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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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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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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살아서 다른세계로


BY 권희정 2011-01-04

급하게119를 부르고 흐르는 피를 감싸며실려가는 내자신이 부끄러워

미칠껏 같았다. 그러면서 난 결심에 결심을 했다.

서로의 갈길이 정녕 따로인것을 왜 어찌 몰랐던가 보내자

행복하라고 말할순 없지만 복수라는 말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저 주어진 자기 인생은 본인 스스로들 책임지는거라고...

어느때인가부터 난 술에 모든것을 의존하는 바보가 되고 있었다.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수가 없었다.

알콜 중독자에 우울증에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내생활을 감당 할수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난 포악해졌다. 정말로 난폭한 여자로 바뀐것이다.

욕하고 때리고 부수고 어떻게 장만한 살림들인데

눈물이 범벅이된채 반 미치광이가 되가고 있었다.

집어 던지고 부수고 술이깨고 나면 내스스로도 정신이 돌아오면 무서웠다.

그런 내자신이 나도 무섭고 싫었건만 하물며 그는 어찌했으랴

내가 아내로 보였을까 얼마나 무섭고 소름 끼쳐을까

서로 꼭 해야 할말들도 자제한체 그렇게 몇일을 보냈다.

끔찍히도 차거운 몇일 난 그에게 뭐든 결정하라고 했다.

내남편이 나를 이제 놓는단다. 이혼 합의서에 도장을 찍고 법원앞을

나오면서 아직 결정나지 않은 법적 문제보다도 더먼저 이별을 선언하는

그가 왠지 얄밉기까지 했다. 나를 자유롭게 해줬건만,

그도 정말 차갑고 냉정했다. 우린 그렇게 서로의 갈길을 찾아서

남들이 50년쯤 산만큼의 우여곡절이 많아던 우리의5년이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공항으로 향했다. 여수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무작정 아무도 없는 순천으로

가고있었다.술을 마시고 혼자걷고 또걷고 다리가 너무아파서 혼자 여관에들어가 얼마나 울었던가 아니 진짜는 마음이 아파서였을것이다.

아픈 다리는 주무르면 시원함을 느끼겠지만 내병든 가슴은 어떻할것인가

울다 지쳐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러다 깨어나서 내모습을 바라 보면서

너무도 불쌍해서 엉엉 또 울고 말았다.

이렇게 하려고 했던것은 아닌데, 어쩜 그에게 겁도주고 내남편인 그가 정신을 차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난폭하고 못된여자로 바뀐것인데....

외로움에 가슴이 떨려온다.

소중한 내사람을 보내고 그리고 이제 정말 혼자가됐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운명일것이다.

악연은 필연 보다도 더 지독한 인연이라 하지 않았던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신 술덕분에 속이 많이 상한것 같다.

음식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않는다.계속 구토만 할뿐

내인생에 내삶에 등장할수있는 주연은 아니 조연 까지도 아마 내 남편이었다.

순천을 그렇게 돌아다니다 집으로 올라와서 난 몇날 몇일을 꽁꽁 숨어서 

술과 담배 거기에만 의존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래 정신 차리자를 수십번 내일을 찾자. 다시살자를 수백번 되풀이해도 난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그도 무엇이 행복인지를 알날이 올것이다.

진정으로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깨달을 날이올것이다.

혹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해도 우린 가슴속 어딘가에 서로 묻혀있을것이다.

너무 힘겹게 살아 왔기에 죽어 관속에 들어가도 못잊을것이다.

그와 함께한 시간을 잃어버리기가 싫다. 어지간히도 나를 속상하게 했건만 그래도 날 사랑 해주고

또 내가사랑했으니까 그래도 나에겐 소중한 남편이었으니까

그런 사람 때문에 온갖 수모와고통을 겪었지만 그저 숙명처럼 받아들였다면 ....

다시 내 일을 하자 하고싶던 공부도 더해보고 대학원도 가보고 멋진 연애도 다시 해보자

돈도 많이 벌고 헤어짐은 또다른 만남의 시작이니까

훗날 후회하지 않는 사랑을 하자. 다시는 이런 실패는 없다.

