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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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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그 날


BY 자화상 2008-10-05

8장 작년 여름 그 날

 

비밀의 묵시는 지난여름 유비가 그것도 새벽에 조깅화를 한 짝만 들고 조용히 들어 왔던 날부터 시작되었다.

황 여사가 이른 아침에 옥상에서 골목에 떨어져 있는 유비의 남은 한 짝 조깅화를 발견하고 잽싸게 내려가 가져왔었던 그 날이었다.

무슨 일인지. 왜 그랬는지 물어 볼 수 없는 어떤 긴장감이 유비에게서 느껴졌었다. 그래서 모르는 체 했지만 황 여사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마음이 불안해 있을 때였다.

이웃에 사는 주연의 하숙집 주인 김 여사가 차 한 잔 하게 오라는 전화를 해 왔다. 아직 설거지도 하기 전이었지만 필시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짐작하고 급히 내려갔다.

 

원래 김 여사는 동네 통반장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로 이웃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르는 게 없는 소식통이었다. 그래서 혹시나 새벽에 유비가 떨어뜨리고 온 조깅화를 보기라도 했었나 하는 걱정으로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황 여사를 보자마자 김 여사는 귀엣말로 간밤에 주연의 방에 도둑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 여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새벽에 유비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떠올라 재촉하듯 어떻게 얼마나 가져갔느냐고 물었다.

김 여사는 도둑이 주연의 금목걸이 하나만 가져갔다고 하며 고개를 갸웃하였다. '? 금목걸이 하나만 훔쳐 갔을까?' 그리고는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주연이 경찰에 신고를 안 한다며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황 여사도 '왜 신고를 안 할까?'해 놓고도 속으로는 그것 참 다행이네 하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유비와 자신에게 큰 일이 터졌다는 불길한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심장이 벌떡 거리는 걸 애써 진정하며 김 여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김 여사는 또박또박 세세하게 상황설명을 해 주었다

주연이 며칠 밤을 새우며 공부하고는 하필 간밤에 잠을 푹 자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더라.

그래서 도둑이 든 것을 몰랐고. 그런데 옆방의 친구가 새벽에 문을 열고 들어와 깨우니 눈을 떴더라. 황 여사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여 들어 두었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얘기였다

새벽이었다. 주연의 방 문소리가 났다

그래서 앞방에 살던 주연의 친구가 자다 말고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와 보았다

평소 주연이는 새벽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의 눈에 어떤 남자가 계단을 내려가는 게 보였다. 놀란 친구가 주연의 방으로 가니 문이 열렸다. 급히 들어가 보니 주연이는 자고 있었다. 별 일 없느냐고 주연이를 흔들어 깨우자 잠에서 깨어났다더라

방에서 어떤 남자가 나가는 걸 보았다. 도둑인 것 같다. 무슨 일 없었느냐 혹시 잃어버린 것 있느냐. 그러니까 주연이 놀라면서 일어서려다 말고 당황하며 다시 주저앉더라

그리고는 아무 일 없다 해서 친구가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보니까 주연의 금목걸이가 없어졌더라. 그 때서야 주연이도 정말 도둑이 들어왔는가 보다고 하더란다.

이렇게 설명을 해주다 김 여사는 장담을 하였다

도둑이야 신고만 하면 쉽게 잡을 수 있다

목걸이에 주연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범인이 어디서든 팔기만하면 금방 증거물이 된다. 문제는 안 팔면 못 잡겠지만

어쨌든 목걸이를 서랍장 위의 통에 벗어 둔 것은 잘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주연이를 칭찬도 했다. 그거라도 보였으니 좀도둑이 주연이를 가만두고 목걸이만 가지고 달아났지.

 

이렇게 말 하던 김 여사는 목소리를 낮추며 특이한 눈짓을 하였다. 심증은 가는데 명확하게 들어나 보이지 않는 남의 얘기를 할 때면 늘 하는 버릇이다. 양미간을 찌푸리고 시선을 모아 왼쪽을 째려보는 것이다.

글쎄 주연이가 이상하다. 금목걸이가 없어졌는데도 신고를 하지 않고 그냥 포기를 한다. ? 그러겠느냐고. 분명 말 못 할 일을 당한 것 아니겠어? 이렇게 추리를 하며 황 여사의 의견을 물었다.

