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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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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몰아 오는 바람 -3-


BY 데미안 2011-12-30

 

1.

 친애하는 교장 선생님

학교를 사랑하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아끼는 학부모로서 차마 간과할 수 없기에 큰 결심으로 이 글을 올립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한 여교사에 대한 양심입니다.

거두절미하고 지금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한 여교사가 몇 해 전에 성매매를 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 취지가 아픈 모친의 수술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성매매를 했고  지금 이 순간 아무렇지 않은 듯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이 바르고 올곧게 자라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한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닙니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매매는 분명, 법에 어긋나는 짓입니다. 그것을 잘 아는 선생님이 그런 짓을 하고도 아이들 앞에 선다는 건 용납할 수 없습니다.

교장선생님.

저는 그 여교사의 양심에 묻고 싶습니다. 진정,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여교사에게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올바른 판단을 내리시길...

그런 까닭에 제가 교장 선생님 전으로 이 글을 띄운 겁니다.

그 여교사의 이름은 윤설 선생님입니다.

내년 새학기때 윤설 선생님이 학교에 계속 계신다면 저는 부득이 이 글을 학교 홈페이지와 교육청에 투고하겠습니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2.

설은 떨리는 눈빛으로 그 글을 한번 더 읽었다.

그 화면 그 글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온 몸의 피란 피가 몸에서 죄다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속수무책이었다.

어떻게 손을 설 수가 없었다.

세번이나 읽고서 설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 손으로 노트북을 덮었다. 눈을 들 수 없었다.

이렇게...부끄러울 수가...!

누가...누가 이런 글을...어떻게 알고...!

생각을 할 수 없었다.머리도 몸도 백지다.

이런 날이 오리란 생각은 한번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었다.

꿈에서조차...!

 

오한이 들린 듯 온몸이 오덜거리는가 싶더니 급기야 가슴속...아니, 뼈속부터 하나씩 천천히...얼어버리는 듯 했다.

아뜩함에 숨조차 쉴 수 없는 설은 그저 눈만 뜨고 있었다.

이런 절망이 있을까...이렇게...또....

이런 지옥이 있을까... 또 다시 벼랑 끝인가...

이런 기분...정말 싫은데...

죽을것만 같아서 설은 두 손을 힘겹게 거머 쥐었다.

 

가물거리는 정신을 부리나케 움켜 쥐고 설은 가슴도 도닥여 보았다.

정신 차려라, 윤설...

치명적이다. 치명적인 데미지다.

[...윤선생님?]

여교장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려 오는 듯 했다. 아니, 꿈속일까...?

[윤선생님, 괜찮아요?]

그래, 꿈일리가 없지...

설은 차마 여교장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네에...교장선생님]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낯선, 다른 누군가가 대신 답하는 것 같았다.

[메일 내용이...사실입니까?]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라고 할까... 거짓이라고 할까? 중상모략이라고? 그럴까?...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니라고...믿어 달라고?...

머리속에서 악마와 천사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설은 악마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사...실인 것 ...같습니다. 교장...선생님...]

승리의 종은 천사가 울렸다. 설은 질끈 눈을 감아버렸다.

 

설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교실로 돌아왔다.

문자가 다섯통이나 와 있었다.

확인하지 않았다.

설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뜨거웠다.  벌거벗은 기분이었다.

여교장은 교감과 의논을 하겠다고 했지만 설은 그 말속에 담긴 진실을 읽었다.

-윤선생이 알아서 사표를 써 주세요-

아마도 교장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리라.

 

누굴까...누굴까...

그 일을 아는 사람은 자신과 유마담...그리고 김준수 뿐이지 않는가.

그러나 유마담과 준수는 그 얘기를 흘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설은 자신의 목숨까지 걸 수 있었다.

그럼...누굴까...대체....

눈물이...손가락 사이로 그녀의 눈물이 흘렀다.

 

3.

[너 어제 무슨 일이야? 교장 선생님이 찾아서 갔다며? 뭔데?]

학교 오자마자 쪼르르... 혜지가 와서 물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말이다. 설은 힘겨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한숨 자지 못했다.

[아니...그냥...]

[...그냥? 그냥이 뭔데? 너, 날 속일 생각마.  어제 잠 설쳤지? ...눈빛도 어두워. 너...예전에 그런 비슷한 눈빛 한 적 있어. 모르지?]

설은 뜨금했다.  그럴것이다. 혜지는 설이 겪은 것을 옆에서 모두 지켜본 장본인이다.  그 일을 빼고...

[무슨 일이야?]

혜지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설의 표정, 그녀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나 보인다.

윤설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여자다.

[나중에... 나중에 얘기해, 혜지야. 지금은...아니야. 지금은 내가...생각중이야. 알았지?]

