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비가 내렸다. 회식이 있어 늦어진다는 전화를 하고 모처럼 친정에 전화를 했다.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저 연희예요. 잘 지내시죠? 자주 연락 못 드려 죄송해요. 엄마는요?”
“엄마. 너거 집에 갔다. 니가 육개장 묵고 싶다고 했다매. 요즘은 아예 거기서 산다 살어. 니 걱정도 좋지만 기다리는 내는 허기져서 쓰러지겄다. 니는 시집 간지가 언젠디 매일 엄마를 부르고 난리냐. 참말로.”
“죄송해요.”
전화를 끊고 돌아서니 빗줄기가 세져 우산도 소용없었다. 이상하게 묘한 기분이 들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낙엽들이 질척하게 신발에 달라붙었다. 칙칙한 느낌에 슬그머니 짜증이 일었다.
현관문에 키를 넣으니 ‘딸각’하는 소리가 났다. 평상시와 같은데 왜 이렇게 벌떡벌떡 심장이 요동을 치는지 알 수가 없다. 조용히 신발을 벗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거실에 들어서는데 방안에서 가쁜 숨소리가 뒤엉켜 귓가를 때렸다. 둔탁한 망치로 얻어맞은 듯 정신이 가물거리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는 신음은 끝이 없는 녹음테이프처럼 끊어질 듯 말 듯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클라이맥스를 향해 정신없이 뒤엉킨 남녀의 육체가 머릿속에 그려지며 왈칵 비린내가 목으로 올라왔다.
구역질이 터져 나오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떨리는 몸을 진정시켰다. 텅 빈 머릿속에는 물음표만이 셀 수 없이 떠다니고, 방안에선 귀에 익은 목소리의 여자가 ‘나 미쳐. 나 미치겠네’ 교성을 지르고 있었다. 흥분에 들뜬 쉰 목소리가 아파트 안을 유령처럼 떠다니며 피부에 소름이 돋게 만들고 괴기한 분위기까지 만들어 주었다.
상황판단이 서지 않으니 오금이 저려왔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천장만 바라보는데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시원하게 질펀하게 싸고 나면 정신을 차려 올바른 판단이 될 것만 같았다. 심한 요의를 느껴 손으로 다리를 잡아당겨 억지로 일어서는데 방문이 열렸다.
만족감에 젖은 엄마와 남편은 알몸이었다. 배설을 끝낸 남편의 성기가 허공에서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반주도 없는데 일정한 리듬을 타고 흔들리며 제 역할을 훌륭하게 끝낸 기쁨을 신나게 표현하고 있었다.
‘바보. 넌 나에게 속은 거야. 젖비린내나는 널 좋아했다고? 천만에. 나 역시도 널 사랑하지 않았어. 약은 고양이. 넌 밤눈 어두운 약은 고양이일 뿐이야. 알아!’
금방이라도 끈끈한 액체를 쏘아대며 소리를 지르는 건 아닐까? 나는 그 상황에도 뚫어져라 남편의 성기를 바라보았다.
엄마는 남편의 뒤에서 무언가를 말하려 자꾸만 입을 들썩거렸지만 말은 나오지 않고 허공에 힘없는 헛손질만을 해대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순간, 가슴속에 죽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생겼다. 피가 사방에 튀고 벌렁 나자빠진 알몸의 시체 두 구가 거실바닥에 놓여있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동네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하고 아버지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연상되니 가슴 끝이 칼에 베인 듯 아려왔다. 만신창이가 된 영혼은 이미 죽음을 맞고 있었다.
영원히 멈추어 있을 듯 한 시간을 먼저 깬 건 나였다.
간신히 손으로 다리를 잡아 걸음을 떼었다. 현관문으로 가는데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 왜 이리 멀게 느껴질까. 억지로 문을 잡아 마지막 남은 기력을 모아 손잡이를 돌렸다. 그것이 끝이었다.
