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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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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안정실)


BY 이미지 2012-05-03

   하늘색 옷의 남자가 가져다준 사물함위에  이불과 배개를 올려  내 자리로 갔다.
매트리스 위에 이불과 배개를 놓아두고 사물함에  짐을 정리 하다가 소설책 만한 창문을  바라보았다. 보기만 해도 답답해서 미칠것 같았다.
방안을 빙 둘러 보았다. 가지런히 정리가 잘된 자리도 있는 반면 금새 몸만 빠져 나간듯  헝크러진 이불이 그대로 있거나, 꼬깃꼬깃하게 구겨 놓은 휴지가 쌓여 있는 곳도 있었다.
세 여자는 해가중천인줄도 모르고 코를 골며 자고 있었고 50대 초반쯤 되는 두 여자는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나는 모르는척 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상냥한 목소리의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일어나서 식사하세요~!"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전 이 윤자예요. 앞으로 잘 지내요."
"아~ 네에~.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
나는 그녀를 따라 밥상이 차려진 휴게실로 나갔다.
환자들이 길게 늘어서 순서를 기다리며 나를 힐끔거리며 쳐다 보았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뒤에서  팔꿈치로 나를 툭툭 건드렸다.
뒤를 돌아보자 아침 나절 나와 잠깐 실랑이를 벌였던 그 덩치큰, 남자같은 여자였다.
그녀는  시금털털한 입냄새를 풍기며 나를 협박했다.
"너 앞으로 조심해! 안 그러면 죽을줄 알아!"
"너나 조심하세요!"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리고 웅성거렸다.
"조용히 하세요! 식사시간에 떠들지 말고! 특히 천 재영. " 하늘색 옷의 남자가 크게 외쳤다.
다들 숨을 죽이고 조용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식판과 숟가락을 들고 보니 젓가락이 없었다.
"젓가락은 어딨어요?"하고 묻자 깡마른 체격의 여자가 걸죽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숟가락 밑에 매달려씨유~"하더니 "왔구나 왔어~ 초짜가 왔구나~"하고 간드러지게 노래하듯 읖조렸다.
숟가락을 들여다보니 아래쪽이 포크처럼 생겨있었다.
"신기하게 보지 말어. 그것보다 더 신기한게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녀가 슬며시 웃으면서 말했다.
흰쌀밥에 된장국과 함께 네가지의 반찬이 나왔는데 두어 숟가락 떠 먹고 잔반통에 쏟아 버렸다.
병실 안으로 들어와 내 자리에 앉아 있으니 앳되 보이는 여자애가 내 옆자리에 와서 앉으면서 물었다.
"새로 오셨네. 전 노 혜미예요. " 밝고 명랑해 보이는 아이였다.
나는 "저렇게 어린 아이가 여긴 왜 들어 온거지? 나처럼 술을 많이 마셔서 인가? 아직 어린데 너도 참 안됐다. 그나이에 벌써 알콜 중독이라니.... 츳츠..."하고 생각 했다.
간호사의 목소리로 복도가 소란스러웠다.
"보호사님! 보호사님! 천 재영 C /R요!"

나는 복도로 나가  재영이가 끌려 가는 걸 보며 옆에 있던 혜미 에게 물어보았다.
"저기, C/R이 뭐예요?"
"안정실을 씨알 이라고 하는데 잘못하면 거기 들어가서 갇혀요.이 병원에서 제일 무서운 곳이예요. 재영이 저놈은 C/R 단골인데 무대포라 조심하셔야 돼요."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재영이 저놈, 오늘은 무슨짓을 했나?"하더니 머리를  흔들며 폴짝 폴짝 뛰어 병실로 들어갔다.
"여기서 버티려면 둘 중 하나다. 꼬랑지 내리고 굽신거리며 살던가, 강하게 나가던가.  내 입지를 굳혀야 한다. 그러려면 강해져야 한다. 천재영 어디 걸려봐라~! 내가 널 환풍기 구멍만 있는 캄캄한  C/R로 보내주마~!" 하고 벼르고 있던중 화장실에서 일이 벌어졌다.
변기에 앉아 있는데 재영이가 노크도 없이 문을 활짝 열었다가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쿵하고 닫아 버렸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재영이가 화장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다그쳤다.
"야! 노크없이 문을 열었으면 미안하다고 해야 되는거 아냐?"
"내 맘이다 이 미친년아~!" 하며 손으로 머리를 때렸다.
나는 "뭐, 미친년? 하고 크게 소리치며 발로 그녀의 허리를 걷어찼다 .
