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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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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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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목숨을 건 맞섬42


BY 한이안 2016-02-25

뫼가 가상세계의 다른 구역으로 나간다. 이번엔 들도 따라나선다. 들은 뫼의 몸에 바짝 달라붙어 있다. 이균의 작업실로 옮겨간 후 애니는 어디 틀어박혔는지 꼼짝을 안 하고 있다.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꼭 애니를 찾아내야 해?”

절대 그냥 물러설 놈이 아니야. 어디선가 이를 갈고 있을 거야. 이균과 애니, 다르지 않아.”

허긴,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지. 일내기 전에 찾을 수 있을까?”

거기까진 나도 몰라. 앞을 봐!”

맙소사. 여기가 가상세계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완전 딴판이야.”

들의 눈이 점점 커진다.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야. 우린 가상세계의 한 구역에 갇혀있어. 인류가 멸망한 만 년의 지구로 설정된 구역에. 이들도 마찬가지야. 다들 각자의 구역에 갇혀 있어. 구역이 다른 것도 있지만 설정된 게 달라서 딴 세상처럼 여겨질 뿐이야.”

여기서 놈을 찾는 건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야.”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놈과 나는 어떤 끈으로 연결돼 있어. 움직이면 느낌으로 알아낼 수 있어. 놈이 그 끈을 잘라내지 않았다면 말이야. 내 팔을 꼭 잡아. 놓치면 미아가 될 수 있으니까.”

들이 뫼의 팔을 꼭 잡는다. 놓치기라도 할까봐 슬쩍 두려워진다. 뫼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 움직인다.

느낌이 안 와. 놈은 움직이지 않고 있어. 뭔가 노리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이균이 지켜내지 못하면 빼앗기겠지?”

이균을 노리고 있다는 거네?”

돌아가는 걸로 미루어 볼 때 그럴 가능성이 커. 오늘은 이만 돌아가자!”

둘이 만 년의 구역으로 들어선다. 들이 잔뜩 긴장했었는지 후 하고 긴 숨을 토해낸다.

화면은 별일 없겠지?”

. 아직은 그대로야.”

놈이 왜 이렇게 조용한 거지? 조용하니까 오히려 겁 나.”

조용하긴? 내가 말을 걸지 않으니 좀 심심했나?”

기다리고 있었던 듯이 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균이 말을 걸어온다.

움츠리고 숨어서 우릴 기다린 모양?”

좀 기다렸지. 할 말이 있거든. 꽤 긴 시간이었는데 어디 갔었나? 나들이라도 갔다 오시나?”

알면 다쳐. 할 말이 뭔데?”

들이 이균의 호기심을 도려낸다.

찜통에 쪄낸 현미밥알 같군. 달라붙는 법이 없어.”

할 말 없으면 가주시지? 말만 빙빙 돌리며 기웃거리지 말고.”

들이 이균을 밀어낸다. 하지만 이균은 떠밀리지 않는다.

으하하하······.”

지러진 웃음소리가 건너온다. 살갗에 소름이 돋는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도 같다.

내버려 둬! 상대해주니까 재미가 붙은 모양이야.”

들이 얼른 뫼 옆으로 다가와 앉는다. 급하게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뫼가 자판소리를 따라 들어간다. 이선의 카페다. 뫼의 가슴이 철렁한다.

무슨 일 있어요?”
뫼가 얼른 자판을 두드린다.

아무 일 없었어?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냐?”
무슨 일이라뇨?”

이상한 일이 자꾸 생겨서. 너희들 이야기가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어. 아무리 지워도 지워지지 않아. 그래 무슨 일 있나 했어. 혹시······.”

이선이 걱정스레 떠올렸던 것을 말하려다 만다. 뫼는 그녀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알 거 같다.

마지막 파일을 열었어요. 이균, 그 놈의 작업실을 오갈 수 있는 통로였어요. 그 길을 따라 놈의 방에 다녀왔어요.”
맙소사. 그곳에서 이곳을 다녀갔다고? 니들이 살고 있는 가상세계에서 이곳 현실세계를 다녀갔단 말이야?”

.”

믿을 수가 없어. 아직 거기까지 기술이 발전했다는 소린 듣지 못했는데? 허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니들의 존재는 생각지도 못했어. 그냥 내 상상 속에서만 살아 있을 뿐이었지.”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는 게 놈들의 생각인 거 같아요. 그걸로 떼돈을 벌 생각인 거죠.”

