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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6개월


BY 문해빈 2014-03-20

                    

 

                     4. 그녀의 6개월

 

 

 

 

 

엄마가 웃기 시작했다. 그것도 소리를 내 웃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를 웃게 한 것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 방송, 저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수많은 드라마들이 엄마의 눈과 귀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지만 그저 묵묵한 눈빛으로 볼 뿐이었다. 어떤 드라마는 혈압이 올라 보기 싫다며 채널을 돌렸고, 또 어떤 드라마는 아무리 막장이지만 정도껏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또 채널을 돌렸다. 돌리고, 돌리고. 또 돌리고.

 

 

 

그러다가 한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엄마는 시간을 기억했고, 제목을 기억했다.

 

제목은 ‘응답하라 1994’였다.

 

 

 

 

제목부터 다른 드라마들과는 다르게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제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욱 지상파가 아닌 방송에서 하고 있었고, 시간도 길게 하고 있었다.

드라마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엄마는 너무 재미있다며 같이 보자고 했다. 보기 싫었다. 더욱 한국의 드라마라면. 엄마 못지않게 열이 오르기 때문이다. 꽃미남의 남자, 재벌정도의 돈이 많은 남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할 정도로 잘난 남자, 직장도 완벽한 남자,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들은. 너무도 잘났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느낄 만큼. 스스로 초라해 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물론 드라마 자체가 시청자들에게 주는 즐거움이 우선이란 것은 모르지 않았다.

 

 

 

현실도 삭막하고 뭔가 모르게 우울해 지기도 하는데 드라마마저 우울하고 궁상을 부리는 것이라면 더 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드라마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대리 만족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니까.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지나면서 강도가 세게 변하고 있었다. 천천히 변하는 것이 아니라 약에서 바로 강으로 변한 것이다. 아주 가끔은 좋은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도 흘리고, 감동도 받았다. 하지만 어느 시기부터 그런 드라마들은 거의 없었다. 감동은 고사하고 끝까지 리모컨을 손에 쥐고 있게 하는 것만으로 다행한 일이 되고 있었는지 모른다. 막장들의 천국이었으니까.

 

 

 

 

작가들은 막장의 대가로 거듭나길 원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내기를 하고 있었으니까. 여기도 막장, 저기도 막장. 어느 누가 더 막장으로 가는지 줄다리기까지 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이유는 그것일 것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기 시작한 것이. 언젠가부터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았다.

 

 

 

 

그걸 다시 바꾼 사람이 엄마였다. 엄마는 날 텔레비전 앞으로 데려 갔고, 옆에 앉도록 했다.

 

 

 

***

엄마는 아프다. 그것도 아주 많이 아프다.

 

 

 

가장 운이 나쁘다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엄마는 암환자이니까. 췌장암 3기! 엄마의 병명이다.

 

 

 

병원에서 인정한 엄마의 병이었다. 처음엔 믿지 않았다. 말도 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엄마는 누구보다 건강에 신경을 두고 살았다. 유달리 건강에 관심이 많은 엄마는 정기적인 검사를 받았고, 건강보험 공단에서 권하는 검사도 소홀하지 않았다. 조금만 아프면 한의원이나 일반 병원을 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암에 걸렸다. 그것도 3기라고 한다.

 

 

 

처음엔 감기 몸살 정도로 생각했다. 피곤해 하고, 몸이 추워진다고 했으니까. 엄마의 감기 증상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시작했다. 피곤해 지고, 한기를 느끼고. 그럴 때면 가까운 동네 의원을 찾아 진찰을 받고 약을 지어와 먹었다. 약을 먹고 푹 자고 나면 피곤도, 한기도 가라 앉아 가고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그 정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느낌이 이상했다. 얼굴색이 점차 검어지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눈빛도 누렇게 변해 있는 것 같았다.

 

 

 

“엄마, 얼굴색이 조금 검게 변한 거 같아.”

“바깥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 가? 등산을 많이 했잖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눈은? 좀 누런 색깔인데.”

“누런 색깔? 황달인가?”

“그건 간이 좋지 않으면…….”

“간은 이상 없어. 얼마 전 종합 검사에서 이상 없다고 나왔어.”

“그런데 왜 누런 거지?”

“감기 증세라고 봐야지. 감기 증세가 사람마다 다르잖아. 지어 온 약을 다 먹고 나면 괜찮을 거야.”

