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했을까-
“이혼에 동의하지 않겠습니다.”
“전······하겠습니다. 이······혼 할 생각입니다.”
지영의 입에서 이혼이란 말이 힘들게 나온 그 순간이었다. 입술에 경련이 일어났는지 떨고 있는 지영과 달리 인혁의 날카로운 눈빛이 옆에 앉아 있는 아내란 이름을 가진 여자를 향했다. 옆에 앉아 있는 여자를 보아야 했기에 그의 눈빛은 더 날카로웠는지 모른다. 정면으로 바라봤다면 조금은 부드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인혁은 옆에 앉아 있는 지영을 봐야 했기에 고개를 돌려야 했으며 그로인해 날카롭게 변한 눈매는 마치 째려보는 것 같았다.
“이지영! 너 정말······.”
화가 났고, 울분이 차올랐다.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 갑자기 말문이 막혔으며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해야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참으로 답답한 가슴이었으며 목구멍에 뭔가 딱하고 막힌 느낌이 들었기에 그 다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여자,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 예전에도 간혹 이혼이란 말을 꺼내곤 했었다. 그러나 그건 잠시 벌이는 시위 같은 거였으며 또한 감정의 소용돌이 같은 것이었다. 어떤 부부가 결혼 생활을 하면서 이혼이란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게 진심이든, 화가 나서 미워 죽을 지경이든. 시간이 흐르면, 감정은 잠잠 해 질 것이고 마음도 진정되어 지는 것이 부부생활이 아닌가.
화가 나고 격해 지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이혼을 한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부부는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이혼! 이혼이라······.
자신도 생각했었다. 아주 오래전에 이 여자와 이혼이란 것으로 정리를 하고 싶었을 때가 있었지만 그대로 감정을 다스려 갔다. 그래야만 했으니까. 이혼은 하면 안 되는 것이니까.
지영도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인혁의 눈빛이 느껴졌기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지금 지영은 말하고 싶었다.
‘이혼하자, 당신도 자유롭고 싶잖아.’
깜박깜박 거리는 눈망울,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 아직 가을이 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했지만 성급하게 차려입은 다홍색의 원피스가 인상적이었다.
자칫 더울 수도 있지만 땀이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덥지는 않는 모양이다. 학교에 갔다가 바로 온 것일까. 대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큰 가방이었다. 지퍼 사이로 책들이 많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수업이 많았던 것으로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전 이혼하지 않겠습니다.”
인혁은 무표정과 차가운 시선으로 감정들이 복잡했다. 조금도 당황하지 않는 여자의 눈망울이 어색하고 낯설어 보이는 것은 인혁의 마음이었기에 목까지 차올라 있던 분노의 씨앗이 이젠 입술 근처까지 와 있었다. 왜 이러냐고 따지고 싶었고, 겁도 없이 제출한 이혼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으며 어떻게 하면 여기까지 오게 만드냐며 소리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 상담자를 잠시 쳐다보며 자신의 감정을 얘기하고선 다시 지영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복잡한 감정들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는 두 사람을 말없이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산부인과 전문의이면서 미혼모들의 대모이기도 한 강인혜였다. 그녀의 명함은 의사이자 생활고에 시달리는 미혼모들의 대변인이기도 했고, 또 그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강의를 해 주는 강사이기도 했다. 그녀의 입가는 잔잔할 뿐이다. 두 사람의 흔들리는 감정과 달리 인혜는 그동안 살아 온 나이답게 느긋하면서 잔잔한 미소만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옆에서 역시 조용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또 한명의 여자가 있었다. 여성학을 강의하고 있는 정연주였다. 그녀 역시 인혁과 지영을 조용히 바라보며 이들의 감정선을 읽으면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인지에 대해 가슴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많은 부부를 여기서 만났지만 이들 부부도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살짝 살짝 옆에 앉아서 그저 잔잔한 미소와 앞에 놓여있는 녹차를 마시고 있는 인혜의 반응만 살폈다.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세 부부를 상담해야 하지만 강 원장은 급한 게 없는 눈빛이다. 아마도 이들 부부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할 것으로 보였다. 윤인혁! 이지영!
