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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BY 자화상 2014-12-16

14장 용서

 

 

첫 눈이 내려도 주연은 기쁘거나 설렘이 없이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러는 주연을 유비나 황 여사는 가슴 아프게 주시 하고 있었다

유성이가 엄마하며 안겨 가도 가만히 떼어 내고 일어서 다른 할 일을 찾아 하는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주연이 활기를 잃어갔고 말 수도 급격히 줄었다

무엇엔가 충격을 받았을 거라고 가족들은 짐작을 할 뿐 도무지 그 원인을 알아 낼 수가 없었다.

 

주연은 아직도 황 여사가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잃어 버렸던 금목걸이에 대해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 전에 살던 집 주소가 자신이 살던 그 집과 이웃이 되는지. 자신을 아는지. 한 번 이라도 보았던 적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물을 수 없고 알아 낼 방법도 없었기 때문에 고민만 하였다

그 후부터 다시 악몽을 꾸기 시작하여 주연의 얼굴은 야위어갔다.

 

몹시 눈이 내려 추운 날 주연은 하혈을 하였다

유비가 급히 병원으로 주연을 데려갔다. 며칠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다고 의사는 걱정하여 주었다

유비는 주연을 입원 시키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뭘까. 주연이 말 못하고 고민하며 몸을 돌보지 않는 그 이유가 대체 뭘까? 유비는 어머니인 황 여사에게 물었고 둘이는 도저히 짐작되는 일이 없어 한숨만 쉬었다.

 

유성이를 데리고 집에 돌아 온 황 여사는 주연이의 방으로 들어가 돌아보았다. 뭣 때문인지 알아내야겠다고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특별하게 의심되어 보이는 게 없었다. 황 여사는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해 보았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되니까 혹시 옛날에 아이 낳았던 경험이 있다는 게 알려질까 봐 걱정되어서일까

아니면 그 사건의 고통스런 기억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일까

만약에 일말의 책임감이나 모성으로 버렸던 그 아이에게의 죄책감 같은 걸 느끼고 우울해 한다면 그렇다면 천만 다행일 것 같다고 약간의 기대도 해 보았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누구라도 과거의 악연은 절대 뒤돌아보고 싶지 않겠지.

황 여사 역시 유비의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주연이에게 유성이의 존재를 알리기엔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주연이와 유성이가 더 많은 정이 들 때가지 기다리고 있는 이유도 불안하기 때문이다. 섣불리 말 했다가 오히려 주연의 상처에 불을 끼얹을 수도 있다는 염려에서다.

 

유성이를 보면서 과거의 치욕이 되살아나 오히려 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악연이라는 이유로 유성이를 미워하거나 다시 버리고 떠난다면 말릴 수가 없다

거기에 유비가 주연의 인생을 망치게 한 모든 고통의 원인 제공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도저히 용서를 안 해 줄 것 같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어서 세월이 흘러가기를 바라고 있다

주연의 가슴에 악의 씨앗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차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 때면 유성이를 데려오게 된 시점의 사연만 밝힐 생각을 하고 있다

황 여사는 유성이가 유비의 친자라는 사실만큼은 절대 밝히지 않을 작정을 하고 있다.

 

황 여사가 움직이지 않고 서 있으니 유성이가 어서 엄마한테 가자고 재촉을 했다. 장난감을 들고서 동생에게 소리 들려주어야한다는 것이었다

황 여사는 먼저 유성이에게 저녁밥을 먹이며 생각을 가다듬어 보았다.

 

병원에 도착한 황 여사는 주연이 마침 잠들어 있어 곁에 있는 유비를 불러내었다. 병원 복도 끝에 있는 의자가 비어 있어서 둘이는 앉았다

먼저 황 여사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주연이 옛날 낳아서 버린 아이 생각하며 병이 난 것 같다

그 과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것 같다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주연이가 스스로 극복하게 해주자

더 세월이 흐르기 전에 마음의 병을 치료하도록 기회를 주자. 황 여사는 이렇게 말하고 계획하고 있는 생각을 얘기했다.

 

먼저 유성이를 데려 오게 된 사연을 슬쩍 알려주어야겠다고 했다. 그러면 영리한 주연이는 유성이가 바로 자신이 버렸던 아이라는 걸 깨닫게 될 터이고

그 다음 일어나는 일은 우리의 몫이니 기도하면서 기다리자고 했다

 

주연이 자기에게 주어진 그 운명을 받아들이든지 거부를 하든지 어떤 반응이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조용히 모르는 체 해 주는 게 최선일 거라고 생각한다.

