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척이 아니고 있는 사실을 얘기하는 거야. 엄마는 많이 아파. 형 말대로 만성적이기도 하지. 그 만성적인 병도 쉬면 고칠 수가 있어.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돈을 벌어야 하니까. 우리한테 써야 하니까. 아니다, 이 말은 수정하자. 형한테 다 쓴다고.”
“내가 다 썼다고? 그까짓 돈, 얼마나 썼다고.”
“그까짓 돈? 다른 사람도 아닌 형이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잖아. 가만히 생각을 해 봐. 그동안 형이 얼마나 돈을 썼는지. 우리 형편에 형만큼 편하게 살고 있는 사람도 흔치 않을 거다. 하고 싶은 거, 누리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살았잖아. 지금도 다르지 않고.”
“다 누리고 살았다고? 아니. 누리지 못하고 있어. 그래. 너보다는 잘 살았겠지. 그렇다고 난 불만이 없는 줄 알아? 장사하는 집 아들, 난 싫었다. 우리 친구들 아버지는 거의 세상 속에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야. 거기에 반해 우린 어떠니? 우리는 아니잖아.”
형은 아니란 말을 하면서 가게를 빙 둘러 보았다.
가게는 거의 오지 않는 형이 오늘은 가게로 왔다. 꼭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엄마를 만나기 위해 오는 것이다. 엄마는 하루 종일 가게에 있으니까. 가게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
형은 가게에 오래있지 않았다. 엄마가 말아주는 국밥도 거의 먹지 않았다. 아주 배가 고플 때만 제외하고는 그냥 가 버렸으니까. 형은 다른 아버지처럼 아버지가 사회적으로 지위가 없는 것에 불만이었을 것이다. 난 그것도 알고 있었다. 형이 만나는 몇 명의 친구들 아버지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렇다고 우리 아버지가 될 순 없었다. 또 화장이나 하고 예쁜 옷을 입고 있는 세련 된 엄마도 우리 엄마가 될 순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지금의 모습일 뿐이니까.
진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실컷 뒷바라지 하고 있었는데 이젠 이따위 소리나 하고 있는 게 철없는 투정으로 보였을 뿐이다.
그것도 아들이면서 장남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설령 하고 싶다고 해도 참아야 했다. 입을 열면 안 되는 것이었다. 가족 간에 지킬 것은 지키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은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참아야 하는 것은 참아야 하니까. 형은 부모님의 마지막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다행히 아버지는 없었다. 이 상황에서 그건 다행이었다. 아버지도 아버지이기 전에 남자였으니까. 잘나고 싶어 하는 남자였으니까.
“그동안 잘 누리고 살았으면서 그런 식으로 투정을 하다니! 어린 아이도 아니고. 그 나이에 이러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 말도 안 되는 투정으로 엄마 속을 끓이지 말고 형이 직접 돈을 벌어. 가게를 도우는 게 싫으면 다른 곳에서 일을 해. 일을 해서 차도 사고, 등록금도 보태.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한 번쯤은 형이 버는 돈으로 등록금을 내. 남자라면, 장남이라면.”
감정에 치우쳐버린 나는 형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말았다.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이런 식으로 흘러나온 것이다. 아들들이라면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만으로 미안함이 있을 테니까. 형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자라면서 아들이란 이유만으로 아버지에 대한 복합적인 마음은 있었다. 엄마와 다른 감정이었다. 어쨌든 난 형에게 냉정한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그러나 이 정도로 자존심을 건드렸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동안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들어보지 않고 살아 온 형이라면 받을 상처가 될 순 있었다. 그러나 필요했다.
이런 식의 자극제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니까.
“나더러 직접 돈을 벌어 등록금을 내라고?”
“못할 것도 없어. 우리들 나이라면 대체적으로 다들 그렇게 살고 있어. 형과 형이 만나는 몇 명의 친구들이 유난히 극성일 뿐이지. 부모의 후광이 잠깐은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오래 가지는 않아. 그것도 남자에게 있어서. 더 늦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해. 형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거야.”
