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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꿈꾸는 남자들


BY 문해빈 2012-10-20

분장실로 들어 온 연수는 화장부터 지워나갔다. 방송용 화장은 언제나 무거웠고, 온 얼굴을 덮고 있는 거 같아 방송이 끝나면 즉시 바로 지우는 게 일차적인 일이 되었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눈 화장이었다. 전문 코디네이터가 어떻게 화장을 했는지 모르지만 시청자가 되어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역시나 어색한 얼굴이 화면에 있었다. 분명히 윤연수가 맞는데, 윤연수가 진행을 하고 있는데······.

 

 

연수는 본연의 얼굴로 돌아오는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다른 것은 잘 적응이 되는데 화장법은 여전히 어색해.”

 

 

가끔은 너무 눈 화장이 강해 힘든 방송을 했고, 또 다른 날은 볼터치를 심하게 한 탓인지 얼굴모양이 각이 져 보였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게 흘러갔으며, 한쪽에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으면 역시나 다른 사람들도 그런 감정들을 느낀 모양이었다. 이미 방송이 끝나기도 전에 인터넷에 올라 온 댓글들에는 양악수술을 했네. 턱 선을 다른 모양으로 만들었구나 등으로 홍역을 치룬 적이 있었다. 아니라는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연수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어야만 했다.

 

 

몇 년이란 시간동안 배운 것은 가장 화려하지만 가장 폐쇄적인 공간이 방송이란 세계였으며 그 속에서 살려면 표정관리, 조용한 사생활은 정말이지 중요했다. 아나운서도 연예인과 다르지 않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조심하고, 또 조심을 해야만 했다. 스스로 만들지 않은 사생활이라 하더라도 그 부분까지 책임지고 수습을 해 나가야만 했기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악평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묵묵하게 자신이 해야 할 방송에만 더욱 조용한 자세로 전념해 나갈 뿐이었다.

그날에 따라 화장법은 또 달라 질 것이니까.

 

 

 

“역시 윤연수는 지금의 얼굴이 편안해 보이고 좋아 보인다.”

 

 

혼자 거울을 쳐다보며 자신의 얼굴에 대해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젖어 있을 때 언제 들어왔는지 석민이 뒤에 서 있었다.

연수가 자신을 향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석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다들 윤연수, 윤연수 해서 대단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별로더라. 방송하면서 많이 긴장을 한 모양이더라. 많이 떨던데.”

 

 

 

석민이 말을 하면서 더욱 연수를 향해 가까이 다가왔다.

 

 

“아직 적응되지 않아······.”

“그 말은, 프로 중에 프로의 자리에 있는 윤연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거 같다.”

“······.”

 

 

연수는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석민을 차가운 눈매로 보고 있었다.

“그 눈빛, 너무 차가워. 시청자들도 알고 있나? 너의 그런 매정하고 도도한 눈빛, 그것도 모자라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못하는 지독하면서 무서운 여자란 것을.”

무서운 여자! 지독한 여자!

 

 

연수는 잠시 눈망울을 깜박거렸지만 웃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석민이란 남자 앞에서는 웃을 일도 없었을 뿐더러 웃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석민은 연수의 마음과 달랐다.

석민은 눈 화장을 비롯해서 특수화장법으로 잠시 다른 여자의 모습이 되어 있던 여자가 원래의 윤연수로 돌아오는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눈을 비롯해서 코와 입술을 천천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넌 실수를 했다는 거 알고 있지? 내가 말을 해야 할 부분에 네가 들어왔어. 그것도 아주 공격적으로.”

“······.”

 

 

그랬었나? 저 남자가 말을 해야 할 부분에 들어갔었나? 그런 기억은 없었다.

“감정의 흐름이 전달되지 못했다? 그 말, 재미있군. 이제 그런 말은 윤연수하고 어울리지 않을 텐데.”

“······!”