동갑내기 부부였으며 이혼신청서를 제출한 사람은 아내인 이지영이었다.
여기 오면 대부분의 부부들은 몇 가지 형태로 나누어졌다.
들어오면서 싸우는 부부, 고함을 질러대는 부부, 이혼은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데 당신들이 누구인데 남의 인생사에 간섭하느냐며 상담자들을 향해 싸움을 거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긴 민주주의 국가인데 왜 이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느냐는 말에는 두 여자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이들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이혼! 결혼이 자유롭듯이 이혼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결혼과 이혼은 엄연히 달랐다. 이름부터 다르듯이 결혼과 달리 이혼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 숙제이기도 했다. 좋아서 결혼을 했고, 횟수는 제각기 다르지만 사는 시간동안 부부란 공동체로 살면서 자식을 만들었고, 함께 이룬 재산형태도 이혼 앞에서는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복잡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었다. 어제는 원수 같고, 죽일 듯이 미워도 오늘은 달라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었다.
조금만 감정을 다스리고, 함께 하면서 좋았던 점을 부각시켜 주고, 또 이혼이 끝은 아니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가면서 숙제에 대한 답은 서서히 나오고 있었기에 섣불리 이혼이란 제도보다는 이혼숙려기간을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혼숙려기간!
욱하는 성질에서 한 번은 더 생각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기에 이 제도는 성급히 이혼을 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방파제역할을 하는 비타민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하고, 이들 부부처럼 싸우지 않는 부부는 가장 힘든 경우라는 것도 두 여자는 많은 사례자들을 통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조금은 말다툼을 하고, 넋두리를 꺼내고, 이혼을 하고 싶다며 감정적인 말이 나와야 뭔가 실마리를 풀어 나갈 것인데 좀처럼 조용한 부부였다.
남편인 인혁만이 차가운 말투와 함께 차가운 눈빛으로 이혼에 동의하지 않겠단 말을 꺼내었으며 옆에 앉아 있는 아내인 지영은 이혼을 하겠다고 했다. 조용하면서 나긋한 말씨였다. 이들 부부를 넌지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오랜 인생을 살아 온 강 원장이었다.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였다. 성격차이! 성격차이란 말처럼 광범위한 단어는 없었다.
“이혼신청서 제출은 이지영 씨께서 하셨군요.”
처음으로 강 원장이 말을 걸었다.
“네. 제가 했습니다.”
여전히 조용하면서 나긋한 음성이었다. 세상에 그다지 물들지 않은 여자, 아내라는 이름 앞에서 조용히 살아 온 모습이 보였다.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인 인혁은 앉아 있는 자세부터 달랐다. 곧은 어깨를 쫙 펴고 있었으며 엉덩이는 의자 뒤에 딱 붙이고 있어 마치 군인 같은 느낌도 들게 했다. 얼핏 보아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 나이에 이혼을 원하는 경우는 물론 대부분이 성격차이가 맞긴 했다. 그 성격차이란 의미 안에는 폭력과 경제적인 부분,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의 외도가 가장 많은 문제들이었다.
그러나 중년의 여자, 그것도 직장도 없는 중년의 여자가 이혼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윤인혁! 강 원장의 눈에도 매력이 느껴질 정도로 잘 생기고 끌리는 인상이었다. 외형적인 모습에서도 자신을 잘 다듬고 관리해 온 남자로 보였고, 한 치의 틈도 없이 완벽성을 지닌 남자로 보였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 정도의 남편을 가진 여자라면 어지간하면 속이 끓어도 사는 게 한국의 여자들이었다. 이 나이라면, 중년의 여자라면.
강 원장은 다소곳이 앉아 있는 지영의 얼굴을 세심히 쳐다보았다.
고운 얼굴이었다. 세상에 물들지 않은 여자였으며 동갑이란 나이였지만 남편에게 순종하며 살아 온 전형적인 한국적인 여인상이었다.
“성격차이라고만 적어 놓았네요.”
“네.”
여전히 자그마한 목소리였다.
