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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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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진병?


BY 조 양 희 2010-10-26

비가 오늘은 주책스럽게도 많이도 퍼부어댄다.

2평도 채안되는 쪽방 한가운데엔 양동이가 두개나 자리잡고 있다.

깊이 패인 부엌엔 어느새 물이 차올라 연탄불은 화덕으로 옮기고 미처 치우지못한 플라스틱

그릇들이 둥둥 유람을 하고있다.

열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나는 이순간 며느리로.형수로.올케로서.아내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부여받고

바지는 허벅지까지 둘둘 말아올리고 하나뿐인 연탄 화덕과 곤로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시어머님.시누이

시매.시동생셋.오빠와 나까지 총 팔인분의 대식구들의 저녁 준비로 분주하다.

매일 같이 저녁때면 들려서 저녁까지 해결을 하고가는 시누이.오늘은 비가온다며 부추전까지 하라면서

남편되는 사람까지불러 이미 술상을 나누고 있는중이다.

나는 혼자 빗 속에서 이리뛰고 저리뛰고 바쁘다.

이 빗속에 짜증도 났지만 이렇듯 찢어지는 가난속에서도 웃음과 사랑을 나누는 이 가족들이 나는

한없이 부럽다.

날마다 시장통에 불려나가 챙피를 무릎쓰고 시어머니 야채파는 일을 도와야하고 중간중간에 집으로

와서는 밥이며 설겆이며 빨래며 청소를 하면서 중노동을 했지만 나는 벗어날 생각이 없었다.

이 가족의 구성원이 되고자 죽을 힘을 다해 노력했다.

이유는 오빠는 나를 데려오기위해 일수를 내었다한다.

가난때문에 밴드마스타를 할려면 악기를 본인 돈으로 구입을 해야하는데 여유가 없어 악기값을 죄다

일수로 샀고 아직도 덜 갚은 상태에서 또 날위해 일수를 백만원이나 다시내어 나를 데려왔다.

그러니 식구들 눈에는 내가 이뻐보일리 없었고 나는 죄인일수밖에 없었다.

그 돈을 구하고자 그렇듯 오랜 시간이 걸린것이였다.

시누이는 나보다 네살이나위였다.어릴때부터 시어머니가 장사하러 나가면 집안일은 혼자 도맡아

해온터라 집안일은 아주 선수였다.

거짓나이로 자기랑 동갑인 나를 언니로 불러야 되는것도 심통이였고 오빠들에게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나랑 사랑과관심을 같이 나누는 것도 심통이였나보았다.

날마다 출근하다시피하면서 아무도 없을때면 나를 쥐잡듯이 잡았다.

사사건건 시비였고 매사에 트집이였다.

그런데 나는 고스란히 다 당하면서도 혼자서 방에 쭈그리고 앉아 울줄만 알았지 한번을 대들지 못했다.

원래 다들 그렇게 사는것이라 생각되었다.

오빠는 낮에는 하루종일 자고 일어나면 밥먹고 나가기 바빠서 마주보고 얼굴 대하면서

얘기나눌 시간조차도 힘들었다.새벽에 들어오면 나는 하루종일 노동한탓으로 곤히 잠들어 있었고

그렇듯 나는 점점 부부의 흉내를 내면서 생활에 길들여가고 있었다.그런데.

어느날 부터 자꾸 음식을 먹으면 체하고 잠만 쏟아지고 금방 추웠다 금방 더웠다 하더니

이제는 아예 음식 냄새 조차도 맡지를 못하겠다.달거리도 없어지고..

 나는 그것이 입덧인줄도 모르고 또 큰병이 났나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말도 못하고 혼자 고민에 빠져있었다.어느날 시누이가 집으로 뛰어들어오면서

"엄마! 엄마! 나 애 가졌대..나 임신했대"

"아이구 야야 진짜가 잘됐대이 진짜로 장한일 했데이~"

"엄마! 인제는 우리 시집에서도 어쩔수없겠제 어짤낀데 애까지 밴는데 그쟈?"

