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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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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드레스


BY 조 양 희 2010-11-12

어느덧 아이는 벌써 다섯살이 되었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시어머님이 개가하신 후...

큰 시동생도 여자를 만나 집으로 데려와 한 두달 기거를 하더니 여자의집에서 부모님이 찾아와서

난리를 한바탕 치른후에 여자는 집으로 돌아갔고 시동생은 방황을 하는듯 하더니 아예 방을 하나

얻어 독립을 선언해 주었다. 나보기가 좀 미안한듯...

나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일이였는지도 모른다.

둘째 시동생도 여자를 만나 방을 하나 얻어 동거를 시작했다.

시누이는 시어머니가 개가를 한 후엔 철이 드는지 친정 출입도 적었고 나를 대하는

 태도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문제는 나랑 동갑인 막내 시동생이였다.

고등학교도 중도에 포기하고 동네의 불량 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아이들을 패서 합의금도 몇번이나

물려주었는지....식구들 없을때면 내게 막말을 하기도하고...그나마 지금은 자동차정비 일을

배운다며 날마다 기름 작업복을 디민다.

자기일을 하면서도 생색은 있는데로 다 내고 짜증도 마구 부리고..

언제나 철이 들려는지....

이 집을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쳐 보았지만 시동생들 방 얻어주고 살림내주고 생활비하고..

단지 내가 수발을 들어야 될 식솔들이 줄어들었다는것 밖에는...

그렇게 몇년간을 글로서는 다 옮기지 못할만큼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며 학대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점점

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람처럼 대해주곤 했다.

그 와중에 시작은아버지 되시는 분이 작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들 둘.딸둘을 데리고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지방에서 이사를 오셨다.

그 사촌 시동생들과 시누이들은 정말로 내게 다정하게 공손히 대해 주었다.

시아버지 제사때나 명절때에도 집에 오면 말이라도 두 시동생들은 나같은 여자있으면 당장 결혼

할거라 했고.시누이들도 회사에서 고된일들을 하고 왔을 텐데도 꼭 부엌으로 쫓아나와 좁은 부엌이지만

비집고 들어오곤했다. 작은아버님도 '아가야! 아가야 !'하시면서 정겹게 대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그 보답이랄까?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내스스로 밑반찬이랑 김치들을 일주일에

한번씩 꼭 가져다 주곤했었다.

그렇게 나는 착한 아내.착한 며느리노릇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날은 시어머니가 집에 오시더니

"인자 아도 저만큼 컸고 남들 보는 눈도 있꼬 하니까네 식을 올리는게 어떻켔노?"

"그라모 나는 뭘 준비해야되는데예?"

"너거 친정에 말해놔라 그라고 내가 상조회 들어놓은게 있으니깐 예식장은 그기서 하라꼬 정해주는

데서 하믄 된다.옷도 거서 다 하믄 되고..근데 부산에서 해야된데이~"

"예"

결혼식이라는 말에 나는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친정에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저...난데요. 아빠는요?"

"응. 잠깐 바꿔줄께.."

"울시어무이가 결혼식 올리자카는데 어짜노?"

"...그라믄 해야지 뭐..근데 식장비도 있어야하고 예단비.예물 같은 것도 해야될낀데.."

친정아빠는 한숨만을 쉰다.

그럼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하는 수없이 나는 그동안 분가를 꿈꾸며 아껴 두었던 거금 80만원을 친정에 보냈다.

그 돈으로 오빠 양복한벌 오빠 시계하나를 준비했다.

남은 돈으론 폐백 음식을 준비한단다.

양가집안 모든 예물들을 생략하고 그야말로 식만 올렸다.

나는 시계하나 딸랑 예물로 받았다.

그렇게 우리는 동거생활 5년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결혼식날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온통 얼굴이 얼룩이 질 정도로...

오만가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빠도 내손을 잡고 입장을 하는 순간부터 울기시작해서 폐백을 하는데도 울기만 했다.

그 순간 나는 아빠에게 대한 모든 미움과 원망을 놓을려 했다.

무언지 모르지만 아빠의 그 울음이 그동안 아빠에 대한 모든것을 용서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혼여행은 경주로 1박2일을 다녀왔다.

친정쪽으로 들어온 부주금은 역시나 친정아빠 호주머니로 쏙 들어갔다.

나는 구경도 못해본체...

혹시나 나는 그 돈을 나에게 줄려나 기대했었는데...

아빠의 사정도 많이도 힘이 든가보다...ㅠㅠ

그렇게 결혼식조차도 내가 준비한돈으로 마무리를 했다.

막내 시동생은 시어머님 집으로 들어가서 살게 되고

남편이랑 애기랑도 연산동에 50만원 보증금에 월세 6만원 짜리 

셋방으로 분가를 하게 되었다.

단칸방 월세 방이였지만 나는 고대광실 부럽지 않았다.

세간살이라고는 비닐 옷장이랑 이불. 아이필요한 용품들이 전부였다.

앞으로 벌어서 하나씩 준비하면 되니까...

밤을 꼬박 세웠고...꿈인지 생시인지 몇번을 꼬집어 보았다.

세상을 다 가진듯...

너무너무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