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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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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목숨을 건 맞섬


BY 한이안 2015-10-01

뭐야? 화면이 왜 이래?”

사무실로 들어서던 소훈의 발걸음이 딱 멈춘다. 화면에 보여야 할 애니민들이 보이지 않는다. 애니가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더니 마우스를 꾹꾹 누른다. 하지만 화면은 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 된 거야. 왜 화면에 아무것도 안 뜨는 거야?”

소훈도 컴퓨터로 바짝 다가온다. 애니의 끊임없는 손놀림에도 화면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모든 게 다 날아갔어. 누군가 우리가 설치한 웹캠 프로그램을 삭제했어. CCTV자료도, 관련 시스템도 모두. 해킹도 할 수 없게 컴퓨터를 재설정했어. 차단 프로그램도 깔고. 이균이야. 내 이 새끼를······.”

애니가 이를 악물더니 바드득 간다. 이균이 이 사이에 끼어 비명을 지르는 거 같다.

소훈은 그런 애니를 초조하게 바라본다.

게시판에 들어가 봐!”

소훈이 웹 서버에 노트북을 연결한 후 홈피로 들어간다. 애니 말대로 게시판부터 들어가 살핀다. 아우성치는 댓글들이 끝이 없이 올라와 있다.

난리법석이야. 아우성치는 글들이 끝도 없어. 욕설도 부지기수로 올라와 있어.”

언제부터인지 확인해봐!”

소훈이 게시판을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가 외출하고 한 시간 가량 지나서야. 그러니까 대략 7시간 전부터.”

우리가 외출하고 나서 한 시간 가량 지나서라?”

애니가 그 때를 더듬어 간다. 잡힐 듯하면서도 걸려 올라오는 게 없다. 여자가 스치고 지나간다. 삐쩍 마른 몸매다. 움직임이 아슬아슬하다. 여자는 흘려보낸다. 별다른 생각이 없다. 이균을 떠올린다. 그의 홀쭉한 얼굴이 제일 먼저 다가온다. 영 정이 가지 않는 얼굴이다.

설마 이균은 아니겠지?”

소훈이 조심스럽게 애니의 생각을 떠본다.

설마는? 그 자식 아니면 이런 짓을 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내 이자식을!”

애니가 이균을 아작이라도 낼 것처럼 입을 앙다문다. 으드득 이빨 갈리는 소리가 난다.

언제 복구되느냐고 야단이야. 뭐라 할까?”

신경 꺼! 일일이 대꾸해주다보면 한이 없어. 그냥 홈피를 새로 꾸미는 중이라고 올려놔!”

그렇게 해서 될까?”

그럼, 방법 있어? 이균을 도리질해서 해결될 때까지는 방법이 없잖아. 그 놈한테나 가보자고.”

애니의 눈이 이글거린다. 순순히 문을 열어줄까? 작정하고 한 짓이라면 며칠을 서서 두드린다고 해도 소용없을 걸?”

그럼, 이대로 당하고 있자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더 이상 우리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뜻이야. 알아?”

애니가 으름장을 놓는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모양이다. 소훈도 돈이라는 말에는 기가 꺾인다. 애니민 덕에 그동안 아쉬움 없이 풍덩풍덩 쓰며 살아왔다. 아직도 통장에 잔고가 넉넉할 만큼 벌이가 제법이었다. 그럴 만큼 애니민은 돈뭉치였다. 그걸 빼앗길 수는 없다.

가서 문이라도 때려 부수고 들어가자! 들어가서 놈을 죽도록 두들겨주고 애니민을 되찾아 오자!”

소훈도 이를 바드득 간다.

둘은 밖으로 나선다. 한데 운 좋게 건물을 빠져나가기 전에 이균과 마주친다. 이균은 막 건물로 들어서고 있는 중이다.

야 이 새끼, 너 잘 만났다.” 다짜고짜 애니가 쏘아붙인다.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다가간다. 이균도 같은 기세로 다가온다.

