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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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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향기가 바뀌다 -1-


BY 데미안 2012-03-08

 

 

1.

장여인은 아침 일찍 딸인 설이 주방에 내려와 있는 걸 계단 위에서 지켜보았다.

설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무엇하나 빠질 것 없는 딸이었다.

심성이 곱고 자만하지 않고 거만하지도 않은 딸이었다.

언제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그런 딸인데...

장여인은 즈끈 아파오는 가슴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불쌍한 것...

가엾은 것...

피눈물이 마르지 않고 장여인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딸인 설에게 장여인이 할수 있는 전부인 것 같았다.

평생을 가슴으로 우는 하는 있어도 장여인은 딸앞에서 태연하리라 다짐을 했다.

그것이 세상을, 자신이 처한 모든 상황에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딸을 돕는 일이라고 장여인은 생각했다.

받는 것보다 늘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는 딸이었다.

장여인은 심호흡을 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나도 한 잔 줘]

평소대로,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장여인은 설에게 말했다.

설은 커피를 내리다말고 놀란 표정으로 장여인을 바라보았다.

늘 그렇게 했듯 장여인이 유리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내심 걱정하고 있던 설은 장여인의 그 모습을 한참 보더니 가만히 몸을 돌려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놓였다. 한결 편해졌다.

그래...이걸로 된거야......

설이도 장여인도 서로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그렇게 생각을 했다.

 

2.

[아니, 네 녀석이 이 시각에 웬일이냐?]

좀처럼 회장실엔 발길을 않는 준수가 아침부터 들러자 신여사가 의아해 하며 물었다.

[오래 살다보니 이런 날도...!]

[이번에 최종적으로 선발된 건설업자...자료를 제가 다시 봐도 되겠습니까?]

어쭈, 사업에까지 심히 관심을...?

별일이다 싶은 신여사가 말없이 자료 파일을 내밀었다.

죽 들춰보던 그가 한 무더기의 자료를 신여사 앞에 던져 놓았다.

[어머님께서 1위로 꼽으신 <대운건설>]

[그래, 대운 건설...그런데?]

[제가 오면서 형님을 불렀습니다. 일단, 형님이 오시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현수가 들어섰다.

그 또한 의아한 얼굴이었다.

[왔구나.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차부터 한잔 하자]

 

[최종 선발된 세 곳에 대해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게 어느 정돕니까?]

[서류상으로 오픈된 것과 현장 조사...완벽하다고 할수는 없지만 세 업체 모두 재정 상태는 튼튼해]

찻잔을 내려놓으며 현수가 답했다.

[특히, <대운 건설>은 흠잡을데가 없지요. 아닙니까?]

[그렇지. 그리고 대운의 회장이 사업 수단이 좋다고 하더라. 냉정하고 깔끔하고....무슨 문제 있냐?]

신여사의 말이다.

[오늘 최종적으로 답을 주기로 했습니까?]

[그래]

[며칠, 보류 하십시요]

[뭬야? 왜?]

[대운건설...석연찮은 구석이 많습니다. 제가 직접 본사가 있는 LA에 다녀올까 합니다]

신여사와 현수가 잠시 놀란 눈으로 준수를 빤히 보았다.

사업에, 아니 건설쪽에 대해서는 냉정하리마치 뒷전이던 준수였다.

그런데 갑자기 적극적이라니....거기다 직접 나서서 조사까지...

왠 횡재냐 하는 눈빛으로 신여사와 현수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해가 서쪽에서 떴다고 해도 믿을 판이었다.

[그럴래? 언제 갈거니? 내일? 비행기표 예약하라고 할까?]

준수의 맘이 편할까봐 덜컹, 겁이난 신여사가 얼른 선수를 쳤다.

[오늘 오후 비행기를 예약했습니다]

정말 놀랠 노자로다.

신여사와 현수는 그저 놀랍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준수를 쳐다만 보았다.

 

3.

[정말...다시는 학교로 복귀할 수 없는거야?]

창가에 놓인 꽃화분을 하나하나 닦고 있는 설에게 유마담이 다가와 물었다.

내내 마음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것만큼은 유마담도 포기가 되지 않았다.

유마담이 그러할진데 설은 ....!

태연한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임용에 합격이 되었을때 설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유마담이었다.

교사 자리는 온전히 설의 힘으로 얻어낸 자리였다. 노력과 열정을 쏟아서 얻어낸 자리였다.

그렇게 허무하게 포기해서는 안되는 일인 것이다.

설은 웃었다.

쪼그리고 앉은 채 유마담을 보면서 설은 그렇게 웃었다.

[이모, 미련두지마요]

[넌 아깝지도 않니? 억울하지도 않아?  이름도 모르는 어떤 한 사람의 제보로 모든 걸 놓친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아깝죠. 억울하기도 하죠.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예요. 새 학기가 시작되면 다른 일을...!]

휴대폰이 울렸다.

준수의 번호가 떴다. 힐끔 본 유마담이 몸을 일으켰다.

[나 들어갈께. 나중에 다시 얘기해]

 

ㅡ뭐하고 있지?ㅡ

[화단 손질하고 있었어요. 오늘은 모처럼 날이 좋아서...]

ㅡ잠깐 나올수 있지?ㅡ

[어...그건 ...그렇지만...!]

ㅡ집근처로 가는 중이야. 10분이면 도착할거요ㅡ

하면서 그는 그녀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가 그녀를 데려 간 곳은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위치한 붉은 색과 흰 색 벽돌로 지은 한  이층 주택이었다.

아담한 나무가 주택을 보호하듯 둘러져 있고 잔디밭에는 드문드문 눈이 쌓여 있었다.