 

 

 

“당분간 등산도 하지 말고, 집에서 푹 쉬어.”

“가고 싶어도 걸을 힘이 없다.”

“다리도 아파?”

“다리 아픈 것은 아마도 갱년기 증상하고 연관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요즘 와서 안면 홍조도 있고, 다리도 아프고. 많이 걸으면 무릎도 쑤시고.”

 

 

 

무릎도 쑤신다는 말에 웃고 말았다.

 

 

“벌써 갱년기가 온 거야? 아직 올 나이는 아닌 거 같은데.”

“갱년기란 것이 정해진 나이는 없어. 여자라면, 어느 정도의 나이를 먹은 여자라면 오게 되어 있는 거야.”

“엄마, 폐경이야?”

 

 

 

여자들은 폐경이 오면 민감해 지고, 몸의 변화도 많아진다고 들었다.

 

 

 

“왔다 갔다 하고 있어. 조만간 곧 폐경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감기 낫고 나면 산부인과 진료도 받아야 할 것 같아. 호르몬제를 맞든, 약을 먹든. 미련스럽게 방치하면 큰 고생한다고 하더라.”

“나도 들었어.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감기 몸살부터 폐경, 그리고 갱년기까지 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얼굴색이 어쩌고, 간이 어쩌고 하다가 마지막엔 갱년기로 마무리 지었다. 폐경! 갱년기! 같은 여자였지만 두 단어를 얘기할 때는 묘한 기분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아직 올 나이는 아니었으니까.

 

 

 

48살! 건강한 여자였다.

 

 

그러나 본인이 느끼는 감정은 다른 거 같았다. 조금씩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렇다고 거기에 맞출 수는 없었다.

 

 

 

“아직 폐경을 맞이할 나이는 아니니까 걱정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폐경! 갱년기! 만약에 온다고 해도 엄마는 그냥 지나갈 거야. 물론 아직 그걸 맞은 나이도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가 곧 폐경이 될 까봐 걱정은 되는 모양이네.”

“어느 쪽이든 엄마가 편하면 좋겠어.”

“제법 말하는 게 어른스럽다.”

 

 

 

엄마는 웃었다.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러나 엄마의 웃음은, 엄마의 미소는 마지막이었다. 이 시간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로 엄마는 웃지 않았다.

 

 

 

 

***

엄마는 의사를 향해 따졌다. 따지는 사람은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아빠도 의사를 향해 언성을 높였다. 이건 당신들의 실수가 아니냐고 했다. 매년 정기검사를 받아왔는데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들은 보이는 결과를 두고 얘기하면서 인정하지 않았다. 검사 결과가 나왔을 때는 큰 이상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아빠는 한참동안 화를 내다가 엄마를 데리고 암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병원으로 갔다.

 

 

의사를 향해 고함을 지른다고 이상이 생긴 몸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따지고 난리를 부리는 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엄마의 몸을 낫게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감기로 인해 치료받고, 다리로 인해 치료받고, 얼굴색이 자꾸 나빠지는 거 같아 치료를 받고. 한의원에 가서 침도 맞고. 그러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3개월이나.

여러 병원을 번갈아 가면서 다닐 무렵, 한 병원에서 췌장에 뭔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큰 병원에서 다시 받은 검사 결과는 췌장암이었다. 3기!

 

 

 

몇 달 사이에 엄마의 몸은 변했다. 무섭도록 변해 버린 것이다.

 

 

 

우리에겐 생기지 않을 일이 찾아 온 것이다. 우리하고는 상관없을 줄 알았는데 우리에게도 온 것이다. 텔레비전이나 드라마에서 봤던 일이 현실 속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에게.

엄마의 길고 긴 투병 생활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고, 어떻게 이겨내야 하고, 어떻게 고통을 참아야 하고. 또 어떻게 마무리 되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알 수 없는 것이니까.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알 수 없었다. 다른 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오빠도.

 

 

 

***

입원하고,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하고. 계속되는 생활이었다.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는 말이 절망으로 들렸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엄마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어도 함께 울 수는 있었다. 하루 24시간을 함께 하고 있었으니까.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본격적으로 엄마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얼굴은 더 여위어갔다. 광대뼈가 튀어 나온 것 같았다. 손도, 발도 살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고통이 시간에 따라 심해지는 것인지 어떤 날은 괜찮아 보이다가 어떤 날은 아픔을 호소하고 있었다. 너무 아프다고, 너무 힘들다고.

