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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그 이름? (1부 끝)


BY 문해빈 2012-11-22

연수와 은수 중 한 아이를 봐야만 했다.

 

 

 

둘 다 데리고 갈 수는 없으니까.

 

 

학교뿐만 아니라 병원이든, 시장에 가는 날에도 둘을 데리고 간다는 것은 무리였기에 인주는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와야 했으며 옷과 각종 액세서리에 대한 보답을 이 방식으로 해 왔다.

 

 

 

“당연히 연수지.”

 

 

 

 

연수는 말도 늦지만 행동들도 늦었다. 그게 인주는 좋았다. 무슨 말이든 하고 있으면 꼭 어른이 듣는 것처럼 집중해서 들었으며 책을 읽어 주어도 끝까지 눈동자를 굴리어 갈 뿐이었다. 그래서 인주는 연수가 좋았고, 보기에도 편했다. 그와 반대로 은수는 활달하다 못해 천방지축이었다. 금세 물건들을 들어 올렸다가, 아래로 떨어뜨려 깨는 것은 물론이었거니와 잠시 눈을 돌리면 마루 아래로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연수를 보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오늘은 은수를 보는 것으로 하자.”

“왜요? 그리고······이젠 시누 대접을 해 줘요.”

 

 

 

 

사고를 치고, 약점 잡힌 상태에서는 말을 놓았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역전이 되고 있었기에 인주는 지영에게 시누이 대접을 하라는 듯 입가에 진한 미소를 담았다. 물론 농담이었지만 정이 있음을 알기에 지영도 미소를 띄며 인정한다는 눈빛까지 지어보였다.

 

 

 

“내가 너무 오래 끌었나보군요. 그러죠. 은수는 지금 자고 있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저 아이를 데리고 가면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요.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고, 또 학교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도 버겁고.”

 

 

 

 

다른 것은 몰라도 학교까지 은수를 안고 간다는 것은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인주는 마루에서 아장거리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는 연수를 쳐다보면서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말을 알아듣는 시기가 되면서 엄마가 안 된다고 하면 절대 하지 않는 아이, 그 아이는 지금도 엄마가 무슨 결정을 내려 주기만을 기다리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은 해맑았지만 조금은 어른스러웠으며 깊어 보이기까지 했다.

 

 

 

 

“좋아요. 은수를 보죠. 대신 올 때 아이스크림 사오는 거 잊지 말아요.”

“군것질로 생활비를 다 쓰고 있는 시누와 올케라. 어머니한테 야단맞을 텐데. 살림을 잘 살지 못한다고.”

 

 

“그까짓 아이스크림 얼마하지도 않는 걸요.”

“오늘만 먹으면 괜찮지만 우린 거의 하루를 건너 먹고 있는 게 문제죠.”

 

 

 

그게 생활비에서 얼마나 많은 비중을 하고 있는지 이 철없는 아가씨는 알지 못한다. 하긴 자신의 몸만 챙기고 살면 되는 나이니까. 나이? 겨우 두 살 차이인데 누구는 생활을 걱정해야 하지만 누구는 생활이 아닌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게 차이점인 거 같았다. 아가씨와 결혼 한 여자의 차이점이라는 것은······.

 

 

 

 

“은수는 언제 일어나요? 할머니는?”

“그건 두 사람마음인데 내 생각엔 운이 좋으면 한 시간 정도는 더 잘 거 같으니까 조용히만 있어요. 내가 없다고 또 깨돌이와 신경전 벌이지 말고. 깨돌이와 또 한 번 싸우면 이번에는 두 사람까지 일어 나 문제가 많아진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네요.”

 

 

 

 

지영은 깨진 화분을 비롯하여 흙들을 옆으로 치우고선 짓이겨져 버려야 할 노란 국화를 손에 집었다.

 

 

 

 

“참, 그 국화는 다음 주 화요일까지 해결 해 줄게요.”

“화요일?”

 

 

 

지영이 화요일이란 말에 눈꺼풀을 아래로 내렸다가 위로 올라갔다. 화요일이란 말에 인주는 무척이나 힘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아르바이트 시작해요.”

“아르바이트! 하기 싫다면서. 당분간은 할 마음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랬어요. 그런데 여기서 조금만 더 놀다가는 가족들한테 왕따 당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상한 외계인 취급받을 거 같아서 돈을 벌기로 했어요.”

 

 

 

지영은 치아를 조금씩 드러내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식으로 날 기특한 표정으로 볼 것은 없어요. 용돈이 궁해서 그래요. 무슨 계집애들이 생각 없이 돈을 잘 쓰는지, 부잣집 계집애들만 온 거 같아요. 엄마가 주는 용돈만으로는 부족해서 그러는 거예요.”

 

 

 

 

지영은 남아있던 치아까지 다 드러내면서 인주를 향해 웃어 주었다. 이기적이고 철없는 망둥이는 마지막에 가서는 늘 계산도 확실히 해 나갔다.

 

 

 

“정말 그렇게 웃지 말라니까요. 이번 시험, 그다지 잘 친 거 아니거든요. 미팅한다, 소개팅을 한다, 그것도 모자라 나이트클럽에 가서 많이 놀았거든요.”

“······!”

 

 

 

이건 안 되는데······.

 

 

첫 등록금도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장학금은 받고 들어 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시험을 잘 치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을 시어머니인 강 여사가 안다면······. 지영은 환하게 웃던 치아를 거두어 들였다.

 

 

 

“그렇다고 또 금세 햇빛에서 먹구름으로 변하다니. 정말이지 감정변화가 심한 것은 못 말려.”

“정말 시험을 못 친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요. 옷도 잘 입고, 꾸미는 것도 잘 하지만 또 공부도 열심히 하는 애들이 많아요. 그것을 몰랐어요. 한 학기를 지나면서 조금씩 알게 된 거예요. 많이 놀았으니까 이젠 공부를 해야죠.”