지영은 성격차이로 이혼을 하고 싶었다.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 섹스리스 부부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서로에게 상처였으며 자존심의 문제였기에 지키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혼이란 끝으로 정리를 하고 싶지만 진흙탕 싸움으로 가긴 싫었으니까.
물론 이 남자, 밉고 미운 남자였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여자를 쳐다보면서 가정이란 울타리만 지키고 있는 남자였다. 남편이란 이름으로, 아이들의 아버지란 이름으로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화려한 무늬만 가지고 있는 윤인혁이었다.
“이지영 씨는 두 번째 만남인 거 같은데······.”
첫 번째 약속 날에는 인혁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기에 이혼도 하지 않겠다고 했으며 또 이런 이상한 자리에는 더욱 나올 수 없다고 했다. 그런 남자가 두 번째 약속 시간에는 시간에 맞추어 나온 것이다.
“두 분은 20살에 결혼을 하셨네요.”
강 원장이 서류를 유심히 보고 있을 동안에 옆에 있던 연주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 역시 말을 하면서도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시끄럽고 말다툼을 하는 부부들이 오히려 쉬웠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느끼고 알게 된 것이니까.
지금처럼 자신의 벽을 지키면서 별로 말이 없는 경우는 도움을 주는 게 힘들었고, 이혼숙려기간을 다 채우기도 전에 이혼을 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금도 그러했다. 이들 두 사람! 생각보다 쉬운 사람들이 아니었다. 외형상의 분위기도 그러했지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두 분 사이에 세 딸이 있군요.”
“네.”
지영은 학생처럼 짤막하면서도 간결한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인혁은 지영이 대답을 하자 자신까지 대답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눈빛으로 인정한다는 듯 계속 질문을 해 오고 있는 연주를 향했다.
“지영 씨, 학생이시네요.”
“네.”
지영의 대답은 한결 같았기에 연주는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학생인 것도 알고 있었고, 20살에 결혼을 한 것도 알고 있었다. 서류에 적혀 있는 것은 이미 다 강 원장과 의논까지 한 상태였지만 첫 번째 약속 시간에는 인혁이 나오지 않아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아 사실상 오늘이 처음인 셈이다. 강 원장의 말대로 윤인혁이란 남자는 참으로 잘 다듬어진 조각상 같았다. 중년이라면 중년일 수도 있지만 전혀 그 나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얼굴과 몸매가 고운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지영도 마찬가지였다.
전형적인 가정주부라는 틀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느낌은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이미 파악되었지만 전혀 때 묻지 않은 눈빛과 함께 곱고 고운 여자였다. 아무리 봐도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이혼을 하려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연주는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사람의 뜻과는 상관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들과 정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대화가 쉽게 발전하지는 않았다. 시간상으로 보면 두 번째 만남이다. 그런데도 진전이 없었다. 가만히 있으려니 연주로선 가는 시간이 아까웠다. 느긋한 강 원장과 달리 조금은 직선적인 자신의 방향대로 가야 할 것만 같았다. 가끔 강 원장도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나이 든 사람이 하지 못하는 말을 해 주는 후배가 있어 그녀로서도 편했으니까.
이들 부부와 대화를 하는 것도 중요했고, 또 다음 부부와 만나는 시간도 중요했다. 모든 부부에게 주어진 이혼숙려기간 시간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전공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국문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그러시군요. 왠지 지영 씨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어요.”
형식적인 말이 아니었다. 이 여자, 이지영이란 여자와 참으로 잘 어울리는 과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궁금했다. 이 나이에 학생이란 것은 평범함을 넘어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국문학이란 말에 조용히 듣고 있던 강 원장이 지영을 쳐다보며 웃음을 보였다. 중년을 넘어 선 노년의 여자는 미소도, 치아가 살짝 보이는 웃음도 다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 웃음을 바라보던 지영이 계속 쳐다보다가 자신의 속에 있는 말을 꺼내었다.
이미 이곳으로 오기 전에 지영도 들었다. 이혼숙려기간제도라는 것이 있다는 말도, 더욱 미성년자 자녀가 있으면 기간은 더 길다는 말까지 들었기에 지영으로선 불안하기도 했고, 걱정스런 마음이 앞섰다. 이러다가 또다시 아무것도 되지 않는 다면······ 안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자신으로서도 알 수 없었다.
