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할 틈도 없이 황보호사 앞으로 뛰어 들어 팔을 잡고 매달렸다.
“보호사님~! 안돼요~!”
“민지수님~! 왜 이러세요? 이거 놔요~! 안 그러면 민지수님도 C/R행입니다.”
“보호사님~!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순간적으로 재영이 얘기가 나오려고 했다.
재영이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보호사님~! 제가 그냥 갈게요.”
“보호사님~! 제발 한번만 재영이 용서해 주세요~!”
“민지수님~! 자꾸 방해할래요?”
그는 먼지를 털듯 내 팔을 털어 버렸다.
나는 다시 그의 팔에 매달렸다.
“정말 안 되겠네......”
그는 무전으로 헬퍼를 불렀다.
바로 건장한 보호사들이 오고 나는 번쩍 들려 사내의 어깨에 걸쳐지고 재영은 질질 끌려서3층 C/R로 갔다.
다행히 R/T는 당하지 않았다.
어두컴컴한 수면 등에 자그마한 환풍기, 침대 두 개. 2층 C/R과 별 다를 건 없었다.
재영이와 나는 각각 침대 하나씩 차지하고 누웠다.
나와 재영의 숨소리만 간간히 들리기를 한참. 재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 미안해.....”
“미안하긴.....”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내심 불안했다.
“재영아~! 너 노래 좀 불러봐라~! 심심하다.”
“히히 그럴까?”
하더니 소양강 처녀를 꺽꺽 거리며 불렀다.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보호사가 소리쳤다.
“야~! 재영이 너 자꾸 떠들래? 그럼 R/T야~!”
하고는 문을 닫았다.
재영이는 움찔하며 노래를 멈췄다.
R/T면 화장실도 못 간다.
그냥 누운 자리에서 싸버려야 한다.
맨 정신에 누워서 오줌 싸고 똥 싸면 그 기분이 얼마나 더러울지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배개를 집어 들고 CC 앞으로 다가가 카메라를 가렸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했고, 재영은 빠진 이를 드러내고 씨익 웃으며 그 앞에서 원숭이 흉내를 내며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둘이서 이불로 카메라를 가리고 낄낄거리고 웃는데 문이 열렸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R/T당하고 싶어? 분명 경고했어~ 한번만 더 이러면 R/T야~!”
문이 부서질 듯 거칠게 닫고 보호사가 나갔다.
나와 재영은 병실 바닥에서 뒹굴며 한참 동안 웃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벽면을 다 둘러봐도 시계가 없어
몇 시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한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재영아~! 화장실 가고 싶다~!”
재영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언니! 안되는데....”
나는 문 앞으로 가서 있는 힘껏 문을 두 주먹으로 두들겼다.
“화장실요~! 급해요~! 급해~! 누가 문 좀 열어 주세요~!문 열어 줘요~!”
잠시 후 간호사가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그녀가 손짓한 곳으로 갔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져 바짝 긴장을 했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발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있는 문 앞에 발을 멈췄다.
가슴이 콩닥거려 터질듯했으며 온몸이 마비된 듯 뻣뻣하게 굳어졌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순간적으로 화장실 문을 세게 밀어 버렸다.
“아~악~!”
사내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재빨리 화장실에서 나와 타일 위에 쓰러져 있는 사내의 목을 밟았다.
“야~! 씨발놈아~! 니가 요한이지? 너 오늘 잘 만났다~! 개 새끼~!”
사내는 아픔에 못 이겨 얼굴을 심하게 일그러트리며 신음 소리를 냈다.
나는 놈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리고 머리채를 한 움큼 손에 쥔 순간 보호사들이 화장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 이예요?”
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어나면서 얘기했다.
“아무 일도 아녜요. 이 아저씨가 화장실 바닥에 자빠지셨네~”
나는 사내를 꽉 꼬집으며 일으켰다.
“아저씨 조심하셔야지~ 화장실에서 쓰러지면 약도 없다던데.....”
몸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사내는 보호사들에 끌려 제 병실로 돌려보내졌다.
C/R로 들어오자 재영이가 울면서 물었다.
“언니~! 괜찮아?”
“내가 밟아 버렸어~! 씨발 놈~! 한번만 더 걸리면 모가지를 따 버릴거야~!”
두려움에 몸이 떨리며 눈물이 나려고 했지만 재영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민지수가 여기에 왜 있어? 문 열어~!”
손 보호사의 목소리였다.