이미 사람들은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살고 있어. 놈이 한 발 앞서 있을 뿐이야. 그리고 놈이 아니라도 니들은 태어날 수밖에 없어. 기술이 그쪽으로 한 발 한 발 다가가고 있거든. 놈 때문에 조금 더 일찍 니들이 태어났을 뿐이야. 걱정되는 건 놈의 생각이야. 느낌이 좋지 않아. 꿍꿍이를 잔뜩 가지고 있는 거 같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혼자 은밀히 작업하는 걸 보면 그래. 떼돈을 벌기 위해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어떤 일을 저지를지도 알 수가 없어.”

그래서 겁이 나요.”
찾아낸 건 있어?”

방에 컴퓨터 한 대만 달랑 있더라구요. 실수로 뭔가를 잃어버린 거 같았어요. 그래서 우릴 놓쳤어요. 우리가 자유로워진 것은 바로 그때문인 거 같아요.”

그게 다야?”

놈한텐 제가 필요해요. 제가 있어야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나 봐요. 애니와 마찬가자로요. 그 때문에 지금까지 숨죽이고 있었어요. 그물을 쳐놓고 기다리고 있는 거죠.”

놈이 포기하지 않을 텐데? 또 다시 거길 갈 거야?”

놈의 생각을 알아내야 해요. 그러려면 갈 수밖에 없어요. 자료들은 살펴봤는데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손댈 수가 없었어요.”

이선이 길게 한숨을 내쉰다.

잘못 되기라도 할까봐 걱정되는 거죠?”

그래. 그것도 많이.”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다른 말을 하고 싶다. 한데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이선의 말이 마음에 와서 박혀 떠나지 않는다. 빼내고 싶어도 빼낼 수가 없다.

어떻게? 니들은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인데. 내겐 자식이 없다 했잖니. 니들이 내 자식이라고 했잖아. 내 상상에서 비롯됐지만 니들은 어엿한 생명체야. 사람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요.”

당연한 거야. 니들은 더는 내 상상 속에 갇힌 등장인물이 아니야. 혼을 지닌 생명체라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지녔으니 니들도 인간이야. 그러니 생명을 함부로 다루지 마! 가볍게 여기지도 마!”

이선이 힘주어 말한다. 둘 다 눈물을 글썽인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선의 마음이 마음속으로 건너와 따사롭게 퍼진다.

그럴게요. 혹시 우리가 이곳을 빠져나가면 작품 속에서는 어떤가요? 작품 속에도 드러나나요?”

?”

놈들이 이미 우리 움직임을 꿰뚫고 있는 거 같아서요. 그럼 현실세계에 다녀온 것도 알고 있을 거 같아서요.”
니들 말을 들어보니 그런 거 같아. 잠깐, 기다려! 찾아볼게.”

이선이 잠시 빠져나갔다 바로 들어온다.

없어. 작품에 그 부분은 쓰여 있지 않아. 가상세계를 빠져나와서 그런 거 같아.”

그렇다면 작품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은 애니예요. 이균이라면 그 부분을 놓칠 리가 없어요.”

혹시 해서 말인데? 현실로 나올 생각은 없어?”

?”

이선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뫼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당황한다.

현실로 나올 생각 없냐고 물었어.”

“2013년으로 말인가요?”
그렇지.”

드라마에서 본 현실은 여기와는 아주 딴판이던데요? 드라마와 현실이 크게 다른가요?”

크게 다를 수도, 거의 비슷할 수도 있어. 다들 그렇게 사는 건 아니거든.”
그건 알아요.”

한데 뭐가?”

차원요. 생각하는 수준, 상상하는 수준, 누리는 수준, 뭐 그런 것들요. 그 안에서 살아내는 삶의 형태는 제각각이라 하더라도 우리에겐 다른 하나로 보여요. 우리가 사는 곳과 다른 세계로요.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내는 거야 같다 해도 느낌의 대상이 너무 달라요. 한데 어떻게요?”

뫼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허긴? 듣고 보니 그렇구나. 니들 생각이 어떤가 해서 한 번 물어본다는 게 씁쓸함만 곱씹게 했네.”

이미 많이 곱씹어 봤어요. 가상세계에 올라와 있는 21세기를 보면서요? 그래 새로울 것도 없어요.”

그랬어? 마음이 많이 아팠겠네.”