시누이는 시댁쪽에서 너무 가난하고 배운것 없다고 결혼을 반대해서 그동안 동거생활을 하고 있었단다.

그 날 저녁 파티를 한답시고 또 오빠만 빠지고 온식구들이 모여서 나를 도우미로 채용했다.

시누이가 배추쌈을 먹고 싶다했다며 부랴부랴 배추를 데쳐서 삶고 젓갈 양념장을 만드는데

그 냄새를 맡지 못해 화장실로 열번도 더 갔다왔다 했다.

고등어를 굽는데 아예 대놓고 구역질을 해댔다.

그러는 내모습을 보면서 시누이랑 시어머니는 방안에 둘이 나란히 누워서 해주기 싫어 꾀부린다며

입맞춰 비아냥거리기까지했다.

더운 여름인데 못먹어서 기운은 하나도 없고 먹기만하면 토하고 냄새도 못맡고 하늘을 보니 핑 돌기까지

나는 옛날에 앓던 병이 다시 도진듯하여 불안했다.또 이대로 쫓겨나야되나....

어느날 부식가게에 콩나물을 사려고 들렸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식어서 다 불어터진 수제비를 점심이라며

떼먹고 있었다. 너무너무 맛있게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 잠시 누웠는데 할머니 생각이 났다.

처음으로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내가 없어진걸알면 제일로 슬퍼할 할머니.그 할머니가 해주시던

수제비가 너무도 먹고 싶었다. 한 솥을  하셔서 남은것은 스텐양푼이에 퍼서 장독대에

올려 놓으면 이튼날이면 퉁퉁 불어서 떡처럼 펴져 있었다.그때는 그게 먹기 싫어 할머니에게

앙탈을 부리기도 했었다.너무 보고싶고 먹고싶어 눈물까지 흘렸다.도저히 참을수가없었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나는 부식가게로 쫓아갔다.

"저...저기요..."

"응 새댁아 뭐주꼬? 응?"

"저기요...아까 드시던 수제비 다 드셨나요?"

"아이다 한숟갈 뜨다가 맛이없어 그냥 덮어놨다.와?"

"그럼요... 그거 저 주시면 안되요? 너무 먹고 싶어 참을수가 없어서..."

"하이고 참내. 그래라 가져가 묵고 그릇 갖다도."

나는 연신 고맙다며 머리를 조아리며 뺏다시피 나꿔채서 돌아서려는데...

" 새댁아! 니 혹시 아 서나?"

" 예에? 그게뭔데요?"

"으응 아이다 얼른가서 묵어라 별일이제 그기 뭐 맛있다꼬.."

집으로 돌아와서는 걸신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었다.여태까지 살면서 그날먹은 수제비처럼 맛있는

수제비는 두번다시 먹을 수 없었다. 다 먹고 화장실로 직행해서 다 토해냈지만...

시누이는 입덧을 한다며 아예 아침부터 출근해서 하루종일 내게 잔심부름에 이것저것 해달라며 나를

힘들게 했다.할줄 모르는 솜씨지만 해주면 맛없다며 하수구에 쪼르르 달려가서 냅다 엎어버렸다.

나라도 주면 먹을텐데...

오빠 퇴근시간이면 나는 새벽 네시경에 일어나야 했다. 연탄불에 밥을 해서 시동생들 도시락 세개와

아침밥을 할려면 그 시간에 일어나야했다.

그렇게 새벽 네시에 일어나서  그많은 식구들이 벗어놓은 빨래를 세탁기 없이 오전에 끝을 내야했다.

설겆이와 청소까지...왜냐면 그때 산동네엔 오전 11시가 되면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그래서 그전에 모든걸 마무리하고 온갖 빈통.통 마다 물을 가득히 받아놓아야했다.

이튼날 새벽 5시에 물나오는 그시간까지 사용할 물을...

그렇듯 시간을 보내다보니 점점 아랫배가 불러오는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