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그 이름?-
2년 후!
지영의 일상은 늘 바빴으며 무엇을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결혼하고 곧 엄마가 되면서 모든 게 엇갈려 가기 시작했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결혼이란 것은 말 그대로 생활이었으며 살기 위한 전쟁과도 같은 것이었다. 눈뜨면서 시작되는 일상적인 일은 한 여자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만들고 있었지만 그건 결혼한 여자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투정조차 부릴 수 없었다.
거기에 더욱 힘들게 한 것이 있다면 연년생이 되어버린 연수와 은수로 인해 잠시도 두 아이 곁을 떠날 수도 없었으며 개인적인 생활은 가질 수 없었다.
연수를 낳고 친정 엄마에게 잠시동안 맡기고선 학교로 갈 계획이었다.
그러나 뜻밖의 은수 소식은 더 이상 학교로 가지 못하게 했으며 그때부터 사실상 엄마로서만, 아내의 자리만, 한 집안의 며느리 역할만 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손, 누군가의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사람의 계획과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계획은 다른 것이니까.
이 집 사람들은 하나같이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사람들이었다. 인혁을 보면서 느끼지만 그들의 형제도 다르지 않았다. 이기적이다, 나쁘다, 그런 의미와는 다른 그들의 사고방식은 어쩌면 평범한 집에서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가정들처럼 아버지가 돈을 벌고 어머니가 살림을 사는 집도 아니었으며, 또한 재산이 많아 풍족한 생활을 할 상황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배우게 되는 것이라고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작은 시누인 인주도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었고, 막내 시동생인 인수도 자기애가 강했다.
위로 큰 시누인 인선만이 이미 사회생활을 하는 탓도 있지만 누나라는 점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고 있었기에 휴일이나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소소한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렇다고 생글거리며 친근함을 보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연애시절부터 가끔 집에 놀러오면 왔냐는 눈인사 정도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만의 성격은 그대로였다. 별로 말이 없고, 차가운 듯한 표정은 먼저 다가가기엔 쉬운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다.
결혼은······ 한 사람과 한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결혼하고, 몇 개월 만에 조금씩 이 집 사람들의 성격이나 취향, 또한 음식문제까지 알게 되면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은 지영 자신이었다.
결혼 전에 먹었던 음식들이 이 집 상 위에는 올라오지 않았다. 대부분이 탕이나 찌개종류가 전부였으며 더욱 기겁을 하게 만든 것은 큰 냄비에 숟가락이 다 함께 들어갔다가 나온 다는 사실이었다.
한 사람이 열 번씩만 냄비에 숟가락을 넣는 계산을 했을 때, 식구가 일곱 명이면······ 그 수는 엄청났다. 지영은 따로 그릇들을 올려 보았지만 그들은 그대로 먹는 것이 습관 되어 버린 탓인지 변하지 않았으며 작은 그릇들은 무용지물이었다. 식어서 맛이 없다는 게 그들의 대답이었다.
결혼 전 먹었던 해산물 종류나 상큼한 채소들은 찾아볼 수가 없어 엄마에게 배워 조심스럽게 올려 보았지만 맛을 보는 사람은 인혁과 인선만이었다. 다른 가족들은 비린내가 난다며 몇 번 수저가 오는 가 했는데 곧 그들이 좋아하는 곰탕을 먹기 시작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가족들은 설렁탕이나 곰탕을 비롯해서 고기가 잔뜩 들어 간 찌개를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기름기 많은 비계가 들어 간 돼지고기로 만든 김치찌개였다. 김치찌개! 생각만 해도 지영은 토해 낼 지경이 되었지만 워낙 가족들이 좋아하기에 늘 코를 막고 만들었다.
둘째인 은수를 가지고서는 더욱 입덧이 심한 탓에 제대로 먹지 못해 살은 살대로 빠졌고, 위는 경련이 일어났는지 밤마다, 새벽마다 통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병원에 가면 다른 이상은 없다는 말에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늘 음식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그녀에게 큰 문제였다. 아이를 가지고서 잘 먹어야 했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한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가장이어야 하는 시아버지가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치는 탓에 어쩔 수없이 그만 두었으며 그 후로는 시어머니가 하고 있는 옷 장사를 같이 하고 있었다. 허리를 다친 탓에 무리한 일은 하지 못했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또 그것이 아니라면 하루 종일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 되었기에 결국은 옷가게로 나간 것이다.