처음엔 아주 많이 그랬죠. 한데 지금은 괜찮아요. 여섯이 서로 감싸면서 살아내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여섯뿐이라서 그런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하거든요. 함께 밥 먹고, 사냥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고. 생각도 관심도 다르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가고 챙기게 돼요. 놈들만 떼어내면 여기도 그럭저럭 살 만한 곳이 돼줄 거라 믿어요. 우리 모두.”

그래야지. 달랑 여섯인데. 하지만 여긴 수십 억 명이 지구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어.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만 해도 몇 천만 명이야. 그래서인지 다툼도 잦고, 생각이 다르다고 등을 돌리는 일도 많고, 종교나 신념이 다르다고 해코지하는 일도 있고. 외려 니들이 더 인간적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많이 다른가 봐요? 우리는 달라봐야 거기서 거긴데요.”

많이 다르지. 그 많은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면 것도 소름 돋는 일 아니겠어? 지금처럼 인류의 문명이 발전하지도 않았겠지. 다르다는 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야. 인류문명의 발전에 그게 많이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어. 양면성이 있어서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 그래도 좋은 면이 더 많아. 인류가 몇 만 년을 이어오는 걸 보면 그래. 인류는 멸망을 원치 않아. 도덕과 양심으로 악을 억누르고 다스렸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고 봐.“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에요.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걸 보면 그래요. 여섯이라서 첫째로 작용하는 것이 양보일 뿐이죠. 도덕과 양심이 그 바탕에 있을 겁니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다 그럴 거야. 생명체의 첫째 조건은 살아남는 거잖아. 그걸 생각하고 따르다 보면 어떤 게 이로운지 저절로 알게 되는 거지. 그게 자자손손 이어지면서 유전자 속에 담겼을 테고. 몸에 지니고 태어나서 굳이 익히지 않아도 저절로 선택하게 되는. 그걸 거스르는 사람도 있지만 따르는 사람이 더 많다고 볼 수 있어.”

한 번 나쁜 길로 들어서면 되돌리는 게 힘든가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놈들을 마음에 두고 하는 말이지?”

. 놈들이 생각을 접어주기만 하면 우리끼리 잘 살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그래주면 오죽 좋아. 짐승만도 못한 놈들. 누리고 싶어서야. 비도덕적인 일을 서슴없이 행하면서 그게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놈들이야.”

이선의 말투가 격해진다.

얼마나 누려야 만족하나요?”

얼마? 끝이 없다고 볼 수 있어. 많이 가졌다 생각하고 멈추는 사람은 아주 드물거든. 모두들 가진 것보다 더 갖기를 원해. 그 때문에 갖고자 하는 욕망 앞에서 만족이라는 건 별 의미가 없어. 양심과 도덕을 팽개치지 못하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조차도 그래. 한데 놈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야. 짐승만도 못한 놈들이야. 그런 기대는 저버리는 게 좋아.”

우리가 오지게 걸려든 거네요. 것도 아리네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악이 영원히 승리한 적은 없어. 그럼 인류는 벌써 멸망했을 거야. 그러니 희망을 가져. 니들은 반드시 이길 거야.”

어떻게 그걸 장담하죠?”

악이란 것은 아주 이기적이야.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넘어서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 화합하는 듯 하다가도 지들끼리 치고받고 하게 되거든. 그래서 무너져. 악의 속성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거지. 그 덕에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

그렇게만 됐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될 거야. 또 다른 형태의 놈들이 새로 고개를 들긴 하겠지. 그래도 니들이 맞서고 있는 고놈들은 운이 다했어.”

악이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능력도 다르고, 가진 게 다르고, 누리는 게 다르니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서 씁쓸하긴 하지만 어쩌겠어. 것도 생명체의 속성인걸. 그래도 모두가 공유하는 건 있어. 인터넷 같은 것 말이야. 거의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거든. 여러 가지 법들도 그렇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난무할 정도로 법도 돈에 휘둘리긴 하지만 만들어낸 취지는 같아. 돈과 권력을 떠나 모든 사람이 평등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거야. 그렇게 만들어진 법도 돈과 권력 앞에서는 무용지물일 때가 많긴 하지. 그래도 억울할 땐 모두가 법을 들먹이니 아주 소용없는 건 아니야.”