나와 재영이는 손 보호사를 따라 2병동으로 내려왔다.
수면 등만 켜진 휴게실엔 영자, 윤자언니와 몇몇 환자들만 있었다.
영자언니와 윤자 언니가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
“엉~ 괜찮아~!”
손 보호사가 나를 불렀다.
“민지수님~! 얘기 좀 합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예요?”
“제가 황 보호사님 업무를 방해 했습니다.”
“무슨 일로?”
“그냥요.”
“나참~! 그냥이란 게 말이 돼? 그건 그렇다 치고 요한이는 왜 밟았어?”
“화장실에 갔는데 쫒아 왔어요. 문을 열려고 해서 제가 선수 친 거예요.”
손 보호사가 껄껄 거리며 웃었다.
“하이고~ 잘했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옆에 있던 두 언니들이 박수를 치며 웃었다.
“야~! 잘했다~! 잘했어~~!"
"선수끼리 얘긴데, 솔직히 말해봐~!“
“때리긴요~ 모가지 밟고 머리끄뎅이 쥐었는데 보호사님들이 오셔서....”
“나참...... 내가 속았어~! 작고 연약해 보여서 코스모슨줄 알았더니 엉겅퀴 꽃이었구만.”
손 보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하필 엉겅퀴는 뭐예요? 이왕이면 흑장미나 백장미로 해주시지.”
“혹~ 칠 공주는 아녔구?”
병실로 돌아오자 윤자, 영자 언니가 따라 들어왔다.
영자언니가 바짝 다가오면서 물었다.
“자세히 좀 얘기해봐~! 그 씨부랄 놈 어떻게 했는지.”
“아~ 확실히 밟아 버렸어야 했는데 하필.....”
“야~! 답답하다~ 뜸 그만 들이고 빨리 얘기해~!”
“그놈이 화장실로 슬슬 따라 오지 뭐예요.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 척 하다가 놈이 문을 열려고 하길래 먼저 문을 확 열어버렸죠. 그랬더니 뒤진다고 지랄하며 뒹구는 거예요. 모가지 발로 밟고 싸대기 한 대 날리고 머리 끄뎅이를 잡았는데 보호사가 오는 바람에...... 아이 씨~”
“야~! 내 속이 다 후련하다. 그 씨부랄 놈 반 쯤 죽였어야 했는데.”
영자언니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아마도 재영의 일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아침, 휴게실에 나가니 손 보호사와 영자, 윤자 언니가 나를 보자마자 깔깔거리며 웃었다.
“왜들 그러세요?”
영자 언니에게 물었다.
“인물났어~! CCTV앞에서 공연 했다며? 아무튼 내가 미쳐~!”
“아~ 그거? 심심해서.....”
“야~! 그거 돌려 보고 다들 뒤집어 졌단다. 웃겨서.”
“별로 안웃겼는데......”
병실 안에서 그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는데 손 보호사가 잠깐 보자고 슬그머니 손짓 했다.
복도로 나가니 곶감을 내입에 넣어 주고 갔다.
달콤한 곶감, 집에서는 먹지도 않았는데 여기서 먹으니 참 맛있었다.
4시가 넘은 시간까지도 그가 오지 않아 불안하고 초조했다.
“흥~! 그래, 안 와도 할 수 없지. 안 오기만 해봐라~! 가만두나.....”
그래, 지들끼리 살아 보겠다 이거지? 날 여기 쳐 박아 두고 아주 신이 났구만.”
그에 대한 원망이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았다.
“어디 나가서 보자~! 다들 가만 두지 않겠어~!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데? 왜!
다 네 놈 탓이야~!“
원망과 분노가 뒤엉켰다.
샤워실로 뛰어 들어가 크게 소리 질렀다.
“아~악~! 아!~”
밖으로 나오니 환자들이 다들 샤워실 앞에 모여 있었다.
손 보호사가 다급히 뛰어 왔다.
“무슨 일이야?!”
“살짝 미끄러졌어요~!”
하고 얼버무렸다.
“조심 좀 하지. 덜렁대기는. 다들 돌아가세요~!”
손 보호사는 환자들을 해산 시켰다.
영자 언니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관세음보살, 할렐루야~ 아직 젊은 애가 안됐어, 츳츠~~”
내 나이 마흔 네 살.
10여년 전 조그만 카페를 하다가 인터넷 채팅으로 그를 만났다.
