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지내는게 힘이든다.
남편은 자꾸만 내게 실망만을 안겨줄 뿐이다.
그래도 하나 고마운것은 있다. 내 두 딸아이를 인정해주는것.
그래서 지금까지도 버티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아이들 소식이 궁금하여 아이들 고모랑 통화를 시도해보았다.
기막힌 얘기를 들었다. 큰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서 방황을 한다는것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가출도 서슴없이 하고,담배도 피우다가 얼마전에는 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맞았다고한다. 모든게 내 탓인듯하여 가슴을 쓸어내려본다.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어 당분간 큰아이를 데려와 있기로 합의를 했다.
오랫만에 만난 딸아이는 이미 어른흉내를 내는 옷차림으로 내 앞에 서있다.
손톱엔 짙은 색의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으며..머리는 노랗게 물들여있고...
억장이 무너지는듯했다. 둘이는 한참을 부둥켜 안고 울었다.
조용히 아이랑 대화를 시도해 봤더니 정학이 아니라 퇴학을 맞았다고 했다.
아이방을 꾸며 주었고 아이도 잠시 안도하는듯.이틀동안은 계속 잠만잤다.
"소영아! 이제는 엄마하고 지내면서 검정고시쳐서 졸업장따고 미용기술이라도 배우는건 어떠니?"
"응.엄마 그럴께..근데 내가 여기 있으면 소희는 어쩌지?"
"소희는 그래도 새엄마한테 미움받지 않고 있으니 우선 너부터 마음잡도록하자"
"하긴.소희는 아빠도 좋아라한다.글구 재욱이하고도 사이가 좋고.."
"재욱이는 누군데?"
"엄마 몰라? 새엄마 아들 낳았잖아..걔 이름이야.나도 재욱이는 예뻐"
"으응..글쿠나.고모가 그얘긴 않하더라.."
이렇게 모든게 순조로울줄 알았다.
며칠을 지내보니 딸아이가 몰래몰래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는듯 했다.
남편이 눈치챌까봐서 얼른 내가 들어가서 피우곤 했다.
아이방 구석구석에서도 담배꽁초랑 빈 담뱃갑이 나왔다.
어떻게 대처를 해야할지....또 아이가 밥먹는 태도가 이상하여 유심히 관찰했더니 의심스러운 부분이
목격되었다.아이를 다그쳤더니 생리를 안한지가 두달째란다.
이런게 하늘이 무너지는 거랄까? 딸은 엄마 팔자 닮는다더니...
아이의 손을 잡고 산부인과엘 갔고 수술을 받게 했다.
수술대에 올려 놓은 내가슴은 천갈래만갈래 찢어지는듯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고 이 모든것을 혼자서 감당할려니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그 아이 이제 겨우 17세이다. 이 모든게 내탓이다.
병원에서 데려와 미역국을 끓여먹이며 눈물을 참을수가 없었다.
마음놓고 울지도 못했다.남편이 눈치라도 챌까봐서 조심스러웠다.
가게에 나가서 요며칠은 계속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퍼마셨다.
아이의손을 잡고 검정고시학원에도 등록시키고,미용학원에도 등록시켰다.
카드로 긁어버렸다.어쩔수 없는 ...피할수없는 현실이기에 뒷감당은 뒤로 미뤘다.
아이가 와서 집에 있게되자 작은 아이를 맡겨두고는 남편은 신이 난듯이 허구한날 회식이라며
영업하는 나보다도 더 늦게 귀가를 했다.
그렇게 두달쯤이 흘러갔다. 얌전히만 있어줄줄 알았던 아이가 외박을 하기 시작했다.
학원도 빼먹기 일쑤였다. 나는 삶에 점점 지쳐갔다.
어느날 문득 잠을 청하다 벌떡 일어나서는 남편 와이셔츠들을 가위로 마구 자르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다 문득 달려오는 찻길에 뛰어들고싶다는 생각도 했다.
상상을 하니 끔찍하다는 생각보단 묘한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가게로 출근을 하다가 계단을 올라갈려는데 숨이 갑자기 막혀서 한발짝도 움직일수 없었고 소리를
지를수도 없었고 가슴을 마구 두들기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드러누워버렸다.
