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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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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목숨을 건 맞섬25


BY 한이안 2015-12-28

애니는 게임 삼매경에 빠져 있다. 며칠 동안 찾아 헤맸던 뫼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 주자고 게임 속에 사람 하나를 풀어놓고 맘껏 요리하고 있다. 게임 속 캐릭터가 힘이 달리는 모양이다. 뒤로 물러나더니 막다른 골목에서 납작 엎드린다. 속이 후련하다.

빠져 나오는데 뫼와 정면으로 마주친다. 놀라지 않는 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쌀쌀 가상세계를 뒤져도 보이지 않던 뫼가 제 발로 걸어와서 기다리고 있다. 세포들이 다시 꿈틀거린다. 뫼도 웃고 있다. 비웃음인지 아니면 포장용인지 알 수가 없다. 알아내려고 뚫어지게 쳐다본다. 한데 알쏭달쏭하다.

며칠 동안 꼼짝도 안 하고 납작 엎드려 있더니 웬 일? 뭘 잘못 먹기라도 했어?”

지난 번 게임에서 졌던 게 뼈아프게 떠오른다. 속에서 열이 후끈 달아오른다. 삐딱하게 말을 던진다. 자외선 총알을 피하는 바람에 총알이 떨어져 졌다는 게 분하다. 그때가 딱이었다. 총알을 피하는 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때 잡았어야 했다. 못 잡은 게 한이다. 뼛속까지 시리지만 어쩔 수가 없다. 놓친 걸 후회해 봐야 소용이 없다. 빨리 털어내고 다시 기회를 엿보는 수밖에 없다.

놈을 잡을 기회를 엿보며 기다리는 게 지루하기 짝이 없다. 기회를 엿보다 때가 되면 칭칭 옭아매야지 하면서도 속은 근질근질하다.

뫼는 알아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뗀다. 그땐 내가 널 놓치지 않을 거야. 그도 속으로 벼른다. 잠깐 딴청을 피운다. 애니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둘 다 게임 속으로 들어와 있다. 뫼가 한 번 휘 둘러본다. 판이 다르다. 애니가 잡아놓은 고기를 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웃는다. 뫼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느라 경계를 하며 여기저기 둘러본다. 보이지 않는다.

애니가 먼저 공격하고 들어온다. 뫼는 뒷걸음질 한다. 애니가 미소를 띠며 거리를 좁혀 들어온다. 승리감에 들떠서 다른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눈치다. 뫼가 그걸 노리고 있다는 걸 모른다.

뫼는 애니가 좀 더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기회를 엿본다. 두 번째는 없다. 이번에 해내야 한다. 애니는 두 번 걸려들지는 않을 인물이다.

애니의 공격에 맥없이 끌려 다니느라 지치기 시작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애니가 히죽 웃으며 다가온다. 뫼가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다. 어정쩡하게 애니의 품에 안긴다. 애니가 뫼를 품에 안고 자지러지게 웃는다. 그 틈을 이용해 뫼가 애니의 품속으로 파고든다. 애니의 덩치가 뫼를 감싼다. 애니의 웃음은 그칠 줄을 모른다. 뫼의 손이 애니의 품속에서 꼼지락거린다. 애니가 느꼈는지 뫼를 밀어낸다. 뫼는 그럴수록 더 달라붙는다. 숨이 헉헉거린다. 힘껏 밀어낸다. 뫼의 손이 애니의 벌어진 입에 캡슐을 집어넣는다. 애니는 아무것도 모른 채 꿀꺽 삼킨다.

뫼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애니는 왠지 기분이 나쁘다. 저 놈의 미소를 박살내주자고 벼른다. 손을 쭉 뻗는다. 한데 잡히는 것이 없다. 허탕이다. 뫼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없다. 용케 출구를 찾아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다. 쫓아가봐야 헛수고일 뿐이다. 씩씩거리며 달아나는 뫼를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돌아선다.

뫼는 얼른 빠져나온다. 캡슐의 움직임만 따라가면 된다. 이번엔 빠져나가지 못한다. 미련한 놈. 입술이 저절로 움직인다.

캡슐의 움직임이 멈춘다. 뫼가 얼른 캡슐의 정보를 가져온다.

딱 걸렸어. 니들이 써먹을 수 있는 거라면 나도 써먹어.”

유전자 하나는 끝내주는 모양이다. 애니의 머리꼭대기에 올라 앉은 기분이다. 하지만 우쭐한 마음은 오래 가지 않는다. 그럴 때도 아니다. 소름이 돋는다. 가상공간, 기막힌 세상이다. 2013년 현실은 가상공간이 절반을 넘어설 거 같다. 세상을 보이지 않는 곳까지 늘여놓고 아무도 그 끝을 모른다. 언젠가는 그게 덫이 되어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불길한 느낌이 든다.

애니의 컴퓨터 속이 훤히 보인다. 온갖 자료들이 빼곡하다. 사진파일도 수두룩하다. 작업을 하던 자료도 보인다. 2의 애니민들을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손대지는 않는다. 아직은 몰라야 한다. 그래도 뜨끔하겠지?

애니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누군가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갔다. 한데 해킹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사용자를 확인해 본다. 자신이다. 말도 안 된다. 밥을 먹고 있던 시간이다.

점점 말려드는 기분이다. 한데 말려드는 대상을 찾을 수가 없다. 꺼림칙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다.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는다.

건망증? 아직은 아냐. 두어 시간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어. 갑자기 건망증이라니? 그건 아냐. 하지만?’

멍하니 앉아서 건망증을 주워들었다 내려놓았다만 되풀이 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는다. 머릿속이 어수선하지 않다. 말끔하다.

잠을 너무 적게 잤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말이지. 어째 인터넷보다도 더 캄캄해. 세상도 휘젓고 다니는데 제 머릿속 하나 들여다볼 수 없다니! 이건 말이 안 돼. 자기뇌조영술, 그거야. 병원까지 갈 필요가 뭐 있어? 게다가 생각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그거야 말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일 아닌가? 이균을 다시 끌어들여야겠군.’

애니가 군침을 삼킨다. 그러다 스르르 잠이 든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자고 있는 동안 누군가 컴퓨터를 열어봤다. 컴퓨터를 사용한 사람은 역시 자신이다. 컴퓨터를 구석구석 뒤져보지만 걸리는 게 없다. 머리를 쥐어뜯는다. 아프다. 꿈이 아니다. 밥맛이 없다. 처음이다.

웬 일이야? 니가 입맛을 잃을 때도 있고.”

소훈이 낯선 시선을 보낸다. 영 어색한 모양이다. 시선을 거두지를 못한다. 하지만 애니는 말할 기분이 아니다.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가상공간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이다. 가상공간으로 들어가는 캡을 쓴 것도 아니다. 조물주가 준 몸 그대로 현실에 앉아 있다.

밥 먹고 이균한테 연락해서 만나자고 해! 땅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은 싫으니까 그 자식한테 이쪽으로 오라고.”

느닷없는 말에 소훈은 얼떨떨하다. 애니를 쳐다본다. 생각을 끝낸 애니는 밥을 푹 떠내 입에 몰아넣고 있다.

알았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영 느낌이 오지 않는다. 뫼를 옭아맬 수 없어서라면 결코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방법을 찾아내서 만나려는 거라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도 그 정도는 머리가 돌아간다. 표정을 살피느라 말이 굼뜨다. 그래도 할 일이 생긴 건 다행이다.

애니처럼 정보 분야에 빠삭하지도 않다. 이균처럼 생명을 맘대로 다루지도 못한다. 하지만 엮고 나누는 것은 따라올 자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