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못났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 남자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순결하지 못한 내가 괜찮은 다른 사람을 만날수는 없을거라고 체념했는지도 모른다.
그와의 만남이 계속되었다.
만난지 8개월쯤 되어갈때였다.
직장에서 그를 만나는 걸 알고 나한테는 아무런 말도 없이
직장상사님이 부모님을 만났다.
내가 만나는 남자를 잘 안다는 직장상사가 그런 남자를 만나면
직장이미지도 안 좋다고 헤어지게 하라고 부모님께 말하고 다녀갔댄다.
나는 엄청 기분이 나빴다. 반대하는데 오히려 그남자와 헤어지면 안될것 같은 마음이었다.
부모님은 결국 그를 만나보시기로 하셨고 나는 부모님께 나쁜 딸이 되어갔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대학에 다니고 있는 언니자취방으로 나는 보내졌다.
언니를 따라 대학교에 가서 같이 강의를 들어보기도 하고
언니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기도 했다.
어느날이었다.
나는 그날 그냥 언니 자취방에 있었다.
집을 나와 공중전화기로 향했다.
그남자의 자취방에 전화를 했더니 그의 형이 전화를 받았다.
그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고 얼른 전화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금 당장 자기한테 오지않으면 다시는 나를 만나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나는 바보다.나는 알았다고 지금 가겠다고 한뒤 언니 자취방에 글자 몇자 적어놓고 택시를 탔다.
버스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탔고 그가 내릴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마자 그는 평소와 다르게 나의 손을 꼭 잡았다.
그는 그 날로 직장을 그만두고 몇날 몇일을 둘이서 여관방을 전전하며 지냈다.
그의 형이 언제까지 그럴거냐고 했다.
우리는 그의 부모님집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국수공장에 취직을 하고 나는 집에서 그냥 지냈다.
그의 형이 자기가 다니는 덤프차회사에서 경리를 구한다고 말했다.
나한테 취직을 하라는 말인데 나는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낮잠도 자고 편해서였나보다.
그는 일주일을 일하더니 직장을 그만 두었다.
우리는 같이 논에 나가 벼를 거두었다.
가을겆이를 마칠쯤 그가 다녔던 중국음식점사장이 전화를 해왔다.
다시 나와서 일하라는 것이다. 월급도 더 주겠다고 했다.
그때 시부모님과도 관계도 안 좋았던 터라 우리는 그렇게 집을 나와 연탄보일러 월세방을 얻고
그는 다시 일을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