무언가 나쁜 일이 일어났다. 혜지의 가슴이 벌렁거리는 게 그 증거다.

 

설은 준수의 전화도 피했다.

그는 혜지만큼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사람이다.

그녀의 변화를 눈치 챌 것이다. 설은 그게 싫었다.

그를 만나면,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할  자신이 없었다. 당분간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문자를 보냈다.

-일이 있어서 당분간 만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제가 연락할게요. 죄송해요-

설은 그가 그대로 믿어주길 바랬다.

 

그 문자를 준수는 오래도록 응시했다.

무언가 쎄-했다. 직감이다.

그의 예리한 감각은 빗나간 적이 없었다.

준수는 그 문자가 거슬렸다.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기회를 엿보며 도사리고 있는 듯.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확실하다고 느꼈다.

[무슨...일이지?]

준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준수는 험상맞은 인상을 쓰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기다려보자 며칠만...

 

방학이다.

아이들이 떠난 텅빈 교실에서 설은 멀거니 앉아 있었다.

재잘거리며 인사를 하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서 왱왱거리는 것도 같았다.

[어이, 윤선생. 안갈거야?]

혜지다.

윤선생...그래, 난 윤선생이야. 선생님이 되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울컥, 눈물이 삐죽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으며 설은 웃었다.

[으응, 가야지... 혜지야, 밑에서 기다려줄래?  교장 선생님 잠시 뵙고 갈게]

[...그럴까? 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의심가득한 눈으로 혜지가 설을 살피더니 슬그머니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설은 또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그 한참이 지난 후 설은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4.

[우리 간만에 강바람 쐬러 갈래?]

설은 혜지의 팔을 잡아 끌었다.

[커피도 마시고...]

방긋 웃는 설을 보며 혜지는 그렇게 했다.

강변에 위치한 까페테리아의 창가에 자리하고 앉아 커피를 시켰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이 없었다.

따뜻한 온기가 몸을 녹여주고 조용한 음악이 마음을 녹여주고 ....

혜지는 커피를 홀짝거리는 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먼저 입을 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선배...아니, 남편이 기다리겠다...]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마음속에 있는 얘기부터 해봐]

혜지가 선수를 쳤다.

설은 웃었다. 이번에는 슬픔이 묻어있는 미소다.

[나...학교에 사표냈어]

[...뭐...뭐라고?  뭘...뭘 내?]

[사표...내년 새학기 시작하면...나 학교에 없을거야]

[무,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쉽게 얘기해, 윤설!]

[있잖아, 혜지야. 나 너한테 얘기 못한 거 있어]

 

윤설은 말했다.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김준수가 그녀를 도와주었고  그 댓가로 그와 하룻밤을 지냈다는 걸.

그리고 그것을 누가 어떻게 알았는지 학교에 알렸고 그래서 어쩔수없이 사표를 냈다는 걸.

혜지의 입이 벌어졌다.

 

[미안해...그런데 그런 얘기를 너한테도 할 수가 없었어. 그 하룻밤이 내겐...이자였으니깐...그리고 끝이었으니깐...그 날을 난 후회하지 않아.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어]

[어머니 수술비 해결되었다고 하면서...넌 한동안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어.  난 ...혹시 하면서도 솔직히 너한테 물어보지 못했지. 그전에 네가 내게 그랬지? 어머니를 살릴 방도가 있다면 몸이라도 팔겠다고... 난 아니길 바랬어.  그래서 난 차마 너한테 묻지 못한거야.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하는데...너한테 물어볼 자격이나 있나 싶어서...]

[미안해...]

[나한테 그런 소리 하지마, 바보야. 무엇이 미안하다는거니?  미안해 해야 하는 건 오히려 나야. 친구랍시고, 제일 친한 친구랍시고 너한테 내가 해준게 뭐 있니? ]

[아니야. 네가 옆에 있어 줘서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는데...그리고 너는 나를 위해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잖아. 그냥 믿어주고...옆에 있어 주고...고마워]

주루룩....

혜지가 눈물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눈물이 결국 설에게도 옮았다.

혜지가 자리를 옮겨 설에게로 오더니 꼭 안았다.

[진작에...진작에 이렇게 너를 안아 주었어야 하는데...미안해, 친구야. 정말 내가 미안해...]

혜지는 자신의 가엾은 친구를 꼭 끌어안았다.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혜지는 진심으로 가슴이 아팠다. 몰랐다. 어쩌면 알았다해도 혜지는 몰랐다고 할 것이다.

분명 설은 눈빛으로 혜지에게 말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을 애써 모른척 했던건, 혹시나...하는 그 느낌을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테니...

혜지는 설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친구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그동안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던 설을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이 미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