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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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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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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뜨겁고 거칠게


BY 망팬 2013-04-30

눈은 기대했던만큼 내리지 않았다. 함박눈을 기대했지만 폼만 잡다가 구름은 떠나갔나 보다.

“저희 집까지 걸어가요^^”
“집이 어디...?”

난 알면서 물었다.

“버드네 아파트예요...”
“아, 그랬지요”
“아셨어요?”
“네에....”
“엉큼하시네^^”
“네에?”
“아네요ㅎㅎㅎ .....선생님답지 않게 제 아파트도 알아 보셨었네요^^”

나답지 않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 적은 남자라고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입으로 양기가 오른 남자 보다는 관심이 없는것같은 남자가 여자에게 더 적극적이고 뜨거운 경우가 많다던데....

갑천변의 산책길을 따라서 그녀의 아파트로 걸어간다. 어떤 포즈가 잘 어울릴까?

천변을 밝흰채 서 있는 산책길 보안등 사이로 아직 떠나지 못한 흰눈발이 언뜻 언뜻 날리고
강물을 지키고 선 을씨년스러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외로워 보인다

구청장이 새로 바뀌고 깔았다는 아스콘의 색조가 참 곱다.
먼 시야에 들어오는 남선공원의 나무는 하늘을 이고 서서 못다한 세상 사람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모양이다

“선생님!”

그녀가 나를 정겹게 불렀다.

“세월 참 빠르죠?”
“네?”
“벌써 한 해가 다 가잖아요...”
“그러게요....”

난 덤덤하게 대꾸했다. 성의 없는 대답이었을까
“선생님은 아쉰게 없나봐요....?”
“무슨....?”
“저는 아쉬운게 많은데......”
“..................”
“선생님......저 안아 주시면 안돼요?”

놀랬다. 갑자기 이 여자가 왜 이러나...일찌기 나를 좋아한다는걸 알았지만....
이렇게 급하게...
그렇다고 내게 있는 무엇을 탐하는 여자는 아닌걸 나도 안다.
재산도 나보다 많다면 많고......

“선생님, 참 좋으신분인걸 알았어요. 저하고는 좀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아니다. 그녀가 말하는대로 난 괜찮은 남자도 아니고 더구나 미래가 있는 남자도 아니다. 그저 그럭저럭 살다가 늙어버릴지도 모를 별볼일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대접해 주다니...고맙다.

아무도 내게 솔직하게 사랑을 고백해준 여자는 없었다, 내가 어려운것일까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 줄것같은 여자는 일찍이 없었다. 더구다나 이성으로 편안하게 느껴본 여자는 철든 이후로는 기억이 없으니....

“선생님, 여자로 대접해 주세요”
“.......................”
“아직도 사랑하고 싶거든요.....”
“........................”
“선생님을 만난 것이 어쩌면 마지막 행복을 잡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

그녀가 나를 막아 섰다. 그리고 내 가슴으로 자신을 안아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녀는 내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랑을 고백받을때처럼 행복할까?
별것 아닌 나를 향하여 던져 오는 여인의 사랑 고백이 이다지 나를 달콤하게하다니....

“선생님~”

내가 멈칫거리자 그녀가 먼저 내 허리를 부둥켜 안아 왔다.
그녀의 동산 몽울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움과 평화로움이 내 몸에 번진다

“아아~~”

난 신음하며 그녀를 포옹했다.

“선생님, 저희 집에 기요....”
“.................”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가슴에서 곰삭은 그리움들이 꿈틀대고 있나보다.

<내가 사랑을 하다니......>

먼데서 인기척이 들린다. 밤을 태우며 체력을 관리하는 사람들인가보다.
밤을 달리는 사람들.......
마스크를 쓰고 달밤에 천변을 달리는 저 남자는 지금 무엇을 향해 달릴까?
나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운동장을 달리곤 했었다.
밤이 늦더라도 운동을 하고 자면 몸이 거뜬햊는걸 아는 사람들은 늦게라도 몸을 풀고 자는 것이다

역사적(?) 체온을 서로 간직한채 그녀와 나는 손을 잡고 버드네 아파트를 향해 걸어간다.

그녀가 자기집에 가자고 했다.
어쩌면 그녀와 나는 이제 가정을 꾸밀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 사람이 무어라든 잔치를 할지도 모른다

무슨 잔치야? 그냥 살면 되지 남사스럽게....
엉뚱한 생각을 하며 걸어가는데 맞잡은 그녀의 손이 정말 따스하다.