약 몇 달 정도 누워 있는 시아버지의 병간호는 그녀의 몫이었으며 일일이 하루 세끼를 만들어 밥상을 올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할 사람이 없었다. 인혁은 학교에 가야했고, 시어머니인 강 여사는 사실상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해야 할 사람은 지영 자신이었다. 며느리이니까. 며느리란 자리는 모든 일을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다 해야만 했으니까.
시할머니가 계시긴 하지만 한 번씩 오고 있는 치매증상이 날씨와 계절에 따라 달라져 갔기에 이미 수준은 아이의 정신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이유식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을 다 먹지만 않아도 되었다. 다른 증상은 양호했기에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없었지만 한 가지 있다면 아이들의 이유식을 먼저 먹어 버린 다는 사실이었다. 연수와 은수의 것이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어쩔 수없이 또 다시 만들어야 했다. 시간은 시간대로 흘러갔고, 몸은 몸대로 더욱 지쳐 가고 있었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혁이 가끔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로서도 할 수 있는 것은 제
한되어 있었다. 그나마 아이들을 봐 주는 일, 세탁기를 돌리는 일, 아이들의 이유식을 먹여 주는 일, 우는 아이를 잠시 안아 주는 일? 이건 하지 못했다. 우는 아이를 돌 볼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이지영은 엄마였으니까. 두 딸의 엄마였으니까.
“엄마! 엄마······.좋네. 내가 불러도 좋고, 딸이 불러도 좋고.”
엄마라는 말만 나오면 지영은 가슴이 뭉클해 졌다. 아무리 힘들고 버거운 시간이 많더라도 두 딸의 입에서 맘마, 맘마라는 말만 나오면 하루의 고된 생활은 금세 잊을 수가 있었다.
지금 두 딸은 기분 좋게 먹고 낮잠을 자고 있었으며 그 시간에 지영은 자신의 감각을 잊지 않기 위해 짧게나마 일기를 쓰고 있었다.
꿈은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아직 학교로 돌아 갈 여건은 되지 못하지만 아직 완전히 꿈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학교도 돌아가고, 또 학창시절부터 간절히 원하던 동화작가도 되고 싶었다.
“동화작가? 지금 마음 같아서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 그것도 20살에 엄마가 되어 벅차게 살아가는 이지영이란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벌써 10년 정도는 살아버린 거 같으니까.”
10년이란 숫자를 얘기하면서 지영은 자신도 모르게 휴 하며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작은 방, 돋보이지 않는 살림살이들이 한층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처음 신혼을 이 방에서만 시작할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다 잘되리라 생각했다. 1년 후에 분가도 하고, 또 학교도 다니고······. 지영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또 한 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22살의 여자가 서 있었다. 분명히 22살의 여자다.
그러나 화장기 없이 서 있는 여자는 22살의 여자보다 훨씬 더 나이 들어 보였다. 언제 화장이란 것을 했을까. 언제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멈추었을까.
지영은 거울 앞으로 다가 가 자신의 얼굴을 매만져 보았다. 가을이란 날씨 탓도 있지만 매끄럽지 못한 피부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매일매일 밥 짓고, 빨래하고, 또 반찬 만들고······.
또 밀린 빨래들을 하고, 아이들을 돌봐야 하고······.
“계절이 가을이라 그런가. 자꾸만 푸념이 나오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는 것인데. 동화작가? 소설가? 둘 다 매력이 있긴 있네. 하지만 동화작가로 가기엔 내 마음이 너무 퇴색되어 버렸어. 이젠 예전처럼 하늘이 예뻐 보이지도 않고, 또 마음도 예쁘지 않아. 푸념을 곧 잘하는 이지영이 되어 버렸으니까.”
혼자 넋두리를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따뜻함이 느껴져 왔다. 연수가 언제 일어났는지 지영 옆으로 다가 와 지영의 다리를 잡고 있었다.
