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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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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남자


BY 조 양 희 2011-04-17

따뜻한 봄날 햇살에 내 몸을 맡긴채 그냥 멍하니 이생각 저생각에 잠겨 고독을 잠시 벗해보다가

뇌리에서 스치고 지나가는 전화번호....

XXX-XXXX 잊어먹을까 생각나는데로 적어내려가본다.

'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장가 갔을거야? 아마도...밑져야 본전이지뭐~'

나는 적혀져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때르르릉..여보세요."

"...네에.안녕하세요? 혹시 최영철씨집 아닌가요?"

"맞소.맞는데 우리 영철이하고는 워찌되는 사이요? "

" 네.친군데요.혹시 영철씨 장가 갔나요? "

"장가 안갔소. 근데 남자여자가 워찌 친구요?"

"친구 맞습니다.혹시 지금 집에 있나요? "

" 회사갔지요. 누 한테 전화 왔더라 칼까요? "

" 영희라고 전해주시구요. 이따가 저녁에 다시한번 연락드릴께요. 몇시쯤이면 통화가 가능할까요? "

" 한 여섯시.일곱시면 집에 오니께 그때 전화하소 "

"네 안녕히 계세요. "

모친의 퉁명스러운 소리보다 아직 장가를 안갔다는 말에 안도감이 드는건 왜인지...

그는 옛날에 그를 만날 무렵에 아이들 고모가 한남자에게만 얽매이면 안된다며 거의 억지로

부킹을 시켜줘서 몇번을 만나다가 너무 집착하는것 같고,또 내게는 과분한 사람인듯했고,특히

나를 처녀로 위장을 했기에 부담스러웠고, 양다리를 걸치다가 그이에게 들킬까봐서

내가 일방적으로 끝낸 사람이였다.

그런데 오늘 느닷없이 4년이나 통화한번 한적 없는 그의 집 전화번호가 왜 스치고 지나갔을까?

빨리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은근히 그와의 통화를 기대했다.

나도 엄마이기 이전에 젊은 여자이다보니 외로움을 느낀다.

현실의 도피처를 찾는다는 말이 더 절실할듯..그사람은 여전히 변함없이 내게 한결같지만

여전히 내게는 남자로 보이지를 않았고, 그냥 '호구'그 자체로 머물고 있었다.

말 주변도 없고, 세련됨도 없고, 매력또한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냥 전형적인 따분한 타입.

일곱시를 초를 재며 기다렸지만 아닌듯이 7시20분경에 다이얼을 눌러봤다.

"때르르릉..여보세요. "

" 혹시. 영철씨? "

" 응.영희씨 !"

" 맞구나. 나 아직도 기억해요? "

" 당연히 기억나지. 지금은 어디 살고 있는데? "

" 울산...오늘 어쩌다보니 전화번호가 기억나서...긴가민가 하면서 함 해봤지. "

" 기억력 좋네.그래 시집 갔어 ? 뭐하는데 지금은 ? "

" 시집...나중에 얘기해. 지금 울산에서 다방하고 있지."

" 다방 한다꼬? 그라믄 내가 함 올라가까? 영희씨는 시간 없겠네? "

" 그래요. 시간나면 함 오세요. 커피는 양껏 줄께요 "

서로 삐삐 번호를 교환하며 후일을 기약했다. 이 설레임은 무언지...

내 기억엔 그는 핸섬보이였고, 세관 공무원이였으며, 꽤나 부유한 집의 아들이였던것 같다.

나이는 나하고 여섯살정도 차이났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친정엄마에게 대충 얘기를 하자 엄마는 쌍수를 들고 대환영 한다고 했다.

그동안 내내 나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열심히 살고 있으며 하루종일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거의

24시간을 가게에서만 생활하며 만나는 사람도 없는것을 늘 안타까워했다.

며칠이 지난후 그는 가게로 나를 보러 찾아왔으며 훨씬 더 핸섬해짐에 나도 적잖이 놀랬다.

엄마도 그를 볼려고 가게에 왔다가 주방에서 반색을 했다.

엄마에게 가게를 부탁하고 저녁을 먹으러 시내로 나갔다. 대충 묵힌 사연도 들을겸...

낯설지 않았다, 어색함도 없었다. 늘 만나던 사람처럼...

