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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도혜옥의 고뇌1)


BY 황영선 2007-03-05

  진해 도서관은 주영의 아파트와 가까웠다.

 이 도시에 비해서는 아주 작은 도서관 건물은 2층 건물이었다. 일층은 성인 열람실이었고, 이층은 아동열람실이었다.

 주영은 책을 읽으려 도서관을 자주 찾았다.

 작고 아담하여 도서관이라고 하기보다 도서실이라고 하는 쪽이 나을 것 같은 크기였다.

 도서관 안은 사람들이 많지 않았는데, 방학이 되자 조금씩 열람실이 채워졌다.

 어린 아이티를 벗어나지 않은 대학 생일 것 같은 남자애와 여자애, 취업준비를 하는 주영또래의 남자들과 주영보다 어린 여자들도 있었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이층  열람실로 분주하게 계단을 오르내렸다. 아이들 눈에는 도서관마저도 놀이 장소인 듯 즐겁고 친구와 장난을 치고 있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자, 갑자기 주영은 지현이 보고 싶었다. 목소리를 들은 지도 한참 지난 것 같았다. 요즘은 메시지도 통 보내오지 않는 지현이었다. 뭔가 바쁜 일이라도 생긴 것인가? 미국연수?

 

 여전히 비가 오는 날이면 아파트 베란다 창문에서는 비가 샜다. 비가 새는 줄 알면서도 주영은 도혜옥을 찾았다.

 그런 어느 날 도혜옥의 가게 문 앞에 굵은 남자 글씨체로 '점포정리'라고 써진 흰 종이 하나가 유리문에 세로로 길게 붙어 있었다.

 

 갑자기 주영은 눈앞이 캄캄해 지는 느낌이었다.

 출입문이 열려 있는 가게 안이 선풍기 한 대로는 더웠던지 도혜옥이 손부채를 부치고 있는 모양이 주영의 눈에 들어왔다.

 도혜옥의 얼굴이 전헤 없이 환한 이유는 뭘까?

 주영은 아침부터 냉장고 청소를 끝내자 온 몸에 땀이 기분 나쁠 정도만 났다. 아침에는 거의 하는 일이 없는 샤워를 한 다음 화장을 끝낸 주영은 외출준비를 마쳤다. 도혜옥을 만나고 도서관으로 바로 갈 작정이었다.

 향수를 뿌릴 까 하다가 땀이 없는 주영이었지만 혹 땀과 향수 냄새가 누구에게라도 불쾌감을 줄까봐 향수를 뿌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엘리베이트를 타려고 나오다 보니 오래 전에 홀로 되었다는 1408호에서 나오던 그 여자 분 또래의 신사 분과 주영이 마주치고 말았다.

 멋있는 노신사였다.

 여름인데도 은은한 하늘색 머풀러까지 두른 노신사였다.

 1408호 여자는 조용조용하게 말했고, 젊은 사람인 주영에게 하대하지 않을 정도로 예의 발랐으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봉사활동을 하러 간다는 말을 주영과 마주쳤을 때 몇 번 했다.

  워낙 말수가 적어 먼저 말하기 전에는 말 붙이기 꺼려지는 그런 인상이기도 했다.

 주영은 노신사의 눈에서 당혹감을 읽었다.

 저런 나이에 젊은 자신에게 감추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주영은 더 알은체 하면 실례될 것 같아 일부러 노신사와 다른 쪽 문을 통해 삼라만상으로 가려고 길을 잡았다.

 아파트에서는 두 곳으로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는데, 주로 T자 오른쪽 통로에 살고 있는 아이들과 어른들은 T자 가운데 계단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날 주영은 그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아파트를 한 바퀴 빙 돌았다.

 도혜옥이 그들의 로맨스를 들으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했다.

 

 도혜옥은 종교인이라면 그가 불교도인든, 기돌교인이든, 천주교인이든, 이슬람교도인이든 모두 사랑을 바탕에 둔 사람들이기 때문에 진리는 하나라고 자신의 종교에 대한 견해를 주영에게 밝혔던 적이 있었다.

 주영은 도혜옥의 그런 단호함이 좋았다.

 그런 단호함마저 지현을 보는 것 같았다.

 

 그만 두고 싶다고 말하던 지난 6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도혜옥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주영을 보고 웃고 있었다.

 그 날은 오늘처럼 출입문이 열려 있지도 않았고, 키 큰 선풍기만 가게 안을 식히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이소, 내 안 그래도 전화할라꼬 생각 중이었는데, 이런 걸 이심전심이라꼬 해야 되겠지예? 그래 잘 지냈어에? 이 주 만에 왔지예? 무슨 일 있었엉에?"

 도혜옥이 물었다.

 "네. 여름인데 감기 걸려서, 집에서 며칠 쉬었어요. 도서관에서 읽을 게 있어서 좀 얇게 입고 하루 종일 앉아 있었더니 방심 했었나봐요. 별일 없으신 거죠?"

 가게 물건이 채워지지 않고 군데군데 비어 있어 주영이 도혜옥을 쳐다보며 물었다.

 "별 일이 있긴 있어예. 이제 이 장사 그만 할라꼬예."

 주영은 도혜옥의 남편이 직업을 다시 가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며 도혜옥의 이어진 말을 들었다.

 "우리 집 주인 양반이 울진에서 전에 하던 일과 관련 있는 일을 얻었어예. 실은 올해 들어 계속 적자만 봐왔던 이 장사도 나한테는 맞는 일이 아니었고예."

 도혜옥이 그 말로 자신의 심정을 말했다.

 "내가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큰 스님께 물었지예. 스님, 스님 제가 이 일에 맞겠습니까?큰 스님이 그랬어예. 이를 남기는 업이 보살님과 맞겠습니까? 보살님이 원 하시는 대로 우선 그 일을 해 본 후에 말씀 하시지요. 하시대예. 그래 시작했었지예. 나는 나름대로 이문을 적게 남길라꼬 가격을 매겼지예. 거짓말 하나 안 보태도 모든 물건 값에 십퍼센트 이상 남기지 않았어예. 그런데도 사람들은 500원이 원가라면  550원에 파는 물건을 갖고 500원에 달라고 했어예. 이 마음을 뒤집어갖고 보여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장사꾼인 내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지예. 손님들 눈에는 내가 물건값을 터무니없이 부르는 장사꾼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지예. 우째 내 마음을 보여 주겠어예. 믿지 않으려고 작정한 사람들한테."

<17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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