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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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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완전범죄(2)


BY 둘리나라 2007-09-16

 

Ⅱ그녀. 남편과 그 남자를 말하다


그 남자의 몸에서 흐르는 땀이 그녀의 눈에 떨어져 아까부터 눈이 따가웠다. 침대위에 대자로 드러누운 남자는 숨을 고르며 담배를 꺼내 피웠다. 곁에 놓인 까만색 재떨이는 앙증맞은 까만색 발모양이었다.

재떨이! 언젠가 술자리에서 친구가 흘린 농담이 생각났다.


“야,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 캤는데 그기 뭔 뜻인지 아나?”


친구는 재떨이를 손에 들고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었다.


“재떨이는 재떨이 구실만 하믄 된다카는 말이다. 재떨이가 밥그릇 구실을 할라꼬 하믄 안된다 아이가. 인간이나 자연이나 다 생긴 그대로 자기의 구실만 하믄 된다카는 뜻인 기라.”


그녀는 물끄러미 재떨이를 바라보다 담배를 비벼 끄며 탄식처럼 숨을 크게 내쉬는 남자의 어깨로 시선을 옮겼다.


‘이 남자의 구실은 과연 무얼까?’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가장 필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204호. 언제나 약속장소는 ‘에메랄드 장 204호’였다. 보석이름처럼 아름답지도 고운 빛깔도 없는 인간 육체 본능의 살풀이 장소였다.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만나야 하는 거야? 나 자기랑 떨어져 있기 싫어 정말.”

“나도 마찬가지야. 근데 방법이 없잖아.”


그녀는 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남자의 품에 안겨들었다. 행복한 만족감이 스며든 얼굴에는 땀이 촉촉이 베여있었다.

1층으로 내려와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재빨리 모텔을 빠져나가 차에 올랐다. 여유 있게 걸어 나온 남자는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며 뺨을 살짝 꼬집었다. 헤어짐이 아쉽다는 표현이었다.

3개월이 넘게 지속하고 있는 부적절한 관계.

인터넷 채팅으로 알게 된 남자의 이름은 윤 충호였다. 처음에는 그저 무료하고 지루한 시간을 달래려 배운 컴퓨터였는데 채팅을 배우고 난후 사람들과 얘기한다는 게 너무 좋았다.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방과 모든 것을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매력에 빠져 점점 중독이 되어 갔다. 하루라도 컴퓨터를 하지 않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삶은 계란을 물 없이 먹는 것처럼 목이 말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아도 부담이 안 되니 자연스럽게 그녀는 마음이 맞는 그 남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갈증에 타는 육체는 사막 가운데서 힘들어하고 있다고 …….그랬다. 그녀에게는 물이 필요했다. 자신의 갈증을 채워줄 가뭄의 단비 같은 물이 절실히 필요했다. 언제나 메말라 있는 입술로 농부가 비를 기다리듯 남편의 사랑을 기다렸지만,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고개 숙인 시간만 째깍거리며 밤의 고개를 넘을 뿐이었다.

이제 그녀의 나이 서른둘, 남편의 나이 서른다섯. 한창 싱그러워야 할 집안은 을씨년스러운 겨울바람만이 불었고 어둡고 침울한 기운만이 가득했다. 거울을 볼 때마다 가슴이 시려 왔다. 제법 통통하게 살이 오른 뽀얀 얼굴을 한, 귀엽게 생긴 여자가 슬픈 눈으로 서 있는걸 보는 게 두렵기까지 했다.


남편은 조금은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연애시절에도 자기의 주장보다는 그녀의 의견을 많이 들어주는 편이었고 언제나 흐릿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사랑하느냐고 물어보면 얼굴까지 붉어지며 고개만 간신히 끄떡였다. 흔히 말하는 신혼시절의 기선제압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은 그녀에게는 필요가 없었다. 하자는 대로 다 따라주고 별다른 의견도 제시하지 않았기에 나름대로는 평탄한 결혼생활을 해왔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나 기운을 잃어버린 남편의 중간 지지대는 자기가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설 생각이 없었는지 도통 반응이 없었다. 당황해 하는 남편 앞에서 짐짓 태연한 척 했지만 더 놀란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허허 별 이상은 없는데 아마도 스트레스와 정신적인 요인이 작용을 하는 가 봅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를 함께 해보도록 하지요.”


