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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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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 오리 새끼


BY 조 양 희 2010-09-30

고모집으로 내려올때는 굳은 각오를 하고 왔건만...

환경은 나를 받쳐 주질 않았다.

성격이 좀 모가난듯한 큰오빠랑은 사사건건 부딪히고.그나마 믿는 작은 오빠는 자기 공부에 바빠서

내 하소연을 들어줄 시간이 없다.얼굴보기도 힘든다.

남동생은 시간만 나면 나를 골탕먹일 연구를 하고 있다.

고모는 생활고에 지친듯 나는 안중에도 없고 조금 쉴라치면 오히려 내게 짜증을 낸다.

공부좀 해 볼려고 도서실 가겠다고하면 불량학생들과 어울린다며 다짜고짜로 나무라기만하고.

집에서 책좀 볼려고 하면 일이 산더미처럼 밀렸는데 못본척한다며 도리어 화를 낸다.

고모의 사고방식은 여자가 공부는 해서 뭐하나 졸업장만 따서 좋은데 시집이나 가면된단다.

배운게 없고 가진게 없으면 좋은데 시집은 어찌가누...

나는 완전히 식모가 된기분이다.미운오리새끼마냥 나는 갈피를 못잡겠다.

집으로 돌아와선 방네개를 모두 닦고 빨래를 걷어야되며 또 밀려있는 빨래들을 다 해서 널기도 해야된다.

당연히 손빠래를 해야했다.그때만해도 고모집엔 세탁기가 없었다.

그것도 마저 하고나면 분식집 일을 도와야 하고 또 오빠들 밥도 차려줘야하고...

또 먹고 나면 설겆이 다 해 놓아야하고...

어영부영 10시쯤에야 내방에 올수 있었다.

그러고나면 지쳐서 공부고 뭐고 곯아떨어지기가 바쁘다.

그 날도 그렁게 지쳐서 단잠에 빠져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갑자기 고모가 나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마당으로 질질 끌고나오면서 온갖 갖은 욕설을 하면서

나를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때리기까지 했다.

"고모야!!!아프다 머리좀 놔봐라 왜 이러는데...?"

나도 앙살을 피울수 밖에 없었다.

" 에이! 호향년! 지 애비 닮아서 못된것만 배워갖고...에이 나쁜년!!!"

"...."

어이가 없었다.

기운이 딸린 탓인지 분풀이를 다한것인지 고모가 잠시 멈추는 사이 엉거주춤 서 있는 남동생을 보면서

대충 사태 파악이 되었다.

" 와??영호 니 또 내방에 들어왔더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러면 처음이 아니였냐며 여기저기를 또 사정없이 나를 때리더니 내 방에

뛰어들어가더니 내 교복이랑 책가방이랑 책들을 들고 나오더니 수돗가로 가서는 물이 가득 담겨 있는

큰대야에 그것들을 몽땅 쑤셔 넣고는 지근지근 밟기까지 했다.

나는 더이상 두고 보질 못하고 그 길로 집을 뛰쳐나와버렸다.

그냥 걸었다.돈도 없고 갈곳도 없었다.

그동안 몇번을 남동생이 내가 잠이들면 슬그머니 들어와서는 나를 만지작 거리곤 했다.

그때마다 주의를 줬지만 소용이 없었다.아무런 일은 없었다.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누구에게 말을 한단 말인가??? 내게 누가 있어서...

아마도 오늘도 내 방엘 들어왔다가 고모에게 들킨 모양인데...

그게 왜 내 잘못이며.그게 또 아빠랑 무슨 상관이냐고....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나를 데려오는 조건으로 아빠한테 생활비를 받았던 모양인데 그것이 몇달치가

밀린 탓인지 요즘은 부쩍 나를 덜덜 볶았다.

한참을 걷다보니 한기가 밀려왔다.한겨울인데 그냥 면티에 얇은 바지를 입고선 자던 모습으로 쫓아 나왔으니...

다시 고모집으로 돌아 가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 끝에 엄마랑 단둘이 살고있는 귀연이집이 생각 났다.

귀연이는 등교 첫날 목뒤에 키스마크를 달았던 그 친구다.창문 밑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불렀다.

"귀연아! 귀연아! "

두번쯤 불렀더니 귀연이 엄마가 창문을 내다보더니...

" 누고? 우리 귀연이 와 찾노??"

성질난듯한 목소리...도망을 갈까 생각중인데..귀연이가 배시시 웃으며 내다본다.

너무 반가왔다.그리고 너무 추웠다.도망갈 기력도 갈곳도  없었다.

속깊은 많은 얘기까지는 못했지만 대충 내얘기를 들으시고 내 몰골을 보시더니 혀를 차며 그냥 재워주신다.

아빠랑 이혼하고 엄마는  고무장갑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귀연이랑 단둘이 생활한다.

좁은 단칸 방이였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그립던 엄마와의 단란한 보금자리다.

온 몸이 불덩이가 되었다. 한기는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나는 그렇게 그냥 앓아 누웠다.

 엄마랑 아빠랑 여동생이랑 모두 모여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있다.

이야기꽃을 피우며 삶은 계란에 사이다를 맛있게 먹으면서...

아마도 우리 네식구 시골 할머니집을 다니러 가는것인지....

행복한 꿈을 꾸면서 나는 그렇게 긴 여행을 떠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