"이 씨발년이!"하며 재영이 다시 나를 때리려 했지만 재빨리 손으로 밀쳐 버렸다.
싸움소리에 보호사가 와서 나와 재영이를 떼어 놓은 후  그녀를 C/R로 끌고 갔다.
환자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쑥덕 거렸다.
"코끼리랑 토끼가 싸우는것 같다."
"쪼끄만게 승질이 보통 아니네~ 재영이를 건드리고......야, 조심하자!" 하더니 나를 슬슬 피했다.
  저녁 식사시간에도 재영은 C/R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오랫동안 C/R에서 나오지 못하길 은근히 기대 했다.
병실 안에서 멍때리고 있는데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스테이션으로 가자 내게 비닐 봉투를 열어 보였다.
종이컵과 커피, 크리넥스 티슈등이 담겨 있었는데 보호사가 커피 봉지를 꺼내 들며 말했다.
"어? 이렇게 큰걸?"
"아~ 제가 프림이랑 설탕든 커피를 못먹어서요."
"아~ 예, 이런 경우가 없어서.....이름 써드릴테니 관리 잘 하시고 드세요."
그는 매직으로 내 물건에 이름을 적어서 내게 건냈다.
나는 중얼 거리며 스테이션에서 나왔다.
"초딩도 아니고 이름은 왜 적어 놓나 몰라~ 별일 이구만....."
 12 밤 10시가 되자 복도의 불이 꺼지고 방엔 수면등만 켜 놓았다.
훤한게 거슬려 잠을 이룰수 없어 천정을 바라보니 구석 쪽에 CCTV 카메라가 보여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 보았다. 복도, 샤워장 옆 흡연실, 휴게실 모두 CCTV카메라 투성이 였다.
병원에서 환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감시하고 있는것이었다.
기분이 묘해졌다. 감시를 당하다니...... 그리고 앞으로도 쭉 감시를 당하면서 지내야 한다니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것 같았다. 등줄기가 오싹해지고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207호에서의 첫밤은 C/R보다 따뜻하긴 했지만 하루종일 받은 충격과 공포로 잠을 설쳤다.
가끔씩 질주하는 자동차들의 소음과 코고는 소리 뿐인 이 곳,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의 자유가 그리웠다.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딜 때, 또는 달릴 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것의 소중함을 느꼈다.
 언제나 그랬듯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이 병원 공식 기상 시간은 여섯시 정각 이라고 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므로 다른 사람들 깨지 않게 살금 살금 휴게실로 가서 커피 가루가 담긴 플라스틱 머그잔 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왔다.
날씨가 꽤 추운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동차 소음이 심해져 가고 다들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집 생각이 간절했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만 다 원망 스러웠다. 결국 나를 이렇게 벼랑 끝으로 밀어 버리다니......
모두 똘똘 뭉쳐 나를 몰아 붙였다."나에게 조금만 관심을 가져 줬더라면, 아니 그렇게 다그치지만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오기가 생겼다.
"기다리자! 조금만. 아니 몇십년이라도 기다려 주마!"
 이 병원에 입원한게 내겐 충격 그 자체 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 왔으니 말이다.
그게 화근인지 손발바닥에 한포진이 재발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으면 꼭 재발 하곤 하더니만 손과 발이 퉁퉁 붓기까지 했다.
따끔 하면서도 가렵다가 아프다가 물집이 터지면 껍질이 벗겨지고 괴로운 병중 하나다.
"나참... 별게 다 속 썩이네......" 하고 혼잣말로 중얼 거렸다.
애국가가 크게 울려 퍼지더니 복도가 환해 졌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5분전 6시 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털어서 개어 놓고TV를 켰다.
내 옆에 아직 어린애 같은 혜미, 머리 모양새나 얼굴 생김새가 꼭 막걸리집 아줌마 같은 여자, 뿌연 얼굴에 돗수 높은 안경을 쓴 여자, 얼굴이 까마 잡잡한게 필리핀이나 베트남에서 온듯한 여자들은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 앞쪽에 있는 윤자 언니만 일어나서 방안을 서성거렸다.
7시가 되자 윤자 언니는 모두를 깨우고 배식 준비 하러 휴게실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로 식사가 오면 배식은 보호사가 밥을 푸고 나머지 세 여자들은 식판에 반찬과 국을 담아 주었다.
장영자,박숙자와 윤자언니가 배식 담당이었다. 이들 삼자가 이 병동에서 조금은 영향력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아침을 두어 숟가락 먹고 막걸리집 아줌마 같은 여자에게 병원 규칙이나 전화시간등 에 대해서 들었다.