“방송에서 보여 지는 윤연수는 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여자로 보였거든. 그런데 오늘은 많이 떨더라. 물론 어설픈 부분들은 다 편집되겠지. 좋은 모습과 예쁜 미소만이 화면에 보여 지겠지. 그게 방송의 힘이고, 기술력이겠지만. 손을 떨고, 발가락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은 모르겠지?”

 

 

 

그건 어떻게 알았을까? 그건······윤연수라는 여자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혼자만의 비밀이었던 것이다. 이 남자가 어떻게 알았을까?

 

 

“사람의 생각, 행동, 습관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 법이거든. 넌 예전부터 그랬지. 많이 긴장하고, 뭔가 불편하면 손가락을 만지고, 그것도 모자라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하거든.”

“······!”

 

 

발가락이 움직인다는 사실에 연수가 석민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긴 회사다. 회사에선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이 자신이 선배였으며 상사였다.

“여긴 회사입니다. 그런 사적인 얘기는 할 곳이 아니라는 거 알아야죠.”

 

 

 

잠시 석민의 강한 말투와 강한 눈빛에 정신을 놓았는지 말과 함께 행동까지 흐트러져 있었지만 곧 선배와 후배임을 강조했다. 이 남자와 말이 길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연수는 지우던 나머지 화장을 자연스럽게 지워갔다. 입술이 반쯤 지우다가 멈추어 자신이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 이런 광경 앞에 조금은 편한 사이로 만났다면 한 번쯤은 편하게 웃을 수 있었지만 연수는 웃을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이석민이기 때문이다. 이 석민 아나운서이니까.

그가 아나운서가 되어 여기로 왔으니까.

과거의 남자를 여기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으니까. 그것도 모자라 과거의 남자와 매일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맡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그렇지. 여긴 회사지.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나의 상사이지. 잠시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방송이 끝나서 이런 자리에서는 사적인 말을 해도 괜찮을 거 같아서 말을 놓았는데 저의 실수였습니다. 죄송합니다.”

“알고 있다면 다음부터는 말조심을 해 주세요. 이 석민 아나운서!”

연수는 나머지 부분에 남아있던 립스틱을 지우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밖으로 나가려는 자세임을 석민이 먼저 알아챘는지 연수의 머리부터 발목까지 강한 눈빛으로 잡았다.

 

 

“그렇다면 사적으로 만나고 싶은데 시간을 내어 주시죠?”

“······.”

“늘 만남을 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야 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연수는 석민의 옆을 지나 걸어가고 있었다. 어서 빨리 여기서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 전부였다.

“나는 있습니다. 만나고 싶은데 약속을 정해 주시죠?”

석민이 연수 곁으로 다가왔다. 문이 있는 곳이었기에 곧 연수의 손이 문고리로 올라갈 것만 같았는지 석민은 최대한 눈에 힘을 실어 약속을 받아 내려 했다.

이 여자, 이 방송국으로 온 이후로 아직 한 번도 개인적인 만남을 갖지 못했다. 연수기간을 비롯해서 다른 방송시간 등이 가장 큰 원인이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남을 원치 않는 여자로 인해 그 만남은 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이 방법은 어떻겠습니까? 이번에 개편된 이 방송이 끝날 무렵에 나는 결혼에 대한 스캔들을 낼 생각입니다.”

“······!”

 

 

 

연수의 두 눈이 놀란 토끼처럼 점점 커져만 갔다.

 

 

“그 말은······ 무슨 말이죠?”

“이미 다 알아 들은 거 같습니다. 지금 머릿속에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입니다. 윤연수라는 여자하고 결혼이란 것을······.”

“장난은 이제 그만하죠. 곧 많은 사람들이 여기로 들어올 겁니다. 거리 간격을 유지하세요. 괜한 오해로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서로에게 좋지 못한 결과만 가져 온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는데요.”

“그건 내가 원하는 바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거, 그것도 아니면 내가 직접 소문을 만들어 우리 관계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거.”

