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갈래? 차한잔 먹고가던지....”
난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말을 했다.
“왜 그러시는거예요?”
시선이 많이 싸늘해져 있는 그의 표정에서 난 무언가를 찾아내려 했지만
“동생, 들어가서 얘기하자 뭔가몰라도.....”
내 입에서 너무도 오랜만에 나온 동생이라는 단어가 너무 부자연스럽다.
그를 동생이나 아우로 불러본 것은 남편이 죽은 이후는 처음인 것 같다
“화났어?”
대문에 키를 꽂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지만 죄지은 사람처럼 되어버리는 나의 부담감은 어디서 오는걸까
하기야, 남편 죽고 대소사를 다 그가 돌보아 주지 않았던가.
재산 상속이라든지 명의 이전이라든지......
남편이 빌려준 돈을 받는 문제에서부터 통장정리며
남편 학교의 퇴직금 관계까지 혼란스러운 문제들을
동부서주 뛰어다니며 성심성의껏 처리해준거며
혼자사는 여자의 애로사항중 잠자리 말고는 다 해결해준 그였지만
오늘처럼 짜증스런 모습을 보이긴 처음이다
어찌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바람앞에 등불같은 혼자사는 여인네야 어떨라고...
당당하지 못한 내가 밉기도 하지만 그러하더라도 내가 재범이에게 받은 호의를 어찌 고맙게 여기지 않을까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도 엉거주춤 따라 들어온다.
아무리 나를 도와주고 어릴적부터 나를 따르던 후배이기는 해도 남편없는 집
더구난 밤에는 한번도 그를 집안에 들인적이 없는데......
돌려 세울 명분도 없고 또 그렇게 할 용기도 없었던 것같다
“차줄까?”
“.............”
“커피 안되겠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정말 내가 왜이러지.....
죄지은 것도 없는데
짧은 스커트도 부담스럽고 블라우스 사이로 살이 나올까 걱정스러워서
윗옷을 당겨보고....
한수 더 귀밑머리를를 추스리는 나의 본심은 무엇일까
가소로운 여심이 아무래도 재범이를 남자로.....
스스로가 아리까리 하다고 할까.....
부정하면서도 단념하지 못하고
그렇다라고 하면서도 확실하게 결정하고 선택하지 못하는 것이 남녀관계....
더구나 어림없는 재범의 관계는 나만의 망상(?)
여하간 어설픈 여자, 남편 없는 미망인의 애매함이랄까......
아무래도 분위기를 바꿀 무언가가 필요한것같아 난 TV를 틀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힐끗 본다. 아까보다는 많이 누그러진 표정이다
“거긴 왜 가셨어요?”
망설이는듯 그가 물었다.
난 찻잔을 내리다 말고 그를 뒤돌아 보았다.
“무슨 일로 가셨던거예요?”
애써 부드럽게 묻는 그의 얼굴에 불쌍해하는 연민의 정과 석연치 않은 추궁들이 섞여 있다
“..................”
난 침묵했다.
“호텔로 들어 가는걸 봤어요”
나의 반응을 예의 주시하는 이 재범 그 남자........
그렇다면.....
나를 뒤따라 왓었다는 말인데....이럴때는 어떻게 반응을 보여야 하나.....?
“아니, 동생!!!!!”
난 의도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나를 감시하는거야 왜?”
찻잔을 밀치며 정색을 하는 나의 태도에 그가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난 한발 더 나갔다
“아니, 거기가 뭔데 내 뒤를 밟고다녀!!!!”
세상에서 당한 서러움을 그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가 쇼파에서 벌떡 일어선다.
“누님, 왜 그러세요. 죄송해요. 제가 일부러 그런거는 아니고.....”
그가 갑자기 두손을 모으며 난처해 한다. 금새 꽁지(?)를 내리는 그의 태도에 나도 적이 당황스러웠다.
“동생, 미안해.....내가 너무 언성을 높인건 미안하지만.....나 그런여자 아냐”
눈물이 핑 돈다.
얼마나 가눌길이 없으면 볼일도 없는 호텔로 들어가 허무맹랑한 기억들에 사로잡혀 오해를 받을까...
“저도 알아요. 누님이 그런분 아니라는걸 알지만 호텔로 들어가는걸 보니까......”
말을 잇지 못하는 그의 머리 숙이는 모습이 괜히 안쓰럽다
별것도 아닌 나의 주변을 삼십여년 맴돌면서 불면 꺼질세라 위로해 주는
그가 무슨 죄가 있단말인가....
