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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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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의임산부


BY 조 양 희 2010-11-03

혼인신고부터해야한단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거리낌없이 오빠가 가자는데로 따라나섰다.

구청엘갔다.

주민등록번호를 써야하는데...나는 아직 주민등록발급도 받지 못한 미성년자임이

본의아니게 오빠가 알게되어버렸다.

그냥 챙피했다. 오빠는 난감한 얼굴을 애써 감추는듯하며 내게 묻는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동의가 필요하단다.

둘다 아무말도 하지않고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주책스럽게 길옆 리어카에서 파는 순대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말없이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와? 순대 묵고싶나?"

".."

고개만 끄덕거릴뿐이였다.

허겁지겁 순대 한접시와 오뎅 세개를 게눈감추듯 해치웠다.

오빠는 어이없다는듯 나를 손잡고 가까운 커피숍으로 이끌었다.

오빠는 속이 타는지 냉커피를 시키고 나에겐 따뜻한 우유한잔을 시켜주고선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얘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새엄마랑 함께하기가 싫어 말썽을 고의로 피웠고 그러다 친구들과 방황한얘기..

고모집에서 학대 받은 얘기들...

어쩔수없이 오빠를 만나기까지의 전 과정을 대충 말을 해 주었다.

시댁 식구들에겐 비밀로 하는게 좋겠다며 며칠을 생각해보자 했다.

며칠뒤...가깝게 사는 큰고모에게 어쩔수없이 전화를 할수밖에 없었다.

고모는 전화 받은 날로 당장 쫓아왔다.

볼록하게 불러있는 내모습이나 다 쓰러져가는 시댁의 세간살이들을 둘러보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오히려 나는 담담했다.

"아이고 이 가시나야 어디서 밥은 안 굶는지 잠은 어디서 자는지..비가오나 눈이오나 내가 한시도

맘놓고 밥을 묵지도 못했다.아이고 이가시나야!!"

" 와? 못묵고 못잤는데 앓던 이가 빠져서 속이 시원했을낀데.."

"뭐??이린기 다있노 니 그게 말이라고하나?"

"됐다.그만하고 나는 이집에서 살아야 되니까 고모가 아빠한테 말이나 잘해도"

이제 겨우 나이 열덟에 이게 말이나 되냐며 혼자서 몇시간을 울부짖다가 돌아섰다.

며칠뒤 고모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집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오빠랑 같이 한번 다녀가라했단다.

늘 이런식이였다.곧바로 달려오지는  않았다.

굳게 결심을 했다.어차피 이렇게 된것 아이낳고 행복하게 가정 꾸리면서 살아야겠다고...

부모님동의만 아니면 찾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집엘 갔다.나름 새엄마는 한상을 그득하게 차려 놓았다.

그동안 형편이 더 어려워진듯 방한칸에 재래식 부엌.다락하나 있는 방에서 네식구가 생활하는듯..

아빠는 오빠에게 말했다.

"자네가 야 나이를 애초에 모르고 저지른 일이라니까 긴얘기는 안할라네.온김에 야는 놔놓고가게."

"그게 무슨말씀인지...."

"다 내가 애비노릇을 못해서 일어난 일이니깐 아는 병원에가서 뗄거고 나이 열여덟에 지도 아직 앤데

무슨 아를 놓는다 말이고 말도 아인 소릴하고있어.."

"한번 잘 살아보겠심더.."

"얼른 밥이나 묵고 야 이자뿌고 잘사소."

나는 끼어들수밖에 없었다.

"아빠! 동의만 해주라 나는 오빠야랑 살끼다."

"시끄럽다 고마 확 패쥑이기전에.."

"와!!패쥑이삐라 나는 아빠처럼 자식 놓기만해가 던져놓지는 않을끼다.잘키우고 살끼다."

"이기 마~~"

한바탕 난리를 쳤다.나도 어디서 그런 앙살이 나왔는지 알수가 없었다.

차마 아빠는 내게 손찌검은 하지 못했다.

몇시간이 흘렀다.내가 아주 강경한 자세를 취하자 아빠도 어쩔수없었는지...

"니 참말로 후회안할 자신있나?"

"그래.적어도 아빠같은 인생은 안 살 자신 있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혼인신고를 하게 되었다.

나는 마음을 달리 먹게 되었다.아이를 이 열악한 환경속에서 키우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  아이 낳을 준비도 차곡차곡하게되었다.

새벽이면 오빠는 늘 뜨거운 콩국물과 쵸코파이를 사들고 왔다.그것조차도 시어머님에게 들킬까봐

이불을 뒤집어 쓰고 먹곤 했다.

그래도 행복했다.나만을 아껴주고 위해주는 오빠가 있어서...

오빠는 시엄마 몰래 매일 만원을 주고선 출근을 했다.맛있는것 사 먹어라며..

나는 그 돈을 한 푼도 쓰지않고 동네 마을 금고에 저금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가르쳐준것은 아니지만...일수를 찍어야하기 때문에 오빠의 벌이는 늘 시어머니가 관리를 했다.

같이 배가 불러오는 시누이는 여전히 상전이고 나는 하녀였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아니 버티었다.

낮에는 잠만 자고 일어나면 악기사로 볼일보고 바로 출근을 하는 오빠라서 집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들은 알수 없었지만 굳이 고자질하지도 않았다.

 나가살수 없을바에야 그 뒷 감당 역시 고스란히 내 몫이라는걸 알았기때문에..

알고보니 시누이랑 나랑 똑같은 8개월인데 시누이는 쌍둥이를 임신한듯 배가 불렀고 나는 이제 겨우

6개월쯤 되어보였다.예정일이 일주일 밖에는 차이가 나지 않았음에도...

시누이는 양옥집에서 남편이랑 둘이만 생활하고 새벽이면 시장으로 남편은 나가버렸고 실컷 자고

배가 고프면 나한테 와서 이것저것 해달라 해서 먹고 아니면 시장에 나가 시어머니랑 외식을 했다.

나를 채소장사하라며 시어머니 좌판에 보초 세워두고서...저녁이면 남편 집으로 오라해서 저녁까지

해결하고는 가 버렸다.

나는 연탄불에 시어머니.시동생셋.나.오빠.시누이.그의남편 밥까지 준비를 해야했고 새벽이면

도시락을 세개나 사야했고 시간에 쫓기어 설겆이랑 빨래 다 해놓고 통마다 물 다 받아놓고

시장에 시어머니점심까지 날라주었고.좌판에 앉아 채소며 파를 다듬어 팔기까지...

아마도 사는게 너무 힘이 들어 배가 덜 부른것이였는지도...

그런데 그 순간에도 이게 가난한건지.. 불행한건지..힘이드는건지도 모를 만큼 나는 철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