그를 처음 본 순간 꿈이었으면 하고 생각 했었다.
뚱뚱한 몸에 아무리 뜯어봐도 잘난 구석이란 목소리 빼면 하나도 없어 보이는 남자.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 가게를 드나들었고 난 점점 그런 그가 부담스러워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가게가 끝날 무렵 나를 기다리던 그가 전화로 협박 까지 일삼았다.
무서운 생각에 파출소에 신고도 몇 번 했고, 경찰관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오기도 했다.
술을 마시러 와서는 테이블을 부수기도 하고, 가게 문을 그 육중한 몸으로 밀어 망가뜨리기 까지 했다.
그런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꽃바구니를 보내줬다.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나와 택시를 기다리던 중 그가 다가왔다.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빌면서 울었다.
“지수씨~! 왜 난 안 되는 거죠? 이렇게 빌어도 안 되는 건가요? 제발 기회 좀 줘요~!”
“정한씨~! 전 결혼 할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하세요~! 다시는 제 앞에 나타나지 않아 주셨음 좋겠네요. 그럼......”
하고 냉정하게 그를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는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잠이 스르륵 들려고 하는데 핸드폰 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낯선 여자의 음성이었다.
“네, 누구세요?”
“아예, 저 정한이 누나예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정한이가 많이 취했는데 자꾸 지수씨랑 통화를 해야 한다고 해서요.”“전 통화하고 싶지 않네요.”
전화기를 타고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나이가 지긋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요~! 그래도 한번만 통화 해 봐요. 도무지 통제가 안되서.”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전 정한씨랑 통화하고 싶지도 않구요, 이런 일로 제게 전화 하지 않으셨음 좋겠네요.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찜찜한 기분이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한달 후 갑작스레 가게에 도둑이 들어 가게 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훔쳐갈 돈이 없어서 그랬는지 소파에 불을 지르고 도망갔다.
다행히 큰 불은 아니었다.
경찰관이 첫째로 용의자로 지목한 사람은 그였다.
“그 사람은 아닐 거예요. 저를 쫒아 다니긴 했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예요.”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해 봐야구요. 다른 의심 갈만한 사람은 없나요?”
“네.”
온통 그을음으로 시커멓게 변한 가게 안이 흉물스러웠다.
창문을 열고 걸레로 그을음을 조금씩 지워나가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수씨~! 저예요.”
“아~ 예, 웬일이세요?”
“가게에 불이 났다면서요?”
“네.”
“제가 도와 드려도 될까요?”“아뇨. 괜찮아요. 말씀만이라도 고맙네요. 그럼....”
시커먼 걸레를 소파에 집어 던지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몸을 부들 부들 떨며 울었다.
어디서부터 정리해야 할지 막막했고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웠다.
마음 같아서는 가게를 다 부숴버리고 싶었다.
까맣게 그을음이 묻어나는 양주병 하나를 집어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면서 울었다.
양주병을 한쪽으로 밀어 놓고 걸레를 빨아 테이블을 닦는데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그였다.
그렇게 미워했는데도 도와주겠다고 와준 그가 고마웠다.
몇일 동안 가게 정리를 하면서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았다.
첫인상이나 외모와는 달리 자상하고, 매너도 좋았다.
그러다가 정이 들어 양쪽 부모님들을 뵙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오빠는 그를 쳐다보려 하지도 않았고 엄마 역시 탐탁지 않은 표정이었다.
결론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4대 독자였고 특별한 직업도 없었다.
미국에서 유학을 다녀와서 별 할 일도 없이 놀고먹고 있는 터였다.
우리 집에서는 이 모든 걸 문제 삼았고, 그의 집에서는 내 종교와 편모 가정에서 자랐으며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나는 천주교 신자였다.
자신의 며느리는 불교 신자여야 하며 같이 절에 꼭 다녀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어머니 입장이었다.
“며느리를 얻자는거야, 비구니를 구하자는거야?”
하고 내가 물었다.
그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가끔은 절에 가서 합장도 하고, 절도 할 수는 있지. 그런데 어머니처럼 맹신은 못해~!”
그의 어머니는 이변이 없는 한 매일 이른 새벽 첫차로 절에 다녀오시며 절도 여러 군데 다니셨다.
끊임없는 그의 설득과 노력으로 나는 그와 살림을 차렸다.
가게를 정리하고, 그는 택시 운전을 해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나서 그는 친구와 함께 강원 랜드에 발을 들여 놓아 쫄딱 망해서 전세금까지 날려 먹게 되었다.