“엄······마!”
첫 아이라 그런지 아직 발음이 정확하지 못했으며 모든 게 늦었다. 기는 것도, 앉는 것도, 거기에 말하는 것도 늦었다. 나이로 보면 이미 세 살로 접어들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24개월을 지나고 있었으니까. 여자 아이는 대체적으로 빠르다고 했는데 연수는 빠르지 않았으며 스스로 빨리 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지금도 엄마라는 단어 하나도 천천히 힘을 주면서 불렀다.
엄마! 엄마라고······.
그러나 정감 있는 음성이었기에 지영은 고개를 돌려 연수를 안아 올렸다.
“언제 일어났어? 좀 더 자지 그랬니?”
연수는 지영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대며 말로써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마음껏 나타내고 있었다. 손으로 입술을 만져 보기도 하고, 코도 잡아 당겨보고, 뺨을 어루만지는 일도 잊지 않았다. 매번 하는 일이었지만 오늘따라 연수는 까르르 소리를 내며 웃어 보기도 했으며 입맞춤도 연속적으로 했다.
“이 아가씨가 말만 늦지, 다른 것은 엄청 빠르네. 애정 표현의 농도도 너무 강하고.”
지영은 연수의 몸에서 나고 있는 아기 냄새가 좋아 그대로 꼭 안았다.
“우리 예쁜 연수가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는 큰 집으로 옮겨야 할 텐데. 아니지. 그건 불가능하지만 따로 방이라도 만들어 줘야 할 텐데.”
순간적으로 지영은 한숨을 내 쉬려고 하다가 얼른 멈추었다. 아무리 어리고 어린 딸이라 하더라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엄마의 깊은 한숨 소리부터 시작해서 푸념을 하는 소리까지. 다 들었을 것이다. 지영은 연수를 보면서 자신의 행동에 반성을 해 나갔다.
잔다고 하지만 자식이 듣고 있다는 생각을 해야만 했다. 그게 겉으로 드러나는 말이든, 아니면 속으로 생각하는 감정이든. 아이는, 자식은 알 것이다.
“우리 연수, 착하고 영리하니까 다 알고 있지? 아빠가 학생이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다는 거. 그래서 언제 넓은 집으로 가게 될지 몰라. 연수가 유치원에 들어간 후에도 계속 이 방에서 살게 될 수도 있고, 또 아니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을 여기서 살아야 할지도 몰라. 그래도 연수는 착하고 영리하니까 아빠와 엄마를 이해 해 줄 거지?”
까만 눈동자를 가진 연수는 지영을 쳐다보며 생글거리고 있을 뿐이다.
꼭 다 알아 들었다는 표정 같기도 했다.
“다 알아 들은 거지?”
연수는 눈망울만 깜박거리고 있었지만 지영은 쓸데없는 푸념은 다시는 하지 않기로 또 한 번 마음먹었다. 가족들이 좋아하는 고기라면 열심히 상에 올릴 것이고, 탕도 뭉근히 끓일 생각이었다. 너무 빨리 끓여 내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는 다고 했다.
“좋아. 깊은 맛을 내 보겠어. 그까짓 국 하나 끓이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니? 그래도 두 딸의 엄마인데.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엄······마, 엄······마.”
엄마라는 소리만 하고 있었지만 맑고 맑은 눈동자에선 엄마는 잘 할 수 있을 거란 응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예뻐. 너무 예뻐. 내가 낳았지만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거지?”
지영은 연수가 너무 예뻐 안으려했다.
그때, 그 소리만 들리지 않았다면, 무엇인가 깨지는 소리만 나지 않았다면······ 이 좋은 감정은 그대로 쭉 이어졌을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지?”
연수를 안고 밖으로 나가자 거기엔 두 눈이 휘둥그레 질 정도로 난리가 나 있었다. 학교에 갔다 온 작은 시누인 인주가 씩씩거리며 깨돌이를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빨리 이리 오지 못해. 누가 문 옆에 서 있으라고 했어? 너 때문에 놀라 넘어졌잖아. 이거 어떡할래? 스타킹은 구멍이 났고, 옷은 엉망이 되고······. 난 몰라.”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인주는 남아있는 왼쪽 구구를 벗어 깨돌이를 향해 던지려 하다가 마루에 서 있는 지영을 발견하고선 구두를 아래로 내렸다.