 

인주의 야무진 말에 지영은 또 다시 소녀처럼 환하게 웃어 나갔다.

 

 

 

 

“정말 못 말려. 감정에 확실한 여자, 그 여자는 이지영! 이지영의 매력은 그때그때 감정에 충실한 거. 그래서 윤인혁이란 이성적이고 자신의 감정을 잘 보이지 않는 남자도 이런 이지영의 사랑 앞에는 넘어질 수밖에 없었나?”

 

 

윤인혁! 인혁이란 말에 지영은 수도가 있는 곳으로 가 손을 헹구고선 주방으로 향했다.

 

 

 

주방으로 향하다가 곁눈으로 들어오는 연수가 보였다. 연수는 무엇을 하는지 개어놓은 수건들을 가지고 모양들을 만들어 나갔다. 워낙 대가족이다 보니 수건을 씻어도 한 바구니였으며 지금처럼 층층으로 쌓아 올려 두었는데 연수도 아이는 아이였는지 하나씩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연수도 사고를 치긴 하네요. 어린 아이치고는 워낙 조용하고 사고를 치지 않아 저 아이가 몇 살인지 궁금할 때가 있었거든요.”

 

 

 

인주도 지영의 눈을 따라 연수 곁으로 다가 왔다.

 

 

 

“연수는 오빠를 많이 닮았어요. 은수는 언니를 많이 닮았는데 연수는 오빠를 보는 거 같아요.”

“아가씨 눈에도 그렇게 보여요? 보는 사람들마다 인혁 씨를 많이 닮았다고 하네요. 난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말들을 하니까 닮긴 닮았나 봐요.”

 

 

“눈매도, 입술 선도. 그래서 아이치고는 이성적인 아이인가?”

 

 

“이성적인 아이?”

 

 

그 말에 지영은 연수의 곁으로 다가 가 손을 꼭 잡았다.

 

 

 

“연수야, 혼자 노는 거 심심하지? 아빠한테 갈래?”

“아······빠!”

“응. 아빠!”

 

 

 

 

연수는 저녁 늦게 들어오는 인혁을 누구보다 좋아했다. 안아주면 입술을 만지고,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체취를 느꼈으며 자신의 아빠임을 느끼려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약속이라도 한 듯 부녀는 눈을 마주보며 제법 오랫동안 마주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오빠, 은수보단 연수를 더 예뻐하는 거 맞죠?”

 

 

 

 

인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영은 얼른 인주의 입을 막았다.

 

 

 

“그런 말은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지금 아이가 잔다고 해서 듣지 못하란 법은 없어요. 혹시나 기억너머에 그 말이 들어간다면······.”

 

 

 

지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우리 엄마도 나보다는 오빠를 더 예뻐하는 걸요. 그거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그렇다고 다른 감정은 없어요. 그래서 나도 느낀 걸 그대로 얘기했을 뿐이에요. 자식이라고 다 똑같이 예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안 돼요. 그런 위험한 말은. 그리고 어머니도 표현의 방법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굴 더 좋아하고 누굴 조금 좋아하는 거. 그런 것은······없어요.”

 

“피, 괜히 우리 엄마 편을 들기는. 우리 엄마 강영자 씨를 모르세요? 결국 조선시대의 여인이죠. 아들이 우선이며 그것도 장남만이 전부이죠. 나와 언니는 딸이니까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걸요.”

 

인주의 말이 맞다는 거 알고 있었다. 아들! 장남!

 

 

 

그러니까 강영자란 여자도 털털거리며 좋은 시어머니였지만 결국은 아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이 시대의 소박하면서 단순한 어머니였다. 아들이 좋고, 장남이 좋고. 그래서 그 아들에게 은근히 뭔가를 더 기대하는 눈빛이었으니까.

 

 

“왜 말이 없어요? 언니도 인정하는 거잖아요.”

 

 

 

아들이란 말에 지영은 두 딸로만 안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으며 벼락이 치는 그 이상으로 머리를 치며 지나가는 무서운 소리가 들렸다.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무게감이 짓누르고 있었으니까.

 

 

 

 

거기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연수를 낳고, 또 연이어 은수를 낳았지만 전혀 미안한 마음도 없었다.

 

 

 

 

그런데 인주의 말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아들에 대한 강박관념이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들! 아들! 아들······. 아들은 어떤 존재인 것일까.

 

 

 

아들은 무엇일까. 왜 아들을 낳아야만 하는 것일까. 이 시대에도 아들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결혼이란 제도 앞에서는 이해나, 상식보다는 그녀들이 살아 온 그 방식대로 가는 것이 더 빨랐다.

 

 

 

“나도 아들을 낳아야 하는 걸까요?”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인주의 귀에는 들렸다. 이번에는 인주가 지영의 입을 막고 싶었다. 방에서 자고 있는 은수보다 더 가까이 듣고 있는 연수가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 연수는 눈을 뜨고 있었으며 지영의 얼굴 표정까지 보고 있었기에 인주는 괜히 엉뚱한 말을 했다며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고 있었다. 연수는 지영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신 수건을 만지작거리면서 지영이 잡고 있는 손도 만졌다.

 

 

 

 

“왜 얘기가 그렇게 돌아가는 거죠? 빨리 김밥이나 준비하는 게 어떨 까요? 이러다가 해 넘어가겠어요. 그러다가 오빠의 밥시간을 놓치면 그 김밥은······.”

“김밥! 그렇지 지금은 김밥을 말아야지. 인혁 씨는 내가 만든 김밥이라면 한 자리서 세 줄은 먹으니까요. 연수야, 김밥 말아서 아빠한테 가자.”

 

 

 

지영도 잠시 감정의 늪에 빠져 있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리면서 연수를 꼭 안았다.

 

 

 

“연수야, 엄마가 잠시 이상한 나라에 갔다 왔거든. 그건 잊을 거야.”

