은 참 쉽게 사랑한단 말 하던데 뭔 대단한 말이라고
그 한마디를 못 해주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한심할 따름이다.
이별의 아픔을 준 그녀가 원망스러워
숙이를 비난하는 말들도 참 많이 했었지만. 지금은
너만이라도 네가 원하던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길. 생각해 본다
수정과의 일들도 내 젊은 날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정환이를 못 잊어 그랬을 뿐이지 날 조금은 좋아했었다고 믿고 싶었지만
하지만 그 바람은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얼마 후 어머니가 회사에 물어보라는 일이 있어
병원에서 회사로 전화해야만 했던. 옆에서 전화번호를 눌러 주실 때
제발 수정이 받지 않았으면 빌었지만,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그녀 목소리에 물어보라던 걸 물어보곤 빨리 끊으려는 순간
"오빠 나 병문안 가야 돼요" 물어보던
"내가 언제 너보고 병문안 오라고 했니."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무 말 하지 말지 아무리 이용 가치 없다는 걸 알았다고
그냥 한 말일지도 모를 그 말에 왠지 모를 비참함이 느껴지는 그 한마디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던 일이 최악의 기억 중 또 하나가 되었다는 걸

집에 갔다 온다는 말에 몇 시간을 휠체어에 앉자 기다리기 힘들어
침대에 누워 있던 난 어머니가 가시고는 바로 배가 아프기 시작하던
적당한 햇살 따스하게 비추는 창가 옆 내 얼굴엔 식은땀이 흐르며
제발 참아줘 제발... 하지만 밑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느낌. 혹시나
엉덩이 밑으로 손을 밀어 넣어 본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그건... 젠장
차라리 침대 위에서 이러고 있는 게 똥오줌 싼 채 휠체어에 앉자 기다리던
그때보단 나은 거라 애써 생각하며 제발 어머니가 빨리 왔으면 생각하던 순간
"어디서 이상한 냄새가 나..." 옆에서 들리던 말소리에 자는척할 수밖에 없던
자는척했지만, 사람들 수군거림과 일 분이 한 시간 같은 시간을 보내며
느껴야만 했던 내가 싼 똥오줌 위에 누워있던 일이 한두 번도 아니거늘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 비참함은...
몇 시간 뒤 오신 어머닌 내 뒷정리를 해주었고 휠체어를 타고 공원에 나온 난
벤치에 앉자 담배 피우고 있던 내 또래로 보이는 한 남자에게 가
담배 하나만 얻어 피자. 부탁했던 내 말에
"그러고 담배 피우고 싶어요."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며 말하던
"담배가 아니라 쥐약이라도 먹고 싶어요." 애써 웃으며 얻은 담배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입에 물며 코끝이 찡함 눈물이 나는 걸 겨우 참으며 들던
정말 쥐약이라도...
얼마 후 의사 선생님이 휠체어 탄 환자 몇 명이 필요하다고
홍보용 사진 촬영을 하자고 몇 명을 데리러 왔다
내게도 사진 촬영하자고 하지만 난 싫다고 했다. 홍보용 사진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창문에서 뛰어내려 이 고깃덩어리를
버리고 싶은 내가 뭐가 자랑스럽다고 이 모습을 남기고 싶겠나.라는 생각에
의사는 다른 환자들만 데리고 사진 찍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화를 내시며 욕을 하시는 어머니
"왜 안 찍어 빨리 가서 찍어" 뒤로 넘어갈 듯 휠체어를 떠밀던
할 수 없이 사진 찍는 곳으로 가보니 끝났다는 내 말에
"병원에서 혜택 줄지도 모르는데 왜 안 해" 화를 내시던 어머니
티브이에서 보는 사람들의 도움에 손길 뭐 그런 걸 보고 그러나 본데
하지만 이건 병원 홍보 책이다. 아무리 많이 찍어도 병원 안에서 보는 그런
그것 때문에 다른 환자 보호자들 있는 데서 욕하고 떠밀고
참 미치고 싶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환자가 부럽기까지 하던
얼마 후 내 사고 보상금 합의가 끝났다
보상금이라고 해봐야 병원 보험으로 안 되는 치료비와 빌린 돈 갚고 나면
동생 대학교 다닐 학비 정도 남았다. 나야 중학교 밖엔 못 나왔지만
그나마 이 꼴이 되어서라도 동생 학비를 낼 수 있다는 생각에
고생한 동생에겐 그나마 다행이라고

4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