그러나 지영이 본 것은 그게 아니었다.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지만 마당은 그야말로 흩어져 버린 흙과 깨진 화분으로 인해 엉망진창을 떠나 수습불가란 단어만 떠올랐다. 이런 상황을 보고 수습불가란 말이 생겼을 것이다.
깨진 화분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와장창 거리며 난 소리들은 화분이었으니까. 그러나 깨진 것은 비단 화분들만이 아니었다. 깨진 화분들과 그로인해 옆으로 내동댕이쳐진 꽃들은 제자리를 벗어나 볼품없는 모양새를 이루고 있었으며 다 쏟아져 나온 흙들도 이미 제 구실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쓰레기더미로 보일 뿐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지영은 일단 묻고 싶었다. 무슨 일인지, 왜 그러는지 알고 싶었으니까.
“그······게. 깨돌이 때문이에요. 저 녀석은 왜 대문 옆에 서 있어서 들어오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거죠?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 아니, 무서워 한다는 것을 알면서.”
인주는 장독대 뒤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깨돌이를 보자 얼른 뛰어갔다. 그러나 한 쪽 구두가 벗겨진 인주의 발걸음보다 깨돌이의 발걸음이 더 빨랐기에 인주는 깨돌이 뒤만 쫓아가는 꼴이 되고 있었다. 인주는 여기서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만약에 여기서 포기한다면······모든 것은 자신이 다 뒤집어 써야 할 지경이란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으니까.
시험 끝나고 기분 좋게 미팅인지, 소개팅을 했다.
그런데 자신의 이상형과는 너무나 상반되는 남자를 만난 것이다. 눈치가 있는지, 없는지 대충 차나 한 잔하고 일어서려 했지만 밥도 함께 먹자는 말에 정중히 거절하고 돌아서다가 의자에 치맛자락이 걸렸다. 찍하는 소리와 함께 찢어져 버린 치마를 보자 인주는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 감을 느꼈지만 그 남자는 계속 인주의 팔을 잡아 당겼다.
그제야 분노가 솟구치기 시작했으며 남자를 향해 화를 내곤 돌아서서 집으로 달려 온 것이다. 다른 곳을 배회한다고 달라 질 것도 없고, 성격 좋은 이지영에게 사실을 그대로 얘기 할 참이었다.
문제는, 다른 사건은······ 또 일어났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와 소개팅을 받은 것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었듯이 지금 일어 난 일도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치맛자락이 찢어져 나간 것도, 넘어져 옷에 얼룩들이 진 것도······. 그리고 어쩌면 가장 최악이 될 수 있는 마당에 펼쳐진 수습되지 않는 일까지······. 그것은 저 미운 녀석인 깨돌이 때문이었다.
깨돌이만 대문 옆에 서 있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니까.
“너, 거기에 안 서? 셋을 헤아릴 때까지 서지 않으면 진짜 가만 두지 않는다. 하나, 둘, 셋.”
인주가 구두를 들어 깨돌이를 향해 던지려 했다.
“마지막 경고다. 거기 서.”
인주는 서서히 자신의 감정에 취해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란 것을 몰랐다. 지금 들고 있는 이 구두, 누구의 것인지 순간적으로 잊은 모양이다.
구두를 보고 있는 사람은 지영이었다. 수습불가인 마당을 쳐다보다가 뭔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어 눈길을 돌리자 거기엔 생일 선물로 받은 예쁜 구두였다.
한 짝은 흙과 함께 뒤집어져 있었으며 또 한 짝은 인주의 손에 들려 금방이라도 깨돌이를 향해 날아가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러고 보면 옷도 엉망이었다. 옷과 구두는 엄마인 김 여사가 계절이 바뀌면서 선물로 사 준 것이다. 생일선물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가을이란 계절과 함께 기분전환을 하라는 의미에서 백화점까지 데리고 나가 사 주었다.