 

 

 

앞으로는 아들만이 아닌 우리 연수처럼 예쁘고 똑똑한 여자가 이 세상을 이끌어 갈 거란 말까지 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속에서만 맴돌았다.

 

 

“예쁜 옷 입자. 원피스 입을까?”

 

 

 

연수가 눈동자를 깜박거리며 지영을 바라보자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어쩜 웃는 것도 요렇게 예쁠 수가 있는 거지?”

 

 

 

 

 

지영은 연수의 입술을 만졌다가 그것만으로 양이 차지 않아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었다.

 

 

 

“사랑 행각은 나중에 모여 세 사람이 함께 하고 지금은 김밥을 말아야 한다니까요. 오빤 제 시간이면 밥을 먹을 텐데.”

 

 

 

 

시간적으로 벌써 세 시가 넘어있었다. 지금 김밥을 말아 학교까지 간다고 해도 시간은 겨우 맞춰 질 지경이었기에 인주로선 연수에게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지영을 바라보며 웃고만 있었다. 어느 쪽을 바라보아도 행복해 보이는 두 모녀였으니까.

 

 

 

 

지영은 연수의 얼굴을 쓰다듬고선 주방으로 향했다. 사랑이 담긴 김밥을 말아 남편이 있는 곳으로 빨리 가고 싶었다. 김밥도 말고, 남편도 보고. 지영의 얼굴이 환하게 펴져 나갔다.

그녀는 이 시간들이 행복했다. 아이가 있어 좋았고, 남편이 있어 좋았고. 또 착한 시누가 있어 좋았다. 행복감이 온 몸을 타고 흘러감을 느꼈기에 김밥을 말아가고 있는 시간도 도깨비가 방망이를 휘둘러 가듯이 빨라져 갔다.

 

 

 

 

지금은 행복이었으니까.

 

 

 

 

 

***

 

 

연수의 발걸음은 아이의 발걸음이라 하기엔 너무나 빨랐다.

 

 

 

오랜만에 바깥출입을 한 것이 원인인 것인지, 아니면 이 아이의 원래 기질 탓인지 모르지만 지영은 뛰다시피 했다.

 

 

은수를 데리고 오면 안아서 가야 했지만 연수도 다르진 않았다. 조금 안았다가 내려놓으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어떻게나 속력을 내며 달려가는지 지영의 이마와 콧등엔 땀방울이 송송 맺혀 갔다. 그것을 아는 것일까. 연수는 지영을 쳐다보았다가 이내 주위를 쳐다보면서 소리 내 웃으며 가고 있었다.

 

 

 

 

“연수야, 조금만 천천히 가자. 너무 빨라. 엄마가 네 속도에 따라가지를 못하겠어.”

 

 

 

지영이 뭐라고 하자 연수는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지영을 향해 또 한 번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리 연수는 여기가 좋구나. 이 학교가 마음에 드는 구나. 다음에 우리 연수도 이 학교에 오자. 여긴 아빠가 다니는 학교란다.”

 

 

 

 

지영은 빠른 걸음과 함께 얼른 연수를 업고선 정문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혼자 오면 버스에서 내려 조금만 올라오면 되지만 아이가 있다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을 들게 만들었다.

 

 

 

“좋긴 좋네.”

 

 

 

지영은 연수를 업은 채 학교를 향해 걸으면서 주위를 쳐다보고 또 쳐다보았다.

낭만, 젊음, 패기, 힘이 넘쳐감이 느껴졌다. 젊고 건강한 대학생들이 옆을 스쳐 지나는 것만으로 지영은 온 몸에서 전율이 느껴져 왔다.

 

 

 

잊고 있었는데····· 여긴 자기와 이제 상관이 없다고 여기며 살고 있는데······.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네. 이제 나는 대학교와 영영 이별인가? 다시는 이곳으로 올 수가 없는 거겠지.”

 

 

 

 

혼자 푸념어린 말을 하면서 걷고 있을 때, 누군가의 얼굴이 보였다. 인혁이었다.

당연히 도서관에 있을 거란 생각에 도서관을 향해 가는데 근처에 있는 잔디에 그가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영은 저물어 가는 태양 속에서도 자신의 남자가 가장 돋보일 수 있다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기분이 좋았으며 얼른 뛰어가고 있었다. 연수를 업은 상태에서 뛰어간다고 했지만 속력은 많이 내지 못했다. 열심히 가고 있는 그 순간에도 인혁의 얼굴은 태양처럼 환하게 빛이 나고 있었으며 옅은 미소까지 여자의 마음을 뛰게 만들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이란 것을 하면서 모든 것이 퇴색되어갔다. 사랑이 그러했고, 불같은 감정들이 그러했다.

 

 

 

 

연애시절만큼은 뛰지 않았으니까.

 

 

 

 

그런데도 가끔 설레게 하는 순간들이 있긴 있었다. 머리를 감고 나와 상큼한 향을 풍기며 씨익 웃을 때가 가슴을 뛰게 만들었으며 잘 차려 입은 옷은 아니지만 몸에 꽉 끼는 청바지와 거기에 어울리는 블루 색상의 티셔츠를 입은 채 서 있을 때 다른 눈빛이 되게 만들었다. 마당에 서 있는 그 순간도, 방에서 책을 챙기고 있는 그 순간들도······.

 

 

 

 

또 있다면 책에 열중하는 모습들일 것이다. 그건 누구나 할 거 없이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인상을 약간 쓰듯이 어딘가에 열중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매력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으며 아이들만 없다면 단숨에 그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만들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순간의 감정들이지만······.

지금 지영의 마음이 순간적으로 들뜨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으니까.

 

 

 

 

그의 옆으로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가고 있을 때, 자신보다 더 빠른 발걸음이 있었다. 긴 머리의 어린 여자가 인혁의 옆에 앉았다.