의자가 좁아 보이도록 배가 나온 의사는 대수롭지 않은 병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심각했다. 한창 젊은 나이의 부부가 성생활을 할 수 없다는 건 엄청난 일 아닌가. 밤이 오면 남편의 눈은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불쌍할 정도로 초점이 흐려져 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어둠이 장악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허공에 보내는 날이 많아져 가고 둘 사이의 대화는 간단한 의사소통 정도가 전부였다.


사는 게 짜증나고 혼란스러웠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바람이 강렬하게 찾아 왔을 때 배운 게 컴퓨터였다. 그리고 사이버 안에서 새로운 남자를 만난 것이다.


“안녕하세요. 얘기는 많이 나누었는데 처음 뵙네요.”

“네, 저도요. 반가워요 ”


토요일 오후의 커피숍은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약속이란 무얼까. 살아가는 일 중에서 인간이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사회적 행동중 하나란 생각이 들었다. 친구와 연인과 부모와 자식과 스스로와 세상과 우리는 약속을 하고 있다. 우정은 변치 말자, 사랑은 영원하자, 부모님께 효도 할게요, 아들딸아 행복한 가족이 되자, 너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야, 세상아 난 너를 이겨낼 수 있어 약속해! 어쩌면 세상을 만들면서 신이 인간에게 준 첫 번째 선물이 약속인지도 모른다. 신과 인간과의 손가락 걸기는 아마도 절대 신의 영역에 침범하지 말라는 약속이 아니었을까?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먼지 알갱이들이 몸을 피하느라 분주하게 날아다녔다. 숨을 곳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멍하니 먼지 알갱이들을 부러워하다 그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편과는 너무 대조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의 살아온 얘기들을 솔직하게 꺼내놓으며 시원스럽게 웃고 있었다. 먼지알갱이와 미소알갱이가 섞이며 오후의 햇살에 부서져 내렸다.


“얼굴만 안 봤다 뿐이지 몇 달 동안 대화를 해서 그런지 전혀 낯설지가 않네요.”

“네에, 저도요.”


커피를 마시고 밥을 먹고 간단하게 술을 마셨다. 남편에게는 동창회가 있다고 연락을 한 터라 시간에 구애 없이 술잔을 받았다. 아니 취하고 싶었다. 집에 가봐야 빈 가슴을 끌어안고 캄캄한 방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며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게 전부인데 오늘만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여자로 오직 여자로 한 남자의 눈에 비치길 원했다. 그게 다였다. 머리 굴려 생각하고 변명거리를 찾고 싶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해진 순서처럼 모텔 방에 들어온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심장박동이 횟수를 망각하고 제멋대로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한 육체의 유혹을 뿌리치기에는 그녀는 너무나 외롭고 지쳐있었다. 서있기도 힘들 만큼 육체는 아파서 치료해줄 따스한 손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 남자. 지칠 줄 모르는 힘으로 무장한 사람이었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터지고 눈앞이 아찔해져 오고 온몸은 활화산으로 터져 버렸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떨어지는 아득함과,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짜릿한 쾌감과, 약간의 소름이 끼치는 공포가 그녀를 감싸 안으며,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절정의 환희에서 신음이 막혔던 혈을 뚫고 일순간에 세포들을 긴장시키며 방안가득 터져 나왔다. 빠져나오고 싶지 않았다. 아니 더 깊은 황홀의 늪 속으로 자신을 던져 깊숙이 가라앉고만 싶었다. 남들이 보면 손가락질을 하고 침을 뱉을지 몰라도 그녀는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이해받기를 원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착각하지 말라고.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너희가 잘못된 거라고 …….