친정 엄마의 입장에서 딸이 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키울 때는 남부럽지 않게 키웠는데 사는 모습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가끔 한숨 쉬는 소리를 지영은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당당히 하는 것을 누구보다 원한 사람은 엄마였으니까.
갑자기 인생이 바뀌면서 잠깐 중간에서 늦어지고 있었지만 연수를 낳고 바로 학교로 가라고 했지만 철없는 딸은 또 일을 만들었다. 몇 년 터울이라도 두면 좋았을 텐데. 어쩌다가 불같은 감정은 그 순간을 이기지 못하는 것인지 연이어 아이를 낳았다.
은수를 보면 좋고, 딸을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온 다고 했다. 그게 김선희라는 여자의 진심일 것이다. 자신은 시집살이를 했고, 시동생을 돌보면서 한국적인 여인상을 살아왔지만 딸들은 조금은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 딸이 자신과 비슷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다르지 않았다. 딸은 엄마의 인생을 닮아가는 것이 맞는 것일까.
세 딸 중, 가장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딸은 지영이었으니까.
그 딸이 안 되어 보여 시간나면 용돈도 주고, 옷도 사 주고 했지만 그건 무용지물이었다. 연년생을 키우면서 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며 원피스인지 짧은 치마를 입는 것도 무리였다. 거기다가 엉덩이가 꽉 쪼여오는 청바지는 이미 배가 나온 상태였기에 지영 자신이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이 낳고 몸이 한 순간에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청바지를 입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아무리 올리고 또 올려 보았지만 허리도, 엉덩이 부분도 맞지 않았다. 치수를 바꾸어 주겠다고 했지만 그 옷은 결국 인주의 것이 되어버렸다.
가장 몸매가 비슷한 두 사람이었다. 아이를 낳기 전의 지영은 딱 인주의 예쁜 몸이었으니까.
이 집의 가훈인지 가풍은 잘 먹고 열심히 살자였다. 잘 먹는 것은 고기류였으며 잘 살자는 것은 열심히 공부해서 각자 성공하라는 깊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평범한 집의 네 자녀들은 유전인자 덕택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노력의 결과인지 모르지만 하나같이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인선만이 대학을 가지 못했다.
아마도 연이어 동생들이 커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자신은 대학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선택한 길은 여상에 진학하는 것이었으며 그녀의 원대로 은행원이 되었다. 적지 않은 시간을 엄마 혼자 실질적인 가장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선택한 길을 그녀는 후회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조금은 가정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그녀의 바람대로 인혁과 인주, 그리고 인수는 편하게 공부를 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시어머니인 강 여사는 못을 박았다. 등록금이 가장 적게 드는 대학으로 가야 한다고, 또한 대학을 들어가서도 자신의 용돈은 자신이 벌라는 말까지 했다. 다행히 인혁은 적은 등록금은 물론이었거니와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인주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봐 왔지만 너무나 이기적이었으며 철없는 망둥이였다. 속옷 정도는 자신이 해결해도 되었지만 그대로 벗어냈으며 옷도 아무런 곳에나 던져 버렸다.
이 집의 가훈이 그러하듯이 먹는 것은 잘 먹어야 했지만 옷이나 다른 문제에 있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이라면 가장 민감한 부분이 옷이나 액세서리였지만 강 여사는 자신이 팔고 있는 옷들을 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참 멋내기에 관심 가는 젊고 젊은 여대생이 시장에서 팔고 있는 옷들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을 것이다. 가장 멋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인주였다. 거울 앞에서도 한 시간을 소비할 정도로 거울을 친구삼아 살고 있는데 툭하면 팔다 남은 옷을 주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용돈도 직접 벌어 쓰라고 했지만 사립대학의 분위기상, 그것도 여자들만 모여 있는 대학에서 쉽지 않았다.
여자대학!
결국 인주는 여자들만 모여 있는 사립대학을 택했으며 강 여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혼자 원서를 넣어 이 집에선 가장 비싼 등록금을 내고 있는 사립대학을 다니고 있는 셈이다. 사립대학! 여자대학! 그곳은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어떤 곳인지 다 알만한 곳이다.