생명체의 속성이라는 게 아리네요. 우리가 상상하는 현실과는 너무 달라요. 허긴? 드라마에서 본 것도 아줌마가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우리와는 달라도 참 많이 달라요

사실 나도 현실을 다 몰라. 내가 모른 채 존재하는 현실도 수없이 많거든. 여기에서의 삶은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들을 다 접하면서 살아낼 수는 없어. 많이 지닌 자는 없는 자의 삶을 모르지. 가진 게 많으니 굳이 없는 자의 꼬질꼬질한 삶을 돈 주고 겪을 필요는 없잖아. 선택하지 않는 거지. 반대로 없는 사람은 가진 자들이 누리는 삶을 살아낼 수가 없어. 살아보고 싶어도 가진 게 없으니 포기할 수밖에 없어. 선택의 기회마저 없는 거지.”

거기에서의 삶이란 모두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거군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어. 돈 주고 사야 하는 것들이 가득한 곳이니까. 먹을 것, 입을 것, 잠을 잘 곳, 모두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 것들이거든.”

돈을 지불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나 봐요?”
사람들이 들짐승처럼 살고 싶어 하지 않거든. 근사한 집도 갖고 싶어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어 하고, 멋진 옷도 갖춰 입고 싶어 하거든. 그걸 포기하면 돈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

그렇다면 가진 정도에 따라 행복의 정도도 결정되겠네요?”
꼭 그렇지는 않아. 가진 게 많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거든. 마찬가지로 가진 게 없다고 모두 웃음을 잃고 사는 것도 아니고. 돈은 가질 수 있는 것을 제한하기는 하지만 행복까지 어떻게 하지는 못해. 그래도 돈에 많이 좌우되기는 하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건 돈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욕심이 빚어내는 거라고 할 수 있어. 가진 게 많든 적든 돈에 매이면 불행밖에 보이지 않거든. 자기와 엮여 있는 모든 게 맘에 들지 않을 테니까. 그걸 조금 내려놓기만 해도 행복할 수 있어. 개개인의 마음이 선택하는 것에 따라 행과 불행은 동전의 앞뒤처럼 엎치락뒤치락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래서 돈이 행과 불행을 결정한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어.”

어려워요. 머리가 터지지 않는 게 신기해요.”

때문에 머리가 터지는 사람도 있어. 온갖 생각들이 뒤엉켜 정상적으로 살아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 여긴 그렇게 복잡해.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복잡한 것을 휘어잡으며 잘 살아내고 있어. 고비를 넘기면서 살아내는 게 삶이더라고. 그러니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어. 니들도 그렇잖아? 몇 번의 고비를 넘어오지 않았어? 그 때마다 주저앉지는 않았잖아? 그렇게 여기까지 왔잖아. 놈의 존재를 알고 나서도 맞설 생각으로 분주하잖아?”
하긴 그래요.”

뫼가 웃는다. 이선의 말대로 먹고 자고만 한 것만은 아니다. 고비를 만나고 그걸 넘어왔다. 겁이 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게 삶이란 생각도 없었다. 그냥 안에서 솟구치는 대로 따랐을 뿐이다. 맞서라 하면 맞섰다. 머리를 써야 할 때는 머리를 썼다.

무리하지 말고 조심해. 니들도 생명체야. 나나 다름없는 생명체. 사람들이 가진 게 없어도 멀쩡하게 살아내는 것은 생명체이기 때문이야. 삶의 기본은 살아있는 거거든. 살아있는 게 가장 중요해.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죽은 자 앞에선 현실도 돈도 의미를 잃고 말아. 니들도 살아있기 때문에 놈과 끊임없이 맞설 수 있는 거야. 죽어봐? 놈들이 아무리 눈꼴 사나운 짓을 해도 놈의 터럭 하나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 죽음은 그런 거야.”

알았어요.”
그렇다고 납작 엎드려 있으란 말은 아니야. 또 말해서 식상할지 모르겠지만 조심하고 조심해서 움직여.”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어요. 아줌마 말 잊지 않을 게요.”

그래. 난 이제 빠져나갈게. 그리고 한 번 곰곰 생각해봐! 현실로 나왔을 때 놈들의 손이 뻗치지 못한다면······. 아니다. 더 위험할 수도 있겠다. 그 말은 거둬들일게. 신경 쓰지 마!”

. 알았어요. 안녕히 계세요.”

뫼는 이선이 빠져나간 화면을 말없이 바라만 본다. 말이 나오지 않는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들도 시무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