두꺼운 유리벽 너머에는 옅은 보랏빛의 이중 커튼이 양옆으로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가...어디예요?]

자동문을 열고 그가 그녀를 먼저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실내는 따스했다.

[내가 사는 곳]

그녀 뒤에서 그가 간단히 말했다.

놀란 눈으로 그녀가 그를 보자 그는 씨익 웃었다.

[쉽게 말하자면...늑대 혼자 사는 소굴에 희생양이 들어 섰다고 해야 하나?...무섭지 않소?]

[그렇군요...무섭긴...하네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거실을 둘려 보았다.

넓은 거실 창가에 푹신하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파가  병풍처럼 ㄷ 자형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벽은 책장으로  책들이 빽빽했다. 거실겸 서재같았다.

바닥에도 푹신한 카펫이 갈려 져 있었고 고풍스런 나무 탁자가 뎅그러니 중앙에 놓여 있었다.

천장은 이층이 보이게끔 높이 설계되어 있었다. 등글게 설치된 이층 난간 또한 고풍스러웠다.

 

무섭긴...하네요...?

준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하나도 무서운 얼굴이 아니었다.

나를 믿는다는 의미군...내 속도 모르면서...

준수는 한쪽 입가를 치켜올리며 웃었다.

그래도 밝아 보여 좋군...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녀가 코트를 벗어 소파에 걸쳐 놓으며 책장으로 향했다.

착 달라붙는 진바지가 그녀의 다리 길이를 늘여 놓았다. 그리고 흰 니트는 그녀의 피부를 더욱 환하게 만들어주고 있어 순간적으로 준수는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어 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오후 비행기로 미국 들어가봐야 해]

그의 말에 그녀가 돌아섰다.

[점심도 먹어야 하고 옷도 갈아 입어야 해서 집으로 온거야.  내가 샤워할동안 당신이 점심 좀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데...무엇이든 상관없고...될까?]

[미...국 가요?  그럼 언제 와요?]

[3일후]

[그렇군요...]

기분이 이상했다. 준수가 어디론가 간다고 하자 갑자기 가슴속을 바람 한줄기가 휙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아주 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자신의 내면이 들여다보일까봐 설은 얼른 주방을 찾았다.

최첨단식의 주방이 눈에 띄었다.

[나... 만들줄 아는게 별로 없는데...냉장고에 뭐 있어요? 뭐 좋아해요?]

[만두국, 할줄 알아?]

그러자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그의 심장이 녹아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녀가 끓여준 만두국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답례라면서 설겆이를 했다.

그 모습을 신기한 눈으로 보면서 설은 커피를 끓였다.

[몇시 비행기예요?]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가 물었다.

[아직 여유가 있어...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얘기해 줄 수 있겠어?]

[무얼요?]

[기차역에서 만났던 두 남자에 대해...]

[......!]

[당신 아버지와는 어떻게 시작했으며 어떻게 되었는지...얘기 하기가 어렵다면 굳이 강요는 않겠지만...!]

[함께...막노동부터 시작한 사이였다고...아버지께서 말씀하신적 있어요]

설은 입을 열었다.

굳이 감출 필요가 없는 얘기였다.

회상하듯 이야기를 하는 그녀와 가만히 듣고 있는 그...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녀의 차는 식어 있었고 그의 찻잔은 비어 있었다.

[처음이예요. 이런 얘기를 해 본 게...]

[아버지를 원망해?]

[아뇨...전 아버지를 존경햇어요.  그리구 누구보다 사랑했어요. 그리고...가끔..그리워요]

그녀의 눈이 촉촉해져왔다. 그러나 그녀는 웃고 있었다.

[가야하지 않나요?]

[음...가야지]

그에게 모든 걸 얘기하고 나자 조금은 쑥스러웠다. 그래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가 공항까지 배웅해 드릴까요? 아니다...그건 좀 그렇죠?]

혼자 묻고 혼자 답하면서 설은 코트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 손을 그가 잡았다.

준수는 그녀를 품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폭신폭신하고 말캉한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잡았다.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자 설은 몸을 뒤로 빼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가만둘리 없었다.  한손을 허리에 두른 준수는 그녀를 꼼짝 못하게 했다.

[키스만...]

그녀의 입술에 눈을 고정시키며 그가 나즈막히 속삭였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 위로 내려 오더니 그대로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거침없이 과감하게 열정적으로 마치 삼켜버릴듯 그가 그녀의 입술을 빨아당기며 맛보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가  한순간 멈추었다가 다시금 거세게 뛰기를 반복했다.

숨쉴틈없이 몰아붙이는 그의 키스에 그녀는 정신마져 가물거리는 것 같았다.

뜨겁고 말랑한 그의 혀가 그녀의 입술을 한번씩 쓸더니 그 입술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제 집인냥 그녀 입안을 돌아다니던 그의 혀가 그녀의 숨은 혀를 찾아내자 반가운듯 엉켜붙었다.

놀랍기도 하고 뭔가 야릇한 흥분이 밀려오자 그녀는 온몸의 힘이 죄다 빠져 휘청했다.

절로 신음소리가 나왔다.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준수는 그나마 이성적일때 정신을 차렸다.

미친듯이 자신의 아랫도리가 요동치기 전에 그녀를 풀어주어야만 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준수는 힘겹게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그녀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키스조차 서툴고 몽롱해하며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에 기대게 했다.

둘다 숨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준수는 자신을 진정시켰다.

[너의 휴대폰에 이 집 비밀번호를 찍어 줄테니깐 내가 돌아 오는 날  여기 와 있어...음?]

대답이 없다.

[...윤설, 대답해]

그녀는 그의 품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빙긋 웃으며 그녀를 꽉 안아주었다.

그리고 깊은 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