꾸미고, 또 꾸미며 서로 간에 더 멋있게 보이는 것이 유일한 힘이었을 것이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 간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거, 눈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라면······ 외형상으로 보이는 옷이나 액세서리들이 전부일 거니까.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힘들었는데 또 돈을 벌라고 한다, 인주는 싫었기에 그 해결책을 어느 날부터 지영과 타협했다. 이기적이고 자신밖에 모른다는 것은 다른 쪽으로 머리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시장을 간다거나, 급한 일이 생기면 연수를 봐 주는 것이었다. 비싸고 예쁜 옷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적극적으로 가져갔다.
옷도, 구두도, 핸드백도.
어차피 지금 지영에게 있어서는 그 모든 것들이 그림의 떡이란 표현밖에 나오지 않았으니까. 두 딸을 데리고 높은 구두를 신을 수도 없었으며 또한 몸에 맞지도 않는 청바지를 입을 수는 더욱 없었다. 핸드백도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면 아이들이 필요한 소지품을 챙겨야 했으며 거기에 가장 적합한 것은 말 그래도 큰 가방이었다.
분유부터 기저귀까지 다 넣어야만 했으니까.
몸도 비슷했고, 신발 사이즈까지 비슷한 것이 얄미울 수도 있었지만 지영은 모든 것을 다 주었다. 시집살이를 하면서 살고 있는 딸이 안 되어 보여 사 주기 시작한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제법 한 살림이 되어 있다는 것도 인주가 가져가면서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은 입을 수 없지만 인주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학교생활에 대한 얘기부터 소소한 일상적인 얘기도 이젠 지영이 더 기다려지는 낙이 되었는지 모른다.
두 딸의 재롱이 있어 좋았고, 철은 없지만 젊은 열기를 온 몸에서 내고 있는 인주의 모습도 좋았다. 부러웠으니까. 활기차 보였으니까.
그러나 그 활기참은 가끔 정도를 벗어나 있었다. 지금 인주의 모습은 대책이 서지 않았다.
“죄 없는 깨돌이는 그만 괴롭히고 본인이 벌려 놓은 것이나 수습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지영은 연수를 마루에 내려놓고선 마당으로 내려 와 깨진 화분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누구의 잘못이든 지금은 정리를 하는 게 우선이었으며 빨리 치워야만 했다. 다행히 두 사람, 낮잠을 즐기고 있는 시할머니와 은수는 이 요란한 소리에도 잠을 자는 모양이다. 오늘은 두 사람이 고마웠다. 요란한 소리에 일어났다면 마당으로 내려 와 흙을 만지고, 꽃들을 만지면서 일을 두 배로 만들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호기심 많은 은수도, 또한 늘 심심함을 달고 사는 시할머니인 이 옥분 여사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지금이라도 깨돌이를 친정으로 돌려보내요.”
옆으로 다가 온 인주는 지영의 눈치를 살피면서 계속 깨돌이만 탓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일은 결국 저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깨돌이란 녀석 때문임을 또 강조해 나갔다. 그래야만 자신이 만들어 놓은 죄를 조금이라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깨돌이는 날 지켜주는 수호천사라는 거 알고 있잖아.”
“수호천사? 나한테는 악마 그 이상이에요. 생긴 것도 마음에 들지 않고, 하는 짓도 마음에 들지 않아. 왜 문 옆에 붙어 있는 건데? 얼마나 놀랐는지 알기나 해요?”
“반가우니까 그런 거지. 깨돌이는 잘 지내고 싶어 하잖아. 왜 깨돌이를 미워해? 이젠 정이 들 때도 된 거 같은데.”
인주는 정이란 말에 심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개를 흔들었다.
가까운 거리인 장독대 옆에 쪼그리고 앉아 이쪽을 주시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 없는 얼굴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늘 잠에 취해 있는 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지영과 윤인혁이 결혼하고 얼마 있지 않아 저 녀석이 왔다. 그때는 자그마한 해서 그나마 귀여운 면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커 버려 징그러움도 느껴졌으며 또 무섭기도 했다. 생긴 것은 정말 못생겼으니까.
“저 녀석하고는 절대로 정들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보내요.”