시어머니가 계신 서울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2층에 사는 두 시누이들과 아이들, 시부모님들 식사준비나 뒷바라지는 모두 내 몫이었다.
하루 10인분 삼시 세끼 식사 준비 하고, 청소와 빨래, 아이 돌보기 등 하루 종일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다.
몸도 지치고 마음도 지쳐가다가 결국 우울증에 빠져 내 존재감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왜 사나 싶은 게 눈물이 나면서 삶에 의욕도 잃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괴롭고 가슴이 아팠다.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여도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으며 그로 인해 짜증도 늘어 가기 시작했다.
한 동안 신경 정신과에 다니며 우울증 약을 먹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러다가 약도 끊어 버리고 대신 술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는 동안엔 온갖 괴로움을 잊고, 취하면 쓰러져서 잤으므로.....
그러다가 결국은 이렇게......
새벽, 미순언니는 발을 쿵쿵거리며 지익직 끌고 병실 문을 큰소리가 나고 닫아 버린다.
나는 “조심성이 없고, 털털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잠도 많고 코도 많이 고는데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잠이 드는게 참 부럽다.
실컷 자고도 늘 “잠 못 잔다”고 해서 나를 웃게 만든다.
물건을 자꾸 잃어 버리는게 알코올성 치매 같다.
오늘은 햇볕이 참 좋다.
나는 미진에게 청소를 시키기로 했다.
“오늘 미진이가 방 쓸고, 닦아!”
“아까 언니가 다 했잖아요.”
“이따가 할게요.”
“야! 내 입에서 욕이 나와야 하니? 오늘은 네가 당번인거 몰라? 이따가는 무슨, 빨리해~!”
“이따가 할게요.”
이게 슬슬 화를 돋구기 시작했다.
“당장 안 해? 이게 정말!”
화장실을 다녀오니 청소를 다 했다며 미진은 휴게실로 나갔다.
방 바닥을 휘 둘러 보니 과자 부스러기와 머리카락은 그대로 이고 휴지통도 비우지 않았다.
미진이 방으로 들어왔다.
“야! 이게 청소라고 한거야? 다시해!”
“다 했단 말이예요.”
“내가 뭐라고 했어? 휴지통 비우고 방바닥 깨끗이 하라고 해지? 눈은 폼으로 달고 다니냐?
저거 안보여? 씨발, 존말 하면 드럽게 안들어 쳐먹어. 꼭 욕을 해야 실행에 옮기지.
빨리 안치우고 뭐해!“
미진은 내 눈치를 보며 다시 방 청소를 했다.
9시가 지났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슬그머니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아~ 씨~ 내가 언제 입원시켜 달랬어?
내가 여기서 마음 편하게 호위호식하며 잘 사는 줄 착각하나본데 지랄 옘병을 하세요.
막말로 내가 암이라도 걸려 수술비가 엄청 나오면 내다가 버리겠구만.
내가 이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너 한테는 내가 니 발톱에 낀 때 만도 못 하다는 거야?
뭐? 호강은 못시켜줄 망정 멀쩡한 년 데려다가 병신 만들고 뭘 잘했다고...
나쁜 놈, 그 지랄로 해봐라. 내가 어떻게 하나 두고 보라구~!
네가 나를 괴롭히고, 자존심 상하게 하고, 망신, 모멸감, 온갖 더럽고 치사하게 만든 것 다 갚아 줄테니까.
내가 받은 것 보다 수억 배 이상 더 돌려 줄테다!“
의사의 회진.
“왜 술을 마신 것 같아요?”
“심심해서요~!”
의사가 한심하다는 듯 웃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아주 근본적인 것부터.....”
아주 근본적인것이라, 어릴적 기억, 경험, 사는 것 자체가 다 모든 병의 근원이겠지.
내가 술을 좋아하고 많이 마시긴 했지만, 그를 만나기 전엔 밤낮없이 마시지는 않았다.
몇 년전 내가 왜 두 번씩이나 삶의 끈을 놓으려고 했는지도 그는 알지 못했다.
단지 우울증이라고 만 결론을 내렸을 뿐.
점심 식사 후 그가 면회를 왔다.
쇼핑백에 샴푸와 비스켓등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잘 지냈어?”
“댁의 눈엔 내가 잘 지낸걸로 보이슈?”
잔뜩 가시 돋힌 말로 대답했다.