황 여사는 어떻게 맞장구를 쳐 줄 수가 없었다

김 여사에게 함부로 말 할 수 없는 일이며 만에 하나 유비가 관련되었다면. 여기까지 상상하던 황 여사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유비는 결코 이런 일을 벌일 아들이 아니라는 걸 철썩 같이 믿는다

그래도 새벽의 일이 이해되지 않아 심란한데 만약 이일과 관련이 되었다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고를 안 했으면 하고 바라면서 생각 하는 척 하고 있었다.

 

김 여사는 하필 자기 집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속상해 했다

여태껏 많은 하숙생이 거쳐 갔지만 이런 일은 없었단다

급기야 세상 탓으로 화제를 돌렸다

도대체 나랏일이 어떻게 돌아가기에 경제는 갈수록 안 좋아지고 좀 도둑이 날로 느느냐고. 오죽 살기 힘들었으면 자기 집 하숙생 방에까지 털러 왔겠느냐고. 각박한 세상 탓을 하며 열변을 토했다.

 

말이 나온 김에 동네까지 밀려 온 불황과 시장 경제에 대해 인상을 쓰며 열변을 토하던 김 여사는 다시 주연이 이름을 입에 올렸다

그러니까 자기가 대신 신고를 하면 주연이를 성가시게 하지 않고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야만 다시는 자기 집에 좀 도둑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

 

황 여사는 가볍게 고개를 저어 만류하였다. 머릿속에 다시 골목에 떨어져 있던 조깅화 한 짝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자기보다 누군가 먼저 보았던 사람이 있다면 경찰들이 주위를 탐문 수색할 때 신고해 버릴 것이다

그러면 하필 그 때 쯤의 새벽에 나갔다 들어 온 유비에게 불리한 일이 생길 것이 뻔해서였다.

그래서 주연이 신고를 안 하겠다고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주연이 말대로 안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주었다.

그러자 김 여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연이 도둑에게 당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왜? 신고를 안 하겠느냐. 이러면서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 여사는 설마 그런 일이 있었겠느냐고 그랬다면 주연이 가만히 있겠느냐고 의심을 풀게 했다

주연이 생각에 좀도둑이라 목걸이만 훔쳐 갔고. 다른 물건이나 자기 몸에 해를 입히지 않았으니 묵인해 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신고할까 망설이는 김 여사의 마음을 돌려놓고 황 여사는 일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일은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왠지 유비에게 말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랬는데 그 다음 날이었다

황 여사가 유비의 방을 치우다가 항상 열려 있던 서랍이 잠가져 있어 뭔가 혹시 비밀이 생겼나 하고 짐작을 하였다

마침 유비가 나가고 없는 참이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열고 뒤져도 열쇠가 없어서 곧 포기하여 버렸다

자라온 과정에서 한 번도 엄마의 속을 썩인 적이 없었던 유비였다. 그러니 착하고 성실했던 유비를 함부로 의심 할 수 없다고 마음먹었다

 

황 여사는 쓸데없이 유비를 의심하여 주연의 일과 연관시켜 방정스런 생각을 했던 것이 미안하였다. 이 후로는 만약에 유비가 어떤 일을 저질렀다 해도 엄마로써 아들의 양심을 믿어 줄 거라고 다짐을 하였다.

 

그리고 말복이 지나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 끝자락이었다.

예고나 의논 한마디 없이 유비는 2학기 등록을 하지 않았다

한 학기 휴학을 하겠다고 하며 집을 나가 버린 것이다

무슨 이유였는지 황 여사는 알 수 없었다

그저 꼭 돌아오겠다는 내용의 편지가 있어서 그럴 거라고 꼭 돌아 올 거라고 믿고 기다렸었다.

 

그리고 두 달 후쯤이었다

병원에서 주연이 성폭행을 당하고 임신을 하였다는 걸 알게 되었던 다음 날이었다

황 여사는 뭔가 석연치 않았던 지난여름 어느 날 새벽의 유비 모습이 떠올랐다. 유비답지 않게 왜? 조깅화 한 짝을 골목에 흘려 두고 왔을까

얼마나 급한 용무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생각하던 황 여사는 유비의 잠가진 서랍이 생각났다.

유비가 집을 나간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엄마에게도 말 못하고 학교도 휴학한 채 도대체 집을 떠나야 할 이유가 뭐였을까

황 여사는 서랍을 열면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장도리로 잠가진 자물쇠를 부셔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