약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이혼서류를 제출했고, 인혁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수없이 노려보았다. 노려보고, 화를 내고, 분노에 찬 음성으로 방문이 닫히고, 또 화를 내고, 또 고함을 지르고······. 그 시간들이 지나고 있었다.
그때마다 지영은 두려웠고 무서웠다. 그동안도 잘 참고 살아왔는데······. 나이도 있는데······. 47살이다. 적은 나이는 아니다. 이 나이에 이혼을 해서 잘 살 수 있을까. 혼자 밤마다 잠을 자지 못하면서 고민하고 또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이 남자와 이혼을 하는 게 서로를 위해 좋을 것이라는 결정이었다.
그래서 이혼서류를 제출했지만 그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성격차이란 이혼사유를 적었지만 이혼은 되지 않았다. 이혼숙려기간이란 이상한 제도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왜 이런 제도를 만들어 이혼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얼마나 힘들게 용기를 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혼하게 도와주세요."
“······!”
“······!”
두 여자는 동시동작으로 서로를 향하며 눈동자가 커져 나갔다. 그리고는 또 같은 눈빛으로 지영을 쳐다보았다. 조신하고 차분한 여자의 음성이 나름대로 커져 있었기에 강 원장도, 연주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저 묻는 말에 네 라는 말만 하던 여자가 부드럽게 감정을 이어가는 두 여자의 의도를 알았는지 한 순간에 맥을 끊어 놓아 버렸다. 거기에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혼하겠습니다라는 말이 아닌 이혼을 하게끔 도와달라고 했다. 도와달라는 말이 계속 그 자리에 머물자 강 원장이 지영을 넌지시 쳐다보았다.
“저에겐 딸이 세 명이 있습니다. 두 딸은 완전한 성인으로 자리를 잡아 각자의 위치에서 잘 살고 있으며 막내딸도 수시에 원서를 다 넣어 결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미성년인 자식이 있으면 이 기간이 좀 더 길어진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것도 형식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막내딸은······ 몇 달만 지나면 성인이 되니까요. 이혼숙려기간이란 제도가 뭘 하는 곳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 자리가 부담스럽고 싫습니다.”
“······!”
이번에는 인혁의 눈동자가 커져 갔다. 이 자리가 부담스럽고 싫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 전혀 다른 여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지영 씨,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린 이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이혼을 하더라도 좋게 합의를 봐서 이혼을 하게끔 도와주신다는 거.”
인혁은 야무지게 말을 하고 있는 지영을 계속 무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잘 알고 계시는 군요. 지영 씨가 말한 것처럼 부부라는 인연으로 살아 온 사람들을 좋게 정리를 하도록 하는 사람들입니다.”
“전 지금 이혼 하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로 남을 거 같습니다.”“좋습니다. 도와드리죠.”
강 원장의 말이 조금 전 단아한 이미지에서 강한 말투로 변하고 있었다. 인혁은 순간적으로 지영을 쳐다보다가 강 원장을 차가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당신이란 여자, 지금 뭐하는 짓이냐는 매서운 눈빛이었다.
“두 분,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여긴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곳이 아닙니까?”
인혁의 말씨가 흥분이 되었는지 뒤로 갈수록 높아져 갔다.
“맞습니다. 인혁 씨가 말한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뭔가 오해를 하시고 계시는 듯합니다. 여긴 이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소는 아닙니다. 우린······.”
또 말이 끊어졌다. 그 자리를 인혁이 끊어버리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가 말씀드린 것을 잊었습니까? 이혼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혼에 동의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이혼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 순간, 그 순간이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인혁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던 지영은 인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입술이 파르르 거리는가 싶었지만 동시에 가슴을 움켜잡았다.
“이유가 없다고······. 이유가 없다고?”
지영의 목소리가 커져 올라갔다. 그와 함께 가슴은 더 세게 잡는 것이 두 여자의 눈에 보였다.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점점 인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기에 강 원장과 연주는 지영 곁으로 다가섰다.