잘 버티어 가자고 했다. 이기자고 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생각과 달리 다른 방향으로 가곤 했다.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이 귀찮아 지는 것인지 짜증도 쉽게 내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는 다고 화를 냈다. 그럴 때마다 엄마가 안 되어 보이면서도 야속했다. 누구는 마음이 편하냐고. 누구는 환자를 돌보는 것이 쉬운 것이냐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 가장 힘든 사람은 엄마이니까. 가장 아픈 사람은 엄마이니까.

 

 

 

 

지금은 내가 참아야 했다. 음식을 먹다가 입에 맞지 않는 다고 화를 내도 참고, 토해도 참고, 맛이 없다고 먹지 않아도 참고. 무조건 참아야만 했다.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었다.

할머니, 삼촌, 고모는 엄마가 아프다고 해도 그다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모양이다. 2남 2녀의 자식을 가진 할머니는 엄마에게 가장 많은 것을 가지고 가면서도 늘 다른 자식들에겐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했다. 장남이자 마음 여린 아빠는 항상 베푸는 쪽이었다.

 

 

 

 

장남이니까. 형님이니까. 오빠이니까. 무조건 다 인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많이 내 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조금만 잘못을 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하면 되느냐고 했다. 몸이 아파 당분간 할머니를 모시고 가라는 말을 했지만 그들은 등을 돌렸다. 몸이 아픈 것과 엄마를 모시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는 그들은 뒤에선 엄마에게 효를 진심으로 하지 않아 나쁜 병이 걸렸다는 말을 하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차라리 그 말을 듣지 않았으면 조금이나마 덜 괴로웠을 것이다. 아픈 사람을 향해 그들은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들은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었다. 엄마가 아프다고 해도 그들의 눈에 눈물 한 방울 맺힌 것을 보지 못했으니까. 그들은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는 얼굴과 얼굴빛이 신기하다는 듯 쳐다볼 뿐이다. 아빠의 형제들인데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가 있으면 만나고, 명절이 되면 만나는 가족이었다.

 

 

 

가족! 가족의 의미는 무엇일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은 타인보다 못했다. 돈이 필요하면 빌려달라고 했다. 제대로 갚는 것을 본 적도 없지만. 엄마가 가구나 가전제품을 바꾸면 욕심 많은 고모는 놀부 심보를 드러냈다. 네 사람 중 가장 사는 것이 힘든 큰 고모는 할머니를 부축이고 막내 고모를 건드려 싸움을 만들었다. 막내 고모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였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도 싫어하고, 또 피해를 당하는 것도 싫어하는 여자였다. 없는 말을 만들고, 또 별로 대수롭지 않은 말을 희한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큰고모로 인해 잦은 싸움이 많았다.

 

 

 

 

감정은 또 다른 감정을 만들고, 화를 건드리고 있었다.

 

 

 없는 말도 자꾸 듣게 되면 진짜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니까. 거짓이 결국 진실을 이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른들의 세상은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싸우기도 했고,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힘든 큰 고모가 언제나 주동자였다. 주동자라는 말이 우스운 생각이 들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유치하고, 치사하고. 남이 가진 것을 배 아파 하고, 말을 만들어 싸움을 일으키고. 그러면서도 진작 본인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아다는 듯 언제나 할머니 옆에 있었다. 엄마에게 받은 용돈, 아빠에게 받은 용돈은 대부분 큰 고모가 다 가져갔다.

 

 

 

 

그건 말하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것이었으니까. 어른들의 세상은 가끔 아이들 세상보다 사악하고 유치할 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짓을 하면서도 어른인 척 하고 있는 큰 고모가 불쌍해 보였다. 언젠가부터 그랬으니까. 그런데 진작 고모는 잘난 척을 한다.

