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늦어서야 집에 들어올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남자집.
두 아이는 거실에서 뒹굴뒹굴 잠이 들었있었다.
제법 큰아이가 언니노릇 단단히 해준다.
오늘도 엄마 늦는다고 하니 자기가 동생 씻겨 재울게 걱정말라고 의젖하게 말을 해주다니 이젠 다 키웠나 보다.
서울오고 나서 부쩍 아이들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아이들만 집에 있는 날이 많이 좀 미안하고 불안하긴하지만 다행히 여러분들이 도와주신다.
가끔 냉장고 안에 내가 사다 놓지도 않은 많은 반찬거리와 과자들이 보이곤 하는데 솜씨가 영 어설픈것이 누가봐도 대성이가 사다 놓았다는 것을 알겠다.
귀여운 녀석.
어찌그리도 따뜻할수 있을까?
정말 대성이 엄마에게 책이라도 한권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로 아들을 탐나게 잘 키우셨다.
밤에 부지런히 반찬해놓고 손빨래해서 널어놓다 보니 훤하게 동이 트고 있었다.
오늘 속초가려고 이리 부지런 떨고 있다.
법정에는 3시까지 가면 되지만 그전에 변호사도 좀 만나야 하고 해서 좀 서둘러 내려가려고 한다.
그런데 그 자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지지만, 그래도 내가 뚫고 가야 할 일이다.
나로 인해 씌워진 아이들의 업보를 내가 걷어내야만 하기에 아무리 싫고 아무리 더러운 일이라고 내가 기꺼이 해야할 일이다.
자는 두 아이의 얼굴에 뽀뽀를 하고 머리맡에 갈아입을 옷가지와 편지를 쓰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새벽의 안개속 공기가 폐를 차갑게 공격하고 들어왔다.
이 새벽공기를 아이들과 함께 상쾌하게 마실수 있기를...
이른 새벽이라 택시도 없어 큰 길까지 걸어나가야 할것 같다.
빵.. 빵...
어?
저 차가 왜 나한테 저러지?
나는 그냥 인도로 지나갈 뿐인데..
구형 캘로퍼 하나가 찌그럭 째그럭 금방 분해될것 같은 소리를 내며 반대편 길가에 섰다.
"어디가요? 이새벽에?"
차 문이 열리고 빼꼼 내다보는 얼굴이 용준씨다..
"속초요."
남자는 차에서 내려 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별로 안반가운데. 그냥 가던길 가시지..
"어디요?"
눈까지 찌그리며 다시 묻는남자. 벌써 노환이야? 왜 안들려?
"속초라구요."
짜증 100%목소리가 나갔다.
"알았어요. 그걸 그냥 말로 하면 되지 뭘그리 짜증까지 내요? "
그러더니 남자가 얼굴표정을 바꾸고 목소리가 낮게 바꿔서 내귀에 대고 다시 말했다.
"혹시 달거리..중"
"아니 이남자가!!"
반사적으로 주먹이 남자의 명치로 날아갔다.
"아앗"
남자가 제법 아프다는 듯 배를 감싸고 뒤로 두어걸음 물러섰다.
"아님 말지 뭘 그걸 가지고 사람을 때려요.. 애 난 사람이면 다 알조일텐데.."
순간 미안하기는 했다. 그렇게 까지 세게 때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맞을짖은 했다. 그지..
아무리 아줌마래도 여자는 여자다..
"좀 기다렸다가 같이가요."
남자가 여전히 배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나두 속초 가는 길이에요. 아침에 안그래도 자는 사람 깨워서 짐 들고 나오려니 미안했는데. 잘됬어요. 집에가서 짐좀 들고 나오고 같이가요."
남자가 내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차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도 뭔가 이상하지만 그냥 그렇게 따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