“아파요.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어디가 어떻게 아파요?”
“여기······ 여기요.”
지영이 양 손으로 가슴을 쥐어 잡고 있자 강 원장은 지영의 손을 따라 갔다.
“여기가 아픈 가요?”
지영이 잡고 있는 골이 난 곳까지 가고 있었지만 지영은 고개를 흔들며 통증에 괴롭다는 신음 소리만 내었다.
“아무래도 병원으로 가야 할 거 같습니다.”연주가 강 원장을 향해 병원으로 가자는 말에 강 원장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병원으로 가시죠.”
강 원장과 연주가 지영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이미 통증에 괴로움을 느낀 지영의 몸은 몇 배를 느낄 정도로 무거워져 있었다. 강 원장은 지영을 바라보며 놀라고 있는 인혁에게 엎으라는 눈빛을 보였다.
인혁이 지영을 엎으려 했지만 그 상황에서도 지영은 인혁의 등을 밀어냈다.
“싫어.”
“병원가야지.”
“그래도 이건······.”
이건 아니라는 말을 하려 했지만 말보다 먼저 다가오고 있는 것은 고통이었다. 이젠 통증을 지나 고통이 되고 있었기에 누구의 등이든 밀어 낼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팠으니까.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으니까.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었으니까.
***
“어때?”
“특별나게 이상한 곳은 없어요.”
“유방······.”
“유방암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강인혜원장님!”
“그렇다면 다른 곳에 문제가 생겼나? 다른 곳도 검사를 해 봤어?”
“심장에 문제가 있나 싶어 검사까지 다 했지만 다 정상이에요.”
“다행이다. 그런데 왜 계속 잠만 자고 있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거 같아서 영양제와 신경안정제를 놓았거든요.”
“그랬구나.”
이것저것 검사를 한 후에 병실로 돌아 온 지영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꼭 대수술을 받고 난 후에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는 그 표정이었기에 강 원장도 걱정스런 마음에 지영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만 있었다.
“얼굴빛이 영 말이 아니군. 어디가 아픈가?”
강 원장은 환자복을 입은 모습으로 축 늘어져 있는 지영의 모습이 안 되어 보여 연신 걱정스런 마음으로 이마에 손을 올렸다가 얼굴을 쓰다듬었다.
“고운 얼굴인데 눈가엔 응어리가 많아 보이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감고 있는 눈가에선 슬픔이 많이 서려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 교수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뭔지 모르지만 결혼 생활이 힘들었던 모양이야.”
“힘들지 않은 결혼 생활은 없습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여자가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한다는 거, 쉬운 게 아니거든요.”
“그렇지. 대한민국에서 태어 난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
“그런데 윤인혁 씨는 어디에 갔나요?”
“회사서 연락이 왔다면서 빨리 갔다 오겠다고 하고 나갔어.”
“원장님 보시기에 윤인혁 씨는 어떤 남자로 보이세요?”
“어떤 남자?”
“네. 제가 보기엔 감당하기에 버거운 남자일 거 같아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직 윤인혁이란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잖아. 서류상에 적혀 있는 기본적인 것 말고는 아는 게 없을 텐데.”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많은 부부들을 만나고 사연들을 듣다보니 이젠 그냥 척 보면 감각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느낌이 와요. 절대로 쉬운 남자가 아니라는 거. 편한 남편은 아닐 것이라는 거.”
강 원장은 정 교수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으며 환자의 기본 건강을 챙기던 강 원장의 딸이자 이젠 강 산부인과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재윤도 듣기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오직 환자의 건강만 염려되는지 몇 번이나 지영의 숨소리와 심장박동 소리를 체크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어? 언제쯤 일어날 거 같니?”
“곧 일어 날 거예요. 이 정도면 많이 잤어요.”
이 정도면 많이 잤다는 얘기에 강 원장은 지영의 곁으로 다가서서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기만 했다. 잠에서 깨어 난 여자는 누구를 먼저 찾을까. 누구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를 것인가. 무슨 말을 할까. 강 원장은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지만 묵묵히 지영의 잠든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원장님,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다음 부부와 면담이 있어요. 시간이 촉박해요.”
