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너무 좋다
허름한 남편의 차와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무슨 오륜 마크같은 것이 그려져 있는 차다
"누나, 오늘 더 이뻐보이네^^"
"뭐야, 이뻐봤자지"
"왜, 누나가 이뻐야 내가 힘나지"
"내가 이뻐야 네가 힘나?"
"그럼, 이제 다음주부터 우리 사무실에 출근할거 아냐"
고향 가는 길이 즐거워야 하는데 시집으로 가는 길이니 좋을리가 있으랴만
다행이도 연하남 우진이의 외제 승용차에 몸을 싣고 단둘이 가는 길이 위안이 된다
"누나, 언제 오우?"
"내일 오후에 와야지 뭐
"그래, 그럼 연락해 맞춰서 나오께"
"그래두 돼?"
"그럼, 나야 뭐 엄마랑 하룻밤 자고 나오는건데..."
"참, 엄마는 건강하시냐?"
"응, 아직 정정하셔 정말 다행이야"
대청댐을 지나 문티재을 넘어 묘서를 지나는 길이 어제 내린 눈으로 미끄럽다
"누나, 궁금한게 있는데 누나 결혼생활 재미있어?"
"왜? 재미 없었으면 좋겠어 ㅎㅎ"
"다들 그러대 시집간 사람 대다수가 다 불만이 많더라구...우리 사무실에 김희정 아줌마
이혼했잖아 근데 혼자사는게 그렇게 좋다고 날마다 나한테 귀에다 못박아요"
"뭐..왜?"
"모르지..."
보은 읍내가 보인다.
수십년이 흘렀는데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땅
백제의 성이라고 했던가 신란의 성이라고 했던가
성주리라는 마을 뒷산에 가면 삼년산성이라는 성이 있다
남매의 애절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삼년산성을 넘어서 우리 동네 애들은 중학교를 다녔다
5일장이 서던 어느날이었나보다
우연히 퇴교길에 우진이를 만난 나는 삼년산성 길을 넘어서 집으로 함께 가고 있었다.
여름 햇살이 뜨거웠던 그날
우리는 참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고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콩닥거린다
백송나무가 천연보호수가 있는 개심사의 마당을 지나 비탈길로 발을 옮기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양이 작은 음같은 소리에 우리는 나무뒤로 몸을 숨기었는데
거기 우리동네 이장님과 옥순이 엄마가 일몰속에
19금의 짓거리를 하고 잇는걸 목격하고야 말았으니...
옥순이는 내 친구이고
옥순이 엄마는 우진이의 이모뻘인데
일찌기 남편이 해소기침으로 폐결핵을 앓다가 죽고 옥순이 하나를 데리고 사는 과부였다
땅 한평 없는 옥순이네 였지만 늘 그집에 가면 먹을 것도 많고
입은 옷도 양부모 다 있는 우리 보다 훨씬 풍성했다
과자와 빵이 항상 있었던 기억
그리고 밥도 하얀 쌀밥만 먹던 옥순이네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것은
머리가 커지면서 부터였는데
개심사 뒤의 19금 현장을 본 이후로 옥순이네가 잘먹고 잘사는 것이
이유를 좀은 이해가 되었다
"누나, 시간도 좀 이른데 개심사 갔다가 갈까?"
"개심사는 왜?"
"그냥, 개심사에 가면 우리 추억이 많잖아...고향만 오면 가고싶더라 "
"그으래...그렇긴 하지 네 맘대루 해"
내가 피식 웃은 뜻은 옥순이 엄마와 이장님의 그 여름날 정사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라여서인가
"누나 왜 웃어?"
"그냥....우리가 어른이 됐다는게 우습네"
"나도 그래 누나와 내가 어른이 되었고 그리고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다는게 정말 신기해"
이윽고 개심사가 보인다.
앙상한 겨울 나무 가지들이 눈길속에 쓸쓸하다
이름 모를 산새들이 고즈넉하게 사찰 주변 나무들을 날아 다니고
염불소리도 없는 조용한 산사
우진이와 나는 손을 잡고 길을 향해 올라갔다
눈 앞으로 큰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운동장 체육관....
"저게 군청이야"
"저건 뭐야?"
"체육관이지. 소싸움도 하고 여자 축구대회도 하고 요즘 테레비에 잘 나오던데.."