지영은 한 걸음, 또 한 걸음을 천천히 걷다가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춰 버렸으며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들! 그들이란 단어를 생각하자 지영의 눈동자는 한 곳으로 향해 있을 뿐이다. 인혁을 향해서.

 

 

 

 

인혁은 긴 머리의 젊고 건강한 여자가 옆으로 다가오자 아주 반가이 맞아주면서 눈웃음을 지어보이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눈웃음! 저 선하고 편안한 웃음은······약간의 설렘이 있는 웃음은 오직 이지영이란 여자만을 향해 웃어주던 그 웃음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 남자는 이지영이 아닌 다른 여자를 향해 웃고 있었다. 그것도 그 여자를 향해 웃고 있는 웃음은 누가 보아도 설렘이 담겨 있었다.

 

 

지영은 인혁을 보다가 여자를 보았다.

 

 

 

 

 

 젊고 건강미가 온 몸에서 느껴져 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같은 여자가 보기에도 그녀는 아름다웠으며 짧은 스커트 아래로 쭉 뻗은 각선미는 부럽기까지 했기에 눈을 뗄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인혁과 몸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면서 가방에서 무엇인가 꺼내고 있었다. 가방에서 나온 것은 도시락이었으며 여자는 잔디에 도시락을 비롯해서 음료수와 보기 좋게 담은 과일들도 풀고 있었다.

 

 

 

 

 

지영의 눈동자는 놀라고 당황스러움에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지만 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김밥을 젓가락에 집은 여자는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인혁의 입을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의 젓가락이 인혁의 입 근처에 머물었으며 인혁은 잠시 여자를 바라보는 가 싶었는데 이내 여자가 주는 김밥을 서슴없이 받아먹었다.

 

 

 

“······당신!”

 

 

 

 

지영은 당신이란 말을 작게 하고 있었지만 이내 온 몸에서 힘이 풀려갔으며 손에 들고 있는 모든 것은 다 내려놓았다. 그 속에는 연수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르르 풀려 나간 감각 없는 손에서 연수는 본능적으로 발을 땅에 밟았으며 그 다음으로 한 것은 인혁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연수의 눈에도 아빠인 인혁이 보인 것은 자연적인 본능이었으니까.

 

 

 

 

 

아빠! 아······빠!

 

 

 

 

연수의 목소리는 그 어느 날보다 컸으며 빠르게 빠르게 인혁을 향했다.

같은 시각, 같은 공간!

 

 

 

어디선가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아빠라는 소리였으며 그 음성은 늘 듣던 익숙한 소리였기에 인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거리에 지영이 서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자신의 품속에 안길 것처럼 달려오는 연수의 모습도 보이자 인혁은 적지 않게 당황하는 눈빛이었다.

 

 

 

 

“아빠!”

 

 

 

 

연수는 반가움에 어느 새 인혁 근처까지 갔지만 인혁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태에서 어설픈 자세로 서 있었다. 물론 그 옆에 있던 여자도 함께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으며 연수와 표정 없이 서 있는 지영을 쳐다보다가 인혁을 향했다.

 

 

 

 

“누구? 이 아이, 선배가 아는 아이인가요?”

“······응. 그게······”

인혁은 눈망울을 말똥거리며 안아달라는 눈빛으로 위를 향하고 있는 연수를 보다가 지영을 쳐다보았다.

 

 

 

 

“저 여자는 또 누구죠?”

“······지영아.”

 

 

 

 

 

인혁은 멍한 듯 표정 없이 서 있는 지영을 향해 이름을 불렀지만 지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연수만이 인혁의 두 다리를 붙잡은 채 안아달라는 눈빛만 보이고 있었다. 인혁은 지영을 쳐다보다가, 또 연수를 한 번 쳐다보다가······ 그리고 마지막엔 세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는 같은 과 후배를 보고 있었다.

 

 

 

“아······빠!”

 

 

 

 

아빠란 말을 듣던 후배란 여자는 어이가 없었는지 인혁을 노려보듯이 쳐다보았다.

 

 

 

 

“선배, 결······혼했어요?”

“······응.”

“이 아이는 선배의 아이······.”

 

 

 

 

 

후배의 말에 인혁은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어쩌면 더 확실하게 이성이란 녀석을 데리고 와야만 했는지 모른다. 몇 몇 친구들을 제외하곤 결혼 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또 찾아다니면서 결혼했다는 사실을 말할 필요가 없었기에 오늘 같은 상황에서 조금은 당황이 되었다.

 

 

 

 

 

 

그러나 인혁은 곧 자신이 한 남자의 남편이란 사실과 두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자신의 양 다리를 잡은 채 눈망울만 말똥거리고 있는 연수를 번쩍 들어앉았다.

 

 

 

 

“연수 왔구나.”

“아······빠!”

 

 

 

 

 

연수가 인혁의 볼을 쓰다듬는 것을 보고선 후배는 도시락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것을 그대로 두고 갔으면 좋겠지만 선배의 도시락은 따로 있네요.”

 

 

 

 

 

지영 발 옆에 도시락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선배와 후배로만 알았으면 좋겠어요.”

 

 

 

 

 

선배와 후배? 저 말이 가시처럼 들렸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선배와 후배가 아닌 다른 관계로 진전이 되었단 말인가. 지영은 야무지게 자신의 소지품을 비롯해서 도시락 통을 챙기고 있는 건강미가 넘치는 여자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비슷한 나이를 가진 여자였지만 한 여자는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대학을 다니는 것도 모자라 아름다움이 뛰어날 정도로 매력 있는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비한다면 한 여자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탓에 몸매도 예전만큼 매력적이지 못하고, 얼굴도 아이들로 인해 영양분이 빠져 나가 푸석거렸다.

 

 

 

 

지영은 왜 이 순간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지 알지 못했다.