 

 

 

엄마는 큰 고모가 집으로 오는 날이면 말 대신 먹을 것과 돈을 주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가족들끼리 싸움을 만들지 말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돈이나 선물 같은 것을 주는 날이면 조용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꼭 크든, 작든 싸움이 일어났다. 막내 고모와 삼촌은 큰 고모 말만 믿고 엄마를 향해 공격했다. 할머니를 다치게 했다고 야단을 쳤고, 또 혼자 병원을 가게 했다고 쓴 소리를 했다. 다친 것은 할머니 실수로 목욕탕에서 넘어진 것이었고, 병원에 혼자 간 것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간 것이다. 물론 다리를 다치기 전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엄마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엄마를 향해 시집살이를 시키는 사람은 할머니를 비롯해서 고모들까지였다. 가장 큰 시집살이를 시키는 사람은 큰고모였고, 작은 시집살이를 시키는 사람은 옆에 있는 그들이었다.

 

 

 

 엄마의 시집살이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었다. 그들로 인해.

 

 

 

다행스럽게도 작은 엄마와 고모부는 안쓰러운 눈빛을 지었다. 작은 엄마가 당분간 할머니를 모시겠다는 말에 조금은 참을 수가 있었다. 작은 엄마는 빨리 완치하란 말을 했다. 그나마 고마운 말이었다. 별난 고모들로 인해 작은 엄마는 입을 다물고 살았다. 잘못 편을 들다가는 화살이 자신을 향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 쪽 저 쪽 눈치만 보고 있었다. 결혼해서 작은 엄마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눈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것이다.

 

 

 

엄마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 쪽 저 쪽 눈치를 살필 겨를도 없었다.

 

 

 

맏며느리란 이유로 무조건 당하고,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많은 것을 참고 살았다. 엄마의 참음은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 때문일 것이다. 남편, 아들, 딸. 한 사람만 참으면 집안이 조용하니까. 병의 원인이 어떤 곳에서 시작되어 발병되었는지 모른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화를 너무 오래도록 참고 살았기 때문인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서른 후반부터 어쩔 수없이 병원 문턱을 넘어가기 시작한 엄마였다. 가슴이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또 머리도 아파 참을 수 없었으니까. 엄마는 그렇게 병원을 드나들면서 이 나이가 된 것이다. 큰 병을 안은 채.

 

 

 

아무도 몰라주는 고통은 다른 사람들에겐 안주거리로 제공될 뿐이었다. 그들은 뒤에서 얼마나 많은 독을 내뿜을까. 특히 큰고모란 사람은. 고통은 나누면 줄어든다는 말이 이 집에선 통하지 않았다. 엄마의 고통은 네 사람의 몫이었다. 그들은 가족보다 못한 사람들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보란 듯이 완치되어 일어서야 하는데. 그렇게 해야 하는데. 고통의 속도는 빨랐고, 당하는 사람을 그냥 두지 않았다. 신에게 묻고 싶었다. 이건 너무 하지 않느냐고? 엄마가 뭘 그리 잘못을 하고 살았단 말인가. 엄마는 참고 산 것 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하고 싶은 말은 언제나 가슴 속에 숨겨 두었다. 엄마의 삶은 지독히도 단순했다.

 

 

 

불쌍할 정도로.

 

 

 

 

***

 

 

 

엄마가 웃기 시작했다.

 

아파서 인상을 쓰고, 쏘아대는 독 같은 말 때문에 굳은 표정을 짓고. 엄마의 하루였다. 엄마는 하루가 괴로운 모양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처음 의지와 달리 조금씩 지쳐가는 것도 보였다. 포기했다가, 또 용기를 냈다가. 그 모습이 엄마의 현재 모습이었다.

 

 

 

그런 엄마가 어딘가에 집중을 하면서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나정이 망가지는 게 너무 재미있네. 저런 식으로 망가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잘 하고 있어. 어쩜 저리 자연스럽게 잘 할 수가 있는 거지? 연습을 많이 한 모양이네. 사투리도 구수하고.”

 

 

 

 

 

엄마 말대로 진짜 잘하고 있었다. 자연스러울 정도로 사투리도 듣기 좋았고, 연기도 자연스러웠다. 예쁜 얼굴에 저런 식으로 망가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잘 하고 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 비슷한 나이를 가진 젊은 연기자가 많은 사람을 웃기고 있었다. 세 살 정도 많나? 아무튼 고마울 뿐이다. 다른 사람을 웃기는 것보다 엄마를 웃게 하고 있단 사실이 고맙고 고마웠다. 엄마는 처음 시작부터 웃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웃고 있었다.

 

 

 

 

어떤 날은 재방송까지 보면서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