계단을 미끄러지다시피 뒹굴어 내려와 무작정 걸었다. 맨발인데도 발에 박히는 돌멩이며 유리 조각들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피가 터져 걸어온 발자국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없는 주홍글씨처럼 새겨지기를 빌었다. 비가 내리는 지도 몰랐다. 세포마다 아픔과 배신의 화살들이 수없이 박히는 데도 느낌이 오지를 않고 눈물도 말라버려 미친년처럼 실없는 웃음만 났다.
얼마를 걸었을까. 낯선 거리에 서 있는 나를 발견 했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구름에 가린 달이 을씨년스럽게 쳐다보며 인생이 어긋났음을 조심스럽게 알려 주었다.
‘너, 인생에 실패했어! 바보!’
그날 밤. 고향과 엄마와 남편을 나는 버렸다. 무작정 버스에 올랐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다. 여기서 벗어나기만 하면 문제되지 않았다.
삶의 다른 출발이든 끝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시작과 끝은 언제나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였다. 정해진 톱니대로 정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인간만이 그 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아니라고 발악을 해대고 있다. 결국은 비명도 못 지를 만큼 힘 빠지고 지쳐야 고개를 끄덕이며 삶의 톱니바퀴를 인정하게 된다.
시작도 끝도 없는 톱니바퀴여. 인생이여. 삶이여. 인간의 굴레여.
시작도 끝도 없다면 나를 영원한 어둠 속에 가두어 줄 수 있는지 신에게 묻고 싶었다. 지옥의 끝에 데려다 줄 ‘카론 영감’을 만나면 영혼이라도 팔아 시간의 감옥에 갇히고 나면 더 이상의 고통은 없을 텐데.
신은 나에게 그런 사치와 허영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라는 여자의 삶은 부서지고 조각나 산산이 흩어져버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톱니바퀴였다.
비린내가 싫어서 도망을 쳤는데 결국은 바닷가 선착장에서 생선의 배 따는 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서툴러 날이 선 칼에 손도 베이고 일손이 느려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바쁜 날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비린내로 범벅을 하고 고픈 배를 채워야했다. 적응해 간다는 건 그만큼 사는데 익숙해진다는 뜻일 것이다. 내 몸에는 씻어도 씻어도 생선 비린내가 가시지를 않았다. 강력본드를 붙여놓은 것처럼.
“나이도 어린기 무슨 고민이 그리 많노. 얼굴이 우거지 죽상 아이가. 도대체 그 입은 얼어붙었는가 말을 안 하니 그 속을 우찌 알겠노. 답답다. 참말로.”
이곳에서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영덕댁은 버스에서 내려 처음 만난 사람이었다. 맨발에 거지꼴을 한 나를 집에 데려다 옷과 신발을 주었다.
남편이 선박사고로 바다에서 죽고 아들 하나만 키웠는데 아들 역시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 살고 있다했다. 하룻밤만 재워 달라는 것이 인연이 되어 3년째 여기서 살고 있으니 이제는 친자매처럼 눈빛만 봐도 어느 정도 얘기가 통했다. 그러나 나이와 이름 정도만 말했을 뿐 아무것도 털어놓지 못하고 열쇠를 꼭꼭 채운 자물쇠처럼 마음의 문을 닫고 살았다.
고향을 떠나고 얼마 후 바람을 타고 들려온 소식에는 엄마와 남편이 도망을 갔다고도 하고, 아버지가 두 사람을 고소했다고도 하고, 엄마 혼자 집을 나갔다하기도 하고, 동네 사람들에게 쫓겨났다하기도 했다. 생선 배를 가르며 수백 수천 번 남편의 배를 가르는 상상을 했다. 튀어나온 내장들을 통에 쓸어 담으며 잘려나간 생선 대가리를 보며 그에게 저주의 말을 주문처럼 쏟아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의 창고에 쌓였던 썩은 기억들을 하나씩 끄집어내어, 삶에서 불필요했던 부분이라 여기며 잘라내려 애를 썼다.