 

 

 

 

 

 

 잘나고 잘난 윤인혁의 아내이자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두 딸의 엄마였다. 거기다가 좋은 시댁 사람들과 아직까지는 능력 있는 부모 덕분에 경제적인 지원도 받고 있는 터였기에 스스로 느껴야 할 열등감은 없었다. 물론 남편이란 사람이 스스로 자립을 하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친구들로부터 전화가 오면 한 번씩 마음이 어지러울 때도 있었지만 그건 곧 잊혀졌다. 두 딸의 재롱이 주는 즐거움이 좋았고, 새롭게 매력을 주는 윤인혁이란 남자로부터 아직은 가슴이 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 남자, 윤인혁이란 남자는 아닌 모양이었다.

 

 

 

 

 

 

집에서는 남편과 착한아들, 두 아이의 아빠였지만 학교로 돌아오면 학생이었고, 또 다른 여자들로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다른 여자! 다른 여자가 저 남자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왜 그것을 이제야 알았을까. 다른 여자가 저 남자를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윤인혁! 저 남자는 이지영을 비롯해서 연수와 은수라는 아이만 뺀다면 여전히 잘 나고 멋을 가진 남자였다.

 

 

 

 

 

지영은 이제 손이 아닌 두 다리도 후들거렸으며 발까지 떨려 왔다.

 

 

 

 

인혁이 연수를 안은 채 다가왔지만 지영은 인혁을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다. 그 여자와 웃고 있는 모습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갔다. 잠시 동안 지영을 쳐다보며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지만 서로 간에 어색함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 여자도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인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여자로서도 아직 감정이 정리되지 않았기에 많은 혼동이 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지영은 느꼈다. 저 여자가 인혁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깊은 연인으로 느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였을까.

 

 

 

 

 

 두 사람은 언제부터 이런 관계였을까.

 

 

 

 

김밥을 입에 넣어 줄 정도라면 제법 만남이 이어졌을 것이다. 지영은 멀리가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인혁을 보고 있었다.

 

 

 

 

 

“언제 왔어?”

 

 

인혁은 금세 다른 남자의 표정을 지으며 아까와는 달리 반가운 눈빛을 건네었다.

 

 

“연수 데리고 온다고 힘들었을 텐데. 차라리 택시를 타고 오지 그랬어?”

 

 

아직까지 지영의 콧등에 남아있는 땀방울을 쳐다보며 인혁이 다정스럽게 말을 건네고 있었지만 지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을 날씨치고는 봄날처럼 따뜻하지? 앉자. 계속 서 있으면 다리 아프잖아.”

인혁이 연수를 자리에 앉히고선 발 옆에 있는 도시락 가방을 챙겨 풀어 나갔다.

 

 

 

 

“김밥이네. 내가 좋아하는 커피도 있고.”

 

 

 

 

 

인혁은 김밥을 입 속에 쏙 넣어 맛있게 먹고 있었지만 지영은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정말로 맛이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지금 지영으로선 인혁의 행동들이 낯설어 보였고 어색하기만 했다. 한 번도 이런 감정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권태기? 바람?

 

 

벌써 권태기인가? 아니면 남자로서의 본능적인 바람이 작용한 것일까.

 

 

 

 

“연수는 그냥 주면 안 되는 거지?”

 

 

 

인혁은 자상한 아빠의 모습이 되어 김밥을 잘게 만들어 연수 입 속에 넣어 주자 그대로 받아먹었다.

 

 

“잘 먹네.”

“아빠! 아빠!”

 

 

 

 

연수는 새로운 곳에서 만난 아빠가 반갑고 좋았는지 연신 김밥도, 우유도 잘 받아먹었다.

“정말 잘 먹네. 점심 먹지 않았어?”

“이 시간에 점심 먹을 시간은 아니야.”

 

 

 

 

시간적으로 보면 곧 태양은 제 집으로 들어 갈 시간이었다. 그나마 날씨가 좋아 아직까지 학교 교정에는 환하게 남아있는 햇빛이 세 사람의 머리맡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그렇지. 너도 배고플 텐데 어서 먹자.”

 

 

 

인혁은 지금 이 순간, 지영의 눈이 가장 무서웠다.

 

 

 

 

 

가장 사랑스러운 눈은 생글거리며 아빠라며 자신을 쳐다보며 얼굴을 만지고 있는 연수였지만 지금까지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계속 침묵만 지키고 있는 지영의 어두운 얼굴이었다. 간혹 말을 하고는 있었지만 사무적인 말투였기에 인혁은 점점 두려움이 느껴져 왔다.

 

 

 

 

 

“같은 과 후배야.”

“김밥, 다 먹으면 갈 거니까 어서 먹었으면 좋겠어.”

 

 

 

여전히 말투는 차가웠으며 사무적이었다.

 

 

 

“걔가 날 많이 따르고 있어. 귀엽기도 하고, 또 애교가 많아서······.”

 

 

 

 

애교!

 

 

애교란 말에 지영의 양 미간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이 말만 나오지 않았다면······ 많이 따른다고? 애교가 많다고?

 

“윤인혁이 결혼 한 사실을 모르는 거 같더라.”

“그게······그렇게 되었어. 곧 말해야지.”

 

 

 

 

 

 

인혁은 힘들게 말을 하면서 자신의 머리를 긁적거려 나갔다. 그러나 지영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해 나갈 뿐이다. 이성적인 윤인혁과 감정적인 이지영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이지영이 너무나 이성적이었으니까.

 

 

 

여긴 학교였기에 감정대로 행동할 수도 없었는지 모른다. 또 누군가가 이쪽으로 관심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영은 조심스러웠다. 거기다가 가장 중요한 연수도 있었기에 행동은 더욱 조심스러웠다. 딸 앞에서 싸움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기억은 어디까지 저장되는지 모르지만 나쁜 기억은 아무리 어리고 어린 딸이라 하더라도 심어주고 싶지 않았다. 만약에 연애시절이라면 꼬치꼬치 캐묻고 따져 들었을 것이다. 그 여자를 좋아 하느냐고······.