“몇 시에 있지?”
“지금 출발해야만 가능한 시간입니다.”
정 교수의 말에 강 원장이 시계를 쳐다보았다. 약속은 약속이다. 모든 부부의 문제는 다 소중했기에 강 원장은 자신의 딸인 재연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고서는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에서 깨어난 지영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병원으로 실려 온 것까지는 기억이 났지만 그 다음부터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기억한다면 간호사의 말과 의사의 나긋한 음성이 들리는 것까지는 기억나고 있었다. 긴장하지 마시고,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어 보세요. 여기가 아프세요? 여긴 어떠세요? 등등의 얘기들이 들리는가 싶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다 놓아버렸다.
신께서는 참을 수 있는 고통만 허락하신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참지 못할 정도로 아픈 고통을 허락하는 것인지 지영은 어금니가 떨릴 정도로 꼭 깨물었다. 아프고 아팠다. 너무 아파 아프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기에 덜덜거리고 있었지만 그 고통은 어느 순간에 사라져 갔다. 참으로 거짓말 같기만 했다. 고통이 오는 것도 한 순간이었지만 사라지는 것도 어느 순간에는 사라져 버렸다. 검사를 하는 도중에 사라졌으니까.
그 후로는 눈을 감았고, 통증대신 쏟아져 오는 잠을 잤다.
얼마나 잤는지, 어떤 식으로 잤는지 알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편한 잠을 잤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 멈추었다. 고통도, 흥분한 마음까지······.
바늘로 찌르는 것 같기도 했으며 송곳 같은 것이 사정없이 부위별로 콕콕 쑤셔대는 느낌도 들었다. 소나기처럼, 더 나아가서는 폭우처럼 갑자기 다가 온 아픔이었지만 이제 그 아픔은 사라졌다. 근래에 와서 고통의 강도가 더해 감을 느껴 병원을 찾아 갔으나 돌아 온 대답은 역시나 이상 없음이었다.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한 부위는 멀쩡하다며 찍은 사진과 초음파 사진까지 보여 주었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 없다는 말에, 건강 체질이란 말에 위안을 받은 것은 잠시였다.
오늘 또 다시 예기치 않게 같은 부위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으며 그 통증으로 인해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온 몸을 낭떠러지 아래로 끌고 가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엄마!”
혼자 가슴을 어루만지며 이런 저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을 때, 은수가 양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서는 다가섰다.
“네가 여긴 어떻게······.”
지영은 다급히 손을 내리고선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은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아빠한테 전화 왔었어. 괜찮아?”
“응. 괜찮아.”
지영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감기 몸살로 하루만 누워있어도 세 딸은 걱정이 되는지 주위를 떠나지 않았으며 그때마다 괜찮으냐고 물어 더 성가시게 만들었다. 그래서 지영은 생각한 것이 괜찮다는 표현으로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것도 스마일이 되어 질 정도로 웃어 주면 세 딸은 안심을 하고선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다. 이 상황에 과거는 왜 생각나는 것일까. 그것도 현재처럼 또렷한 기억과 함께 어제 일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지영은 여전히 걱정스런 눈빛으로 엄마라는 사람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은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입술이 살짝 벌어질 듯한 웃음도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 웃고 있는 웃음은 눈과 입술이 함께 웃는 이지영만의 미소였다.
“엄마, 그 웃음보니까 안심이 되네. 진짜 괜찮은 거지? 아빠가 걱정을 많이 하던데.”
윤인혁이 걱정을 많이 한다는 말에 지영이 웃고 있던 눈과 입술을 원래의 자리로 가지고 와 버렸다. 윤인혁! 윤인혁······.
인혁의 등에 업혀 여기까지 왔다는 기억은 났지만 그 후로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없었다.
“아빤 지금 어디에 있니?”
“회사에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 회사로 들어가야 한다면서 나한테 전화를 했어. 엄마를 돌봐 드리라고.”