대충 저녁을 먹는둥 마는둥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바뀌었다.

영철씨에게 있어서 나란 여자는 악녀였단다. 그는 당시 주위에 수많은 여자가 들끓고 있었고,

내노라하는 미모의 소유자들만 골라서 만났다 했다.

하루에도 서너번의 겹치기 약속이 잡힐만큼 현란한 밤의 제왕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별로 세련되지도 않은 여자가 절대로 먼저 만나자고 약속을 요구하는적도 없고.

자기 시간에 맞추는게 아니고 꼭 내시간에 맞춰 약속을 잡고, 아니면 됐다라는 식이였단다.

그래서 점점 내게 오기가 발동했고, 자기 맘데로 할수 없는 내게 점점 빠져들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선전포고도 없이 내가 돌연 행방을 감추었다한다.

그럴즈음 친구들과 술자리를 하다가 자기를 심하게 놀려대는 친구에게 열을 받아 자해까지 했다며

슬쩍 배 쪽에 흉터를 보여주었다. 흉터가 제법 커 보였다.

그래서 한동안은 나를 찾아 밤을 헤매고 다녔단다...생각지도 못했던 뒷 얘기에 오히려 내가 놀랬다.

" 그렇게 잘난척하던 영희씨가 워찌 아직 시집을 안가고 있었을꼬? "

"실은..."

그간의 내 사정을 낱낱이 설명했다. 아니 이실직고 했다. 아이들 얘기까지도....

예외의 반응이 나왔다.

" 진작 얘기를 하지...그동안 혼자 얼마나 힘들었어? 애엄마면 어때? 둘이 좋으면 되지.."

그러면서 그도 그동안 일년정도 동거생활을 했었고,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무정자로 판명이되어

깔끔하게 헤어진후 지금은 그냥 그냥저냥 지낸다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정말 진정한 친구사이처럼 서로를 위로하며 코가 삐뚤어지게 마시고 그는 일명 총알

택시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갔다. 다음엔 내가 한번 내려가기로 하고서...

그날 만남 이후로 우리는 만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고 연인으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다시 사랑이라는걸 하게되고 가게를 비우는 횟수가 늘어나자 '호구'였던 그 순한 사람이

점점 본색을 드러내며 추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요새 바람났나보네~ 세월 좋다~"

" 말에 가시가 있네. 유부남도 딴여자 보는데 혼자사는 여자가 바람좀 나면 어때요?"

" 좋은 놈 생겼나보네.뭐하는 놈인데? "

" 진짜 말 함부로 막 할래요? 누가 보면 기둥서방인줄알겠네. "

"대한민국 정조는 지 혼자 다 지키는것 같더니만 별거 아이네~"

" 그만 집으로 가시죠? 애들이랑 애들엄마 기다릴텐데.."

" 내가 집이 어딨노! 언 년한테 미쳐서 가정버린지 오래다~"

내 입장에선 명백한 횡포에 가까웠다. 혹시나 이런일이 생길까봐 나름 신경을 썼었는데....

하긴. 그사람 입장에서 보면 본전 생각도 날법하다. 영덕 이후로는 더이상 그런 기회를 주지않았고

그는 더욱 몸달아서 안달이였고,나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기에 더이상 그를 애써 봐주지 않았다.

그것도 매력이라하더니, 다른 남자가 생긴것 같으니 수컷의 근성을 내 보였다.

영철씨가 알까봐서 두려웠다. 상황만 보면 전후 사정을 떠나 나의 처신부분을 탓할테다.

그래서 영철씨를 내심 사위로 마음에 두는 아빠 엄마랑 의논 끝에 가게를 처분하고 부산으로 행로를

바꾸기로 의논을 했다.

은밀하게 가게를 처분했고, 부산 수영 팔도시장 부근에 점포를 하나 얻어서 옷가게를 오픈하기로했다.

그 사람에겐 인간적으로는 미안한 얘기지만 유부남인 자기를 사랑해봐야 끝은 뻔한것이라는걸 내가

몸소 겪었고, 대화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려했는데 그게 불가능해서 부득이하게 내가 은혜를 배신한

사람이 되어 야반도주하듯이 그렇게 울산에서의 삶을 정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