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은 안했다.
여전히 그는 놀고 먹고 있다.
나는 지금 시나리오 작가수업을 듣고 있다.
실업자 재취직 훈련 코스로 월30만원의 차비도 지원받고 있다.
어린 두 딸은 시립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자살 소동 이후.
나는 기억이 없어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억이 없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남편이란 자가 했던 말, 표정. 모두 잊어버리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실제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의식을 찾은 나는 걱정으로 핼쑥한 남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다신 안그렇게 빌었다.
실수였다고.
그냥 자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며 남편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퇴원하고 몸을 추스릴 틈도 없이 학원으로 일을 나갔다.
목이 터져라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에는 과외를 했다.
그러던중 재수하는 학생의 과외가 들어왔다.
"서울대 가면 차 한대뽑아드리죠. 이 시골구석엔 과외 선생도 변변한 사람이 없어서... 자신 없으면 아이 시간낭비 시키지 말고 말씀하시고요."
눈이 녹아가는 봄에 두꺼운 밍크 롱코드를 입고, 얼굴 반을 가리는 선글라스를끼고 한 부인이 찾아왔다.
"저 좀 비싼대요!. 그리고 제 실력이 다가 아니죠. 아드님 실력을 보고 서울대 근처라도 갈 실력이면 하고, 아니면 저는 못합니다. 일단 테스트 부터 하시죠."
그렇게 대성이의 과외를 시작했다.
몸이 약한 대성이는 서울의 나쁜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시골로 왔지만 서울대에 꼭 입학해야 하는 엄마의 욕심때문에 마음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있었다.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였지만 배포가 작았다.
엄마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면 벌써 심장박동수가 올라가고 호흡이 불규칙해 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험이란 소리만 들으면 머리속이 하얗게 되 버리는 통에 아는 것을 다 풀지 못하고 백지를 제출해 버렸다.
그래 이 아이면 되겠다.
얼마를 달라고 하지?
엄마와의 협상은 절대적으로 네게 유리하다.
엄마는 내가 꼭 필요하고, 난 대성이가 없으면 다른 아이 찾으면 된다.
학원도 다른 과외도 모두 그만두고 대성이만 보는 조건으로 월 300만원이라는 거금을 받는다.
이거면 생활비 쓰고 얼마간 저축도 할수 있는 아주 큰돈이다.
하루 10시간을 토, 일도 없이 대성이와 공부를 했다.
원래 내가 봐주는 과목은 수학뿐이였지만 이쯤되니 다른과목은 시험보고 채점해 주는 정도의 일은 당연히 해줘야 될것같은 분위기 였다.
대성엄마도 처음에는 문밖에서 공부하는 것을 지키고 듣더니 한달 두달 시간이 흐르자 외출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이아이를 서울대 보내면 대성이도 좋지만 나도 소문이 돌아서 비싼 과외비를 받을수 있다.
그러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대성이를 데리고 담력 훈련으로 밤에 산에 오르는 일을 일주일에 한번씩 했다.
처음에는 눈물 콧물 번벅이 되서 내 팔에 꼭 붙어있던 커다란 녀석이 이젠 나를 놀릴 만큼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그해. 수능.
기대했던 점수를 훨씬 웃돌며 대성이는 서울대에 입학했다.
이제 내 인생의 하나의 디딤돌을 밟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