기억을 뭉텅뭉텅 잘라낼 때마다 습관처럼 술과 담배가 필요했다. 소주를 한잔 마시면 몸에 찌르르 전기가 흘렀다. 말초신경이 자극을 받으면 동맥과 정맥으로 알코올 기운들이 숨 가쁘게 달리기를 시작했고 결국에는 서러움의 눈물로 도착점을 맞았다. 알코올이 사람을 마실 때쯤이면 몸이 깊은 바다 속에 빠진 듯 움직이지가 않았다. 헤어날 수 없는 수압에 못 이겨 생을 포기한 익사자처럼 몸도 마음도 절망이었다. 손가락 사이에 하얗게 변해가는 담배만이 살아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빨간 불꽃조차 사그라지면 주위는 천천히 죽어갔다. 나는 불도 켜지 않은 캄캄한 방에서 조금씩 기억을 죽이는 작업을 시간과 함께 진행해 왔던 거였다. 울음이 복받치면 입에서 터져 나오는 흐느낌을 수건으로 막으며 막혀가는 가슴을 주먹으로 부서져라 때리고 또 때렸다. 그러다보면 날이 새고 생선 배를 따러 비늘이 묻은 장화를 신어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 도식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허허허.”
맞은편의 남자는 시원스런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영덕댁의 끈질긴 설득과 반강제적인 압력에 의해 어쩔 수없이 나온 자리였다.
“사람은 별로 볼품없어도 진국인기라. 한번 만나보라카이. 아직 어린데 언제까지 혼자 있을 수는 없다 아이가. 그저 사내는 성실하고 건강한기 최곤 기라. 내가 보장할 테니 일단 만나보라카이. 알았제.”
입가에 흰 거품까지 물며 자랑 하는 성의가 미안해서 나온 참인데 사내는 목젖이 훤히 보이도록 웃기만 했다.
마을의 유일한 다방인 ‘거성 다방’은 마을의 소식통이며 소문의 근원지였다. 마담은 궁금증을 가득 담은 눈으로 커피를 내려놓으며 간드러지는 코맹맹이 소리를 했다.
“어머머 도식씨. 오랜만이네. 뭐 좋은 일 있나 봐. 호호호”
“허허. 누님두 참”
화장을 한 게 아니라 얼굴에 파운데이션으로 도배를 한 그녀의 몸에서는 지독한 싸구려 향수 냄새가 풍겼다. 순간, 나는 옷에다 코를 가져갔다. 비릿함이 스며든 스웨터가 왈칵 얼굴을 붉게 만들었다. 남자에게도 분명 이 냄새가 전해지고 있을 터였다. 손에서 땀이 배여 나와 탁자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마담은 얼굴에 떡칠할 시간은 있어도 탁자 위의 먼지는 닦을 시간이 없었나보다. 먼지가 테이프처럼 끈적끈적하게 손에 달라붙었다. 이 느낌. 너무 싫다. 남편에게서 느껴지던 질척한 정액의 불쾌함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당황스럽다. 숨겨두었던 예전의 기억들이 스멀거리며 기억의 아스팔트위에 아지랑이가 된다. 식은땀이 이마에 맺히기 시작하며 속이 거북해졌다.
몇 번이나 배여 나온 땀으로 손가락에 묻은 먼지를 비볐지만 순간접착제처럼 달라붙은 지독한 놈은 떨어지지를 않고 새까맣게 변해만 갔다.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영덕댁 아지매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고아라고 …….”
“네.”
고아. 그랬다. 이 마을에서는 부모도 일가친척도 없는 고아라고 소문이 났다. 나 역시도 그게 편했다. 아마도 내일이면 마을 전체에 말이 퍼질 것이다. 도식이놈과 고아 아가씨가 선을 보더라고. 며칠 후면 둘이 같이 산다더라는 말이 떠돌 것이고 힐끔거리며 자기네들끼리 속닥거릴 것이다.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말이다.
매일 되풀이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연애만큼 재미있는 활력소가 어디 있을까? 남의 말만큼 재미있는 놀이가 어디 있을까?
“저는 가진 건 없지만 연희씨 먹여 살릴 정도의 힘은 있습니다. 큰 욕심 내지 말고 서로 외로운 사람끼리 한번 살아봅시다. 설마 밥이야 굶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