마음처럼 손도 따뜻하네.....

“선생님, 다 왔어요. 징검다리, 저기로 건너야 되요”

예스러움을 살리려 화강석으로 징검다리를 놓았다. 장마가 질때는 건널 수 없지만 평소에는 징검다리를 건너 중구와 서구를 옛정취를 맡으며 왕래한다

위쪽에는 파라곤 아파트가 보이고 그 아래가 바로 버드네 아파트다
파라곤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정말 괜찮은 아파트였는데.....

아는 사람은 알지.
버드네 아파트 자리에는 예전에 대전 피혁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가죽 공장에 다니는 아가씨들도 많았고 월급날이면 유천동 시장의 색시집들이 노가 났었다.

와라바시를 두들기며 술을 먹던 시절에 부르는 노래는 슬프고 어두운 한맺힌 가락이었다.
목포의 눈물을 청승 맞게 부르던 스물여덟살의 홍학식당 춘자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할까^^?

유천동 색시집은 지금도 존재하지만 그 시절과는 좀 다르다. 모두들 옷을 벗고 살을 보여주며 호객행위를 하고 외상술을 주는 곳은 거의 없다. 카드라는 외상 먹기 좋은 물건이 생겨나고부터 술꾼들은 어쩌면 담대해졌는지도 모른다

국보위가 판을 치던 80년대 그 시절에는 중소기업 은행에서 서부 터미널까지 방석집이 한 50개는 되었다. 술꾼들은 거기에 능통해야 술꾼이라 말할 수 있었던 보루다

징검다리를 건너 그녀와 난 버드네 아파트로 들어 선다.

“선생님, 제가 너무 당돌하죠?”
“아아닙니다”

뭐가 아니라는 것인지 난 그냥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머리 속에서 그녀와 지낼 밤을 그리고 있었을까...? 너무 쉽게 이루어지는 그녀와의 로맨스(?)

그래, 이제는 망설일 수 없지. 세월은 그녀 말대로 빠르게 가는데........

“선생님, 근데.....한가지...”
“무슨... 할말?”

그녀가 쭈볏거린다. 무슨 말일까....

“저어....오늘은 그냥 주무시고만 가세요...”
“네에?”

그냥 주무시고 가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내 머리가 막 그녀의 말을 분석한다

“오늘은 제 집만 보시고.....호호호”

그녀가 깔깔대며 웃는다.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알 듯 모를 듯....

“오늘은 오늘은.....”
“..................”

그녀가 나의 손을 꼬옥 잡으며 다시 말했다.

“선생님, 우리 좋은날 잡아서 자요 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그랬구나 그런 뜻이었구나
갑자기 좀 맥이 빠진다.
사실은 무척 기대 했는데..........

“선생님, 괜히 모시고 왔네 호호호”

그녀가 나를 놀리듯 웃는다.
난 어줍게 웃었다.
여자에게는 남자를 받아줄 수 없는 날이 있다지....
아니면 장난으로....

그녀가 앞서 걸어 간다. 곧 엘레베타가 나타나겠지.
앞서 걸어가는 그녀의 엉덩이 참 예뻐 보인다.

<마음씨가 고운 여자, 엉덩이가 예쁜 여자, 나를 편하게 하는 여자>

그녀가 화살표를 누르자 승강기 문이 열린다

그녀와 내가 승강기 안으로 들어 섰다 단둘이다

나는 지금 남은 인생의 동반자가 될지도 모를 란같은 여자 고은아의 아파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타의 숫자가 빨리 바뀌기 시작한다.

변화무쌍한 하루
일진의 높낮이가 컷던 하루
난 어떻게 이 밤을 마무리 할것인가.............

905호라고 쓰인 그녀의 아파트앞에 내가 그녀를 따라 내리고 그녀는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선생님, 6039예요 기억해 두세요”

그녀가 키판을 누르면서 정말 기꺼운 얼굴로 비번을 일러 주는 의미
그녀의 비밀문을 여는 특혜(?)를 준다는 허락의 표식

갑자기 가슴이 쿵쾅거리고 감격의 진동이 내 몸에서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정말 활짝 열리려는 모양이다

<그래, 늦었지만....뜨겁게 아름답게 사랑을 하는거야.....>

그녀를 뜨거게 달궈 줘야지
아주 뜨겁고 거칠게 그리고 숨이 막히도록.......

“후우~~”

나는 가슴에서 주체할 수 없이 끓어오르는 열기를 식히려는 듯 거친 숨을 내 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