“······.”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는, 이 남자는, 윤인혁은 늘 저런 식이다. 저 남자에게 있어 일이란 무엇일까. 회사란 존재는 어떤 곳일까. 아내가 위급한 상황에 처해 병원으로 실려 왔음에도 딸에게 전화를 해 놓고선 자신은 자신이 미쳐있는 회사로 들어간 것이다. 아내가 고통에 이기지 못해 정신을 놓아 버린 것을 그는 보았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응급조치로 가장 현실적이고 시간적으로 제약이 따르지 않는 둘째 딸에게 부탁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윤은수는 지금 윤인혁을 대신 할 응급조치였으니까.
아내가 정신을 놓았다는 것을 보고서도 회사로 들어가는 저 남자는 이혼을 당해야 했다. 그냥 합의이혼이 아닌 이혼을 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아내는 그저 있을 곳에 있어야 하는 장식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오늘로서 또 한 번 증명된 셈이다.
지영은 잠시 인혁의 얼굴을 그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악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손으로 가슴 중앙을 치기 시작했다.
“엄마, 왜 그래? 왜 그러는 건데?”
느닷없이 자신의 가슴을 미친 듯 치고 있는 지영이 낯설어 보이기도 했고, 또 이상해 보였는지 은수는 밖으로 뛰어나가 의사를 불러들였다.
“우리 엄마, 왜 저래요?”
강 원장의 딸이자 이 병원의 사실상 주인이 되어 있는 박 재연이 지영의 손을 잡았다.
“잠시만 이대로 두게 해 줘요. 너무 답답해요. 가슴이 뻥하고 터질 것만 같아서 그냥 있지는 못하겠어요.”
지영이 다시금 손으로 가슴을 때리려 하자 재연은 손을 잡았다.
“이건 옳은 방법이 아니에요. 어디가 아프세요?”“수없이 말씀드렸어요. 가슴이 아프다고. 아니요. 이젠 모르겠어요. 어디가 아픈지 감각이 오지 않아요. 손도 아프고, 다리에선 전기가 흐르는 것 같고, 또······ 목도 쉬어가고 있어요. 봐요. 자꾸 쇳소리가 나오는 거 들리시죠? 이건 제 목소리가 아니에요. 그런데 제 의지와 상관없이 목소리가 이상하게 나와요.”
지영은 이젠 가슴이 아닌 자신의 목을 잡았다가 눌러 보았다.
“정말 이상해요. 왜 목소리가 다른 목소리가 되어 나오는 거죠?”
지영은 아 하는 음성을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쇳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다가, 젖혔다가, 목소리를 크게 내질러 보기도 했지만 몸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서지 않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과 다르지 않았다.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어 세우려 했지만 이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자동차는 서지 않았으며 멈추지 않았다.
“엄마, 진짜 왜 그러는 건데? 어디가 아픈 건데?”은수는 조금 전까지 멀쩡해 보이던 지영이 이상한 사람의 표정으로 바뀌어 나가자 걱정이 되는지 어딘가에 전화를 하려고 했다.
“어디에 전화를 하는 거니?”
“아빠한테.”
아빠에게 전화를 한다는 은수의 전화를 지영은 차가운 시선과 함께 전화기를 빼앗았다.
“전화 하지 마.”
“왜? 아빠도 알아야지.”은수는 지영이 들고 있는 휴대폰을 다시금 가지고 오려 했지만 지영은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
“하지 마. 네 아빠는 알지 않아도 돼.”
“그러는 게 어디에 있어? 엄마가 이만큼 고통스러워하고,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데 어떻게 전화를 하지 않아. 그 전화기 이리 줘. 아빠한테도 전화하고 언니한테도 전화할거야.”“차라리 조금 있다가 연수에게나 하던지. 단 네 아빠한테는 전화하지 마.”
인혁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혈압이 올라가고 감정이 폭발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가장 쉽게 알 것 같은 지영조차도 알지 못했으니까.
“싫어. 할 거야. 아빠는 알아야 해. 그렇지 않아도 일이 생기면 전화를 해 달라고 했는데······.”
은수는 지영이 잠시 재연의 요구대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진료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선 얼른 휴대폰을 가져 왔다.
“하지 마. 하지 말란 말이야. 싫어. 이젠 네 아빠가 싫어.”
“······!”