 

 

 

 

 

 

그러나 엄마가 되었다는 거, 결혼을 했다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도 길러주는 모양이었다. 지금 지영이 그러했다.

 

22살!

 

 

어리다면 어린 나이일 수도 있지만 이미 결혼을 했고, 두 딸의 엄마라는 사실만으로 이성적인 인혁을 앞지르고 있었다.

 

 

 

 

“커피도 마셔.”

지영은 커피포트에 있는 커피를 부어 건네었다.

 

 

 

 

 

“넌 마셨어?”

“아니.”

“너야말로 이 시간에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면 마시고 싶을 텐데. 이거 마셔.”

인혁은 한 모금 마신 커피를 지영에게 건네었다.

 

 

 

 

 

“먼저 마셔. 나는 조금 있다가 마실게. 지금은 마시고 싶지 않아.”

“하루에도 수없이 커피를 마셔야만 힘이 솟는 다며. 그러니까 마셔.”

 

 

인혁은 커피를 부어 지영에게 내밀자 지영도 묵묵히 받아들였다. 커피를 마시긴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감정들이 새롭게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함께 있었는지 모르지만 인혁의 몸에서 색다른 향수 냄새가 나고 있었다. 거의 스킨이나 로션 같은 것은 바르지 않기 때문에 지영은 인혁의 냄새를 알고 있었다. 인혁의 냄새는 비누 냄새와 샴푸 냄새만이 전부였다. 같은 비누를 쓰고, 같은 샴푸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냄새는 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다른 냄새가 코끝을 자극해 왔고, 또 다시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 시간, 이 남자는 이방인 같았다. 이방인!

 

 

 

 

 

왜 이 시간에 이 남자의 모든 행동들은 하나같이 낯설어 보이고, 다른 남자와 앉아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일까. 전혀 느끼지 못하던 새로움이었다.

 

 

 

 

새로움이 이런 식으로 부각된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 이건 위험한 것이니까.

 

 

“다 먹었어? 그러면 먼저 갈게. 연수야, 집에 가야지.”

인혁의 무릎에 앉아 있는 연수를 안으려 하자 인혁이 지영의 손을 잡았다.

“조금 더 있다가 가. 데리러 줄게.”

 

 

 

 

같이 가자는 말도 아니다, 데리러 주겠다고 한다. 지금 윤인혁이란 남자에겐 공부가 전부이니까. 그래야만 하는 거니까. 그것을 알지만 지영으로선 섭섭함이 가슴 가득히 들어왔다.

 

 

 

서서히 잘 참았는데 결국 감정이 앞서고 있었던 것이다.

 

“연수하고 걸어서 내려가면 돼.”

“버스 타는 곳까지 가려면 제법 가야 하니까 거기까지는 데리러 줄게.”

 

 

 

 

인혁은 남아있던 김밥과 김치를 얼른 먹어 나갔으며 식어가는 커피도 단숨에 다 마셨다.

커피를 다 마시고, 가져 온 사과를 먹고 있을 동안에 지영은 도시락 통을 챙겨 가방에 넣고만 있었다.

 

 

 

 

“김밥, 맛있다. 역시 김밥은 이지영이 만든 게 최고야.”

“······.”

 

 

 

역시 감동은 오지 않았다. 겉치레적인 말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제 윤인혁은 남의 귀를 즐겁게 하는 방법도 사용할 줄 안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자꾸만 눈이 이상해져 갔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릴 것만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나갔다.

‘이지영, 울지 마. 여기서 울면 얼마나 자신이 초라해 지는지 알고 있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미 눈물은 속눈썹을 촉촉하게 만들어갔으며 반쯤 젖어 든 속눈썹이 무겁게만 느껴졌다.

 

 

 

 

‘울지 마.’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지는 그 시간까지도 지영이 할 수 있는 것은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눈물은 눈 안에서 맴돌고 있는 모양이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되어 쏟아질 것만 같았으며 젖어 든 속눈썹사이로 뭔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갈게.”

“나중에 보자.”

 

 

 

 

인혁은 연수를 지영의 품에 안기게 하고선 버스에 타게 했다.

 

 

 

 

 

“오늘도 늦어?”

“응. 다음 주 화요일까지 시험 있는 거 알고 있잖아. 가장 중요한 시험이라서 집에 가더라도 새벽녘이나 되어야 들어갈 거 같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

“왜?”

 

 

 

 

 

이미 지영의 볼을 타고 눈물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이미 시작된 소나기 같은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으며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모여들었지만 지영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눈물은······눈물은 쏟아지기 시작했으며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

 

 

 

방으로 들어 온 지영은 침대에 머리를 파묻은 채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는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기는 처음이었다.

밖에서는 문을 열어 달라고 했지만 방으로 들어서면서 바로 문을 잠궈 버렸기에 김 여사는 문을 열라고 했다.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연수를 안은 딸이 훌쩍거리며 이층으로 올라가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지영은 말 대신 방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 다음으로 그녀가 한 일은 문을 야무지게 잠그는 일이었다.

 

 

 

 

 

연수는 계속 훌쩍거리며 울고 있는 엄마가 이상해 보였는지 지영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곧 따라 울기 시작했다. 평소의 예쁜 엄마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금 엄마의 얼굴은 빨갛다 못해 시퍼런 힘줄도 간혹 보였기 때문에 연수로선 낯설고 엄마가 아니란 생각만 들었다. 거기에 눈은 서서히 부어갔으며 아이처럼 소리 내 우는 것은 더욱 이상해 보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엄마가 울고 있다는 거, 그것도 서러움에 쌓여 울고 있다는 것이 연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에 따라 울기만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연수까지 울리지 마.”