그녀의 이름은 김미순으로 나보다 11살 많은 오팔년 개 였다.
부시시한 파마머리에 거무죽죽한 얼굴, 눈썹과 아이 라인 문신을 해서 얼핏 매서워 보였고 술과 담배에 많이 쩔은 모습이었다.
"미순 언니! 여기 알코올만 있는거 아니죠? 난 알코올만 있는줄 알고 들어 왔는데....."
" 알코올은 몇 안되고 나머진 치매나 돌이야.별에 별것들이 다 들어와 있는 곳이야. 조기 쟤랑 쟤보이지? 다 헥가닥 한 애들이야. 이방에서 알콜은 너랑 나 윤자 셋 뿐이고. "멀쩡한 사람도 병신 되서 나가는곳이야.오죽하면 이순재 병원이라고 하겠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 받는다고."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안경낀 한미란과 오은주를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조기 쟤 한미란, 쟤는 맨날 30억이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 부잣집 마나님 이라신다. 얘기 자꾸 들어 주면 엄청 피곤해.조기 쟤는 혼자 떠드는 애라 있으나 마나 하고."
난 고개를 두어번 끄덕였다.
이때 방안으로 단발 머리 여자가 노트를 들고 미순언니를 찾아 왔다, .
"언니! 담배 있어요?"
"담배 없어! 아직 한시간 안됐어. "
"언니 그럼 저 이따가 담배 조금만 줘요. 네?"
미순언니는 귀찮다는듯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니 방으로 가."
그 여자는 말에 높 낮이가 없었다. 도레미로 치면 미 정도의 톤이랄까, 아무튼 귀신소리랑 비슷했다.
게다가 오른손 중지는 새까맣게 타서 딱지가 앉아 있었다.
담배를 어떻게 피웠길래 그정도 까지 되었는지 궁금했다.
그녀가 발을 질질 끌며 방을 나가자 나는 미순언니에게 물어 보았다.
"언니! 쟤 손은 왜 저렇게 탔대요?"
"저 병신 같은게 꼭 담배를 필터까지 피운다니까. "
"꼴초예요?"
"쟤는 담배 하루에 세 개비 밖에 못피워."
"왜요?"
"여긴 담배 단속이 심해. 난 한 갑씩 타다가 재영이년 때문에 한 시간에 한 개비씩 타서 피운다니까. 생각만 해도 열통 터지네. 그 개 같은년! 어휴~!"
복도 밖이 또 소란 스러웠다. 궁금해서 나가보니 화장실에서 엊그제 C/R에서 봤던 얼굴 까만 여자가 발가벗고 씻고 있었다.
걸걸한 목소리의 여자가 소리를 질렀다. 배식을 하는 장영자 였다.
"야~! 김은경~! 너 빨리 옷 안입어? 왜 샤워장 놔두고 여기서 씻구 지랄이야~! 염병하네~"
이방 저방에서 여 환자들이 나와 화장실에 얼굴을 들이대며 구경을 했다.
"여자 빨개 벗은거 처음봐? 빨리 들어가!" 하며 화장실 바닥에 물을 좌악 끼 얹었다.
은경이란 이름의 여자는 수건으로 물기도 닦지 않은채 환의복을 걸치고 밖으로 나와 자기 병실로 돌아 갔다.
무표정한 얼굴로 발가벗고 있던 여자의 모습을 보고 나니 갑자기 숨이 막히고 속이 답답해졌다.
크게 심호흡을 하며 병실로 돌아와 조그만 창문을 열고 얼굴이 방충망 사이로 빠져 나갈 듯 바짝 붙이고 차가운 바깥 공기를 마시며 소리쳤다.
"야~~~호~~!! 아~ 미칠 것 같다~! 아~~악~ 미쳤다~!!!"
이때 영자언니가 들어오면서 말했다.
"들어 온지 얼마나 됐다구 벌써 미쳐? 이왕 미친짓 할거면 C/R CCTV앞에 가서 해~! 저 소리 안들려? C/R에 또 들어 왔어"
나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해 휴게실로 나갔다.
문을 발로 걷어차는듯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 아~~~ 악~!!!....."
다들 못 들은 척 하는 건지 면역이 된 건지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번엔 울음 소리가 들렸다. 대성 통곡.
이때 영자 언니가 내 옆으로 와서 말을 건냈다.
"지 부모가 죽어도 저렇게는 안울껴~ 아주 발악을 하는구만."
"아~악~~~ 아~~~악~!!!" 
"괜찮을까요? 저렇게 난리를 치는데....."
"괜찮기는, 조금 있어봐. 이제 R/T당할테니."
"알티가 뭐예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