“......”
“우리 빈이는 잘 지내고?”“아~ 빈이 대전 내려갔어. 감기 걸렸는데 먹는 것도 시원찮고, 가끔 자기 찾으면서 울어.”
순간 눈물이 났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말 한거 다 갖고 온 거야?”
“응. 근데 얼마나 오래 있으려고 빨랫비누를 세 개씩이나 갖고 오라고 그래?”
“적어도 세 달 이라며? 맘대로 하셔~ 평생 쳐 박아 놓던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세 달은 넘기지 않을테니 걱정 말고 몸이나 잘 추스르고 있어.”
“몸이나 잘 추슬러? 웃기고 있네. 됐으니까 빨리 가!”
나는 쇼핑 봉투 두 개만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올라 2층으로 왔다.
봉투를 들고 스테이션에서 검사를 받고 나오자 다들 우르르 몰려 와서는 “맛있겠다”며 군침을 흘렸다.
병실로 돌아와 비스켓과 빵을 나눠 먹었다.
전화 시간 손보호사가 웃으며 물었다.
“지수씨~! 오늘 써방님 면회 오셨다면서?”
“네.”
“알콩달콩 재밌는 얘기 많이 했어요?”
“아뇨, 저보고 빨래 비누 세게 다 닳을 때까지 여기서 나올 생각 말라던데요?”하자 휴게실 안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병실로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한참을 울었다.
내 아이 생각에 가슴이 아파 견딜수가 없었다.
“빈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이 못난 에미 때문에 어린 네가 마음고생하고, 상처받게 해서 정말 미안해!”
밤새도록 미진, 윤아 둘이 설쳐댔다.
미진은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방과 복도를 드나들고, 윤아는 큰소리로 누워서 떠들었다.
손 보호사가 둘을 202호로 보내고서야 조용해 졌다.
빈센트 교향곡이 울리고 나서 미진과 윤아는 이불을 들고 돌아왔다.
미순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그지 같은 년들! 그래도 집은 잘 찾아오네.”
회진 시간 직전 수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지수씨~! 어젯밤에 미진씨랑 윤아씨 어땠는지 자세히 좀 알려줘요.”
“네? 저보고 고자질을 하란 말씀이신가요?”
“고자질은 무슨, 우리가 유심히 보긴 하지만 아주 자세한 부분까지는 모르기 때문에 묻는거예요.
치료에 도움이 되니 좀 알려줘요.“
“그러시다면야.... 미진이는 밤새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구요, 윤아는 ”집에 갈래, 안할거야“를 계속해서 중얼거렸어요.”
“그럼 그 방 다른 환자들은요?”“미란이는 몸을 떠는 건지, 흔드는 건지....”
“몸을 흔들어요? 떤다는 건가요?”
“떠는 것 보다는 쳇 머리 흔드는 것처럼 온몸을 흔든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은주는 많이 좋아졌고, 미순언니는 자꾸 깜빡깜빡 잊어버려요.
물건 두고 잊어버리고 오거나, 자기 물건도 잘 못 챙기고, 자기가 한 말도 금방 잊어 버려요.
그 외엔 다들 같아요."
“지수씨! 고마워요. 지수씨도 힘들텐데 다른 환자들까지 신경써줘서. 많은 도움이 됐네요.
앞으로도 다른 환자들 증세 좀 잘 알려 주세요. 좀 도와줘요.“”예.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이네요.“
휴게실에서 앉아 있는데 미순언니가 옆으로 와서 앉았다.
수간호사가 미순 언니를 불러서 스테이션 옆 의자에 앉히고
“왼손 들어 보세요!”
미순언니는 왼손을 들어야 할지, 오른손을 들어야 할지 모르는 듯 양손을 들듯 말듯 망설였다.
간호사가 다시 얘기했다.
“미순씨! 제가 하는 단어 잘 듣고 따라해 보세요!
새, 나무, 비행기.“
“새, 나비..... 우체국이었나?”
수간호사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다시 물었다.
“자, 다시 듣고 해봐요! 새, 나무, 비행기.”
“새, 나비......”
하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꾸 반복해서 외워보세요. 이따가 다시 물어 볼 거예요.”
하고 수간호사가 말했다.
미순언니는 피식 웃으며 내 옆으로 왔다.
“야~! 왜 그게 자꾸 헷갈리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데 정말 생각이 안나?”“응”
“정말? 언니 알코올성 치맨가부다. 어떻게해~”
“에이~ 씨발~ 살면 얼마나 산다구~ 그냥 술이나 실컷 마시다 죽으면 그만이지.”