“연수?”

“그래. 연수는 이리 내 보내.”

 

 

 

 

지영은 그제야 자신을 따라 울고 있는 연수의 얼굴이 보였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있는 연수를 보자 지영은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아 주고선 문을 열었다.

 

 

 

밖에는 김 여사를 비롯해서 함께 따라 온 인혁도 서 있었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 오른 것까지는 기억했지만 그 후로는 한 번도 인혁을 쳐다보지 않았다.

가방을 들려고 하는 남자의 손길을 거부했으며 딸을 안겠다는 그 손길마저 거부했다.

버스에서 한 번도 눈길을 마주치지 않음은 물론이었으며 내려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도 같이 동행하는 부부가 아니었다. 인혁이 옆에 서면 지영은 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고,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면 귀를 막았다.

대문 앞에 도착해서 지영이 한 말은 돌아가라는 말이 전부였다.

 

 

 

 

그리고 지영은 연수를 꼭 안은 채 문을 열고 들어섰으며 이내 이층으로 향해 뛰어 올라 간 것이다. 문을 열고, 문을 잠그고,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왜 우는 것일까. 왜 목청을 높이며 우는 것일까. 왜 친정으로 온 것일까.

 

 

 

 

 

오다보니 온 곳이 친정이었다. 친정이 가까워지자 서러움은 더욱 커져갔으며 걷잡을 수가 없었다.

 

 

 

 

“결혼 한 여자가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그것도 애를 데리고 보여서는 안 될 모습까지 보이다니.”

 

 

김 여사가 방으로 들어서며 연수를 안고선 눈물을 닦아 주었다.

“몰라. 몰라. 이건 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니야.”

 

 

“그럼 네가 원하는 인생은 어떤 거니?”

“나도 몰라. 하지만 이건 아니야.”

 

 

 

 

오전까지 행복했다. 인혁을 만나러 가는 그 순간까지 행복했다. 인혁을 위해 김밥을 말고, 아이를 씻기는 그 순간까지는 행복한 여자였다.

 

 

 

그런데 그 행복한 감정은 이젠 없었다. 학교를 가서 지영은 철저하게 보고 깨져 온 것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하지만 저 남자는 바람을 피운 것이다. 바람? 사랑? 사랑일지도 모른다. 사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힘들게 하면서 입술을 꼭 깨물었다. 가만히 있으면 입술이 덜덜거리며 떨릴 것만 같았기에 깨물기라도 해야만 했다. 부정하기 싫었지만 저 남자도 바람을 피울 수가 있구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쳐다보며 색다른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알아버린 것이다.

 

 

 

 

그 여자, 참으로 상큼하면서 예쁘게 생긴 여자였다.

 

 

 

그 여자의 눈은 인혁을 좋아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이젠 선배와 후배의 관계로만 지내야겠다는 말도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에 대한 마음이, 사람에 대한 감정이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니까.

 

 

 

 

“이······혼 할 거야.”

“······!”

 

 

 

김 여사는 연수의 눈물을 닦아 주다가 이 무슨 황당한 소린인가 싶어 지영을 쳐다보았다.

 

 

 

“결혼 한 거, 후회해. 저 남자를 사랑한 것도.”

“그 입, 다물어. 연수가 다 듣고 있어. 아직 말도 잘 못하고, 감정 표현이 어눌하다고 모르는 거 같지? 더욱 이런 감정들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더 빨리 아는 법이야. 그러니까 입 다물고 정신부터 차려.”

 

 

“내 정신은 멀쩡해.”

 

“정신이 멀쩡한 어미가 자식 앞에서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게야? 감히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을 입 밖으로 꺼내다니. 그것도 딸자식 앞에서.”김 여사는 언제 들어왔는지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 온 세영에게 물을 가져 오라고 했다. 세영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느꼈기에 얼른 주방으로 가서 물을 들고 왔다.

 

 

 

 

“마셔.”

 

 

 

김 여사가 내미는 물을 단숨에 다 마신 지영은 한 컵을 더 마셨다. 그 사이에 김 여사는 지영의 얼굴을 보다가, 밖에 서서 들어오지도 못한 인혁을 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것으로 보였으며 제법 큰 일이 일어났음을 느꼈다.

 

 

 

 

간혹 투덜거릴 때도 있었지만 늘 그 순간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사랑한 딸이 20살에 엄마가 되어 살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는 어미의 심정도 편하지만은 않았지만 사위인 인혁이 듬직했고, 또 시댁 식구들이 좋은 사람들이었기에 그나마 조금은 안심을 하고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거기서 거기였지만 그래도 시부모가 제대로 된 사람들이었고, 부담이 있지만 시누들과도 나름 잘 지내는 것으로 보였다.

 

 

 

 

 

“이 시간, 어디서 오는 길인지 모르지만 빨리 집으로 돌아 가. 돌아가서 저녁 준비를 해야지.”

“엄마는 내가 밥 짓는 사람이야? 내가 없으면 한 끼도 먹지 못해?”

 

 

 

 

지영의 목소리가 커져 나갔다.

 

 

 

“목소리 낮춰. 연수 놀란다.”

“엄마는 연수만 보이고 나는 안 보여?”

“······.”

 

“이렇게 살려고 결혼 한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없어. 이지영은 없어.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거 같아.”

 

지영의 목소리는 조금 전과 달리 작아져 갔다.

 

 

 

“엄마!”

 

 

지금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는 어린 소녀가 속삭이듯 불렀다.

“연수와 은수는 언제쯤 내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거지? 언제쯤이면 두 아이는······.”

 

 

“많은 시간들이 걸릴 거다.”

 

 

“그렇겠지? 엄마도 그렇게 했으니까. 엄마도 오랜 시간을 우리한테 헌신했으니까······.”

 

 

 

 

“자식은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야만 제대로 성장을 할 수 있단다. 그 사랑과 정성에는 인내라는 시간이 가장 많을 거니까.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야?”