이 새끼 너 잘 만났다? 지금 나한테 한 소리냐?”

이균이 삐딱하게 나온다. 못마땅한 기색이 또렷하다. 비아냥거리며 애니가 한 말을 그대로 되돌려준다.

어쭈. 받아치겠다고? 쳐봐, 새끼야. 야 이 자식아, 내가 니 주먹에 끄떡이나 하겠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지금 니가 그 짝이냐?”

애니가 몸을 들이대며 으름장을 놓는다. 이균이 주먹을 쥐고 달려들려 하다 물러난다. 애니의 덩치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이 자식, 방귀는 지들이 뀌고 누구한테 덮어 씌워? 그럼 내가 순순히 물러나준데?”

덩치로는 밀어붙일 수는 없어도 말은 쳐지지 않는다. 기를 쓰고 애니의 말을 받아친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 으르렁거리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소훈은 옆에 서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잘못 끼어들었다간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을 당할 수 있다.

야 자식아, 가자!” 애니가 이균의 멱살을 잡고 사무실로 끌고 간다. 이균은 바동거린다. 하지만 애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질질 끌려간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애니는 이균을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새끼야 봐! 니 눈으로 똑똑히 보라고.”

애니가 손으로 맛이 간 화면을 가리킨다. 이균이 화면으로 다가가서 마우스를 가지고 꾹꾹 눌러댄다. 애니민의 화면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먹통이다.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왜 그래? 니들 컴퓨터 왜 그러냐고? 서버를 해킹 당한 거 아냐?”

왜 그래? 서버를 해킹당한 거 아니냐고? 뚫린 입이라고 말이 좔좔 나오냐?”

이균이 눈동자를 굴린다. 꼼수를 부리고 있는 거 같지는 않다.

해킹이야.”

그래, 해킹이라 치자. 누가?”

그거야 나도 모르지.”

모르긴? 니가 알 거 아냐, 자식아?”

애니가 주먹을 불끈 쥐고 한 대 갈길 자세를 한다. 이균은 피하지 않는다. 피해봤자 들끓어 오르기 시작한 열이 식지는 않는다. 다행이 애니의 주먹이 다가오다 멈춘다.

내가 알긴 뭘? 내 화면도 똑 같은데. 그래서 부랴부랴 달려왔는데. 니들이 아니면 도대체 누구야?”

이균도 악을 써댄다. 애니일 거라고 굳게 믿고 달려왔다. 한데 애니는 발뺌을 한다. 되려 자신한테 덤터기를 씌우려 하고 있다.

잠깐 외출을 다녀온 사이였어. 돌아와 보니 멀쩡하던 화면이 먹통이 되어 있더라고. 화면에 가득해야 할 애니민들이 싹 사라지고 없었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지. 아무리 손을 놀려대도 소용이 없었어. 난 니들이 돈벌이에 눈이 멀어서 그런 거라 생각했지. 그래서 만사 제쳐놓고 달려온 거야. 니 놈들에게 따져서 내 몫을 되찾으려고.”

이균이 넋이 나간 모습으로 마구 쏟아낸다.

게시판은 들어가기가 무서울 정도로 야단법석이야. 애니민들이 없으면 돈줄도 끊기는데.·····. 그동안 들이부은 돈과 시간이 얼만데? 잃을 건 또 얼만데?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어. 되찾아야 해.”

횡설수설하고 있는 거 같으면서도 속에 있는 말이 제법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나온다. 애니 쪽이 머릿수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들이댈 생각을 한 것은 들이부은 돈과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한데 무리수를 두면서 달려온 보람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답답한 것은 소훈과 애니도 마찬가지다. 이균의 컴퓨터라도 멀쩡하면 되찾아올 수 있다. 한데 그의 컴퓨터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이균의 말이다. 하지만 그 말을 다 믿을 수가 없다.

가자!” 애니가 이균을 보며 말한다.