“실컷 마시다 죽기나 하면 다행이게? 병신 되면 어쩌려구~ 그게 무서운거지.”
“야! 하긴 그렇다. 그냥 확 뒤져 버리면 그만인데, 그게 문제네....”
미순언니 얼굴이 조금은 심각해 졌다.
“야~! 그래도 못 먹고 죽는 것 보다는 먹고 죽는 게 낫잖니? 왜 먹구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잖아?”
“크크~ 언니! 술 마시고 죽은 사람 얼굴은 때깔도 안 좋대!”
“그래? 죽은 사람이 때깔이 좋으면 어떻구, 안 좋으면 어떠냐? 난 그냥 꼴리는 대로 살란다.”
점심 식사 시간 내 앞에 김씨 아저씨가 앉았다.
“어째 밥 먹는 게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여요?”
“네? 아닌데요.”“무슨 일 있어요?”
“아~ 잠을 못자서 그래요.”
“왜요?”
“밤새 고시 공부 하는 애들 관리 좀 하느라구요.”
“하~”
먹는 둥 마는 둥 점심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식이 와서 나눠 먹고 있는데 재영이 C/R문을 걷어차고 꿱겍거리며 소리를 질러댔고 잠시 후 R/T를 당한 듯 문 두드리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윤아는 주문한 과자를 몇일 굶주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먹어댔다.
뽀빠이 할머니는 가끔씩 우리 병실 문을 열어보고 씨익 웃고 가셨고, 은주는 오늘도 홈쇼핑 카다로그를 보며 아이 쇼핑을 하고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문질러 댔다.
윤아는 먹을 것만 보면 눈을 번뜩였다.
그때만 정신이 약간 돌아오는 것 같고, 발을 질질 끌고 다니다가 어디에 다쳤는지 피를 방바닥에 다 묻혀 놓고 다녔다.
방을 쓸고 걸레로 닦았는데 피비린내가 장난이 아니었다.
창문을 열어 놓았지만 비린내에 비위가 상했다.
그래도 발을 질질 끌며 스~윽~ 스~윽 사악~ 사~악~ 소리를 내며 다니는 건 여전하다.
그가 사온 땅콩과 비스켓을 여럿이 나눠 먹었다.
“야~! 오늘 밤은 제발 조용히 좀 자자! 나 머리 뽀개진다. 제발 오늘은 교통정리 좀 하지 않게 해주라~ 알겠니?”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였다.
느닷없이, 갑자기 가슴 속 한구석에서 왠지 모를 불안감이 나를 엄습해 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른다.
아마도 술에 대한 강박 관념 때문일지도.
12시가 넘은 시간까지도 세 년들의 지랄병을 구경해야만 했다.
미진, 미란, 윤아.
미란이란 년, 밥만 쳐 먹고 하루 왼 종일 자빠져 자고, 미진은 휴게실이나 간호사실 앞에 서서 담배 시간 기다리며 멍 때리고, 윤아는 거의 하루를 자다가 오후 늦게서부터 왔다 갔다 하며 먹을 거나 담배만 찾아다니더니만 밤엔 잠 안자고 중얼 거리다가 병실을 들락날락 거렸다.
두 년들 하는 짓도 모자라 미란까지 합세를 하니 돌아 버릴 것 같았다.
밖에선 다들 노래방 기계에 매달려 자기 차례를 목이 빠져라고 기다렸다.
재영이는 완전 돼지 멱따는 소리에 책을 읽는다.
알코올로 들어온 아저씨들은 많이 놀아본 듯 노래를 잘도 부른다.
우리 병실에서는 아무도 노래시간에 동참 하지 않았다.
조용히 있을 때면 불안감에 휩싸여 몸이 떨렸다.
그가 면회 오고 난 후부터였다.
“3개월이 지나 밖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까?
아님 술에 대한 미련 때문일까?
내가 왜 이러는거지?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민하고 괴로워 하는거지?“
도무지 알수 없었다.
하루 종일 웃고 떠들어도 마음속 한구석은 텅 비어 있음을 느낀다.
공허! 속빈 강정, 구멍 뚫린 엿가락, 빨대, 기다란 파이프, 어두운 터널, 빈방.
숨이 차올라 오도록 끝이 없는 길을 달리는 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 모든 게 연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