“건방진 소리 그만하고 입 다물어. 감히 나한테 훈계를 해? 네가?”
“동생이 형한테 이 정도 얘기한 것이 건방진 소리로 들려? 동생이라도 맞는 말이라면 받아들여. 지금부터라도 일하는 습관을 들여. 그래야만 직장 생활을 잘 할 수 있어.”
“시끄러워.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하고 있어. 너나 잘해. 건방지게 굴지 말고.”
형의 눈빛은 더욱 차갑게 변했으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차갑고 냉정한 눈빛이었다. 언제나 좋은 말만 듣고, 좋은 것만 가지는 형은 웃음만 보였다. 그런데 지금 형은 자존심을 다치고 있는 중이라 그런 것인지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았다. 처음으로 가족이 불편하게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동생이란 녀석이.
“듣기 싫은 말도 들어. 그래야 형이 쉽게 살 수 있을 테니까. 좋은 소리만 듣고 살 수는 없잖아. 곧 사회생활도 해야 될 텐데. 상사한테 야단맞지 않고 살 자신 있어? 동료들과 언쟁 없이 어울릴 자신 있어?”
“까불지 말라고 했지? 내 문제는 내가 알아서 잘 헤쳐 나가.”
“마음 맞는 몇 명의 친구들 말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거 아니야? 다양한 사람들과.”
“입 다물어. 건방떨지 마.”
“그만해라.”
형의 얼굴색이 붉게 변하자 엄마가 말렸다.
여기서 더 나가면 뭔가 일이 터질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그건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형은 양 손을 꼭 쥐고 있었으며 무슨 짓을 할 것 같았다. 테이블에 놓여 진 물건들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은……. 그런 예감.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형은 테이블에 있는 물통과 잔을 어디론가 던져 버렸으니까.
“진짜 못났다. 그 정도의 감정도 참지 못하다니! 힘없는 사람들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는 형은 못난 사람이야. 못난 남자!”
순간 주먹이 날아왔다. 얼굴을 향해서. 내 얼굴이 반대쪽으로 돌아갔으니까.
“겨우 이 정도야? 힘없는 가족한테 폭력이나 사용하고. 진짜 못난 형이네. 못난 장남이고.”
무슨 마음으로 나는 이러는 것일까.
감정은 또 다른 감정을 가져 오는 모양이었다. 그동안의 억눌림이었을까. 참고 살아 온 한을 이런 식으로 표출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도 하지 못한 것을 앞장서서 나서기로 한 것일까. 어느 누구도 형한테 싫은 소리를 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알 것은 알아야 하니까. 들을 것은 들어야 하니까. 싫은 것도 해야 하니까. 참아야 하는 법도 배워야 하니까.
언제까지 어린 아이로 살 수 없는 것이니까. 쓸데없는 자존심은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하니까. 가족을 진짜로 생각할 줄도 알아야 하니까.
“장남? 그 소리,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인지 모르지? 툭하면 넌 장남이니까. 넌 이 집의 중심이니까. 나라고 마음 편하게 살아 왔다고 생각해?”
형도 무거운 마음이 있긴 있었나 보다. 그러나 나에겐 어리광으로 보였다.
일 년에 그 소리를 몇 번이나 했단 말인가. 얻고 가지는 것은 더 많았다는 것은 여전히 모르는 것 같았다. 싫은 거, 좋지 않은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은 이기적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었으니까.
“어리광 부리지 마. 혼자 많이 누리고 살았잖아. 형에 비하면 나야 말로 언제나 뒤에 서 있었어. 하고 싶은 것도 못한 채로. 형이 쓰다 남은 것으로 사용했어. 옷이든, 참고서든. 자전거도, 장난감도. 휴대폰까지. 내가 얼마나 새 휴대폰이 쓰고 싶었는지 형은 모를 거야. 형은 언제나 새로운 것만 쓰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네가 장남으로 태어나지 그랬니?”
억지다. 약 올림이다. 아픈 얼굴을 만지면서 형을 쳐다보았다.