어딜?”어딘? 니 작업실이지. 가서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어. 니 말만으로는 믿을 수가 없어. 그러니 가자!” 이균은 어이가 없어 애니를 멍하니 쳐다본다. 애니의 표정은 변화가 없다. 일어나 앞장선다. 어처구니없어 하면서 이균이 애니를 따라 나선다. 발걸음이 어정쩡하다.

이균은 애니의 속을 알 수가 없다. 자꾸 헷갈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애니밖에 그렇게 할 사람이 없다. 한데 애니의 표정이 너무도 사납다. 결국 아무런 실마리도 추려내지 못하고 찜찜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다. 소훈과 애니가 먼저 도착하여 이균이 차에서 내리는 것을 지켜본다.

가자!”

내리자마자 애니가 닦달하듯 재촉한다. 이균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통로로 걸어간다.

좀 나오면 안 되냐? 지하가 뭐가 좋다고 두더지처럼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 사냐?”

뒤따라가면서 애니가 한소리 한다. 땅속 깊이 내려가는 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애니민만 아니라면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이다.

실험하기엔 여기가 딱이야. 불편해도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어쩌겠어?”

하필 생명공학이냐?”그 덕에 애니민을 만들어냈어. 몰라?”

이균이 딱 부러지게 말한다. 애니도 그 말엔 할 말이 없다. 이균이 아니었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고여 있는 공기에서 나는 냄새가 못마땅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코를 틀어막는다. 숨이 막힌다. 손을 떼자마자 폭풍 흡입을 한다. 이균이 그런 애니를 돌아본다. 별난 자식 하는 표정이다.

이균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오히려 낫다. 애니가 처음인 것처럼 낯선 표정으로 둘러본다.

! 보라고. 니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라고.” 이균이 컴퓨터마다 죄 켜 보인다. 아니꼬운 표정이 그의 얼굴에 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니는 이균을 밀쳐내고 컴퓨터 안을 쌀쌀 뒤진다. 숨겨놓을 수도 있는 문제다. 그걸 찾아내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다. 생명공학이야 이균이겠지만 컴퓨터라면 그보다는 자신이 훨씬 낫다. 모르는 게 없을 정도다. 이균이 꼭꼭 숨겼다 해도 돋보기를 들이대고 손금 보듯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아직도 못 믿겠다고?” 이균이 뒤에서 쓴 소리를 한다. 애니는 이균의 말을 못 들은 것처럼 컴퓨터에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더니 한참이 지나서야 실망한 표정으로 컴퓨터에서 떨어져 나온다.

이젠 어쩔 거야?”

어쩌긴? 찾아내야지.”그 다음엔?”그 다음이 어디 있어? 너는 너고, 우린 우리지. 니가 알아서 찾아내! 이제 공유는 끝났어. 찾는 사람이 임자야.”

애니가 쌀쌀하게 말한다. 이균은 사정을 해보려다 그만둔다. 온기 하나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다. 말이 먹힐 거 같지가 않다. 씁쓰름하게 입맛을 다시고 만다.

애니는 돌아서더니 미련도 없이 이균의 작업실을 빠져나온다. 숨을 꾹 참고 있었는지 통로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숨부터 깊이 들이마신다. 소훈은 그런 애니를 멀건이 바라본다.

이균이 한 짓일까?” 말할 틈을 기다렸다 애니가 시동을 걸자 묻는다.

그건 아냐. 컴퓨터를 쌀쌀 다 뒤졌는데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어. 숨긴 흔적도 없고.”

애니가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딱 잘라 말한다.

따로 저장해둘 수도 있잖아?”

그건 불가능해. 그 많은 용량을 어떻게?”

그럼?”

여자야. 그 생각을 왜 못했던 거지? 애니민을 보던 여자의 눈빛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어. 허겁지겁 빠져나오기에 두려움에 덜덜 떨고만 있을 줄 알았는데.”

애니는 여자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