마음에정리가 되는대로 옛날 친구도 만나고 수다도 떨고 부끄러워 하지말자.

그래도 내자신이 떳떳하다. 이만큼 노력했고 고생했잖아 스스로 위로하고 살자.

남편에 대한 애정이 애증으로 변하고있었다.

미워하면서도 좀처럼 기억에서 지워지질 않았다.

텅빈 집안에서 멍하니 무언가를 생각하다 보면 결론은 남편 생각으로 마무리를 짖고마는

나를 나의 미련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몇일을 울고 몇일을 굶고 그래도 살아있다.

또다른 나를 찾기위해 애쓰고 발버둥치지만 역시 제자리 걸음뿐 그자리가 그자리였다.

아무도 만나기 싫었다.

열심히 멋지게 폼나게 살자고 결심한지 불과 몇일만에 다시 무너졌다.

꼭박 40일을 집밖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지내고 있었다.

간간히 친구에게 걸려오는 전화가 내가 말할수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바보가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

내남편과는 끈질긴 인연인가보다,궁금해서 와보았노라고 그렇게 한번씩 들러서

나를 비웃는듯했다. 그여자와는 여전히 잘 되고 있는것같았다.

같이 왔는데 밖에 있다고 잠시 보러 왔다고 이해 할수가 없었다.

그토록 좋은 여자를 만나서 잘 지내면서 내가 왜 궁금 했을까

아에 죽어주기를 바라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파하는 내모습에서 희열을 느끼나 어찌 나를 가만 두지않고

그래도 그는 일주일에 2~3번은 잠시 얼굴을 내밀었다.

그도 나를 쉽게 잊을수가 없었던지몇일에 한번씩 드나들더니 결국은 짐을 다시 다 챙겨서 들어왔다.

아직도 호적에는 우리가 부부란다.

두사람이 다 신고를 해야하는거란다.

나는 그가 했으련이 그는 내가했겠지

허허허 그저 웃음만이 나올뿐 헛수고 를했다.

6개월 딱 반년동안 남편은 부재중이었다. 96년 봄 그여자가 잡혀가고 무슨이유인지 그들은 그렇게

끝났다. 그럭저럭 시간 때우기를 하던 그가 어느날 나에게 돈을 벌러 대천 해수욕장으로 장사를 떠나자고

제의를 했다.

나를 그렇게 아프게 했던 사람인데 그래도 난 좋았다.

돈을 벌러가는것도 늘 함께할수 있는것도 이것저것 생각도 필요치 않았다.

부랴부랴 친청으로 이사를 해놓고 꿈에 부풀어 대천 해수욕장으로 떠났다.

그런데 도착해서 숙소를 정하고 몇날이 지나도록 밖에 나갈수도 없었다. 비가 안오기로 유명하다는

대천이 일주일을 쉬지도 않고 쏟아부었다.

가져간 돈도 다떨어지고 아침에는 저녁걱정 저녁에는 아침 끼니 걱정을 해야했다.

아무거라도 해야했다. 보령시에 나가서 길거리 노점장사를 시작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미친듯이 물건을 팔았다.

젊은여자가 반바지 차림에 춤을 추며 소리 지르는 모습에 사람 들은 구경 거리가 생긴듯 처다 보았지만

그덕분에 물건은 제법 잘 팔려나갔다.

2000원 짜리 헝겊으로된 예쁜 화장품지갑이 순식간에 50개씩 팔렸다.

신났다.창피함을 버린지는 이미 오래전 일인냥,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고 우리가 그렇게

싸우던 부부인지는 더더욱 몰랐다.

그저 열심히 사는 예쁜 부부였다.

다시 돈이 모여서 대천 해수욕장에 먹거리 포장마차를 차렸다.

땅도 빌리고 포장도치고 의자도 사고 메뉴도 적어 붙이고 장을 봐서 잔득 준비를 해놓았는데

라면 한그릇 팔리지 않는다.어찌된 일인지 그많은 피서객들이 우리 포장 마차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