참으로 이기적인 얼굴이었다. 엄마가 말리지 않았다면 우린 끝까지 갔을 것이다. 오후의 가게는 손님들이 없었고, 주방에 있는 도우미 이모들은 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만 감정의 골을 만들고 있는 중이었다.
***
엄마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형이 나가고 몇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저 손님을 받을 뿐이다. 내 입술이 괜찮은지도 물어보지 않았고, 국그릇을 옮기다가 쏟은 탓에 손이 데인 것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우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난 나대로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커피도 같이 마시지 않았다.
따로 국밥처럼 우리는 따로 먹었으며 따로 지냈다.
***
“얼굴이 붓지는 않았네. 손도 생각만큼 심하게 데이진 않았고. 그러게 국그릇을 옮길 때는 조심해야지.”
11시가 지나고 엄마와 나는 자리를 잡아 앉았다. 손님들도 없고, 도우미 이모들도 모두 퇴근을 했다. 아버지는 친구 아버지가 상을 당해 거기에 있었으며 형은 소식이 없었다. 집에 들어갔는지, 아니면 잘나고 잘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는지.
가게엔 엄마와 나, 둘이 있었다. 엄마는 따뜻한 수육과 끓어 오른 국밥을 뚝배기에 담아 테이블에 올리고 있었다. 밑반찬은 내가 담았다.
말없이 하는 행동 중 먹는 것을 준비 중일 때가 가장 감정의 교차가 크게 움직였다. 말이 금방 나올 것도 같았고, 금방 웃음이 나올 것 같기도 했으니까. 엄마와 나는 짧은 시간동안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 곁눈으로 서로의 반응을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난 나대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수육이 자꾸 유혹했다.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는 뚝배기의 국밥까지.
그때, 엄마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얼굴에 대한 걱정과 손에 대한 것을.
“손이 이 정도 데였으면 병원으로 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찬 물에 손을 넣고 소주로 소독했잖아. 그 정도로 이상하게 되진 않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이 방법은 엄마가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긴 시간동안 국밥 장사를 하면서 작은 상처로 인해 일일이 병원으로 뛰어갈 순 없었을 테니까. 그렇다고 아들을 이런 식으로 방치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취직도 해야 하고, 여자도 만나야 하는데 미운 손으로 변해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아직 손등은 빨간 상태였다.
“지금이라도 병원에 갈래? 기분이 찝찝하면. 내가 볼 땐 내일쯤이면 정상으로 자리를 잡을 거 같은데.”
걱정하는 말이었지만 진단도 내리고 있었다. 괜찮다고.
“배고플 텐데 국밥부터 드세요.”
상처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우린 서로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먹는 것에 열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종일토록 일을 했기 때문이다. 배는 고파있었고, 앞에 있는 고기는 심하게 유혹을 했다.
“넌 고기를 자주 먹어도 지겹지 않아? 국밥도? 네 형은 돼지고기도 싫어하고, 국밥도 싫어하는데.”
“난 돼지고기만큼 맛있는 고기는 없다고 봐요. 잘 삶아 놓으면 얼마나 맛있는데요.”
나는 잘 삶아진 고기 위에 새우 젓갈과 김치를 올려 엄마 숟가락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같은 방법으로 만들어 내 입 속에 넣어 오물거렸다. 갓 나온 음식만큼 맛있는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배고픈 상황에는 최고의 밥상이었다.
“형은 꿈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엄마는 언제나 형에 대한 것으로 시작한다. 엄마 관심은 온통 형에 대한 것들이었다.
“모르세요?”
“작은 부분들은 잘 얘기를 하지 않아서. 졸업반인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유학을 보내 줘야 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유학을 보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함으로 있는 듯했다.
“아나운서가 되고 싶대요.”
“아나운서라, 그렇다면 더욱 유학은 다녀와야 할 텐데.”
엄마는 국밥을 먹다가 숟가락을 놓았다.
“유학 갔다 오지 않아도 할 수 있어요.”
“물론 그렇기는 하겠지만 다녀오면 길이 더 쉽게 열릴 수 있다는 거지.”