100명의 사람이 있는데 99명이 틀리고 1명이 바르면 그 한 명은 이상한 사람이 된다. 실제로는 한 사람이 바른 사람인데도 집단이기주의의 체면에 걸린 99명을 이겨낼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을 나쁘다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이 99명이고 자기는 올바른 1명이라고 자꾸만 자꾸만 마약처럼 강도를 높여가는 의식의 주사를 놓으며 착각의 기준을 세워나갔다. 그렇게라도 해서 자위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자신조차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리라는 강한 느낌을 온몸에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기랑 못 헤어지니 어떻게 좀 해봐. 좋은 수 없을까?”


그 남자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사랑을 애원했고 두 사람의 머리에서는 결국 같이 살고 싶다는 웃기지도 않는 결론을 만들어냈다.


“남편이 내 말은 그대로 믿으니 친척오빠라고 하면 될 거야. 어때? 잘 할 수 있지? 태연하게 해야 우리 의심 안 받고 같이 살 수 있어.”

“그래, 그래.”


인간이란 존재는 너무나 단순해서 무언가에 미치면 물불을 가리지 못하고, 형광등을 향해 뛰어드는 모기처럼 금방 죽는 것도 모르고 무작정 일을 저지른다.

그녀에게는 돈과 명예와 권력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자신을 여자로 살아서 꿈틀대는 싱그러운 육체로 여기며 안아줄 남자만 있으면 됐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양심의 끝이 칼에 베인 듯 쓰리고 따갑고 아파서 남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었다. 완전히 믿고 바보같이 속아 넘어가는 남편에게 죄책감이 들어 견디기 힘들었지만 본능의 유혹을 넘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남편이 회사에 가고 나면 집안은 두 사람의 에덴동산이었다. 태초의 아담과 이브처럼 알몸으로 웃고 먹고 얘기하고 사랑했다.

남자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면 남자에게는 갈비뼈가 한 개 모자라야하는데 왜 숫자가 똑 같으냐며 신기하다 만져 보기도 했고, 장난치다 눈이 마주치면 입술이 부어오르도록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오후 내내 침대에서 나오지 않은 적도 있었다.


토요일 오후. 남편에게서 늦어진다는 전화가 왔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가쁜 소리를 내지르다 겨우 진정을 하고 수화기를 들었다.

흥분한 숨소리와 심장의 떨림이 금방이라도 선을 타고 들릴까 봐 애써 잔기침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오늘 좀 늦는다고 하네.”


전화를 받고 있는 중에도 남자의 손은 여자의 온몸 구석구석을 오르내리며 뜨거운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수화기를 놓기가 무섭게 그녀는 다시 본능의 파도에 몸을 실었고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오르가슴의 포말들은 몸 구석구석에 부딪히며 환희로 사라져갔다. 남자의 가슴에서 흘러내리는 땀이 자꾸만 눈에 들어와 손으로 눈을 닦았다.

머릿속에는 남편이 아직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안도감에 가뿐 호흡이 입술 사이로 터져 나왔다.


성의 열락에서 빠져나온 남자는 입에 담배를 물고 뚫어져라 재떨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남자도 재떨이의 구실을 알고 있는 걸까!

정지된 시간의 감옥에 갇힌 그녀와 그 남자의 육체는 긴 여행에서 돌아온 탕아처럼 지치고 쓸쓸하고 외로웠다. 그래서 더 미친 듯이 집착하고 갈구하며 사랑을 목말라하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계추가 늘어진 남편의 성기처럼 힘없이 왔다 갔다 하며 피곤하고 고통스럽게 시간의 바늘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재떨이와 시계추를 번갈아 쳐다보다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남자의 품에 자신의 알몸을 묻으며 밀려오는 잠에 눈을 감았다.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여왔다. 바람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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