주연이는 현명한 아이니까 믿고 기대를 해보자

 

설사 유성이를 끝까지 받아들이지 못 하고 떠난다 해도 우린 후회 없이 보내주자. 그러나 우리가 주연이를 믿고 사랑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자

그러다보면 악연이었지만 모성이 살아나 유성이를 제 자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희망하여보자

황 여사는 이렇게 침착한 어조로 유비를 안심시켰다

유비역시 주연이에 대한 죄책감에 늘 남모르게 괴로워했었다

차라리 비밀을 다 말하고 용서를 빌어볼까도 수차례 고민했었다

그러나 주연이 모든 사실을 알고 떠나버릴까 두려워 가슴앓이를 했었다.

 

그래서 어머니의 제언에 유성이와 주연의 관계만이라도 알려주는 게 옳은 처사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면 자기 죗값의 반이라도 용서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겨 고개를 끄덕여 수긍을 하였다.

 

황 여사는 주연이 잠에서 깨기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가위 눌리는 악몽을 꾸지 않고 깨어 난 주연이 황 여사와 유비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 살짝 웃어 주었다

 

유비가 주연의 손을 잡아 주었다. 황 여사는 주연이에게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혹시 아이를 낳을 때가 되어가니 두려운 생각이 드느냐

주연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혹시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되면 유성이가 짐이 될 것 같아 마음이 힘들어서 아픈 것이냐

주연은 그것도 정말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마음을 써서 기운을 잃었는지 짐작되는 일이 없다

그러니 뭔가 너의 마음을 다치게 한 것을 해결해 줄 수 없으니 미안하구나

황 여사는 여기까지 말하고 주연의 눈치를 살폈다

주연은 아무 일 없는데 그냥 몸이 무거워져 힘들었다며 이젠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유성이가 화장실에 가겠다고 했다. 유비가 같이 다녀오겠다고 유성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황 여사는 유성이의 뒷모습을 보고 나서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산부인과에서 막 태어난 유성이를 데리고 온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저렇게 많이 자랐다 하고 말했다

 

주연이 진즉부터 유성이를 데리고 온 연유가 궁금하여 왔던 차라 어떻게 해서 유성이를 입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황 여사는 웃으며 그럼 말 나온 김에 얘기를 해줄까

하고는 고개를 들어 병실 유리창 너머 파란 하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5년 전 봄이었지

서울 신수동 D 산부인과였어. 주연은 D 산부인과라는 말에 귀를 의심하며 황 여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황 여사는 행복한 표정으로 눈에 보이는 장면을 그리듯이 얘기를 이어나갔다

 

D산부인과의 식당에서 주방 일을 맡아 했었어

병원의 앞 정원에 유난히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었던 날이었어

아침 일찍 할 일이 있어서 예전 보다 이른 시간에 가서 서둘러 주방 일을 시작했지

그 때 어느 간호사가 와서 하는 말이 나이 어린 산모가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 거야.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산모가 누구든 입양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이를 입양시켜 달라고 편지를 써놓고 가버렸다고 하는 거야

자기는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면서 용서 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써 놓고 말이야. 황 여사는 슬쩍 주연의 눈치를 살폈다. 주연의 낯빛이 변하고 있었다. 마치 숨을 멈추고 있는 듯 해 보였다.

황 여사는 모르는 체 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궁금해서 아이를 보러 갔었단다

어찌된 일인지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단다

마치 세상에 없는 미래의 내 친 손자를 보는듯한 마음이었어

많은 아기들을 보아왔지만 그 아이처럼 첫눈에 마음에 쏙 드는 아기는 없었지. 얼른 품에 안아 보았어

 

근데 그 아기가 웃고 있잖아. 태어난 지 하루 된 아이가 나를 보고 웃었어

아무도 그걸 믿지 않았단다. 내 눈에만 웃는 모습이 보였던 거야

그래서 난 준비하지도 않았던 말을 하고야 말았어

 

내가 아이를 데려가 기르고 싶다고 했어. 모두 놀랐지. 옆에서 말렸어. 어떻게 아

이를 기르려고 하느냐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서 젊은 사람들이 데려다 기르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

나는 완강하게 고집을 부렸어. 내 아들로 유비의 동생으로 하려고 했지

어떻게든 그 아기를 기르고 싶었으니까

원장님께 사정을 했어

내가 기르겠다고. 겨우 허락을 얻고 아기를 데려왔지

 

유비가 처음엔 모조건 반대를 했어. 내 나이가 많다는 거야. 아기를 기르기엔 힘들다며 말렸어. 그렇지만 내 마음은 이미 자식으로 정했기에 유비를 설득했지. 그러다 아기가 크게 우니까 엉겁결에 유비가 안고 달랬지

신기하게도 아기가 울음을 뚝 그쳤어. 그리고 유비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거야. 마치 아빠를 만난 것처럼 말이야

 

그러자 유비의 마음이 흔들렸나봐. 동생으로 기르면 엄마 나이가 많아 다음에 아이에게 도움이 안 되니 차라리 자기의 아들로 양자를 들이겠다고 했어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았어. 유비가 평소부터 결혼을 않고 혼자 살겠다고 했었거든 그래서 우리는 아기를 유비의 아들로 호적에 올렸지

 

인연이라고 생각했어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해서 유성이가 우리 가족으로 자라기 시작했어

유비는 절대 후회하지 않았지. 살다가 유성이를 자식으로 받아 들여 주는 여자가 있으면 결혼을 하겠다고 할 정도로 유성이에게 정을 주었어

 

나도 후회하지 않는단다. 유성이를 기르며 우리 가족은 무척 행복했거든

더구나 네가 엄마가 되어 주며 결혼해 주어서 우린 뜻밖의 행운에 얼마나 감사하던지. 정말 고맙다. 네가 우리와 함께 살아 주어서.