대단한 사랑이다. 작은 아들이 형한테 한 대 얻어맞았다. 비록 한 대이지만 야무지게 얻어 맞았다. 입 주위로 멍이 들 정도로. 아직도 아픈 느낌이 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돈도 받지 않고 나가버린 형에 대한 걱정뿐이다.
어떤 사랑인 것일까. 형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크고 강해 보였다. 작은 아들은 어느 정도 사랑하는 것일까. 형과 비교되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엄마, 열 손가락을 깨물면 아픈 부위가 같이 느껴질까요? 아니면 다르게 느껴질까요?”
“열손가락을 깨물었을 때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
엄마는 내가 무슨 뜻으로 묻고 있었는지 아는 것 같았다.
“내가 말하는 것은 느껴지는 차이를 말하는 거예요.”
“똑같이 아파. 엄지손가락도 아프고, 새끼손가락도 아프고.”
“나는 아닌 거 같은데요. 다 달라요. 아픈 부위도 다르고, 느껴지는 것도 다르고. 똑같지 않아요.”
그 순간, 엄마는 나를 쳐다보면서 고운 미소를 지었다. 오랜 만에 보는 미소였다.
“형이 잘 되어야지. 장남이 길을 잘 트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이어지니까.”
나는 어느 정도 사랑하세요? 묻고 싶었다. 어린 소년처럼 엄마한테 확인이 하고 싶었다. 사람은 사랑에 목이 마르면 갈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엄마 사랑을 가득 받고 있는 형이 부러웠으니까. 열심히 생활하고, 모범생이 되어 있어도 둘째 아들은 두 번째 사랑이었다. 똑같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아픈 부위는 다 다르니까. 오늘따라 새끼손가락이 유독 아파왔다. 그쪽으로 뜨거운 국물이 많이 튄 모양이다.
***
28살의 나는 자동차회사에 다닌다. 취직하기 어려운 시절에 그나마 학점 관리와 회사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 어렵지 않게 취직을 했다.
이 회사가 좋은지, 마음에 드는지 알지 못한다. 몇 군데를 넣었는데 여기에 붙어 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 시작은 몸이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러나 단체 생활도 적응하다 보니 적응이 되어갔다. 상하관계부터 시작해서 정해진 규칙까지 잘 따르고 있었으니까.
거기다가 나는 눈치가 빠르다. 그건 어린 시절부터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결과였는지 모른다. 참는 방법도, 포기할 것은 포기를 해야 하는 것도.
놓아야 하는 것은 놓아야 했고, 끝까지 가야 한다면 밀고 나가는 것까지. 살아남을 자신은 있었다.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직장 생활은 늘 반복이다. 몸이 무거운 월요일이 시작되는가 싶으면 저 만큼 멀리 있는 금요일이 오고 있었다. 힘든 월요일, 기다려지는 금요일까지. 우린 계속 돌고 있었다. 시간과 함께. 한 살씩 먹어가는 나이와 함께. 나는 직장인이었다. 그 속에 나의 생활이 있었고, 미래가 있었다. 하루, 또 하루가 지나고 나면 나는 떠오르는 햇빛을 본다. 자주 볼 수 없는 햇빛이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보는 하늘과 햇빛은 달라보였고, 행복함을 가져 주었다.
시간은 흐를 뿐이었다.
어느 덧 이만큼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보면 이 회사에 목숨을 바치면서 충성을 할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매일 매일 나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니까.
***
나는 월급을 받으면 봉투째로 엄마에게 드린다. 월급을 받는 시간부터 그랬다.
엄마는 너무 좋아 어찌할 줄을 몰랐다. 이게 진짜 네가 일해서 번 돈이냐며 감탄해 하는 눈빛도 보였다. 어떻게 사용할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의논을 하기도 했다. 그 방법은 적금을 넣고, 집에 필요한 것들을 사고. 그러면서 가끔은 백화점이란 곳에 가서 쇼핑도 했다.