김 여사는 지영을 잠시 쳐다보다가 밖에 서 있는 사위인 인혁을 보면서 지영이 왜 그러냐는 듯 시원한 대답을 듣고 싶어 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주위의 사람들을 걱정을 하게 만들었지만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잘 살아 주었다. 가끔 학교에 대한 그리움을 얘기하곤 했지만 곧 연수와 은수의 재롱에 흠뻑 빠져서는 잊어갔다.

 

 

 

 

김 여사는 그런 딸이 안쓰럽고 안 되어 보이긴 했지만 이미 선택한 인생이었다.

 

 결혼을 했고,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생겼고, 또한 이젠 인내라는 시간으로 사랑과 정성으로 키워야 하는 두 딸이 있기 때문이다. 또 어쩌면 아들이란 녀석을 하나 더 낳아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인혁이 경제적으로 자립되지 않았으며 또한 두 딸로 인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이 시대가 아들을 원하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김 여사는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지영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현실적인 문제가 되리란 것을 이미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내색을 하지 않았다.

 

 

 

설마하니 벌써 아들문제로 싸우진 않았을 것이다.

 

 

 

 아들 문제인가? 딸 가진 어미의 조바심은 엉뚱한 발상을 하고 있기에 충분했다. 인혁이 장남이니까.

 

 

 

‘아니겠지. 아직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무슨 일이지? 무슨 일로 지영의 입에서 이혼이란 말이 나오는 것이지?’

 

 

 

 

김 여사는 인혁을 쳐다보며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어 했지만 인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을 뿐이다.

 

 

“언제까지 거기에 서 있을 생각인가. 들어와서 자초지종을 듣고 싶네. 싸웠어?”

“아닙니다.”

아니라는 말과 함께 인혁이 방문을 넘어서자 지영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들어오지 마. 학교로 가. 거기가 인혁 씨가 있어야 할 곳이잖아.”

“조금 있다가 갈게.”

“아니, 지금 가. 지금은 인혁 씨 얼굴보고 싶지 않아.”

“얘기 좀 하자.”

 

 

 

 

인혁은 또 한 걸음을 옮기자 지영의 눈빛이 사납게 변해갔다.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지금은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왜 그러는데? 왜 화를 내는 건데?”

“······!”

 

 

 

 

 

지영은 그 순간 하늘에서 치는 번개소리는 다 듣고 있었다.

 

 

이 남자! 도대체 어떻게 된 남자인 것일까.

 

 

 

 

 왜 화를 내느냐고? 무슨 일이냐고?지영의 눈빛은 멍해져 갔다가, 또다시 정신이 번쩍 들어가는 것을 반복하고 있을 뿐 결과적으로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갔다.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정확했으니까.

왜 그러냐고? 무슨 일로 화를 내느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남자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아내가 왜 화를 내며 열을 올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으며 왜 이혼이란 말을 어린 자식 앞에서 꺼낸 채 눈물을 짓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이 남자가 모르는 것은 사실이니까. 근본적인 문제를 몰랐으니까.

 

 

 

 

“나가.”

“일단 얘기 좀 하자. 화가 난 이유가 뭔지는 알아야겠어.”

“······.”

이유? 화가 난 이유를 물었다. 왜 화가 났느냐고······.

 

 

 

 

 

그 순간 지영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눈에 눈물을 담아가는 것이었다. 담고, 또 담고······.

 

 

 

김 여사가 보았다. 딸의 눈에 눈물이 고여 가는 것을. 무슨 일로 저러는 것일까. 사위인 인혁도 알지 못했다.

 

 

“왜 그러니? 말을 해야지. 연수 아비도 모르는 모양이구나.”

모른다? 모른다? 이 모든 것은 저 남자, 윤인혁이란 남자 때문인데······.

“바······ 바······.”

 

 

 

 

바람이란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딸을 비롯해서 누구보다 딸의 행복을 바라는 엄마가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옆에는 언니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자 따라서 그대로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세영까지 걱정과 궁금증으로 두 눈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이들에게 남편이란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은 말할 수 없었다.

 

 

 

“바? 그게 무슨 말이야?”

“몰라. 나도 모르겠어. 이렇게 살려고 결혼한 게 아니었단 말이야.”

 

 

“얘가 오늘따라 안 하는 짓을 하고 있네. 쓸데없는 투정을 부릴 생각이라면 빨리 연수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 저녁 준비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거 밖에 없지? 밥이나 짓고, 빨래나 하고, 아이나 키우고, 또······.”

 

 

무슨 생각이 왕창 나길 바랐지만 이미 감정이 목까지 차올라 온 상태에서는 다른 생각들은 나지 않았다. 더욱 생각의 한계점을 막고 있는 사람은 앞에서 너무나 태연하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눈빛을 보이고 있는 인혁 때문이었다.

정말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알지만 여기선 얘기하기 싫었을까.

 

 

 

 

 

지영은 그런 인혁이 처음으로 이혼을 하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아내인 이지영이란 여자 말고 다른 여자와 가까이 있는 남자였다. 그 여자가 주는 김밥을 먹고, 그 여자가 건네는 과일을 먹고, 그러면서 그들은 웃고 있었다.

얼마나 가까이 함께 있었으면 낯선 여자의 향수까지 몸에 배이게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이건 배신이었다.

 

 

배신이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자 지영은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조금씩 울먹거려 나가던 소리가 통곡의 소리로 변해갔다.

김 여사가 갑자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지영의 눈물을, 울음소리를 멈추게 하려고 했지만 이미 지영의 얼굴은 서러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서러움이었으니까.

 

 

 

서러움은······ 지영의 마음이었으니까. 지금 그녀는 눈에서 나오는 눈물보다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이 더 아릴 정도로 많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지영이란 여자가 불쌍해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