“그건 안 돼. 하루 종일 우리 여자들만 사는 집에 저 녀석이라도 있으니까 안심도 되고, 또 가끔 보여주는 재롱에 웃을 수도 있는 걸.”
“재롱은 무슨 재롱이라고. 내가 보기엔 끔찍하던데.”
“꼬리도 살랑살랑 잘 흔들지. 혹시나 애들이 나 모르게 밖으로 나갈까봐 문 입구에서 나가지 못하게 지켜 주지.”
“······!”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저 녀석이 어느 날부터인가 문 옆에 서 있다는 것을. 그것은 오직 두 아이, 연수와 은수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연수가 돌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났을 무렵에 주방에서 음식들을 만든다고 정신없어 할 때 연수는 마루에서, 마당으로, 그리고 문 앞까지 나갔다. 문이 열리자 연수는 본능적으로 그 문을 열었으며 길을 따라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깨돌이가 연수를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가족 간의 생이별이 생겼을 것이다. 그건 인주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날짜 계산을 해 보면 그때부터가 맞는 거 같았다.
저녁 늦은 시간에 집으로 들어서면 얼마나 사람의 심장을 놀라게 하는지 저 녀석은 모를 것이다. 생긴 것은 불독 사촌쯤 되는 녀석이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은 기겁을 할 정도로 놀랐으니까.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으면 어슬렁거리며 느린 행동으로 자리에서 일어 나 인주의 뒤를 따라 오기 시작했다. 따라오고, 도망가고, 또 따라오고······. 그게 책임감이라고 한다, 지킴이가 되고자 한다고 했다.
인주는 잠시 사람보다 나은 생각을 하고 있는 깨돌이를 보고 있었지만 역시나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이지 정을 주고 싶어도 어쩌면 저렇게 못생길 수가 있는 것일까. 진짜 못생겼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우선 인물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는 말은 깨돌이를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착하고, 의리 있고, 책임감도 있지만 어째 눈은 자는 듯한 표정인 것일까. 매일 봐도 자다 깨어 난 눈이다. 인주는 또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정이 들 것 같지가 않았다.
“화분 세 개 사 와. 똑같은 걸로. 노란 국화까지.”
“······!”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지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부담백배였다. 군것질 할 용돈도 부족한 상황에 화분이라니. 그것도 세 개씩이나 사라고 했다. 더욱 문제는 노란 국화였다.
“국화는 화분에 심으면 살아 날 거 같은데······.”
깨돌이가 도망치면서 발을 헛디뎌 화분들을 넘어지게 한 모양이었다. 하나는 인주의 구두로 문제가 생겼다면 두 개는 깨돌이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거기다가 다급히 뛰어 가면서 노란 국화를 짓이겨 버렸는지 화분에 심는다고 해도 살아 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저 녀석이 정말 문제야.”
“나는 윤인주가 문제야. 남의 귀하고 소중한 옷을 빌려갔으면 정갈하고 깔끔하게 입고 와야지. 그게 뭐냐? 남은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옷을 찢어 놓는 것도 모자라 얼룩으로 도배를 하다니.”
지영은 여기까지 말하면서 서서히 화가 나려고 했지만 애써 참았다. 이미 작은 악마이자 여우인 윤인주의 손에 들어갔으면 끝이다. 가져 간 옷이나 액세서리들이 한 번도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게 여기면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섭섭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예쁘게 잘 입으면 선물로 줄 텐데.
잘 어울린다는 말도 해 줄 텐데.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입시생이란 특권으로 얼마나 사람을 힘들게 했는지 모를 것이다. 사실상 가장이 되어 있는 강 여사는 뒤로 하고, 늘 이지영에게 요구를 해 왔다. 이것을 만들어 달라, 저것을 만들어 달라. 김밥 속에 단무지는 넣지 마라, 초밥은 밥을 질게 만들지 마라······.
지난 생각을 하면서 지영은 인주를 쳐다보다가 그만 씨익 웃어 버렸다. 처음 시작은 잦은 다툼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으로 변해 갔다.
