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대상? 가슴이 먹먹하다. 느낄 수 있다는 게 아프다. 사람들의 욕심의 끝을 알 수가 없다. 돈을 긁어모으는 걸로는 양에 차지 않는가 보다. 이렇게까지 해서 뭘 어디까지 얻어내고 싶은 걸까? 거기까지는 알 수가 없다.
“우리가 지금 해온 행동들을 통해서 놈들이 다른 뭔가를 알아내고자 하고 있다? 주민번호가 입력된 뫼와 입력되지 않은 우리가 함께 비교 대상이 되고 있어.”
이든이 들의 말을 토대로 새로운 가능성을 말한다.
“막아야 돼! 놈들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막아야 돼! 놈들이 더는 생각을 뻗어올 수 없게 해야 돼! 우린 시작일 뿐이야. 놈들은 제2, 제3을 노리고 있을지도 몰라.”
들이 무겁게 입을 뗀다.
“그럼 돈을 긁어모으지 않고 자루에 주워 담을 수도 있어.”
아미도 상황을 파악하고 끼어든다. 갑자기 버들이 주저앉더니 흑흑 흐느낀다. 감상보다 현실이 우위로 올라선 모양이다.
“우린 이제 어떡해야 하지?”
버들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애처롭게 묻는다.
“아직은 괜찮아. 놈들이 다가오면 막아내면 되고.”
들이 울먹이는 버들을 다독인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그 말에 다들 할 말을 잃고 만다. 벗어나겠다는 생각만 했지 죽을 때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모두의 눈빛에 아픔이 어린다. 하지만 오래 빠져들진 않는다.
“놈들은 뫼를 2013년과 닿아있게 했어. 우리가 지금 열어 보는 것들은 대부분 2013년까지의 것들이야. 그걸 이용하자!” “어떻게?” “여기저기 들쑤시는 거야.”
“그건 안 돼! 너무 위험해. 그럼 놈들이 우릴 찾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야. 아줌마도 그랬다면서.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는 것은 놈들에게 단서를 쥐어주는 꼴이라고. 더는 가입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버들이 겁에 질려 주눅 든 목소리로 말한다. 꿋꿋하게 지니고 온 감상이 현실에 밀려났는지 걱정하고 있다.
뫼는 버들을 봤다가 들에게 눈길을 옮긴다. 들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는다. 뭔가 단호함이 묻어 나온다. 뫼는 들에게 계속 말을 하라는 눈빛을 보낸다. 들은 뫼의 눈빛을 읽어낸다. “바로 그거야. 놈들도 우릴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겠지만 우리도 놈들을 찾아내야 돼. 그래야만 놈들을 우리에게서 완전히 떼어놓을 수가 있어. 그러려면 미끼가 있어야 돼. 바로 그걸 미끼로 쓰자고. 놈들도 우리가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 거야. 그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뜻이야. 그럼에도 놈들은 선택했어. 그건 모험이야. 우리도 모험을 해보자고.”
들은 단호하다. 평생 불안하게 숨어살 수는 없다 생각한다. 그것만은 신도 허락하지 않았을 법하다. 살면서 다가오는 자잘한 다툼들이야 지나면 잊을 수 있다. 용서할 수도 있다. 신이 허락한 건 그런 것들이다. 조마조마하며 숨죽여 평생을 살아내는 것은 아니다. 그것만은 견딜 수 없을 거 같다.
들은 뫼의 반응을 기다린다. 뫼는 쉬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들의 생각을 따져본다. 잃을 것과 얻어낼 것이 너무 팽팽하다. 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는다. 골라잡기가 너무 어렵다. 한데 들의 시선은 거침없이 파고 들어온다. 흔들리지도 않고 재촉한다. 하지만 겁이 난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그러겠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들도 양보할 기색이 없다.
“알았어. 니 말대로 해볼게.”
결국 뫼가 손을 든다. 아무리 둘러봐도 피할 곳이 없다. 둘 중의 하나다. 죽을 때까지 마음 조리며 숨어 사는 건 머릿속에 들어있지도 않다. 당연히 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들도 알고 있다. 자신이 밀어내지 못할 거라는 것을.
“니들은 어때?”
뫼가 손을 들자 들이 나머지 넷을 바라본다. 넷은 밀고 당기고 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이라면 우리도 들어갈 수 있어. 가입이 필요한 곳만 아니라면.” 누리가 미끼를 자청한다.
“알아. 하지만 뫼여야 해. 나도 아니야. 인터넷만 열어보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가 다 할 수 있어. 그것으로는 미끼가 될 수 없어. 가입을 해서 여기저기 흔적을 남겨야 돼. 한데 뫼한테만 주민번호가 주어졌어.”
들이 딱 잘라 말한다. 누리가 잠자코 물러난다. 어쩔 수 없다는 데는 도리가 없다. 미끼로 유인하고 도망치는 데는 나름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미끼를 던지기 전에 계획을 세워야 해.”