 

 

 

연수의 양 미간이 날카롭게 위로 치켜 올라가는 가 싶었는데 삽시간에 불꽃처럼 눈동자가 차갑게 변해갔다. 얼음보다 더 차가운 눈빛, 살얼음이 느껴 질 정도로 매서운 눈빛, 시퍼런 칼날을 느끼게 할 정도로 이미 눈동자는 시퍼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여긴 나의 모든 것이 걸려 있는 곳이며 내 인생을 차곡차곡 쌓게 만들어 주는 보물의 창고야. 내 인생을 방해하지 마. 당신이란 남자로 인해 후퇴했던 인생은 한 번이면 족해. 두 번은 당신이란 남자로 인해 내 인생이 복잡해지고 싶지 않아.”

“여기보다 더 높은 보물의 창고로 데려가 줄게.”

이미 두 사람은 감정이 치솟기 시작했는지 말투부터 달라져 갔지만 그 말투도 확연히 달랐다. 한 사람은 감정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라가다 못해 화가 나 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다른 감정으로 여자를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

“그 보물의 창고, 내가 책임져 줄게.”

“보물의 창고 속으로 데려가 준다? 내 인생을 책임져 준다?”

 

 

 

연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듯이 묻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작은 음성으로. 그런데 그 음성을 석민은 정확히 들었다.

 

 

“이번 방송 끝나면 결혼하자.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자.”

 

 

연수는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에서 석민을 쳐다보았다. 늘 자신만만한 태도는 지금도 여전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아쉬움도 없고 부족함이 없다면 이 남자처럼 무례한 남자도 될 수 있고 지금처럼 무법자가 될 수도 있는 모양이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데 아직 이 남자는 변한 게 없다. 무슨 생각으로 이 방송국으로 왔을까. 단지 한 여자에 대한 미련 때문에 온 것일까. 사랑이란 보이지 않는 형체를 찾기 위해?

연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닐 것이다. 무엇인가에 대한 허전함이 이 남자를 여기로 오게 했을 것이다.

 

 

“여긴 직장입니다. 직장에서 그런 농담은 삼가 해 주시죠. 이석민 아나운서! 상사를 상대로 장난치는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연수는 석민을 향해 여전히 차가운 듯한 눈빛을 짓다가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문을 열려는 그 순간, 석민의 손이 연수의 손에 겹쳐져 올라왔으며 그 사이에 이미 두 사람의 손은 서로의 체온을 느낄 정도로 함께 포개어져 있었다. 석민의 눈동자는 따뜻하게 변해갔지만 연수만이 그 손을 사정없이 뿌리치기 위한 감정으로 변해갔다. 눈빛이 더욱 차갑게 변해가고 있는 여자의 마음을 알아버린 석민은 놓지 않았다. 석민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분장실이었다.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기에 그로서도 조심스러웠지만 얼마만의 만남인가? 그것도 두 사람만 있었다. 또 언제 이런 소중한 시간이 올 수 있을까. 이 여자와 처음으로 함께 있었다.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기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는 석민도 알지 못했다. 단지 중요한 것은 이 시간들이 소중하게 다가 왔다는 것을 알기에 쉽게 놓아 줄 수가 없었다.

 

 

 

만나 달라고 했고 애절한 마음으로 시간을 달라고 했다. 시간을······. 짧아도 좋으니 조금의 시간을······. 저녁 늦은 시간에 집 앞까지 따라갔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으며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게 전부였기에 오늘 다가 온 이 기회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시간을 달라고, 만나자고. 기회를 달라고······.

그때,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 온 사람은 이번 프로그램을 총 책임지고 있는 영우였다.

연출자이면서 소소한 부분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그로서는 오늘 있을 회식 문제로 연수와 얘기를 하고 싶어 분장실로 향했던 것이다.