요즘들어 한번씩 겪는 경련 같은것이였다. 억지로 브래지어라도 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 아니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요? 어디 아파요? 왜이래요?"
그 였다. 뭐라고 말을 해야하는데 온몸이 벌벌 떨리고 말문이 막혔다.
그는 나를 업다시피해서 근처 병원 응급실에 나를 데려갔다.
"여기요. 이 사람좀 봐주세요!"
" 일단 안정제부터 좀 줄께요.이 사모님 또 이러시네.."
"예? 이분 이런일이 자주 있습니까?왜 이러는 겁니까?"
"두세번째인것 같구요. 뭐 충격받으신 일이 있습니까? 자세한건 정밀검사를 해봐야 알죠."
그렇게 간호사들이 양쪽 팔을 붙들고 그가 내 두다리를 누르고 앉아서야 겨우 안정제 주사를
맞을수가 있었다.떨리던 온몸은 잠시 진정을 했고 숨이 좀 트이는듯하자 그제서야 눈물이 쏟아져
흘러 내렸다. 그에게 겨우 말을 건넸다.
"놀라셨죠? 우리가게애들한테 전화 좀해줘요."
"무슨일입니까? 전화는 좀전에 했습니다."
"아니예요.일은 무슨일요..제가 소가지가 못되어서 그렇죠 뭐"
무슨말을 할수 있나? 그냥 그렇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의사는 낮에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한번 해
보자고 했다. 심장쪽에 이상소견일수 있다며....
이튼날 병원으로 가 보았다. CT촬영을 해보고선 의사 선생님 하시는말.
" 특별소견은 없는것 같은데 제가 볼때는 심적인 부분에서 오는 증상인듯하니 신경정신과치료를
한번 받아보시는게 좋겠다는 생각이드네요."
" 어머. 제가 미친것 같아요. 지금 저더러 미쳤다는 말씀하시는건가요?"
" 아닙니다.아직 한국에서는 신경정신과라고하면 다들 정신이상자가 가는 병원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한번 가셔서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해보면 마음이 틀려질겁니다."
"미치지도 않았는데 거긴가서 뭐하게요?"
"수면장애도 그렇고 심리적인 문제도 그렇고..일단 한번 가보세요."
"별일이야..그럼 심장엔 이상이 없다는거죠? 안녕히계세요."
나는 불쾌하다며 문을 쾅 닫고는 병원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상담을 한번 받아보는것도 괜찮을것 같았다.
신경정신과 문앞을 열번도 더 왔다갔다 했다.누군가 뒤에서 나를 지켜볼것 같았다.
챙피했다. 그곳을 방문한다는것이...
30분가량을 서성이다가 수면제라도 타오자 싶어서 후다닥 들어섰다.
그렇게 의사선생님과 상담후..아니 일방적인 내 신세한탄이였다. 각티슈 한통을 다 쓴듯했다.
초기 우울증이라 했다.남편과 같이 방문을 요구했다.
주사를 한대 맞고 약을 받아왔다.생각외로 마음이 아주 편하고 속이 시원함을 느꼈다.
큰아이랑 대화를 해봐도 않되고, 약속을하고 다짐을 받아도 그때뿐이고...아이는 여전히 친구들과
만나서 들락날락하고 가끔은 돈도 살짝살짝 가져가기도하고,큰아이 온뒤로 남편은 아주 더 당당하게
술마시고 늦게 들어오고,사흘이 멀다하고 새옷을 사들고 들어서며 '샘플이야'를 외치고,
주말이면 팔자좋게 낚시질하고..가게 장사는 눈에 띄게 안되고..시어머님은 여전히 징징거리시고,
시아주버님도 여전히 제수씨가 도깨비 방망이인줄 알고 있고......
정말이지 미칠것같다. 받아온 약을 먹었다. 머리가 맑아지고 아무걱정도 근심도 생각이 안나고
그냥 졸음이 몰려온다.이대로 그냥 쭈~~~~욱 잠들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