우진이의 체온이 손을 통해서 내게로 온다
손에서 젊음이 느껴진다
설레는 정열같은게 느껴진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주부들이 56%라는 통계를 본 기억이 난다
나도 그랬다
어느날인가 잠이 안오고 살아서 무엇하나 생각이 들고
괜히 허전하고
바람처럼 떠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을 해보니 우울증이라고 했다
남편은 늘 공자같은 말씀만 해대고
사람은 정도를 걸어야 하고 늘 좋은 생각을 해야하고
남을 미워해서도 안되고 시기 질투 비교하지 말아야 인생이 향그롭다
스스로가 가는 길을 늘 감사하며 살고 무엇을 보든지 긍정의 눈으로 바라 보아야 한단다
숨이 막히는 나를 향해 남편은 늘 진리의 말씀으로만 설파한다
그리고 어디서 들었는지 여자의 마음을 달랜답시고 외식도 하자고 하고
가끔은 모텔에 가자고도 하지만 기분전환은 커녕 하는 매사가 늘 불만스럽고 어리석어 보이는 돌팔이 남편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나를 모를때가 많다
<이대로 어찌 살지 아직도 날이 얼마인데...>
솔직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앞으로도 50년을 더 살아야 하다니
꽁생원과 50년 이를 어째
우진이는 즐거운가 보다.
나도 싫지는 않다. 그냥 즐겁다.
돌하나 나무 하나 길가마다 어릴적 피었던 추억이 스며 나오고
"누나, 기억 나?"
"뭐?"
"옥순이 엄마?"
"뭔데...?"
난 시치미를 뚝 떼어 보았다
"옥순이 누나 지금 어디가서 살지?"
"왜, 보고싶어?"
"아니 그냥..."
"식당 한다드라 대화동서..."
"그으래...대화동 남편은 뭐해?"
남자들은 남편을 늘 궁금해 한다더니
"왜, 남편이 없으면 좋겠지 호호호"
"누님 왜 이러세요 그냥 궁금하잖아"
길이 점점 험해지고 나는 우진이의 손에 의지하여 숨찬 호흡으로 돌계단을 올라간다.
"누나, 기억해?"
"뭔데?"
"그해, 누나가 중학교 졸업하고 청주로 고등학교 간다고 울먹였짆아. 그날 나 안아주면서 헤어져도
잊지말라며 시집 하나 선물하던 그날 기억해?"
"그랬나 호호호 그때가 언제야"
멀리로 차들이 지나간다 꼬리를 물고 미끄러지는 모습이 장난감 같다
우진이와 나는 구름이 잡힐만큼 하늘이 맑은 곳까지 올라왔다
그렇다고 높은 곳은 아니지만
여기에 서면 늘 읍내를 다 볼 수 있고 말티재도 보이는 가슴이 트이는 곳이다
저 아래 우리가 어릴적 놀던 고향이 있지만
지금은 어르신들만 있고 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누나"
"왜?"
"오늘 나 한번 안아주면 안돼?"
우진이의 노림수가 있나 아니면 그냥이겠지 김치국 마시지 마 이 아줌씨야.
"그래, 안줘도 돼지 뭐 동생이니까..."
"그래, 누나니까..."
갑자기 쑥스러워졌다.
"자아 눈감으께..."
내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지는 것인가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인가
찬바람에도 춥다는 기분이 영 안든다
남편과 등산가면 언제 끝나나 했는데
눈을 감고 나보다 한계단 아래에 선 우진이
어릴적부터 나를 그렇게도 졸졸 따라 다니며 속삭거리던 우진이
그가 아직도 내 손을 벗어나지 않고 보채고(?) 있다니...
나는 팔을 벌렸다. 그리고 너무 징그럽게(?) 커버린 우진이를 안아주려 눈을 감았다.
바람이 나뭇가지에 앉아 멀뚱거리며 우리를 지켜 보고 있겠지
<무슨짓이야??^^>
근데 이게 웬일인가
내 머릿속으로 이장님과 옥순이 엄니의 그 뜨거운 숨소리가 클로즈업되고 있는 것은
황당한 시추에이션 ㅍㅎ'
여자의 몸속에는 원죄의 화냥기 유전자가 있다더니
에덴동산의 이브는 뱀의 유혹을 받았을 때 왜 뿌리치지 못했을까
보니 너무 좋아 보이고 먹으면 정말 달콤할 것 같아서...
내 속에서
우울증을 벗어 나고픈 눌려진 스트레스의 욕망이 또아리를 푸는 것인가?
친구 수아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야, 부부 10년 정년제로 해야 될것같애. 법으로 정해야 하지 않을까 호호호">
<그래, 미국에는 30년이상 같이 산 부부는 천연기념물이라잖아>
<그래. 우리도 곧 그리 되겠지 그런데 나는 늙고 어떻게 해 호호호 아쉽다>
좀은 큰 새 한마리가 푸드득 날개를 치며 날아 오르나 보다
나는 우진이 얼굴을 살포시 안았다
우진이는 내 품속에서 추억을 먹고 있겠지?
"누나, 고마워 이제 내가 안아주께!!"
".........어어"
우진이가 이제 어른이 되어 나를 불끈 안아 올린다
그의 목을 감은 내 손 그리고 바를 안고 빙그르 도는 우진이
"하하하 호호호"
둘의 웃음합창소리
갑자기 갑자기 내 머릿속으로 아줌마 닷컴에서 본 시 제목이 떠 올랐다
<늦었지만 우리 사랑한번 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