뫼가 진지하게 말한다.
“올가미로 낚아채야지. 꼼짝 못하게 말이야.”
누리답다. 뫼와 들이 피식 웃는다.
“우리도 올가미 안에서 놈들의 벌벌 떠는 모습 좀 실컷 구경하자고. 그 정도는 해야 분이 풀리지.”
누리는 뫼와 들이 웃어주자 신바람이 난다. 벌써 분이 다 빠져나간 모습이다.
“올가미는 만들 수 있겠어?”
들이 피식피식 웃는다. 올가미 속에서 바동거리는 놈들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나쁘지 않다.
“만들어 봐야지.”
만드는 것은 자신이 없다. 말이 굼뜨게 나온다. 뫼와 들이 다시 피식 웃는다.
“만들 필요 없어. 내가 인터넷에서 찾아놓을게. 니가 한 번 놈들을 오지게 옭아봐! 덕분에 나도 한 번 올가미 속에서 바동거리는 놈들 구경 한 번 실컷 해보자!”
뫼도 들을 거들어 누리를 추켜 준다. 그리고는 깔깔 웃는다. 들도 소리 내어 웃는다. “한데 왜 웃는 거냐? 혹시 니들······.”
누리가 그제야 놀림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뫼에게 달려든다. 뫼가 달아난다.
“맙소사. 누리를 놀린 거였어? 난 또 올가미에 걸린 녀석을 보나 해서 잔뜩 기대했었는데.”
“나도.”
이든과 버들이 뒤늦게 실실 웃는다.
“넌 딱 숲-체질이야. 어떻게 매사에 산-사람처럼 말하냐?”
뫼가 달아나면서 다시 한 번 누리를 놀려댄다.
“숲-체질될 때 니가 도와준 거라도 있어? 글도령은 별수 있는 줄 아냐? 맨날 재고 따지고. 몸은 묶어둔 채 머리만 굴려대는 너 같은 사람만 있으면 세상 되게 재미없을 걸?”
누리가 멈춰서더니 되받아친다. 놀림당한 분풀이를 쏟아낸다. 뫼도 멈추어서 누리를 본다. 해실거리는 게 속은 뒤틀리지 않았다. 겉으로만 따지고 있다.
“올가미 꼭 찾아 놔라!” 누리가 등을 돌리고 나가면서 올가미 부탁을 한다. 물론 장난이다.
‘자식, 올가미는 가지고 뭘 하려고.’
뫼는 알면서도 혼자 궁시렁거린다. 그래도 무시하지는 않는다. 누리에게 장난감 하나 마련해준다 생각한다. 물론 누리가 직접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도 된다. 그래도 자신이 찾아서 보여주면 헤헤거릴 누리다. 그걸 생각하며 그는 검색란에 올가미를 친다. 검색을 누르면 올가미에 관련된 정보들이 줄을 지어 나타날 것이다. 한데 검색을 누르려던 그의 손이 멈춘다. 그것보다 급한 게 있다. 그는 올가미를 지우고 얼른 다른 글자를 쳐 넣는다.
‘생체식별정보.’
혼자 나지막이 읊조려본다. 입에 착 달라붙지 않는다. 어색하다. 지문이나 눈동자 등 개인의 특정부분을 저장한 정보를 열쇠 대신 쓰기도 한다고 되어 있다. 소름이 돋는다. 사이버공간이 자신을 인지한다는 것은 자신의 신체정보가 인터넷에 쫙 깔려있다는 뜻이다. 그럴 수도 있을까? 아무리 믿어보려 하지만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다. 누리도 이든도 들도 퇴짜를 놓았다. 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그들에겐 소용이 없었다. 어느 곳이든 그가 직접 치고 들어갈 때만 방문을 허용한다. 멍하니 앉아서 사이버공간을 노려본다. 눈이 아프다. 그것도 쉬운 게 아니다. 가슴만 먹먹해진다. 시선을 떼어낸다. 시선은 허공을 맴돈다. 한참을 허공에서 헤매던 시선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정신이 또렷해진다.
누리가 찾아놓으라는 올가미 생각이 다시 다가온다. 올가미를 찾아서 저장해둔다. 그런 다음 가입을 요구하는 사이트를 찾아 들어간다.
가입하기에 커서를 옮겨놓고 미적거린다. 손이 가늘게 떨린다. 미끼가 외려 함정이 될 수도 있다. 두 눈을 감는다. 함정에 빠지더라도 빠져나오게 해달라고 혼자 나지막이 읊조린다. 그리곤 아주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언제 그랬냐 싶게 그의 손놀림이 잽싸다. 주춤주춤하던 그의 마음은 달아나고 없다. 여기저기 들어가서 가입을 한다. 미끼를 던진다. 시작하기 전은 망설였지만 시작하고 나니 과감해진다. 사이트는 끝도 없다. 나중엔 미끼를 뭉텅뭉텅 던진다. 놈들이 걸려들었다고 좋아 날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뫼의 생각은 빗나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