 석민을 보았다가, 연수를 보았다가 마지막엔 함께 포개어져 있는 그들의 손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손을 잡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연수의 손은 아래에 있었으며 그 위로 석민의 손이 올라 있었다. 영우는 자신도 모르게 또 다시 손을 보았다가 두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며 반응을 보고 있었다.

“먼저 나가시죠. 제 발걸음이 너무 빨랐던 모양입니다.”

석민이 연수의 손 위에 올라있던 손을 내리고선 연수를 향해 먼저 나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감독님까지 갑자기 문을 여는 바람에 넘어질 뻔 했어요.”

연수 역시 문고리에서 손을 내리며 옆으로 비켜섰다. 영우가 문을 열면서 그 힘으로 인해 두 사람은 함께 한 곳으로 발걸음이 움직여 진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더 힘껏 손을 잡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마터면 안는 모습까지 보일 뻔 했다. 다행스럽게 석민이 몸의 중심을 잘 잡았기에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쓸데없는 오해 따위는 만들지 않았다. 그건 정말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옛날의 감정이 소중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얻은 것을 잃는 것은 두 사람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 얼굴로 어디로 가려고?”

 

 

영우 눈에 대충 지운 연수의 얼굴이 참으로 어설프게 보였다. 지우려면 완벽히 지우던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두면 될 것을. 그 모습도 괜찮게 봐 줄만 하다는 것을 이 여자는 모르는 것일까. 누군가의 눈에 아름답게 비친 다면 좋은 것이 아닌가?

화면에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 모르지만 영우는 연수의 모든 얼굴이 다 좋았다. 짙은 화장도, 옅은 화장도, 또 지금처럼 어설프게 지워진 얼굴도 보기에 좋았다. 더 나아가서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까지.

“다 알면서.”

연수가 영우 곁을 지나 밖으로 나가려 하자 영우는 그제야 자신이 이곳에 들어 온 궁극적인 목적을 알았다. 두 사람의 낯선 모습에 잠시 정신을 놓아 버린 일과 연수의 얼굴을 쳐다본다고 하마터면 그냥 연수를 밖으로 내 보낼 뻔 했다.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씻기 전에 먼저 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는지 연수라고 불렀다.

 

 

“윤연수!”

 

 

연수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녹화, 다시 해야 하는 군요.”

가끔 있는 일이다. 자신들이 보는 것과 막상 화면을 보면서 편집을 하는 과정에는 많은 차이점이 있기 마련이었다. 첫 녹화방송을 마치고 돌아설 때, 카메라 감독이 한 번 더 옆모습을 보여 달라고 했다. 화보를 찍는 것도 아니고, 연예인처럼 무조건 예쁜 얼굴로 나와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또 찍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시키는 대로 응했다.

미세한 부분에서 발음이 새어 나갔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상대방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급하게 나온 것은 프로급에 속한 아나운서로서는 치명타였다.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석민과 방송을 시작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 앞서면서 실수를 한 것으로 보였다.

실수! 이것도 용납되지 않는 곳이 방송의 세계였다. 그것을 알기에 연수는 치아를 세게 깨물었다. 어금니와 어금니의 힘에 의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를 듣는 사람은 혼자였기에 더욱 소름끼치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두 번째 방송 녹화를 하면서 실수를 했고, 오늘도 뭔가 실수를 한 모양이다. 박 감독이 웃고 있다는 거, 저 웃음의 의미를 이제 연수는 알고 있다.

워낙 함께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이젠 사적이든, 공적이든 느낌만으로 알 수 있기에 연수는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 아니야. 왜? 또 녹화하자고 할까봐 겁먹었구나.”

연수는 눈망울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살며시 끄덕거렸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오늘 녹화는 잘 되었어. 하나 문제가 있다면······.”

“문제 있어요?”