있다면 팔자가 사나운 나와 한 고향에서 나고 정이 많은것 말고는 지금껏 내게 한 행동은 지탄받을 눈꼽만큼의 것도 없지않던가
나는 커피를 저었다. 두잔....
탁자에 가져다 놓고 내가 먼저 앉자 재범이도 따라 앉는다
아무래도 호텔에 갔던 일을 해명해야 될 것 같았다.
찻잔을 들자 재범이가 먼저 말을 했다
“오늘, 제 사무실에 왔다가 그냥 가셧다기에 맘이 안좋았거든요. 어디계신가 해서 영애 누님한테 전화 드렸더니 동욱이 형 배웅하러 만남의 광장에 갔다기에 그리로 가다가 누님차를 본거죠”
커피잔을 입에 대 본다.
얼굴의 일부분이라도 가리고 싶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둘은 시선을 엇비키며 커피가 없어지지 않도록
조금 정말 쪼끔 입을 추기고 있었다고 할까....
“나....그냥 갔었어. 혼자 갔었어. 그냥 볼일이 있어서 갔었어. 혹시 오해할까봐 얘기하는거야. 나 아무하고 그러는 여자 아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건가 내가...왜 변론을 해야하는건가...
“알겠어요.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시지 않기에.....”
“그래, 좀 시간이 걸렸지....”
이번에는 큰 모금의 커피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리고
“마음 알지.....혹시 내가 누구에게 피해볼까봐 그러는거 알아....미안해^^”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둘다 안도감으로 얼굴이 상기되나보다
“누님, 오늘 피곤해 보이시네....?”
“글세, 좀 피곤하네......”
“그럼 쉬셔야겠네요...”
“아냐, 좀 놀다가. 오랜만에 왔는데.....”
“진이 올때 됐잖아요?”
“응, 오면 어때.....아직 두어시간 지나야 올걸. 학원 늦게 끝나. 외국어고 간다고 극성이잖아”
“극성은 아니죠 열심이죠^^”
“그런가.....”
그와 난 웃었다 조금은 크게......
“저......”
그가 날 쳐다보며 무언가 말하고 싶어 한다
“저.....내일부터 사무실에 꼭 나오세요”
다짐을 듣고 싶은가보다
“나 필요 없을 것 같던데.....
“아녀요. 혹시 혜란이 때문에 불편하시면......”
“아니야...무척 고운아가씨더만......”
“아니예요.....얼마 있으면 미국으로 들어간다던가 그러거든요....”
들은바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 아주 간다는 것은 아니었는데....
“맡아서 해주세요....”
난 그가 왜 그러는지 몰라 그의 눈빛을 주시했다
“혜란이에게 말하께요. 누님이 파악할때까지만 도와달라고 할께요.....”
오리무중이라는 말이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일까.....
“안돼.....난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리고 그럴수는 없어. 나 다른일 알아볼게....”
그렇다. 재범이의 사무실을 내가 맡아서 살필 이유도 없거니와 혜란이의 말하는 투로보아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걸 파악하지 않았던가....
“좀더, 생각해 보세요. 전 절대 안돼요. 누님이 도와 주지 않으면 전 절대 사업 못해요....”
못을 박는 그의 어투가 단호하지만 내 마음은 결코 아니다.
동상 이몽이란 말이 여기에 맞을지 모르지만 오늘 들렀던 재범의 사무실에 내가 출근을 한다는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라는 판단이 분명히 선다
“누님, 이거.....”
불쑥 내민 재범의 손에 들린건 아무래도 선물인 것 같다.
“나중에 풀어 보세요”
무얼까?
“이게 뭐야?”
“제 마음이예요. 저 간다음에 풀어 보세요.....그럼 일어 날께요”
뭍잡을 새도 없이 일어서는 그
“그럴래......”
더 이상 붙잡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가아...”
그가 골목길을 빠져 나간다. 뒷모습이 싫지 않다.
그러고 보니 차를 안가져 왔나보다. 데려다 준다고 할걸......
<근데.....선물이 뭐지?>
난 대문을 닫고 얼른 들어 왔다. 들어올때 손에 들은걸 못봣는데....
쇼핑백......난 그속에 담긴 선물의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가슴이 울렁거리나보다
분홍색으로 곱게 정성들여 싼 포장을 뜯었다
“아아니......”
정말 뜻밖이었다. 이런...........
그렇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