미운 정이 누구보다 많이 들었기에 이젠 화를 내기 보단 그냥 웃음이 먼저 나왔다. 이 옷을 엄마인 김 여사가 본다면 섭섭해 하겠지만 누군가 잘 입고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을 해야만 할 거 같았다. 옷장 속에 묻혀 나오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거니까. 누군가의 몸에 입혀져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또 오늘처럼 이런 사건을 만들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지영은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혔으며 인주의 눈을 지그시 쳐다보았다.
“왜 내 눈은······ 쳐다봐요?”
인주는 지레 겁을 먹은 아이처럼 눈망울만 말똥거렸다.
“죄를 많이 지은 모양이네.”
“누가 죄를 지었다고······.”
그 순간, 인주는 악 하는 소리를 내었다.
깨진 화분을 치우면서 날카로운 부분이 손마디를 스쳐 갔으며 그로 인해 살짝 베인 모양이었다. 지영도 걱정이 되어 얼른 인주의 손가락을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니었기에 속으로 휴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고만 있었다. 이 철부지 여대생은 언제나 사건만 만들고, 사고만 치는 일등주자였기에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만하고 일어나서 씻어. 나머진 내가 알아서 치울게.”
“그냥 같이 해요.”
“그러다가 또 다치려고. 그래서 나중에 가족들한테 이거 치우다가 다쳤다고 애기하려는 거지?”
“그 정도로 치사하지는 않거든요.”
“이미 치사한 짓은 다 했잖아. 깨돌이한테 다 뒤집어······.”
깨돌이한테 다 뒤집어씌우지 않았느냐는 말을 하려다가 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미팅인지, 소개팅이 문제였어. 어디서 그런 남자가 나왔는지 몰라. 내일 효경이 만나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내 이상형하고는 너무 거리가 멀었어.”
소개팅을 한다며 좋아서 나갔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맑고 드높은 가을 하늘처럼 끝난 시험을 뒤로 하고 멋진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려는 계획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였다.
“효경이를 생각해서 차만 마시고 일어서려는데 밥을 같이 먹자는 말에 거절하다가 의자에 걸려 이 지경이 된 거란 말이에요. 그러고 보면 문제의 발단은 그 남자 때문이에요. 정말이지 그렇게 생기기도 힘들 거예요.”
“외모가 전부는 아닌데.”
“언니는 잘 생긴 남자하고 사니까 그런 말이 나오는 거죠.”
잘 생긴 남자! 그 남자 비위맞추며 사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를 것이다. 나이답지 않게 권위적이며 의젓하다 못해 10살 이상의 느낌이 들고 있는 남자와 살고 있다면 시누인 인주는 뭐라고 할까. 자기 오빠이니까 무조건 오빠 편을 들 것이다.
몇 살 터울은 아니지만 인주는 인혁을 가장 완벽한 남자로 여기었으며 꼭 오빠 같은 남자를 만나는 것을 원했다. 이상형이 윤인혁이라고 했다.
“내가 부러워 보여?”
“그렇게 보여요. 잘 생겼지, 머리도 좋지. 무엇보다 착한 것은 마음에 들어요.”
“착한 거?”
인주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착하긴 착하지.”
“오빤 언제 시험 끝나요? 우린 오늘로서 끝이 났는데. 오빤 언제 끝나지?”
“내가 알기론 다음 주 화요일까지 시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
잠시 생각을 하던 지영은 뭔가 떠올랐다는 듯 인주를 쳐다보며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혹시······.”
“맞아. 지금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거. 나한테 그 정도는 해 줘야지. 안 그래?”
“······.”
지금 지영은 인혁이 있는 학교로 가고 싶어 했다. 그동안은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가지 못했지만 오늘은 날씨도 좋고, 또 시험 때문에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다. 어젠 인주를 위한 김밥이었지만 오늘은 인혁을 위한 김밥을 만들 생각이었다.
“골라야지. 누구?”
연수와 은수 중 한 아이를 봐야만 했다. 둘 다 데리고 갈 수는 없으니까. 학교뿐만 아니라 병원이든, 시장에 가는 날에도 둘을 데리고 간다는 것은 무리였기에 인주는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와야 했으며 옷과 각종 액세서리에 대한 보답을 이 방식으로 해 왔다.
“당연히 연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