은수는 전화기에 번호를 중간쯤 누르다가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지영의 얼굴은 그동안 보여 왔던 천사의 얼굴이 아닌 악마의 소굴에서 갓 튀어 나온 악마 같은 얼굴이었다.
고함을 지르면서 인상까지 찌푸리자 영락없는 악마였으며 생판 다른 여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은수는 이상해져 있는 지영이 낯설게 느껴져 더 이상 번호를 누를 수 없었다.
재연은 지영의 여러 부위를 진료하고 있었지만 특별히 이상한 곳은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지금도 고통이 느껴지시다면 여기가 아닌 큰 병원으로······.”
“이젠 괜찮아요. 통증이 가라앉고 있습니다.”
지영은 서서히 통증이 사라지고 있다는 게 또 이상했지만 사실이었다. 그러면서도 큰 병원으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얼마 전에도 대학병원에 다녀 온 일이 있었기에 이중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긴 산부인과였지만 어느 의사 못지않게 성심성의껏 돌봐 준 재연의 성의를 알고 있기에 지영은 가슴만 쓸어나갔다.
“정말 괜찮아요?”
“엄마, 진짜 괜찮은 거야? 계속 아프면 선생님 말대로 큰 병원으로 가자.”
은수는 금방금방 이상하게 변해가는 지영이 걱정스러웠는지 가까이 다가 와 지영의 얼굴빛을 살폈다. 얼핏 보면 정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또 다르게 보면 감정의 기복이 심하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프다고 통증을 호소했다가 지금은 언제 아팠나는 표정을 지으면서 옆에 있는 물을 달라고 했다.
“목이 말라. 물이 마시고 싶어.”
“응. 알았어. 배는 고프지 않아? 죽을 만들어 왔어.”
“죽은 조금 있다가 먹을 게. 지금은 물이 마시고 싶어. 목에서 갈증이 나거든.”
은수는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웃고 있는 평소의 엄마모습을 보았다. 이 모습이 이지영이다. 잔잔한 듯 웃으면서 미소 짓는 여자, 아프지만 많이 아프지 않으니까 걱정 말라며 세 딸을 향해 웃던 그 미소였다. 그런 미소를 짓는 여자가 조금 전에는 화를 내었고, 전혀 다른 여자의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아빠가 싫다고 한다, 이젠 너무 싫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연락도 하지 말라고 했다.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물을 건네면서도 은수는 요즘 와서 진짜 다른 여자의 모습으로 변한 지영이 생소해 보였을 뿐이다.
“엄······마! 진짜 아빠랑 이혼 할 거야? 이혼하면 혼자 살아 갈 자신은 있어? 엄만 능력도 없잖아.”
“능력! 능력이라······.”
혼잣말처럼 조용한 음성이었지만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는 표정이 슬퍼보였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결심을 하는 눈빛에선 차가움만 서려 있었다. 그리고는······웃고 있었다.
“엄······마!”
낯선 웃음이었다. 엄마에게 이런 웃음이 있었단 말인가. 너무나 생소하고 어색해서 은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뒤에 강 원장이 서 있었다. 만나기로 한 부부 중 남편이 참석하지 않겠다는 전화를 받고서는 곧장 이리로 달려 온 것이다. 이지영과 윤인혁! 뭔지 모르지만 신경 쓰이게 만들었고, 자꾸 마음이 가고 있었다.
“강인혜라고 합니다.”
“누구······신지.”
“선생님 어머니시다. 그리고 엄마가 빨리 이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분이기도 하고.”
“······!”
강 원장은 놀란 두 눈으로 지영을 쳐다보았다.
“그건 아닙니다. 내가 하는 일은 이혼을 잘 하도록 도우기도 하고, 또 이혼을 가급적이면 하지 못하도록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빨리 이혼을 할 수 있도록 도우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었으니까요.”
“이번에는 그 기록을 바꾸어 보세요. 이지영이란 여자는 빨리 이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으니까요.”
“······.”
계속 물만 마시고 있던 지영은 간간이 강 원장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곧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 용감하게 말씀하시면서 제 눈은 왜 피하십니까?”
“피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은수가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