 

주연은 황 여사의 말을 들으며 우선 놀라운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지 몰라 입을 열어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그 때 악연으로 생긴 아이를 낳아 버렸는데 그 아이가 유성이라는 말이었다.

 

산부인과 병원도 맞고 편지 내용도 맞고 아기를 낳은 날과 시간도 맞다

틀림없이 주연이 낳아 버렸던 아이다. 그 아이가 유성이다. 그래서 자기 자식이라 첫 눈에 끌렸다는 말인가

그래서 비록 버린 자식이지만 천륜이라 정이 갔더란 말이냐. 주연은 충격을 받았다.

 

? 자기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을까

거기에 그 후유증으로 아이까지 생겼고. 죽지 못해 아이를 저주하며 낳았고 시원하게 버렸었다. 그리고 다 잊고 살아가고 있는데 기막힌 일이 생겼다

첫눈에 끌려서 아이에게 엄마가 되어 주었는데 알고 보니 낳아서 버렸던 아이였다. 악연도 천륜이 있는가

이제 어쩌라고. 유성이를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이 하늘이 내려준 죗값인가. 주연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황 여사와 유비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지독한 인연을 끊지 못한 유성이가 무섭기까지 했다. ? 하필 유비에게 양자가 되어 왔을까? 나는 왜? 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왔을까? 도대체 무슨 인연이 이렇게 질길까? 이젠 유성이를 예뻐 할 수가 없겠다고 생각되었다.

 

주연은 유성이가 배 속에 생겼을 때부터 저주를 했었다

그리고 낳아서 버리면서 악연은 끝났다고 믿었다

그런데 다시 이렇게 가족으로 만나다니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부정을 했다. 죽을 때까지 비밀로 간직하려 했던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황 여사와 유비가 자기의 과거를 또 유성이의 생모가 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주연은 여기까지 생각하자 온 몸이 으스스 떨려 옴을 느꼈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도망가고 싶어졌다. 그런데 배 속에 유비의 아이를 담고 있어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 슬펐다.

 

얼굴이 하얘져 가는 주연이를 보며 잠시 자리를 피해주려고 황 여사는 일어섰다. 주연은 돌아누워 섧게 울었다. 어쩌란 말인가. 유성이가 친 아들이라니. 그렇게 사랑스러운 아이가 저주하며 버렸던 아들이라니. 뭐 이런 악연이 있다는 말인가. 당장에 유성이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한다는 말인가.

 

이 엄청난 사실을 어떻게 감당해야 한다는 말인가

주연은 생각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며칠 친정에서 쉬고 몸이 회복되면 오겠다고 했다

황 여사와 유비도 주연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렇게 하라고 허락을 했다.

 

주연은 친정에서 쉬면서 과거를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유성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 지 고민을 해 보았다. 미워해야 하는데 자꾸만 유성이가 보고 싶어졌다. 유성이만 배 안에 생기지 않았어도 공부를 중단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자기의 인생을 꼬이게 만든 원인이 유성이었다.

주연은 그래서 얼마나 저주하며 싫어했는데 그 아이를 다시 만나 엄마가 되어 있다니 기가 막힌 일이었다

 

몸은 유성이에게서 떠나고 싶은데 마음이 일어서지 않았다. 아니 그리웠다. 정이 들었다. 사랑하고 있었다. 정말 친 아들처럼 정을 주고 있었다. 알고 보니 친 아들이었다.

주연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생모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야 하나. 아니면 다 말하고 용서를 빌고 살아야 하나.

그도 다 두고 멀리 떠나야 하나

주연은 만감이 교차하여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사흘을 고민과 싸우다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먼저 유성이를 미워하지 않고 아들로 받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유비와 황 여사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용서를 빌기로 마음먹었다.

 

주연이 집으로 돌아오자 맨 먼저 유성이가 마당에까지 달려와 품에 안겼다. 주연은 그런 유성이를 안아주며 눈물을 흘렸다. 황 여사는 주연이 유성이를 받아들이기로 마음 정한 듯싶어 고마워서 눈물을 흘렸다

 

유비도 돌아와 준 주연이 고맙고 감사하기까지 했다

주연은 유성이가 자고 있는 늦은 밤에 황 여사와 유비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