 

 

문제가 있느냐는 연수의 눈동자가 커지며 영우 앞으로 다가섰다. 그러나 문제란 말에 놀란 사람은 석민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었지만 이 소리는 그냥 듣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함께 작업을 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연수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있느냐는 질문을 함과 동시에 연수 옆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조금 전에 한 걸음인지, 두 걸음인지 모르지만 옆으로 떨어져 있던 석민이 다시금 연수를 향해 걸어왔다.

 

 

‘연수!’

 

 

 

연수라고 했다. 그러나 석민은 모르는 것 같았다. 영우는 잠시 석민을 쳐다보다가 연수에게로 눈동자를 향했다.

“연수답지 않네.”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토요일과 일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방송하는 것이고, 거기에다가 사실상 거의 생방송이나 다름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래도 가끔 실수도 하고, 또 재미있는 부분도 보여줘야 인간적으로 보이겠지. 요즘은 시청자들도 다 알고 있거든. 너무 완벽하고 잘나게만 보이려는 것은 재미없다는 것도 우리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실수하는 부분에서 인간미를 느끼기 때문에 괜찮아. 오늘처럼 오른 발이 몇 번이나 살짝 살짝 움직이며 들려지는 부분도 귀엽게 봐 줄 거니까 다시 녹화를 하지 않아도 돼. 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하지 말고.”

 

 

오른 발! 그 말은 오른 발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석민의 말이 맞았다. 긴장하고 자신의 마음과 따로 움직이면 손을 꼭 쥐고 발가락이든, 발이 움직인다고 했다. 그런 실수를 한 모양이다. 석민이 찾아냈고 얘기를 했다. 이젠 영우까지 찾아와 얘기를 했지만 이건 그냥 지나가자고 했다.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은 연수였기에 영우를 향해 다시 하자는 눈빛을 보였지만 영우는 생긋거리며 웃기만 할 뿐이다.

 

 

“방금 말했지. 많은 실수는 안 되지만 이 정도는 괜찮다고. 발이 살짝 올랐다가 내려갔으니까 편집자가 그 부분을 가리던지, 아니면 귀염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그대로 방송에 나가게 될지는 그 사람들이 결정 할 문제겠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늘 오후에 약속 있는 거 알고 있지?

”“약속? 무슨 약속?”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찾아 온 거야. 선배님 이사 집들이.”

“맞다. 깜박할 뻔 했네. 요즘 내 정신이 아니라서.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잊었어요.”

 

 

내 정신이 아니다? 순간적으로 잊었다. 무엇이 이 여자로 하여금 많은 긴장을 하게 하는 것일까. 좀처럼 일에 있어서는 긴장을 하지 않는 여자다. 당차다 못해 너무 잘하는 것이 약점이라면 약점이 될 수 있는 여자가 아침 방송, ‘웃으면 행복이 옵니다’란 방송을 맡고부터는 가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눈에 보이게 실수를 하지 않았지만 상대방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섣불리 말을 받는 부분도 그러했고, 또 고개를 돌리지 말아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일까. 무엇이 완벽한 프로근성을 가진 여자를 흔들리게 하는 것일까.

 

 

처음 입사를 하면서부터 관심을 가졌고, 또 그때부터 마음에 둔 여자다. 이젠 눈빛 하나만 보아도 그 마음까지 읽을 수 있기에 함께 방송을 하면서도 불안해지는 것은 영우도 마찬가지였다.

방금 보여 진 두 사람의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본성!

 

동물적인 본능은 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감을 떠나 육감을 느끼는 존재들이 여자라고 하지만 그 이상을 뛰어 넘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관심에 있어서,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에 있어서 여자든, 남자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먼저 마음이 가는 사람이 늘 약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랑인 걸.

본성을 넘어, 오감을 넘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남자였으며 한 여자를 좋아하는 박영우란 남자였다.

 

이석민 아나운서!

 

왠지 모르지만 연수 옆에만 있으면 머리끝이 뻣뻣하게 서는 느낌이 들었으며 긴장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