난 결심한 것이 있었다. 내가 돈을 벌면 엄마한테 좋은 것을 해 주겠다고. 엄마는 엄마가 번 돈으로는 절대 비싸고 좋은 옷을 사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무조건 백화점으로 가서 엄마한테 맞는 옷을 골랐다. 덩달아 아버지 옷도 샀다.
두 사람은 같은 취향이었고,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좋고 비싼 것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엄마도 처음엔 싫다고 하다가도 결국엔 아들이 사 주는 옷을 입었다. 신발까지. 엄마는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 가지 못했다.
형이 아직 직장을 갖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나운서가 꿈인 형은 아직 언론고시를 준비 중이었다. 요즘은 언론고시가 되어 있었다. 어디나 다 힘들고 고달픈 곳이었지만 방송 쪽은 더 치열한 모양이었다. 형은 계속 실패를 하고 있었으니까.
자꾸 떨어지는 아들로 인해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는 것을 알아버린 엄마는 좋은 것도, 비싼 것도 착용하지 않았다. 당분간은 하지 않겠단 눈빛 속에서 더 이상 강요할 순 없었다. 그건 나도 다르지 않았는지 모른다. 모든 생활에 있어 조심을 했고, 자극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달라져 있었기 때문에 더 조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형은 말하지 않아도 초조해 하는 것 같았고, 불안해하기도 했다.
실패를 모르고, 참는 법을 모르는 젊은 남자는 지금 홍역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대학을 졸업해서 지금까지 치르고 있으니까 적은 시간은 아니었다.
다른 곳에 응시하란 말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도 그 부분에 있어선 말하지 않았다. 말다툼을 하고, 서로 간에 언쟁이 있었던 것은 한 번이면 족했다. 더 이상은 서로 간에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니까. 바닥까지 자존심을 내려놓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
형은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 후에 결정하겠다고 했다. 계속 방송 쪽으로 가던지, 아니면 다른 쪽으로 일을 알아보던지.
***
난 시간만 맞으면 형이 있는 곳으로 갔다.
형은 집과 떨어진 곳에서 몸도 만들고 전문적으로 아나운서 교육을 시키는 곳에서 수업도 듣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만나서 밥도 먹고, 가벼운 운동도 하고. 형은 내가 주는 돈을 받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돈을 풀고 있었다.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형은 부족함 없이 돈을 쓰고 있었다. 형에겐 변함없이 지원하고 있는 아버지와 엄마가 있었으니까. 그 중에서도 엄마가 주는 사랑은 무한했다. 큰아들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었다. 처음 이 세상에 태어 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단 한 번도 변함없이 모든 것을 주고 있었다. 무조건적인 사랑! 엄마의 사랑이었다.
엄마는 가족 전부를 사랑한다. 아버지도, 나도. 그러나 사랑하는 색깔은 달랐다.
깨물었을 때, 열 손가락의 아픔이 갔다고 강조를 하지만 난 같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생긴 것이 다른데 아픔도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니까. 엄마만의 사랑법을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만의 사랑법에 있어선 많은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나도 사랑하니까.
와이셔츠를 다려 주고, 옷을 깨끗이 정리해 주는 사랑만으로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피곤하고 힘들어도 세탁소에 맡기지 않은 채 엄마가 직접 해 주고 있었으니까. 또한 마주보며 웃음을 지어주는 모습도 좋았다. 함께 국밥을 먹으며 김치와 고기를 올려주는 것도. 시간나면 전화를 받아주는 것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형이 걸어오고 있었다.
형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멋있어져 가고 있었다. 쉬지 않고 가꾸는 노력 때문인 것인지, 한층 성숙되어 보이기도 했다.
저 정도의 얼굴에 많은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번에는 꼭 붙을 것 같았다. 형이 가까이 다가오자 난 손을 들었다. 이쪽으로 빨리 오라고. 와서 같이 밥을 먹자고.
형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다. 함께 밥을 먹을 때 우린 가장 단순해졌고, 마음이 편해지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에는 어떤 복잡한 생각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생처럼 우린 마주보며 웃었으며 먹는 것에만 집중을 했다.
오늘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